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9화
그렇다고 드낙은 순식간에 태양 차원으로 향하지는 못했다.
“이차원이 불안정해?”
“예.”
관리는 그저 담백하게 말했다. 드낙은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관리는 눈치가 없는 것인지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차원 문이 고정시키고 있는 이차원의 테두리가 꿀렁꿀렁했다.
마법사들이 조사하고 있었고, 기계를 통해서 측정하기도 했다. 무언가를 계산하는 데에는 수학자를 데려왔다.
테이블에 올려둔 두꺼운 양피지에 압정을 박았기 때문에 바람에 날아갈 걱정은 없었다.
“규칙성을 찾는 건가?”
“예? 예!”
수학자가 고개를 돌렸다가 냉큼 대답했다. 드낙의 얼굴은 누구나 알아야 하는 필수 지식이나 다름없었다. 몰랐다가 큰 사달이 날 수 있다. 그가 하지 말라고 해도 해야 할 일이었다.
드낙의 초상화나 드낙의 모습을 담은 마법 크리스털이 매년 생산되는 것만 봐도 그 기조를 잘 알 수 있다.
불완전한 이차원이었지만 그래도 계속 유지가 되고 있었다.
“에드온이 도착했습니다!”
에드온은 차원 문의 툭 튀어나온 부분에 철컹철컹 소리를 내며 부착됐다.
출력이 올라가며 더 많은 마력이 소모되었지만, 마력 강철 통을 추가로 가져왔다. 마력 강철 통은 겉은 고무로 둘러싸서 녹이 안 슬게 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파지직!
“마력이 폭주하잖아!”
드낙이 깜짝 놀랐다. 이때 마법사들이 모두 엘프들이 만든 백금카드를 던졌다.
카드는 유도기능이 있는지 정확하게 스파크 속으로 들어가 단번에 마력 폭주를 진정시켰다.
“와우.”
드낙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테라가 아주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게 체감했다.
“원래 자주 이러는 거냐?”
“자주는 아니지만, 이차원이 불안정할 때는 항상 이런 분위기입니다.”
“마력 폭주 상쇄를 일으키는데, 백금카드에 뭐가 담겼기에 이를 진정시키는 것이냐?”
“초월자의… 피가 들어가있습니다.”
“엥? 내 피?”
드낙이 어리둥절해했다. 이에 그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신 황제 폐하의 피입니다.”
“아하.”
테라에 초월자는 하나가 아니다.
“근데 세파리아스는 바쁠 텐데?”
“신 황제 폐하의 전투 육체에서 주기적으로 피를 뽑습니다.”
드낙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차원은 불안정했지만, 추가적인 조치로 안정화가 되었다. 적어도 밖에서 봤을 때는 그러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으면 다치는 이들도 있느냐?”
“지금까지는 경상자만…….”
“정확한 데이터를 가져와라.”
잠시 뒤에 관리가 양피지를 건넸다. 아주 고풍스러운 양피지였다. 테두리에 사금을 섞은 아교로 문양을 그려놓았다.
“경상자뿐이지만 불완전할 때마다 항상 경상자가 나오는군.”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면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
전조현상이다. 큰 사건을 앞두고 있다고 봐야 했다.
하인리히의 법칙은 막노동한 사람이라면 한 번은 들어보는 이야기다. 특히 한국인은 하라는 것을 왜 해야 하는지 꼭 물어보는 인종이다.
“이차원 내부에 있는 차원 다리도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중에 큰 사고가 일어날 거다.”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드낙은 내부에 홀로 들어갔다. 다른 이들은 들어가지 못했다. 이차원의 불안전함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콰과광!
구름이 없었음에도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이차원과 테라 차원이 연결된 곳에서 광풍이 몰아쳤다. 테라 차원의 공기가 이차원으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웬만한 마차는 그냥 날아가 버리겠네.’
폭풍우가 치는 날 소형차를 타고 출근길에 오르는 기분이다. 목숨을 끊고 싶어서 환장한 놈이 할 법한 짓이었지만 드낙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의 몸이 뚱뚱해졌다. 매우 육중해졌으며 드워프처럼 변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진흙이 흘러내리면서 바닥을 덮었다.
그가 거침없이 이차원을 지나가며 주변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파동으로 지나가는 것보다 이게 더 경험에 도움이 되는 것도 있었다.
