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198화 (1,196/1,239)

1198화

* * *

곳곳에서 다양한 발전과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지하 연합의 바나나 제국 프로젝트처럼 ‘시장 독점’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졌다.

델X트 회사의 바나나 판매는 매년 2조 원이 넘는 매출을 넘기고 있었다.

고작 바나나를 판매해서 2조 원을 받는다.

지하 연합의 ‘바나나 제국 프로젝트’는 상상 이상의 돈벌이 수단이었다. 바나나 독점을 하게 된다면 엄청난 이윤을 만들어낼 것이다.

크레시미르와 다이앤타 또한 시장 독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물약 고급화를 통해서 시장 진출을 하려고 있었고, 더 많은 생산을 통해서 더 좋은 값을 소비자에게 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곧 독점에도 도움이 된다.

박리다매를 통해서 미리 시장을 독점해 놓는다면 다른 이들은 시작할 엄두도 못 낼 터다.

많이 생산할수록, 많은 물량 유통경로를 만들어 보낸다면 비용은 서서히 줄어들고, 더욱 효율성 있게 변모한다.

그 끝에 불멸의 돈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두 사람이 원하는 일이었다.

태양 차원은 미개척 지역이 너무나도 많은 곳이었고, 다양한 물약을 요구하고 있었다.

갑자기 질병이 퍼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새로운 차원이며, 새로운 세계이기 때문이다.

미생물부터 시작해서 세균까지 다른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질병 회복 물약이다.

특히 돈이 있는 자들은 중급 물약에도 성이 차지 않았다. 이곳에 일하러 온 사람들도 자기 몸을 생각한다.

물약은 여분의 목숨줄이나 다름없었기에 큰돈을 쓸 생각을 지닌 이들이 많았다.

물약 고급화 시장은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실제로 효과도 고급이다. 호주산 소고기를 한우로 속여 파는 식의 상술은 아니었다.

‘태양 차원뿐만이 아니야. 테라에서도 능히 할 만해.’

다이앤타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오라버니인 크레시미르 또한 이를 잘 알고 여기에 뛰어들었다.

‘아빠는 항상 밑에 사람들을 사랑해. 그래서 고급품의 생산은 낮아.’

식량, 하급 물약, 하급 아티팩트.

그런 건 국가가 주도해서 생산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생산력을 보여줬다.

반면 고급품은 국가로부터 지원금을 받지도 못하고 민간에서 생산되었다. 그런 것을 미루어 봤을 때, 고급품은 자신들이 충분히 들어갈 만했다.

그녀는 오늘도 자료를 훑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결정을 돕기 위해서 모아둔 자료들이다.

한 번 선별된 것이라는 게 중요하다. 다이앤타가 훑을 자료가 줄어든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약초들뿐이다.’

고급 약초들이었다.

중급 약초는 약초에 마력이 깃든다. 반면 고급 약초들은 주변에 마력을 뿌릴 정도로 마력 농도가 높다.

초월적인 현상마저도 일으킨다.

초월적인 현상에는 환영, 신기루, 토양의 변화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토양의 변화가 대량생산을 막는 현상이다.

‘짜증 나는 일이지.’

불양초라 불리는 고급 약초가 있다. 주변 토양의 온도를 높인다는 괴이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사막화가 일어날 정도다.

사막에 피는 꽃이 아니라, 사막을 만드는 꽃인 셈이다.

문제는 불양초 또한 식물이라, 사막에서는 자라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살하는 식물인 셈이다.

그렇기에 꾸준히 관리가 필요하다.

고급 약초 대량생산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토양 변화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꾸준히 물을 뿌려서 온도를 낮추거나 혹은 마법을 통해서 온도를 낮춰야 했다. 무엇이 되었든 ‘수학’이 중요했다.

계산을 해야 한다.

가능한 것. 불가능한 것. 어려운 것. 쉬운 것.

다이앤타는 그 결정을 앞둔 상태에서 결국 문인들을 초빙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큰돈을 내놔야겠네.”

적법한 과정을 위해서는 문제를 해결한 문인에게 돈을 내어줘야 한다.

그녀는 간단한 보고서를 만들어서 크레시미르에게 보냈다. 그에게 일을 떠넘길 생각이었다.

성실한 그녀의 오라버니는 분명 그 일을 매끄럽게 진행할 터다.

