1209화
* * *
“포스터 봤어?”
“봤지. 개 멋지던데?”
테라의 10대와 20대 그리고 일부 30대는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이 대단히 많았다.
그들은 전쟁을 모험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낭만이 있다면 전쟁에 가야지. 사람을 구하는 일이잖아?”
그들은 전쟁을 낭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기에 전쟁을 쉽게 생각했다. 그건 실로 ‘멋진’ 일이었다. 남들을 위해서 싸운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영웅심이 들끓어 올랐다. 혈기가 차올랐다.
젊은 치기라고 하기에는 팔이 떨어지고, 눈알이 총탄에 터지고, 다리를 절고, 허리가 뒤틀린 채로 병원으로 호송되는 전쟁은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평생을 머릿속에 파편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 전쟁이라는 놈이었다.
그 전쟁의 무게를 뼈저리게 아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싶지 않은 지식은 굳이 찾지 않으며, 자신에게 노출되는 정보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전쟁에 대해서 굳이 많이 공부하려는 이들은 없었다. 그들은 팩트보다는 인간관계가 더 중요했다.
혈액형 성격을 즐기기 위한 간단한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전쟁은 그들에게 공략해야 할 지식이 아니었다.
그들의 목숨이 좌지우지되었지만, 깊게 몰두하지는 않았다.
“야! 내가 1등으로 입대한다.”
“어딜? 날 두고 혼자 가려고? 하하하!”
서로 자랑을 늘어놓거나 팔씨름을 하기도 했다.
좋은 청춘이었다. 순백의 젊음이었다.
그리고 그 순백의 천은 붉게 변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 전투 강철 인형이 많이 양산되었지만, 행성 전체를 보호할 정도는 아니었다. 뭣이 어찌 되었든, 징병을 권유하는 포스터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모든 이들이 낭만을 노래했다.
40년 전에 있었던 수많은 전쟁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이들은 늙은이들뿐이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늙은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적으로 지위를 지닌 늙은이의 조언은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졌지만, 그들은 테라를 위해서라도 전쟁의 잔혹함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게 애국이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대신 죽어줘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
군인의 피로 평화를 지킬 수 있었다. 그 외에 그 어떤 것으로도 평화는 지킬 수 없었다. 누군가는 특권을 포기하고, 군인이 되어야 했다. 시민 대신 죽어줘야 했다.
테라에는 상비군이 많지만, 여기에 징병까지 시행했고, 징병에 참여하는 이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모두 전쟁을 원했다. 그들은 낭만을 노래하며, 여자들의 손을 잡고 멋진 군복을 입고 춤을 췄다.
국방색의 캠핑카가 도열하며 깜빡이를 켜며 나아갈 때면 지나가던 운전자들은 감탄을 하거나 창문을 내려 따봉을 날렸다. 이를 기록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사람들은 열정으로 가득 찼고, 왠지 모를 활력을 느꼈다.
태양 식민지에서도 군대가 테라로 향하기 시작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결국 태양 식민지의 경제는 테라에 종속되어 있었다.
테라의 우월한 문화가 태양 식민지로 향했고, 태양 식민지의 식량이 테라로 향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태양 식민지의 기득권층은 당연하게도 테라의 기득권층이었다.
많은 군대가 그곳으로 향했다. 그중에는 돈을 받고 용병으로 고용된 보어리안들도 많았다. 이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시설을 보호하게 될 것이다. 특히 평범한 사람들을 지키는 데 많이 투입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철컹! 철컹!
페도필리아가 들으면 움찔움찔 지릴 거센 철 소리가 도시에 울려 퍼졌다. 곳곳에 100mm가 넘는 철판이 설치되고 있었다.
노인들이 지팡이를 짚고 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먼지가 제법 날렸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뭐 하는 거래?”
“엉?”
“뭐 하는 거냐고!”
“어엉? 엉? 좀 크게 말해 봐!”
“이런, X발. 다 늙어 자빠져서 여기는 왜 나왔어!”
“난 점심 짜장면으로 기깔나게 먹었어! 더 안 먹을래!”
“이런 X발!”
가슴을 쾅쾅 쳐대었다. 결국 다른 이에게 물어봤다.
