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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207화 (1,205/1,239)

1207화

* * *

태양 차원은 쉽사리 정상화가 되지 않았다. 모두 통신의 발달 때문이었다.

새로운 이들이 태양 식민지로 가려고 하지 않았다.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 곳에 자신의 터전을 마련하려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극소수란 그냥 멍청하거나 아무 생각이 없거나, 낙천적인 이들을 말했다.

특히 낙천적인 이들은 도피성으로 태양 식민지를 선택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결정’이란 그렇게 쉬운 것이었다. 돌다리를 건드려 보고 건너가지 못하는 이들과는 달랐다.

“X발.”

그런 낙천주의적 인간들은 태양 식민지의 비를 보고 욕지거리를 날렸다가도 이내 태평하게 지냈다. 물이 바닥을 차오르는 게 아니라면 딱히 무섭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무섭다고 여기려면 걱정을 해야 했는데, 걱정하지 않아서였다.

다만, 이런 경향은 테라의 지배자들에게 썩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루가 바쁜데, 쯧쯧!”

드낙이 혀를 찼다. 그는 수많은 프로젝트를 벌려놓고, 이를 필멸자들에게 할당했다. 당연히 모든 것이 돈이었다. 돈이 없으면 프로젝트는 엎어질 수밖에 없었다.

태양 식민지를 통해서 경제는 더욱 활성화되고 있는데 여기서 그게 끊기게 생겼다.

이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매년 이렇게 될 거란 말이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특단의 대책을 내세워야 했다. 하지만 그 특단의 대책이라는 것이라고 해봤자 기존의 비생산적인 인력―군대―를 투입하는 것뿐이었다.

비생산적인 군대가 대민지원을 하며 생산적인 일을 하게 되었으니, 결국 손해가 메꿔진다. 하지만 그마저도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다.

2개월 이상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는데 말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드낙과 초월자들, 지배자들은 이를 해결하려고 모였다.

“비를 멈추게 해야 한다.”

세파리아스가 결론부터 냈다.

이에 모든 이들의 표정이 흙빛으로 변했다. 드낙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많은 마력 자원이 사라질지…….”

오금이 저렸다.

“그래서 드낙, 네가 나서줘야겠다.”

“아니, 내 힘은 물론 재생하는 편이긴 하지만…….”

악마가 지닌 고유의 힘. 그 그릇.

이를 생각한다면 가히 영구적인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써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회복됐다.

이를 이용한다면 태양 식민지를 안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비구름을 그냥 증발시켜 버리는 것이다.

무식한 일이지만 ‘악마’라면 능히 가능했다.

인신과는 다르게 악마들은 육신을 가지고 있었고, 그릇도 ‘초월적’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악마는 육체 자체가 곧 힘(力)이다. 행성을 정원처럼 가꾸는 인신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근데 나는 지금 또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드낙이 곤란한 표정을 한껏 더 지어냈다. 억지로라도 쥐어 짜내는 감정이었다.

그 모습에 세파리아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놈은 10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 와서 난리를 치는 것이냐? 너 때문에…….”

그는 말을 더하려다가 말았다. 해봤자 소용이 없어서다.

“…그래서 지금 뭘 하고 있길래 악마의 육신을 쓰지 못한다는 거냐?”

“하하하.”

드낙은 얼버무리려고 하다가 이내 진실을 이야기했다.

“종족 값이 낮은 이들을 쿼터 데몬으로 만들 생각이다. 혹은 그보다 더 낮은 악마로…….”

지하 연합의 고질적 문제였다. 반마로 만들 수 있는 숫자는 제한적이다. 그마저도 지하 연합에게만 돌아가지 않았다. 전 세력에 내어줬다.

우상을 위한 제단은 공공재처럼 쓰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드낙의 사랑은 지하 연합으로 향해 있었다. 그들이 태어날 때마다 드낙이 악마의 피를 주입하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악마의 육체는 항상 최고조의 역량을 유지하고 있지 못했다.

“그럼 업(業)을 소모한다는 건데…….”

세파리아스는 말끝을 흐렸다. 그걸 받아들일 드낙이 아니었다.

드낙은 신격의 봉우리를 품고 있고 신도 될 수 있는 악마였다.

“지하 연합은 머릿수만으로도 능히 대국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쿼터 데몬이라니? 지나치다.”

“어쩌라고. 악마 침공이 코앞인데.”

악마의 피를 몇 방울이라도 받지 않은 고블린은 악마 침공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일단은 최대한 도로를 아스팔트로 깔아서 빗물이 고이지 않는 방안으로…….”

