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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205화 (1,203/1,239)

1205화

* * *

“응애!”

그것은 울음을 터트렸다.

“느그드라실 1호. 탄생했습니다.”

느그드라실 1호는 박혁거세처럼 알을 깨고 나왔다. 하지만 그 형태는 ‘인간 아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결코 세계수를 본뜬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악마적’이라는 걸 나타내는 것이 있었다.

피부가 대단히 붉었다. 농축한 피처럼 붉디붉었다. 그보다 붉은 것은 보기 힘들 정도였다.

드낙이 이 느그드라실에 얼마나 많은 악마의 육신을 집어넣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악마의 육신은 곧 악마의 힘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그건 업(業)을 소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월자의 권좌에 앉은 지 10년이다.

1년에 겨우 한 개체를 만드는 느그드라실의 생산에 그 어떤 부담감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드낙은 굳은 얼굴로 참석해 있었다.

나약한 상위 권속 악마를 만든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죽으면 막대한 악마의 육신을 잃게 되는 꼴이다. 적어도 5호까지는 괜찮지만 드낙은 느그드라실만 만드는 게 아니다.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테라에 ‘악마의 육신’을 사용할 계획을 잡고 있었다.

업을 사용하지 않고, 악마가 지닌 고유의 힘만 사용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내정에 도움을 줄 생각이었다.

“제발 죽지 마라.”

“응애!”

느그드라실을 인간 아기의 형태로 만든 까닭은 당연히 드낙의 지식의 한계 때문이다. 인간은 어릴 때는 크게 도움이 안 되다가 성인이 되어서야 도움이 된다. 느그드라실 또한 그래야 했다.

인간 아기의 형태를 가지는 건 자연스러웠다.

쭙쪽쪽!

느그드라실 1호가 이유식을 거침없이 먹었다. 배가 탱탱해졌다. 웃음이 나올 것 같지만 그게 붉은 핏덩어리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습기와 온도는?”

“32도에 습기는 65%로 유지 중입니다.”

“조금 덥지 않나?”

“느그드라실의 체온이 높습니다. 그에 맞춰서 주변 온도도 높아야 합니다. 거기에 옷감으로 몸을 두르지도 않지 않습니까.”

“인정.”

느그드라실은 적정한 습기. 적정한 온도. 포근포근한 잔디밭에서 자라났다. 옷감 따위를 두르지 않은 건 느그드라실의 또 다른 특징 때문이다.

15일이 지났을 때, 그 특징이 발현되는 걸 확인했다.

“늦다. 내 예상과는 다른데. 영양이 부족해서 그런가? 그건 아닌데…….”

드낙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설계한 것과는 달랐다. 이에 느그드라실의 내면을 확인했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했구나.’

상상과 현실은 확실하게 달랐다.

드낙은 7일 만에 느그드라실 1호에게서 뿌리가 나오도록 했는데, 느그드라실 1호는 설계에 따르지 않고 15일 뒤에 뿌리가 서서히 나왔다.

“응애!”

그가 원한 게 아니라, 그 몸이 살기 위해서 그렇게 적응한 것이다. 만약 드낙의 계획대로 했다면 육체가 붕괴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큰 일이었을 터다.

‘느그드라실 1호가 잘해 줬다. 2호를 만들 때는 뿌리가 보름 이후에 생장(生長)하도록 해야겠어.’

설계를 고칠 생각을 가졌다.

뿌리는 땅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대신 미리 잔디를 치우고, 최소한의 옷감을 놓아 푹신하게 만들었다.

뿌리는 서서히 자라나 곧 땅에 닿았고, 양분을 먹기 시작했다.

동시에 느그드라실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두 번째 특징.’

느그드라실은 끝없이 잠을 자면서 드낙이 보여주는 수많은 환영 속에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는 직접 경험이기도 했고, 간접 경험이기도 했다.

지식의 전수는 느그드라실이 성체가 될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 드낙만 고생한 것이 아니다. 도서관의 지식을 음성으로 기록하거나, 마법으로 새긴 것들을 만드는 이들도 존재했다.

드낙이 이들에게서 해당 아티팩트를 받아서 느그드라실에게 옮기는 작업을 했다. 다른 이들은 할 수 없었다.

드낙은 이 과정이 대단히 불편하다고 여겼다.

“깨워야겠다.”