“방벽을 치는 거라던데요. 자세한 건 저도 잘 몰라요.”
사람을 물리던 병사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아니, 너도 병사인데. 왜 그걸 몰라?”
“모르니까, 모르죠.”
앳된 병사는 척 봐도 신병으로 보였다. 오히려 신병이라서 그런지 민원인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들이받으려면 나도 들이받겠다는 식이고, 억양도 거칠었고, 목소리도 컸다.
“목소리도 좀 낮춰! 무슨 사람 잡아먹을 일 있어?”
“할아버지가 크게 말하잖아요! 저리 물러가세요! 여기는 위험하니까.”
“이놈이? 이놈이? 어어, 사람을 밀어?”
“선 넘어오셨잖아요!”
“라떼는 말이야!”
곳곳에서 분란이 있었다.
책임 없이 자유를 누린 이들이 제법 되었다. 이 때문에 자신의 자유가 그 어떤 책임과 권리보다 우선된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그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일어났다.
그 어떤 법칙도, 규칙성도 없었다. 그냥 꼴리면 박아버리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테라는 엄격했다. 지배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지배자들이었다. 새로 들어온 지배자들도 평범한 사람은 알지 못하는 정보를 모두 취득했다.
그들은 분명 엘리트라 할 만했다.
80%의 지성 종족을 이끌어 나갈 20%의 엘리트들은 확실히 평범하지 않았다. 재능이 있었고, 실력을 갈고닦았다.
“싹 다 잡아들여!”
오랜만에 가장 강고한 진압이 이루어졌다. 전쟁의 피해를 대비해서 범죄자 중 극악무도한 이들은 사형이 선고되었다.
“안 돼! 안 돼애애애애!!”
사형이 연기되면서 일을 하며 지내던 그들은 끔찍하게 절규했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람을 죽였지만, 자신이 죽는 미래는 감당할 수 없었다.
테라가 안팎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 * *
아카타베루가 거대한 입을 쩍 벌렸다.
“크크크. 드디어 도착했다.”
오랜 항해였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다. 중립신의 시체와 중립신이 남긴 모든 것을 잡아먹는 것.
이미 대악마 여럿을 먹어 치우고, 그들의 악마 세계까지 먹어 치웠다. 그는 역대 최고라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마수들이 준 정보다. 방심하면 안 된다. 마수들도 반드시 나타날 터다.’
아카타베루는 테라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더 많은 것을 훑고 있었다.
그의 시야는 넓었다.
40년의 세월은 길었다.
그리고 불멸자에게도 시간은 똑같다. 짧고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는 그저 하루였다.
아카타베루는 수많은 준비를 했다.
그는 자신과 함께 한 대악마를 죽이고, 잡아먹었다. 그 이후에는 자신의 악마 세계를 키움과 동시에 싸울 악마들을 탄생시켰다.
‘내가 지닌 악마 세계의 가장 큰 단점은 베테랑이 적다는 점이다.’
필요하다면 악마 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소아귀를 소모해서 만들고 그 이후에는 다시 녹여서 소아귀로 탄생시킨다.
그 덕에 아카타베루는 그 어떤 대악마보다 많은 군세를 거느릴 수 있었고, 많은 역량을 효과적으로 저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그때 그 대악마는 사라졌다.
이제 아카타베루는 단점 없는 악마 세계를 이끌고 있었다. 베테랑도 있었고, 물량도 있었다.
“일어서라! 일어서라! 살아있는 모든 것의 심장을 도려내라! 갈비뼈를 부수고, 척추를 뽑아내라! 그 두개골에 담긴 뇌수를 빨아먹어라!”
키아아아아!
수많은 권속 악마가 고함을 내질렀다. 한껏 고취되어 있었다.
아카타베루의 악마 세계에서는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생산되고 싸우고 죽고 다시 생산되기를 반복하는 하나의 순환이 완성됐다.
그런 순환이 완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히 몇 마리나 되는 대악마를 잡아먹어서다. 보통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假) 세계라 할 수 있었다. 가짜 생태계다. 하지만 분명 기능하고 있었다. 그것도 행성 수준으로 말이다.
그 속에서 아카타베루는 ‘악마’의 가능성을 봤다.