‘이차원의 불안정성은 차원 다리의 유일한 결점이다.’
그게 단점이지만, 사실 그런 단점을 안고 가야 하는 것이 옳다.
좌표를 순식간에 이동하는 차원 이동은 막대한 자원이 소모된다. 차원 항해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차원 다리 건설 또한 이와 같았다. 차원 이동에 들어가는 자원을 생각한다면 이차원의 불안전성은 감수할 수 있다.
‘그래도다.’
드낙은 차원 다리를 개수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세파리아스가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테라와 태양 차원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다리를 더 확장시키는 건 예정된 미래니까.’
물류의 증가는 필연적이다.
‘굴라 덕분에 태양 행성은 항상 땅이 비옥하다.’
굴라는 반쯤 박살 난 신격을 회복도 못 하는 머저리 같은 초월자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그냥 바보라고 생각하는 게 옳다.
비료를 통해서 식량을 생산하는 테라와는 다르게 비료조차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건 단가의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며, 운송비를 생각하더라도 테라에 싼값에 내놓을 수 있다. 운송업을 하는 이들도 많아질 터였다.
‘내가 미국 다큐멘터리를 봤었지.’
트럭커(Trucker).
트럭커들은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운송업에 종사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트럭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고, 커스텀도 한다. 화물 트럭을 보관하는 모텔도 있다.
운송업은 그만큼 매력적인 일이며,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종 중 하나였다.
다큐멘터리로도 나왔으니, 말 다 했다. 시장 규모도 대단하다고 한다. 어떤 트럭커는 형제가 함께 운전하며 지내기도 한다.
‘꿀잼이었지.’
드낙은 이차원 다리를 지나가는 운송업자에게 깊이 감정이입이 된 상태였다.
이차원의 불안전성을 잡을 방법이 없다면, 단단하게 보호해 줘야 했다.
‘아!’
드낙은 불현듯 깨달음을 얻었다.
구름 없는 천둥소리가 그의 귀를 때렸을 때, 드낙은 또 한 번 경지를 초월했다.
세파리아스가 수련을 통해서 드낙을 따라잡는다면, 드낙은 그저 가만히 있어도 경험치를 먹는 놈이었다. 물론 그 분야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뭉실뭉실―
드낙의 몸에서 그림자가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그림자는 애초에 형태가 없다.’
무엇이든 가능한 건 아니지만, 다양한 형태로 변모할 수 있었다.
안개처럼 퍼져나가는 그림자는 이내 텅 빈 차원 다리를 가득 메웠으며, 이차원의 공간을 잔뜩 메우기 시작했다.
그림자 구름은 초월의 힘이 깃들어 있었으며, 악마의 격이 스며들어 있었다.
드낙은 구름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관조할 수 있었다.
이차원 속에 들어간 테라의 공기. 그 밀도가 옅어지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차원의 천둥이 공간과 시간이 불균형을 이루며 생기는 균열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걸 안다고 해서 뭐가 변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원인은 알 수 있었다.
‘둘 중 하나에 변화를 주면 된다.’
불균형을 균형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이차원 천둥이 치기 전에 공간에 충격을 가하는 것만으로도 이차원 천둥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차원 공간의 ‘공간’은 그만큼 불안정했다. 다만 천둥이 치기 전에 미리 터트린다면 안전할 것이다.
‘피부 트러블과 같다.’
심각해지기 전에 미리 관리해야 한다.
드낙은 이 정보를 신제국에게 넘겨줬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그림자 구름이라는 새로운 경지에 닿았다. 그림자 구름의 가장 큰 장점은 힘의 소모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옅어져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지.’
그림자 구름을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옅은 농도로 퍼뜨려 놓는다면 드낙은 그 전장을 지배할 수 있을 터다.
자신의 숲에 들어온 사냥감을 바라보는 사냥꾼의 눈이며, 귀가 되는 것이다.
‘끝없이 퍼뜨린다면, 모든 일에 대응이 가능해진다.’
모든 일에 대응할 수 있다고 해서 정말 모든 일에 대응하는 건 힘든 일이다. 하지만 위험한 일에는 바로 대응할 수 있었다.
‘파동과 구름 그림자.’
이를 조합한다면, 능히 가능하다.
드낙의 몸에서 검은색의 구름이 족적을 남기며 넘실거리다가 이내 사라졌다.
사라진 건 아니다. 그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미립자가 되어서 흩날린 것뿐이다.