동면하는 것은 폐기하기로 했다. 알아서 공부하도록 만들기로 했다.

그 덕에 멀리서 선생을 구해서 데려왔다.

“제가 전문은 아닙니다만…….”

“집안에 빚이 있다며? 내가 탕감해 주지.”

“제가 전문가입니다!”

그는 느그드라실 1호를 물심양면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언어를 가르쳤다.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자장가도 불렀다. 사람을 따로 고용해서 자장가를 부르도록 시키기도 했다.

급여가 많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천만 전함을 만드는 일이다. 그 중추 역할을 할 느그드라실 1호를 키우는 데 쓰이는 돈이 적을 리가 없었다.

동면을 폐기하고, 알아서 공부하게 된 느그드라실 1호는 부쩍 활동적인 개체가 됐다.

드낙이 원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게 생각했다.

“최대한 기록해라. 알겠느냐?”

“예.”

드낙은 느그드라실 1호가 1년 정도 지나자,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대단히 취약한 상태이기는 했다. 아직도 아기 티를 벗어나지 못해서다.

‘매년 1호씩 태어나게 한다면 악마 침공 때 우주 전함을 내비칠 수 있을 터다.’

최대한 자주 보고를 받기로 하고, 드낙은 비로소 느그드라실 1호의 관리에서 손을 뗐다.

‘설마 육군처럼 되지는 않겠지. 괜히 이름을 느그 자식, 느그드라실로 지었나?’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털어냈다.

‘이제는 손에서 놓을 줄 알아야 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야 했던 삶은 지났다.

이제는 손에서 놓아도 얼마든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그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보강할 줄 알아야 했다.

넓은 마음으로. 드넓은 아량으로.

지배자로서의 마인드를 가져야 했다.

* * *

태양 차원은 점점 무법지대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곳곳에 사람들이 살게 되어서다.

무주공산이 많았고, 입주가 쉬웠으며, 땅을 구매하는 것도 수월했다. 신제국은 ‘알짜배기’ 땅 외에는 아주 싼값에 내어주고 있었다.

다른 세력들이 쉽게 군대를 끌고 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신제국은 자신이 못 먹을 것 같은 땅은 과감하게 세력이나 민간에게 팔아버렸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치안과 상관없이 많은 곳에 진출했다.

반대로 인구 밀도는 낮아졌다. 땅을 쉽게 살 수 있었기에 사람들이 퍼져서 살게 되어버렸다.

신제국은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태양 식민지에 새로운 터를 잡은 이들은 치안 부재로 인한 괴로운 삶을 살아야 했다. 그 괴로움은 수많은 용병을 부르게 만들었다.

“취이이익! 뀌이이이익! 뀌이이익!!”

보어리안이 질주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말을 타고 있었다. 말은 짐말로 덩치가 매우 컸다. 그 덕에 오래, 빨리 달리지는 못했지만 보어리안은 무엇이 그리 용감한지 고함을 내지르며 질주했다.

보어리안의 목표물은 전방에 있는 밭이었다.

밭일하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도망치고 있었다.

“뀌이이이익! 나는! 강하다아아아아!!”

보어리안은 덩치가 대단히 크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은 감당할 수가 없었다. 도망친 사람들과는 반대로 밭에서 마차 위에 있던 용병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미친 멧돼지 새끼가 또 지랄이네. 어떻게 안 되냐? 네 동족이잖아.”

용병 옆에서 찐 감자를 먹던 보어리안 용병이 콧김을 내뿜었다.

부르륵!

방귀 같은 소리가 나왔다.

“이런 X.”

“뀌익. 뀌익~!”

용병이 절로 욕지거리를 내뱉자 보어리안 용병이 콧노래를 불렀다. 더럽고 추잡스러운 것을 싫어하는 것이 인간들이었다.

“어떻게 할래?”

“죽여야지.”

결론은 항상 같았지만, 인간 용병은 항상 보어리안 용병에게 물어봤다. 보어리안도 그게 서로를 위한 것임을 이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보어리안 용병이 보어리안을 죽였다. 그럴 여유도 없을 때는 인간 용병이 보어리안을 죽였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서로 배려하고 있었다. 그 배려심은 사실 별로 대단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이지만, 나중에 확실하게 기능할 것이다. 인간 용병은 그걸 잘 알았다.

용병업을 하면 신의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용병질을 할 것이고, 자신 또한 나중에 다시 용병질을 하게 될지도 몰랐다.