‘행성만큼 악마 세계를 키우면 거기에 선순환의 굴레가 만들어진다.’
굳이 별을 침공하지 않아도 유지가 된다. 이건 대단한 성과였다.
가히 수백억에 달하는 권속 악마가 죽고 탄생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소아귀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유의미한 결과였다.
‘테라를 집어삼키고, 별을 파괴한다면 더 명확하게 알 수 있겠지.’
중립신(中立神)의 유산은 자신의 것이다. 인신 따위가 대신의 격에 올라섰다. 그건 모든 초월자가 궁금해하는 비밀이었다. 놈을 죽이면 그 비밀을 손에 움켜쥘 수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쿠구구구!
진동음이 시작됐다.
차원과 차원이 부딪치는 소리다.
그 영향력에 진입했다. 여기서 차원 장벽에 두껍냐, 얇냐에 따라서 시간이 결정된다.
아카타베루는 제법 경험이 많았다.
‘평범한 수준이다. 적어도 우리가 온다는 걸 모른다.’
그가 그처럼 확신하는 까닭은 ‘악마의 운명’ 때문이다.
거대한 대전쟁이며, 신마대전이라 기록될 전쟁의 서막이다. 전조현상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건 악마에게도 중요하고, 상대에게도 중요하다.
느껴진다. 악마의 운명이. 그리고 딱히 누군가가 수작질을 부리지는 않았다.
그건 아카타베루에게 좋은 일이었다.
‘나에게 조금 더 유리하게 시작되겠지.’
세상은 조금 더 어두워질 것이고, 악마는 조금 더 효율적으로 침공하게 될 것이다.
쿠구구구구……!
차원과 차원의 교접은 거칠게 이루어졌다. 스파크가 튀고, 균열이 일어났다.
그 균열에 권속 악마가 휩쓸리기도 했다. 그놈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카타베루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오래 산 대악마였고, 당연히 일반적인 지성 종족은 관측할 수 없는 시간 선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우 권속 악마의 운명을 보기 위해서 시간 선을 훑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문이… 열린다……!”
차원 방벽이 붕괴하는 데 걸린 시간은 72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거체가 몸을 일으켰다.
아카타베루의 몸은 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사족 보행형 대형 악마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주둥이가 매우 컸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는 예전의 그 짐승 같은 모습에서 간지가 뻥뻥 터지는 드래곤의 모습이었다. 꼬리는 마치 가오리의 꼬리처럼 좌우로 갈라져 있었다.
조금만 휘둘러도 그 표면적이 넓어서 사정없이 주변을 초토화시킬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전신에 가시가 돋아있고, 비늘이 잔뜩 들러붙어 있었으며, 어떤 곳은 바위같이 딱딱한 것이 튀어나와 있기도 했다.
움직이는 태산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지룡의 모습이기도 했으며, 날개도 대단히 넓게 가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불그스름한 기류가 피부를 타고 퍼져나가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오는 공포스러운 마룡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그게 아카타베루가 새로 변형시킨 자신의 육신이었다.
“내가 바로 마룡, 아카타베루다!”
악마의 육신에 용의 인자를 새로 집어넣었다. 아카타베루는 자신의 전투력이 뻥튀기되었음을 자만하고 있었다.
쩍 벌어진 차원을 악마 세계가 순식간에 벗어났고, 테라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카타베루가 거침없이 포효하며 높이 날아올랐다. 공기는 대단히 희박했다. 구름이 보였다. 아주 아래에 보였는데, 아무래도 행성의 지면으로부터 대단히 높은 곳에 자리를 잡게 된 것 같았다.
아카타베루의 악마 세계는 테라 상공 약 1만m에 등장했다.
그들은 육지와 바다 위에 있었고, 타원형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그 길이는 테라 행성을 벗어나서 길쭉하게 이어져 있을 정도였다.
타원형의 악마 세계 반지름은 1만2천km가 넘었다. 동시에 그것은 테라의 중력에 끌리지도 않았다.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쿠구구구……!
소아귀의 덩어리가 바위처럼 뜯겨 나갔다. 서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소아귀들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그걸 거세게 움켜쥔 붉은 용이 크게 날개를 펼쳤다.
악마 침공은 그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