모든 데이터가 드낙의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드낙은 이 데이터를 정리하는 권속 악마를 만들 생각을 했다.
‘도비라고 이름 짓자.’
드낙의 곁에 머물며 그림자 구름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따로 처리하는 권속 악마가 될 것이다.
물론 이건 지금 정말 중요하지 않았다.
‘내 아들이 연애를 한다고!’
35. 30년 (3)
드낙은 이차원을 건너 광대뼈가 승천한 채로 단번에 태양 차원으로 뛰어 들어가서 약향기 자치령으로 향했다.
“여기가 꽃향기 자치령이렸다.”
“나리, 약향기 자치령입니다.”
“하하하! 그래.”
드낙은 자치령을 돌아다닐 겸 돈도 풀 겸, 심심해 보이는 마부를 임시로 고용했다. 그가 자치령 곳곳을 돌아다니며 잡담을 시작했다.
“도서관부터 지으셨다니까요! 정말 좋은 분이십니다.”
마부는 크레시미르에 대한 자랑도 했다.
드낙은 이동하면서 그림자 구름을 퍼뜨려 정보를 모았다. 쓸데없는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오기도 했지만, 머리가 아프지는 않았다.
그냥 흘려들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학교 생활하면서 10년이나 넘게 터득한 기술이었다. 사장에게 깨지면서 더욱 숙련된 기술이기도 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술이었다. 드낙만의 트레이드마크 스킬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가장 맛있는 식당으로 데려다주고 갈 길을 가라.”
“예, 나리!”
은화 한 닢을 받고 일찍 퇴근이라니. 최고였다.
드낙은 식사를 하면서 정보를 선택했고, 이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조용한 연애를 하고 있네.’
크레시미르의 연애에 대해서 떠드는 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 시간이 지난 탓도 있었지만, 그래도 심할 정도로 조용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내가 나설 때가 됐지.’
크레시미르는 연애에 젬병이다. 드낙은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연애 한 번 안 해본 것이 그의 맏아들이다.
‘내가 코치를 해줘야지. 누가 해줘?’
첫 연애부터 쪽팔리는 짓은 있을 수 없었다.
“드낙, 나가신다!”
그가 고함을 내지르며 크레시미르의 집무실로 향했다.
드낙 스스로가 자신이 도착했음을 알리자 모두가 응대를 하려고 난리가 났다. 하지만 드낙은 이를 모두 치우고, 크레시미르와 한 자리에 마주했다.
“너 연애한다며?”
“예? 제가요?”
크레시미르는 바로 시치미를 뗐다.
능숙했다.
‘역시 처세술과 사회생활을 한 녀석답다.’
막힘이 없다. 이미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린 것 같았다. 거짓말쟁이가 거짓을 위한 거짓말을 하기 위한 거짓을 미리 꾸며놓아 완벽에 가까운 거짓을 만드는 것처럼.
다양한 미래를 예측해 놓고 미리 상상해 놓은 것이 틀림없다.
“무르다. 나라면 다른 덫을 내놓았을 것이다. 그렇게 오리발만 내밀면 여지를 주는 거다. 다 알고 왔는데!”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그냥 알리기가 조금 부끄러워서.”
“사내 녀석이 부끄러운 것도 많다. 그래서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 나도 알아야 할 것 아니냐!”
드낙이 콧김을 내뿜었다. 그 뜨끈한 것에 크레시미르가 절로 몸을 뒤로 뺐다.
“첫 만남은?”
“예? 그게…….”
그가 눈알을 굴렸다. 보기 드문 모습이라 드낙이 그대로 빵 터졌다.
“술을 가져와라!”
남자들의 대화에 술이 빠져서야 되겠는가?
가장 독한 것으로 가져왔다. 드낙은 안주와 술을 마시며 자신과 레이시아가 요즘 뭐 하는지 시시콜콜 말하며 크레시미르의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매번 꽃을 가져가는데 그렇게 좋아한다니까. 그래서 내가 원예에도 조금 취미를 가지게 되었잖나. 같이 온실을 관리하자고 해서. 이번에도 가서 꽃들 관리 좀 해줬다. 내가 하면 무조건 잘한다고 말하는데 내가 거기에 넘어갈 리가 있나!”
‘아버지… 아마 넘어가신 것 같습니다만…….’
크레시미르는 자기 생각을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