‘난 오랜만에 사냥이나 나가봐야겠다.’

스트레스가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파괴해야 했다.

보어리안을 쳐 죽이는 게 가장 좋았다. 이 행성에는 지하 연합에게 포섭되지 않은 보어리안이 많았다.

그녀는 비행 마법을 통해서 단번에 솟구쳐 올랐다.

거친 바람이 그녀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원한 기분이 몸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다이앤타는 구름을 뚫고 올라갔다가 그대로 하락했다.

“하하하하!”

끔찍한 추락에도 그녀는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며 다이앤타는 순식간에 점이 되었다.

야만적인 보어리안들은 그들 나름대로 현실에 적응하고 있었지만, 법 아래에서 보호되지는 못했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며, 강하면 살고 약하면 죽는 거친 정글의 풍토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다이앤타에게 죽임을 당해도 그 누구도 그녀를 고소하지 못할 것이다.

다이앤타는 먼 거리를 순식간에 돌파했다. 마력을 쏟아낼수록 더 빨라졌다.

중력이 그녀를 짓누르며 피부가 축 늘어졌지만, 다이앤타는 능히 이겨냈다. 그녀는 쿼터 데몬으로 태어났으며, 지금은 반마의 격에 오른 준초월자다.

적을 찾아낸 다이앤타가 순식간에 내려앉았다.

쾅!

폭음이 퍼져나갔다.

우수수!

나무가 쓰러지며, 다른 나무까지 부러뜨린다.

한순간에 다리가 골절되어 버린 보어리안이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 머리통을 잡은 다이앤타가 씨익 웃었다.

“하하하.”

퍼석!

단번에 두개골이 박살이 나버렸다.

‘이거지.’

스트레스가 쫙 씻어나가는 기분이다.

드라마의 악역이 괜히 물건을 부수는 게 아니었다. 땀을 쫙 뺄 때까지 닥치는 대로 부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운동에도 좋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어서 일석이조였다. 겸사겸사 치안 또한 환하게 밝힐 수 있었다.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보어리안만 안 좋았다.

행복한 세상의 완성이다.

* * *

크레시미르는 성실하고 현명한 반마(半魔)다.

그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스틸 로드의 직함을 실력으로 거머쥐면서 반마로 거듭났다. 이제 세월이 그를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다.

‘태양 차원은 내 지도력을 시험하기에 좋다.’

자치령을 얻었다. 거기에 변수 창출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다이앤타와 협력하게 됐다.

다양한 변수는 크레시미르의 경험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크레시미르는 태양 차원에서 따로 교육 시설을 만들 생각이었다. 대단한 발걸음은 아니다.

‘도서관을 짓는 일이다.’

도서관은 이미 완공되었고, 사서도 구했다. 장서량은 서서히 늘려나갈 요량으로 많이 구매하지 않았지만, 구색을 맞추기는 했다.

자치령에 있는 이들은 한 달에 한 권은 읽어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 휴가 하루가 추가되었고, 많은 이들이 만족했다.

그중에는 크레시미르 또한 있었다.

독서는 크레시미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다.

크레시미르의 얼굴을 알고 있는 이들은 있었지만, 도서관에서 크게 인사를 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이 마주치면 묵례하는 수준이었다. 그 또한 권위적이지 않은 크레시미르의 평소 성향 덕분이었다.

책을 한 권 집어 든 크레시미르는 바로 자리를 잡고 독서를 시작했다.

“…….”

“……!”

“……?”

종종 따로 가져온 노트에 받아 적기도 했다. 그 나름의 독서법이었다.

“야, 이 개 같은 새끼야!”

그때 도서관이 크게 울렸다. 워낙 조용했기에 그 어떤 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크레시미르는 바로 책을 덮었다.

그는 많은 책임을 짊어진 인간이었고, 항상 먼저 나서는 존재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서와 싸우고 있는 병사가 눈에 들어왔다. 병사는 그녀의 가슴을 가리키면서 욕을 하고 있었는데, 사서는 겁에 질려 뒷걸음치며 그만두라는 소리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너랑 밥 먹으면 안 되냐?! 네가 그렇게 비싸?”

크레시미르가 병사의 뒷목을 잡고 당겼다. 병사는 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뒤에 누가 있는지도 확인하지 않는 것이 어지간히 분노에 휩싸인 듯했다.