“댐을 짓고, 하수구를 아주 크게 건설하여…….”

“마법으로 비가 오는 것을 막아서 건설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

다양한 대책 방안이 섰다. 다만 모두 잘 알고 있었다. 1개월이 지나면 우기가 끝나리라는 것을.

지금 말하는 건 내년을 대비하는 것뿐이었다.

드낙이 테이블을 두 번 두드렸다.

“그럼 회의는 끝?”

“끝이다.”

성과가 없었다.

그렇다고 세파리아스의 신성력으로 비구름을 증발시킨다? 우습다.

신성력은 대단히 고정된 효과를 발하는 힘이었다. 말 그대로 지성 종족의 인구수 증가를 위한 힘이다. 정원사가 불을 지르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드낙은 깔끔하게 생각을 털었다.

‘집중하자, 드낙.’

태양 식민지, 테라.

두 가지 모두 잡는다고 해도 그 효과가 대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인프라 90%가 서울에 집중된 것만 봐도 우리가 어떻게 선택과 집중을 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기적이 아니라,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울에 몰빵했기에 풍요로움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테라에 집중해야 한다.’

더 나아가 지하 연합에 집중해야 했다.

그런 드낙을 괴롭히는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응애! 나 아기 느그드라실!”

잠을 재운 상태로 지식을 전수하는 방법 대신에 사람을 둬서 교육하게 한 악마 세계수, 느그드라실이 말썽이라는 보고가 들어왔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 응애!”

감당이 안 돼서 드낙까지 호출되었다.

“마력 장벽 전개!”

“디버프 마법 필드 출력 60%에서 더는 올라가지 않습니다!”

“벌써 한 달째입니다! 시스템이 과부화되었습니다.”

“마법 시스템 오류 발생!”

“직접 사람 내려보내!”

무려 전장 500m. 전폭 180m. 전고 25m. 승조원 1만 천명으로 이루어진 우주 전함을 이끌기 위한 장치가 바로 느그드라실이었다.

아직 성체가 되지 못했다지만, 느그드라실의 난동은 뼈 아픈 피해로 이어졌다.

아무리 성능 좋은 아티팩트와 컴퓨터 시스템이라도 매일같이 F1 경기장에 질주하는 머신처럼 굴린다면 박살이 날 수밖에 없었다.

느그드라실의 난동은 준비가 안 된 시설에게 치명적이었다.

이 때문에 드낙은 파동으로 변해서 급히 느그드라실에게 왔다.

드낙이 손을 뻗고 외쳤다.

“멈춰!”

“응애?”

느그드라실이 그대로 멈췄다. 느그드라실 또한 드낙으로부터 잉태되어 나온 권속 악마였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부모 이기는 자식이 없다.

고집 있는 부모를 만나지 못한 태평한 놈들이나 믿는 소리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었다.

진짜 지독한 부모는 자식이 뭘 하는지 매시간 꼬치꼬치 캐 물어본다. 그리고 자기 입맛대로 움직이려고 한다. 자식을 인형처럼 보는 것이다.

“너, 왜 이렇게 떼를 쓰는 거냐?”

“응애……. 나, 아기 느그드라실…….”

아기의 지위를 이용하려는 모습에 드낙인 검지를 흔들어대었다.

“나이가 적어도 정신연령까지 낮지는 않잖아.”

건방진 소리를 단번에 잘라냈다. 이에 느그드라실 또한 본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밖에 나가고 싶은데요.”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때가 언제 오는데요? 온다고 한들, 결국 전 우주 전함에 속하게 된다면서요?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제 욕망을 충족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만족할 만큼 밖을 구경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중에 자신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숨긴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지.’

오히려 받아들이게 만들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그게 아니라면 세뇌를 시켜야 하는데, 세뇌는 드낙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그건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권속 악마라는 것만으로도 드낙에 대한 호감을 느끼게 된다. 지금 보이는 건 호감이 아니라, 반감이었지만.

“좋다.”

“정말로요?”

“그래. 뭐가 어렵다고.”

드낙은 쿨하게 이를 허락했다. 그렇게 붉은 피부를 지닌 어린이가 십여 명의 수행원과 함께 테라를 일주하게 된다.

당연히 그 속에는 선생도 있었다.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드낙의 부탁이 있어서였다.

실제로 느그드라실은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분명 좋은 세계수가 될 것이다.

우주 전함이라는 세계에 담기는 나무가 될 것이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드낙은 드디어 자신이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세계가 되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악마 침공만 아니면 이곳이 유토피아다.’

