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201화 (1,199/1,239)

1201화

* * *

타락.

눈보라 회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며, 시도 때도 없이 싸지르기 좋은 시나리오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흥미로운 것이다.

함께하던 이가 타락해서 죽어버리면 그것만큼 유저들의 대가리를 세게 때리는 게 없었다.

누군가 타락하는 것은 사실상 막기 힘들다. 사람의 마음속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성 종족 타락 이중 침공’은 아주 그럴듯했다.

“현실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렇겠지. 사람이 타락하는 건 한순간이니까.”

일국의 영웅이었던 나폴레옹조차도 권력을 쥐게 되자 개새끼가 되어버렸다. 타락은 생각 이상으로 누구나 쉽게 겪는 일이다.

치킨을 좋아하던 예비군 아저씨가 나중에는 치킨을 거부하고 백숙과 뜨끈한 선짓국밥을 좋아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면, 큰 상심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심리적으로도 충분히…….”

큰 타격을 입게 될 터였다.

“악마들이 진행하는 타락은 욕망을 건드립니다. 욕망을 거세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터였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결코 위로 올라올 수 없었고, 출세하기도 힘들다.

성장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야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다.

자신이 검사, 변호사, 구글 입사 등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굳이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없다.

야망은 그 자체로 동기가 된다.

“악마들의 타락은 그런 야망을 노릴 겁니다.”

순식간에 화면이 바뀌고, 명단이 떴다.

“이건 예시입니다. 현재 하수구 관리자이며, 그의 연봉은 금화 10닢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는 부동산에 큰 관심이 있으며 자본금이 적다는 것에 매일 불평하고 있습니다.”

배부른 소리였다. 하지만 그건 연봉 금화 10닢 미만인 사람들이나 할 법한 ‘간사한’ 생각이다.

재력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시골에서는 한 달에 50만 원으로 살 수 있지만, 도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서울에서는 원룸도 50만 원이다.

“이런 자에게 악마들이 간섭하여 황금을 내어준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희 침공 시나리오는 이를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번 화면이 바뀌었다.

화살표가 여러 개 생겼고, 하나씩 글씨가 새겨졌다.

가장 위에 있는 화살표에는 당연히 황금 지급 타락이 적혀져 있었다.

“황금을 지급하는 건 행정적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손쉬운 일이다.

미국도 한 일이고 어려울 것이 없었다.

1933년. 행정명령 6102.

이 숫자를 모르는 현대인은 없었다. 현재 가장 강대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 대한 것이다. 최강국을 벤치마킹하기 위해서는 그 강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었다.

배울 점이 많기 때문이다.

“황금을 보유하는 것을 금지한다면, 능히 이를 막을 수 있습니다.”

웅성웅성!

단번에 논란거리가 됐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평온했다. 그는 가장 열정적으로 우주 낙원의 모든 지식을 탐독한 인물 중 하나였다.

“이런 제기랄, 금을 가지지 말라니.”

드낙조차도 욕을 하자 세파리아스가 코웃음 쳤다.

“어리석은 놈. 넌 우주 낙원 지식을 조금 더 봐야겠다. 지구에서는 한때 금을 금지한 국가가 있었다. 그 국가는 패권을 가지게 됐지. 필요하다면 한다. 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파리아스가 이어서 말했다.

“거기에 너는 종이 화폐를 쓰고자 했지 않느냐? 그렇다면 더더욱 금을 시민들이 보유할 필요가 없지.”

황금에 대한 가치가 없게 하는 건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국가가 나서서 그렇게 하겠다는데, 이를 막을 시민은 없었다.

적어도 테라는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가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금화 대신 종이 화폐가 더 많이 사용되기를 원한 네가, 욕을? 이건 일관성이 없는 거지.”

“커흐험.”

드낙이 세파리아스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이에 세파리아스는 입을 다물었다.

‘공부 좀 해야겠다.’

세파리아스의 말을 들은 드낙은 자신이 지식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웅성거림이 줄어들고 진행자가 다시 설명을 이어나가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경제가 커지면서 금화가 부족해져 금화가 필요한 이들도 못 구하는 실정입니다. 지금 대부분 사업장이나 기업들 심지어 국영단체… 비록 지방이지만 그런 곳에서는 어음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더는 금화가 으뜸이 아니었다.

