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208화 (1,206/1,239)

1208화

37. 악마 침공 (1)

테라에는 신기한 직업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신기한 것은 ‘태양’과 ‘달’을 비롯한 행성을 관측하는 천문관측자다.

하지만 이들은 ‘천문학자’가 아니다. 말 그대로 매일매일 중요 행성들의 동태를 살피는 일이었다.

그 대가로 그들은 200만 원을 받는다. 200만 원은 최저시급보다 조금 더 많은 수준이었다. 혼자 살기에는 부족하지 않지만 가정을 꾸리기에는 부족한 돈이었다.

이 때문에 이 특이하고 신기한 직업은 자주자주 교체가 되는 편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좋아했지만, 인간은 비이성적인 존재이며, 언제나 상대적인 평가를 내리며 객관적 평가보다는 주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존재였다.

가진 것은 쉽게 버리고, 못 가진 것에 대한 욕망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그게 인간이란 족속이었다.

이 때문에 여기서 편안하게 지내는 이들은 과거를 살피지 못하고 오직 현재에 살아가며 미래를 꿈꾸며 밖으로 다시 뛰쳐나가게 된다.

여기서 모은 자본금을 탕진하여 되돌아오기도 했다.

물론 만족하는 이도 있었다.

“또 게임이야?”

“3분마다 내가 볼 행성은 계속 체크하고 있으니까, 신경 꺼.”

기계처럼 진동 타이머를 해둔 노련한 베테랑에게 말을 거는 신입도 있었다.

그는 진동 타이머가 울릴 때마다 게임기를 일시 정지하고 행성의 동태를 살폈다.

이런 일을 하는 이들은 지역마다 존재했다.

한 명이 실수해도 다른 놈이 성과를 올리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수가 정말 많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벌써 15년째 근무하면서 게임에 평생을 몸담은 조라킨―개명, 처녀―은 오늘도 게임에 집중했다. 그런 그녀는 태양의 색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라?’

무엇인지는 모른다. 아니,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서 순간 멈칫했다가 곧바로 앞에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붉은 버튼을 눌렀다.

‘어?’

눌러지지 않았다. 플라스틱 유리로 막혀 있어서였다.

지금까지 사용도 안 해본 것이었고, 관련 훈련조차도 없었다. 그래서 생긴 촌극이었다.

그녀는 목까지 빨갛게 변했다.

달칵. 꾹!

버튼을 누르자마자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경고음이 떴고, 웅성거림 속에서 3분 만에 관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녀 앞에 섰다.

“네가 눌렀냐?”

“예.”

“변화가 있었나?”

“네. 태양의 색이… 어?”

태양의 색이 변했다. 다만 그 정도는 미약했다. 처음에는 강했는데, 조금 옅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분명 태양의 색이 변하기는 변했다.

“확실하군. 곧 포상이 내려질 거다. 그리고 지금 바로 퇴근해.”

“아, 네.”

그녀가 일어서자 그녀의 자리에 다른 기술자가 앉더니 순식간에 그녀의 컴퓨터에 아티팩트를 접속시키고, 데이터를 다른 곳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아티팩트는 마법적으로 이 컴퓨터에 특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검증해 냈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데이터를 비교했을 때, 태양의 색이 조금 어둡게 변했습니다.”

초월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어제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쨍쨍 내리쬐던 태양 빛이 달라졌다. 물론 태양을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제와 비하면 확실한 변화가 있었다.

대부분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비교해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전조현상이 일어났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달 또한 그 빛을 서서히 잃기 시작했다.

태양 빛을 받아서 반사하여 빛을 내는 것이 달이었다. 그렇기에 달도 태양 변화의 영향을 받았다.

드낙에게 이 보고서가 도달하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고서를 본 드낙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가 자기가 사놓은 아이스크림을 훔쳐 간 듯한 표정이었다.

“검은 태양과 검은 달이라…….”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드낙은 그 끝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판타지적인 전조현상이다.’

왜 그런 것이 펼쳐졌는지 드낙은 알 수 있었다.

‘악마 침공이다.’