“일주일 뒤에. 중대 발표를 하겠다.”

“예? 중대… 발표 말씀이십니까?”

항상 드낙을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뒤처리를 하던 문인이 깜짝 놀랐다.

중대 발표라니.

드낙이라는 초월자가 말하니 무게감이 대단했다.

“그래. 지배자들이 최대한 그날 일정을 잡고 나와 화상 회의를 하자고.”

“예!”

‘아니요’란 대답은 없었다. 무조건 YES만 있었다.

지배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일정이 빡빡했다.

명군은 바빠야 한다. 바빠도 명군이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적어도 명군이라면 모두 바빴다.

폭군의 집무실에 서류가 쌓여있다면 그놈은 폭군 코스프레를 하는 명군이다.

‘많이 먹고 싶으면 많이 일할 필요는 없지.’

하지만,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드낙이 만든 세계였다.

자기 자신만 쏙 빠져서 제멋대로 굴고 있었다. 그게 드낙이 원하는 일이었다.

이제 그 마지막. 종지부를 찍을 때가 왔다.

7일 뒤에 열린 화상 회의에는 많은 이들이 등장했다.

세파리아스, 세리안, 아크온, 길게이, 도렌 등. 예전 지배자들이 있는가 하면, 최근에 사회가 확장하면서 지배자로 올라선 신생 지배자들도 많았다.

그들의 숫자만 해도 수백을 헤아렸다.

“이렇게 모여줘서 고맙다. 오늘은 중대 발표를 할 생각이다.”

드낙이 제법 무게감을 잡았다.

이에 다른 이들 또한 표정을 굳혔다.

“우리는 오랫동안 열심히 이 행성을 가꾸어 왔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거짓말이다. 10년 동안 게임만 하고 부인들과 뒹굴거렸던 적이 있었던 것이 드낙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에 대해서 딴지를 걸지 않았다.

드낙은 그만큼 많은 위업을 달성했다. 몇몇 자잘한 것으로 폄하할 수가 없었다.

“테라는 안정되었다. 아직 수많은 곳에 괴물이 있고, 야수가 있지만 그건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아티팩트 산업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모험가들이 죽고, 용병이 죽지만, 그건 불가피한 일이다.

대한민국만 봐도 화물차를 운영하는 트럭 기사는 이틀이 한 명씩 죽어 나간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1년에 200명씩 죽어 나자빠져도 신경 쓰지 않는다.

모험가와 용병 또한 그와 다를 바 없었다.

누구는 해야 하는 일이고. 누구는 하는 업(業)이다.

그냥 그렇다.

모험가와 용병은 그냥 그 일을 하는 것이다. 다른 큰 이유는 없다.

하지만 드낙은 굳이 그런 소리를 입에 담았다.

소시민적인 드낙의 화술에 몇몇 지배자들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하찮은 잡것들이 몇 죽는 건 테라 행성에 큰 영향조차도 주지 않으니, 굳이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 우스웠다.

“문화가 융성했고, 이제 누구나 문화를 누리고 있다.”

싸게 즐길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여건이 만들어졌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히 여기에서 막중한 책임감에 짓눌리면서도 테라를 이끄는 지배자들 덕분이다.”

드낙은 앞서 사회의 약자들을 언급했다면 이제는 지배자들을 드높였다.

“…그리고 이번 해. 테라의 인구가 30억을 넘어섰다.”

그건 대단히 유의미했다.

지구는 1804년에 세계인구가 처음으로 10억을 넘겼다. 그리고 1927년에 20억을 넘겼다. 10억이 20억이 되기까지 123년이 걸렸다.

30억은 1960년이 되어서야 넘길 수 있었다. 20억에서 30억까지 33년이 걸린 셈이다.

테라는 지구의 세계인구 증가보다 가파르게 세계인구가 증가했다.

벌써 30억을 돌파했다. 질병과 세계대전을 거친 지구와는 확연하게 다른 증가세였다. 그리고 드낙은 그 30억에 주목했다.

‘때가 된 거지.’

“오늘을 테라의 날로 지정할 것이며, 7일 동안 공휴일로 지정할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 모이라고 했다.”

중대한 일이다.

공휴일을 지정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7일짜리였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테라의 날을 지정한 까닭은, 테라가 비로소 고비를 하나 넘겼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이들이, 심지어 지배자조차도 이날에는 쉴 수 있어야 한다.”

그 말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찬성표를 미리 던졌다.

그 모습에 드낙이 빙그레 웃었다.

‘대통령도 7일 휴가는 못 참지!’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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