이젠 어음과 수표가 주류였다. 여기에 엘프들의 화폐 또한 유효했다.

처음에는 백금을 섞은 화폐였지만 이제는 정말 종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냥 종이는 아니었고 특수 종이였다.

“또한, 지구의 과학기술에는 ‘금’이 많이 사용됩니다.”

이를 생각한다면 금을 민간이 가지지 못하게 되어 더 산업적으로 용이하게 사용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구의 한 통계에는…….”

GDP를 들어서 금을 빼앗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화폐와 금으로 교환하기에는 경제 규모가 상상을 초월해서 금을 화폐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테라는 이와 조금 달랐지만, 결론은 같을 터였다.

모두 압도적인 경제를 추구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자원은 더 많은 이들이 혜택을 보게 만든다.

당장 지금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이도 중세 영주보다는 더 좋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지성 종족 타락 이중 침공의 두 번째 타락은 바로 영생입니다.”

반마의 격과 반신의 격이 새로이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수많은 사람이 두 손을 뻗으며 이를 얻고 싶어 했다.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었다.

“악마들은 재능이 있는 이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에게 영생을 약속할 겁니다. 그들은 테라에 반(反)하여 타락할 것이며 악마들을 위해서 살아갈 것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선택이다.

그건 이직과 같았다.

이직을 한 번 한 사람은 이직을 밥 먹듯이 해나간다. 반대로 이직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이를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영생을 빌미로 타락을 유도하는 건 더욱 악질입니다. 이류 혹은 종종 일류급의 재능을 지닌 지성 종족이 악마에게 가담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군사력을 지닌 이들도 있었다.

“이번에 익명의 도시에 속한 군 간부 중에 반마의 격을 가지지 못한 이들의 숫자입니다. 탈락자만 10명에 달합니다.”

“그들 모두가 대상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 그들은 하나같이 병력을 다루는 데 소질이 있습니다.”

“으음…….”

지배자들이 그 발표에 절로 앓는 소리를 냈다. 드낙도 마찬가지였다.

‘타락!’

게임을 하면서 타락이란 타락은 정말 많이 봐왔다.

그 외에도 온갖 내용이 있었다.

진행자가 교체되었다. 두 개의 시나리오를 발표하는 데에만 많은 심력을 소모한 탓이다. 그다음 진행자가 단상에 올라섰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악마 세계 침공입니다.”

단순했다.

“악마는 육체적인 힘이 대단하며, 악마 세계라는 것을 가지고 별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보통 지성 종족은 자기 땅에서 싸우는 걸 꺼린다. 그건 악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 시나리오는 다릅니다.”

확신.

“악마에게 확신이 있습니다. 이 세계를 쉽게 파괴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면 그는 악마 세계를 테라 차원에 모습을 드러내게 하며 전면전을 치를 것입니다.”

좌표는 무작위였다. 그래서 시나리오에 따라 천차만별로 대응이 달랐다.

“아주 변칙적입니다.”

신제국, 상위국, 오션 오크가 있는 동서 오크 제국, 드워프 제국과 엘프 도시 등등.

쳐들어온 악마 세계가 어디와 가까우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악마 세계가 운 좋게 좌표를 내륙에 가지게 되었을 때, 가장 위험한 점은 바로 산업 타격에 있습니다.”

“산업이 많이 개발된 곳이 파괴된다면 싸움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내륙침공 시나리오는 특히나 끔찍했다. 그중에서도 드워프들이 만들어 놓은 ‘대륙 횡단 도로’가 파괴되었을 때에는 더 심각한 변화가 일어난다.

“식량난입니다.”

뉴에이지 시티에서 나오는 식량 유통은 대부분이 드워프 대륙 횡단 도로를 통해서 운반된다. 바닷길을 이용하기에는 내륙 깊은 곳에 있었고, 지하 운하가 있지만, 그 비율은 3할에 불과하다.

“내륙침공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해도 유통이 무너지면 테라는 한순간에 무너질 겁니다. 그 이유는 식량 창고가 적은 것도, 식량 창고의 분포도가 편향적이라서가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인구가 문제입니다. 압도적인 인구 정책으로 먹는 입이 많아졌습니다. 그뿐입니다.”