이 업계가 계속 유지되려면, 신의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철컥! 철컥!

인간 용병은 이번에 민간기업에서 구매한 아티팩트 두 개를 결합했다. 결합하자마자 불그스름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가 사그라들었다. 제대로 결합했다는 표시였다.

아티팩트는 기계와는 달라서 보여주지 않으면 잘 되었는지,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새로운 아이템의 힘을 좀 보여줄까?”

“보어리안 전용인가?”

“그렇지. 인간 같은 건 쉽게 잡을 수 있지만, 보어리안은 아니니까.”

레플리카 플레임(Replica flame).

끝없이 복제하는 불꽃이 보어리안을 노렸다. 그건 보어리안이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유도기능이 되어있어, 빠르지는 않았지만, 명확하게 보어리안을 노리고 있었기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도망이라도 친다면 몰랐지만, 도망을 칠 수 없어서 더더욱 보어리안 약탈자를 옭아맸다.

보어리안 용병은 우직하게 돌격하다가 그대로 고꾸라져 버둥거리다가 죽어가는 보어리안의 숨통을 투창을 통해서 끊었다.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자비심이었다.

“오늘도 수당이 들어오겠어.”

“맞아.”

적응한 보어리안과 적응하지 못한 보어리안이 삶과 죽음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 * *

수많은 죽음이 태양 차원에 가득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죽음도 많았다.

세파리아스는 몸소 움직여서 그런 것들을 살펴봤다.

보고서로 보는 것과 두 눈으로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세파리아스의 눈에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조용한 민가들이 보였다. 그의 무리가 걸어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저번 달에 이렇게 되었다고?”

“정확한 시기는 모릅니다. 다만 상인이 으레 이곳에 격달 혹은 세 달마다 방문을 했는데, 그때 마을이 이렇게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마을이라고 하기에도 작은 곳이었다.

다섯 가구가 살아가던 곳이다.

새로운 곳이며, 모두 땅을 경작하고, 목축을 준비했다. 과수원 터도 마련했었다. 그런 마을 구성원이 하루아침에 야반도주할 리가 없었다.

의문의 사건이다.

“…….”

세파리아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 선을 들춰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3차원의 존재인 인간이 4차원을 보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건 인신(人神)이 된다고 해서 그냥 얻는 게 아니었다.

노력이 필요했다.

문제는 세파리아스는 지금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드낙과 무력 차이가 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드낙은 다시 한번 더 자신의 무력을 드높였다.

바로 그림자 구름이다.

정확히는 몰랐지만, 드낙이 한 단계 성장한 것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곳에 노력을 쏟아붓기가 꺼려졌다.

적어도 맞싸움에서는 동수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마음을 가볍게 먹으면 안 된다.’

드낙은 방심할 수 없는 사내다. 그는 자신이 한량처럼 살기 위해서 모든 짓을 할 것이다.

악마의 요람을 대체하는 우주 전함의 건조는 악마의 요람, 가비노를 가지고 있는 세파리아스를 저격하는 일이다.

그런 일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신제국과 내가 태양 식민지에 자원을 투입했을 때부터 아주 노골적이다.’

개자식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나칠 정도로 정치적인 행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세파리아스가 ‘인신’으로서의 노력을 하게 된다면 드낙은 그를 지나치고 앞으로 달릴 것이다.

세파리아스는 딜레마를 느꼈다. 하지만 아직 그는 ‘권능’마저도 없었다. 나중에 하기 위해서 아껴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마을에도 순찰대를 증강시키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느껴진다면 병사들을 증원토록 해라.”

“용병을 해변의 자갈처럼 뿌려라. 수많은 의뢰를 넣어라.”

태양 식민지는 땅이 비옥하다. 그 덕에 채집할 소재도 많았다.

용병들을 사방팔방으로 뿌린다면 범죄자들과 부딪치게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치안이 확립될 터였다.

종국에는 하나의 길이 만들어지고, 마을이 커지면서 사람들이 더욱 모일 터다. 그러면 치안은 더욱 좋아질 것이다.

태양 식민지의 안정화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걸 안 세파리아스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기껏 다른 세력과 군대도 끌어들이고 땅도 팔았는데, 무법자들이 너무 많다.’

세파리아스는 직접 돌아다니며 무법자들을 처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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