마수의 침공은 아니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그런 종류의 전쟁이 아니다.

신마대전神魔大戰.

신과 악마의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의미했다.

행성을 가꾸고 있는 신에게 직접적인 경고를 날려주는 셈이다. ‘악마 세계’와 ‘악마’. 그 자체가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단 뜻이었다.

‘시기도 얼추 맞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게임 명대사를 외치며 드낙은 몸을 일으켰다.

‘거인이 움직일 때다.’

악마가 지닌 업(業)이 뿔난 것처럼 테라를 들이받을 것 같았다.

그 전조현상은 가볍지 않았다. 행성. 나아가 차원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악마와의 전면전에 대한 소문이 은근히 퍼져나갔다.

그 속에서 수많은 회의를 개최하고 폐하기를 반복했다.

그 속에서 태양은 보다 확실한 전조현상을 보여줬다.

“여기 보이십니까?”

천문학자가 가리킨 곳에서는 약 3초짜리 영상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검은 줄기가 태양을 돌고 있었다. 태양 내부로 들어가기도 했고, 다시 모습을 보이며 튀어나오기도 했다. 태양을 마치 자기 우물인 것처럼 쓰고 있는 이무기 같았다.

“언제부터 관측된 거지?”

“18시간 전에 처음으로 관측되었고, 지금은 그 활동성이 더욱 커졌으며 덩치도 커졌습니다. 길이도 길어졌습니다.”

“대신 태양 빛은 예전처럼 돌아갔습니다.”

“태양 빛이 조금 어둡게 변한 것을 저놈이 모두 집어삼킨 거네.”

“예.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를 깨닫지 못했다면 영영 몰랐을 겁니다.”

악마 침공은 정말 뜬금없이 벌어졌을지도 몰랐다.

“저 검은 것이 태양을 모두 뒤덮게 된다면?”

테라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태양 에너지는 엄청난 도움이 된다. 그게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었다.

“미리 처리를 해야 합니다.”

“아니. 미리 처리한다면, 악마 놈이 이를 깨달을 수 있다.”

세파리아스가 반대했다.

“적이 우리가 준비하고 있다는 걸 모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승패가 정해져 있다.”

상대 악마에게 이를 인지시켜 준다면, 더욱 강해서 돌아올 것이다. 더 많은 전투 역량을 보유하고 테라에 뛰어들 것이 분명했다.

악마의 전조현상은 그만큼 작은 부분이었다. 그걸 캐치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놈은 경계할 터였다.

“그대로 둔다면 전쟁이 더 악화될 수 있다.”

“햇빛 없는 싸움을 해야 한다. 세파리아스, 달도 마찬가지다. 사라지게 될 것이다.”

“대체할 수 있다. 감당할 수 있다. 테라가 탄생한 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우리의 역량은 가볍지 않다.”

그 말에 용기가 몸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알 수 없었지만 세파리아스의 말과 기세. 그 말에 깃든 감정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에서 뜨끈한 것이 솟아 올라왔다.

국뽕.

세상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 국뽕이었다.

뜬금없는 곳에서 윙드 훗사르가 등장한다? 폴란드 사람들 좋아 죽는다. 그것이 국뽕이니까.

세파리아스의 국뽕 한 사발에 여론이 바뀌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어찌하려나.’

결과는 모른다. 지금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계산을 해봐야 했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봐야 한다.

“쉽게 결단할 일은 아니다.”

드낙의 말에 주변 공기에 찬물이 끼얹어진 듯했다.

“전쟁을 준비해라. 모든 것을 계산해라! 시뮬레이션하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가정해야 한다. 오래 걸리는 일은 지금부터 준비한다. 가장 먼저 사람들을 징병해라.”

일이 심상치 않았다.

드낙의 말에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전쟁이 임박했다.

침공이 그들의 코앞에 있다는 걸 전조현상이 보여주고 있었다. 모두 하나 되어서 진짜 전쟁을 준비했다.

[세계와 세계의 부딪침이 임박했다? 전조현상 일어나다!]