“억!”

병사가 순식간에 나뒹굴었다. 크레시미르가 패대기쳤기 때문이다. 바닥이 박살 나지는 않았다. 사정을 봐준 것이다.

“고용된 병사가 이 무슨 짓이냐?”

“넌 뭔데…….”

말을 하기도 전에 다른 이들이 병사를 짓누르며 뒤덮어 버렸다.

“괜찮으십니까! 왕자님!”

“난 괜찮다. 끌고 가라. 난동을 부린 이유를 상세하게 파악해라.”

“예!”

그들은 휴가임에도 놈을 끌고 가는 데 동조했다.

이 모습으로 크레시미르가 그들을 얼마나 잘 대우해 주는지 알 수 있었다.

“괜찮나?”

크레시미르가 사서에게로 눈을 돌렸다. 사서가 고개를 깊이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성희롱을 당했는데도 담담한 모습이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가?”

“아니요. 오늘 처음 겪어봤습니다. 군인분들은 다 상냥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 앞으로는 독서실에 경비 두 명을 배치하겠다.”

“가,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해결책과 인력을 투입한 크레시미르는 읽던 책을 마저 읽으며 사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이름은 에이나리(Einari). 나이는 22살로 사서 일을 찾다가 여기까지 흘러들어 왔다고 했다.

“사서를 구하는 곳이 많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라……. 모험심이 대단한데.”

잡담하면서 딱딱한 어투도 부드러워졌다. 남에게 금방 정을 내어주는 성격 같았다.

“이 책을 읽어봤느냐?”

“네. 사서 일이 끝나면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든요. 쉬는 날에도 나와요. 어디까지 보셨어요?”

“절반까지.”

“아, 그렇다면 사이미르가 등대에서 일하는 부분을 보셨겠네요?”

“정체 모를 현상이 계속 일어났지.”

“곳곳에 힌트가 있어서 자주 뒤로 넘겨봤어요.”

“나도 마찬가지다.”

‘이야기가 잘 통하네.’

크레시미르는 에이나리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의 취미가 독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책의 제목. 글쓴이. 내용.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책의 내용은 또 다양한 것으로 나누어졌기에 화젯거리는 차고 넘쳤다.

산에 대한 것은 강이나 계곡에 관한 이야기로 번지고, 물고기와 양식장에 관한 이야기까지 흘러가기도 했다.

그 속에서 크레시미르는 에이나리가 자장가 같은 여성이라는 걸 알게 됐다.

‘봄날의 오후.’

그렇게 여겨지기도 했다.

에이나리와 대화하면 기분이 나긋나긋해졌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둘은 급격하게 사이가 좋아졌으며, 곧바로 서로의 호감을 확인했다.

연인이 되는 데는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크레시미르의 연애 소식은 곧 ‘약향기 자치령’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에이나리나 크레시미르를 귀찮게 굴지 않았다.

크레시미르는 사회적으로나 계급적으로나 지배층이기에 그의 심기를 거스르려는 자는 없었다. 에이나리와 친해지려고 시도한 자들은 하나같이 크레시미르의 집무실로 직행했고, 좌천되거나 계약이 해지되었다.

초기에 이렇게 잡아놓으니 그 누구도 에이나리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가뭄에 비가 내리면 모든 이의 시선을 사로잡듯이 에이나리의 인간관계는 작디작았기에 통제하기도 쉬웠다. 그녀는 이를 구속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잘생긴 오라버니가 첫사랑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다이앤타의 귀에도 들어갔다.

“와우. 그거 정말 역겨운걸.”

귀에 들어오자마자 손으로 귀를 후벼 팠다. 피까지 나올 것 같을 정도로 거친 행동이었다.

크레시미르가 연애를 시작했지만 다이앤타는 역겨운 표정 한 번을 짓고는 상관하지 않았다. 딱히 아무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연인이라…….”

대신 다이앤타는 딴생각을 했다.

‘남자를 봐도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드는걸.’

그녀는 진지하게 고민을 이어나갔지만, 금방 털어버렸다. 연애가 딱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에 만족하고 있었다.

반면 드낙은 달랐다.

“뭐! 내 아들이 연애를 한다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고, 입꼬리가 활짝 솟아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