황당한 노릇이지만 사실이었다.

“테라는 결코 침공당해서는 안 됩니다. 침공당하는 순간 손해 보는 게 너무 많습니다.”

산업공장이 싹 다 털릴 위험에 처한 것부터 이미 문제였다.

이를 타개하려면 결국 막대한 자원을 소모해서 차원 방벽을 두껍게 만들든가, 다른 모종의 주문을 대규모로 사용하여 악마 세계를 밀어내야 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건 미국과 소련이 냉전 시대에 벌인 우주 탐사 계획처럼 막대한 돈을 쏟아붓게 만드는 것과 비슷했다.

현대에 와서는 예산 삭감이 당연한 우주 관련 예산처럼 시나리오가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돈을 다 버리게 될 것이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방치했다가는 나중에 쓴소리를 듣기 좋다.’

그게 악마 세계 침공 시나리오의 주된 딜레마였다.

바다에 모습을 드러낸 악마 세계의 침공에 대한 시나리오는 내륙침공보다는 중요도가 낮았다. 능히 대처할 수 있었으며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다.

마지막 시나리오. 그건 바로 ‘악마 우주 침공’이다.

“우주에 악마 세계가 출현하는 시나리오입니다. 오우거와 트롤의 싸움처럼 끝장 싸움이 될 겁니다.”

누가 죽느냐, 누가 사느냐가 확실하게 갈릴 것이다.

“우주 제공권을 가지지 못하고, 밀리게 된다면 그것으로 게임은 끝입니다.”

행성 표면으로 수없이 많은 권속 악마와 운석 따위가 쏟아졌다.

능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특히 악마에게 있어서는 이것보다 쉬운 게임도 없었다. ‘경험’이 있다면 분명 이런 식의 침공을 할 터다.

“악마의 덩치 또한 크다면 우주에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초월자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면 분명 우주에서 활동할 것이 분명하다.

“최소 수백m. 최대 1km에 달하는 덩치를 지닌 초월체라면 거기서 나오는 화력 또한 대단할 것입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전함의 형태를 지닌 상상 속의 악마가 마력 포격을 가하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불꽃이며, 바위였으며, 파괴와 멸망의 포격이다.

“이상 시나리오 보고는 끝입니다.”

시나리오는 끝났다. 하지만 회의는 끝나지 않았다.

“해당 시나리오를 비교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결국 병사의 숫자를 늘리는 일이다.”

결론은 하나뿐이다.

“병사라니. 지금은 태양 차원을 제외하고는 큰 싸움 하나 없다.”

“용병들의 숫자를 늘리는 건?”

“지성 종족에게 무력을 주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 아니다.”

힘을 가지면 쓰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었다.

“그럼, 국가가 나서서 병사를 보유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경제에 큰 타격을 입을 터다. 기회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더 많은 산업을 키우고 싶지, 식량만 축내는 병사들을 일정 비율 이상 늘리고 싶지 않다. 그건 테라를 발전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될 것이다.”

말도 길게 했다.

“태양 차원에 수많은 세력의 군대가 활동하고 있고, 그들에게 자치령을 내어주고 있는 게 신제국이다. 그런데 군대가 불필요하다? 태양 차원은 아직도 무주공산이 많다. 얼마든지 군대를 계속 투입할 수 있다.”

거기서 나오는 건 모두 돈이 된다. 병사가 돈이 되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십니다. 테라의 방위를 지켜야 하는데, 태양 차원에 여분의 병사 모두를 집어넣는다니……. 응쯧쯧.”

서로 가지고 있는 지식이 대단했다.

치고받고 싸우기 바빴다.

그 모습을 보던 드낙이 테이블을 내려쳤다. 이에 소란이 사그라들었다.

“…….”

드낙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미안하다. 모두…….’

대한민국 남자의 건아들아. 나를 탓해라.

‘나는 괴물이 되겠다.’

이곳에 대한민국 남성들의 PTSD를 소환한다.

“예비군을 창설하겠다.”

끔찍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으로 이 테라에 대한민국 사람이 전생하거나 환생하거나 빙의하더라도 그는 결국 예비군이 될 뿐이다.

끔찍한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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