테라의 언론부터 장악했다. 법은 오늘을 위해서 존재했다. 자유인들은 처음으로 국가권력과 초월자에 의한 억압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정해진 목표를 위해서 타자기를 두드리고, 마법 크리스털을 조정해야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검열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고 폐간하는 신문사가 생기기도 했다.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 불법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전쟁과 총력전 앞에서는 그 어떤 자유도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테라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으며, 그 두려움만큼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테라가 존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들은 끝없이 준비했다. 준비하고 또 준비했으며, 끝도 없이 군비를 늘려왔다.

경제가 활성화되고, 정치적, 국가적 분쟁이 없었기에 세계가 하나 되어서 전쟁을 준비해 왔다.

매년 증가하는 군비와 매년 성장하는 경제 덕분에 테라는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드낙은 안달이 났다.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

테라는 안정화될 것이다. 아무나 테라를 침공할 생각을 가지지 못할 터였다. 그러기 위한 차원 전쟁이다.

이 첫 무대에서 드낙은 압도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야만 테라가 전쟁을 자주 경험하지 않게 될 것이다.

* * *

“오늘은 일반 시민 행동 강령에 대해서 알아볼 거예요! 우리들은 모두 시민이죠오?”

“네에!”

어린이들은 전쟁 대비 훈련을 시작했다.

“갑자기 전쟁이 났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늘에서 불이 쏟아져 나온다면! 우리 친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은 어린이들에게도 모든 것을 알렸다. 무섭고,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더라도 아는 것이 중요했다.

“오늘은 지하 벙커로 가는 길을 가볼게요!”

그들은 꾸준히 지하 벙커로 가는 길을 가르쳤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겨서 인도할 선생이 없어도 아이들은 유사시에 지하 벙커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이는 매우 중요했다. 현재 사회를 이끌어가는 건 어른들이지만 10년 뒤. 20년 뒤에도 그들이 계속 사회를 이끌어 나간다는 보장은 없다.

누군가는 은퇴할 것이다.

그 자리를 여기에 있는 어린이들이 가져가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미래였다. 그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한다. 그게 지하 벙커였다.

이 지하 벙커는 지하 300m까지 이어져 있고, 막강한 보호 장치들이 자리잡혀 있다.

비전투 인원을 완벽하게 지키겠다는 드낙의 소시민적인 신념이 새겨져 있는 것이 지하 벙커였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 건 당연했다. 하지만 90%의 자본을 1%가 독점하고 있는 지구와는 다르게 테라는 이런 일을 쉽게 진행할 수 있었다.

어느 시점을 넘은 경제 규모 덕분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을 펼칠 수 있었다.

변화는 비단 그런 곳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오늘부터 우리 통조림 공장은 군인들을 위한 통조림을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공장장이 나서서 굳은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전조현상이 나타났고, 신문에서도 많이 보셨을 겁니다. 군인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싸울 겁니다. 그들을 위해서 만드는 통조림입니다. 돈은 예전만큼 가져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물량입니다.”

통조림의 유통기간은 7년이다.

방부제 하나 쓰지 않은 통조림을 7년이나 보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 무엇보다 물량이 중요했다.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가 중요했다.

“저도 야근을 할 겁니다. 많은 분이 야근에 동참해 주셨으면 합니다. 테라를 침공할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줍시다. 통조림으로 세상을 구해 봅시다!!”

“통조림으로 세상을 구하자!”

그들이 환하게 웃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통조림 공장에서 일했다. 아줌마들도 아저씨들도 모두 피곤했지만, 너도나도 야근을 3시간 정도 더 하고 퇴근했다.

비단 통조림 공장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모든 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우우웅……!

전기차 공장에서도 늦은 저녁에 불이 들어왔다. 저녁 있는 삶을 살던 테라인들에게 이런 일은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기계화보병을 위한 캠핑카다. 막사로 사용될 놈이다. 허투루 만들지 마라!”

국방색을 입힌 캠핑카는 군인들이 쓸 예정이었다. 군막이나 막사 작업, 텐트 따위를 칠 필요도 없었다.

캠핑카 한 대면 클리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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