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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197화 (1,195/1,239)

1197화

* * *

둥당당……. 다르르릉……! 둥두루루! 당당당!

둔탁하기 그지없는 악기 소리에 고블린 라따가 눈을 떴다. 창문으로는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어둠만 가득했다.

“개 같은 기타 소리 안 나게 해라!”

고함을 질렀지만, 악기 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현재 시각을 알 길은 없다. 다만 아직 아침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지하 연합 소속의 삶은 어둠과 빛. 극단적인 삶이었다. 아직 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주 하는 건 아니지만, 틈틈이 활력이 남아돌 때 저런 짓을 한다니까.’

분명 어제 하루를 쉬어서 새벽에 일어난 것이 틀림없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고블린 구역의 집 구조는 이게 문제였다. 하지만 라따는 몰랐다. 층간소음은 이것에 비하면 10배는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서서히 빛이 들어오자 라따는 감았던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며 오늘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어푸! 어푸!

거침없이 몸을 깨끗하게 씻었다. 미지근한 물을 사용했는데, 따뜻한 물은 마력 소비율을 높이기 때문에 권장하지 않았다.

지하 연합의 마력 자원은 그들의 인구수에 비하면 적은 편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마력세를 덜 내기 위해서라도 중요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었다. 차가운 냉수는 샤워하기 꺼려지기 때문이다.

비누로 온몸을 깨끗하게 씻은 다음에는 무식하게 큰 통에 담긴 로션을 사용했다.

로션에는 흔한 브랜드 로고 하나 없었다.

지하 연합이 사용하는 로션은 건조한 피부용, 습한 피부용. 두 종류에 불과했다.

이를 바르고 난 다음에는 옷을 입었다.

문을 열자 도시락이 있었다. 플라스틱 도시락은 조금 식어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마늘 향이 나는 식빵.’

바삭하게 구워져 있었으며, 따로 봉지에 들어 있어서 습기가 침투하지 못해서 바삭함이 살아있었다. 거기에 버터를 잔뜩 넣은 식빵이라서 내부는 보송보송했다.

여기에 보존 식품으로 훌륭하고 맛도 좋은 햄을 얹었다.

그다음에는 패티를 얹는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1:1로 섞은 비율로 만들어지는 지하 연합의 패티는 거기서 거기였다. 염장까지 해서 공장에서 보내주기 때문에 맛이 비슷하다.

닭고기나 양고기를 쓰는 천하의 몹쓸 놈들이 이를 ‘패티’라고 말하는데 지하 연합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다.

어디서 감히 소고기와 돼지고기 앞에서 양고기나 닭고기가 겸상을 하려고 드나?

라따는 햄버거 소스를 듬뿍 바르고 거침없이 한 끼를 해치웠다. 햄버거를 한입 먹고 샐러드를 욱여넣고 입 안 가득 씹으면 그게 행복이었다.

배가 잔뜩 부를 정도로 먹은 다음에는 으레 그렇듯이 우유를 먹었다.

우유는 지하 연합의 아침을 책임지는 것 중에서도 중요한 것이었다. 유당불내증이 있는 한국인 대다수가 우유를 좋아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유당불내증이 없는 이들이 대다수인 지하 연합에서는 우유는 그야말로 최강의 건강 음료였다.

우유를 마신 라따는 밖으로 나섰다.

그가 하는 일은 대단한 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은 아니다.

공장으로 가는 길은 평탄했다. 벌써 수많은 고블린들이 모여있었다.

취이이익! 취이이이이이이익!

스팀 버스가 수증기를 내뿜으며 멈췄다. 고블린들이 너도나도 탑승했다. 내부는 조금 후덥지근했다. 습기도 많았다.

하지만 나무로 되어있어서 나무 향 내가 가득했고, 큼지막한 창문이 있어서 상관없었다.

치이이익!

버스가 증기를 내뿜으며 거침없이 질주했다.

공장 지대는 거주지에서도 먼 곳에 있었다. 지하에서 살아가는 이들이었기에 환기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탓이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험한 꼴을 당할 수 있었다.

그 탓에 공간 자체가 벽으로 갈라진 관문을 지나야 했다.

관문은 철통같이 유지되는 건 아니었다. 톨게이트처럼 몇몇 인원이 있을 뿐이고, 그 대부분이 전투력은 다소 약한 암컷 고블린들로 채워져 있었다.

간단한 서류 절차도 없었고, 그저 신분 인증만 하면 됐다.

관문을 지나자마자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도 그의 머리카락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바람 마법은 공장에서 나오는 굴뚝에서 시작해서 천장으로 향하여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거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그만큼 이 공장 구역은 수많은 굴뚝과 공장이 있다.

공기는 쾌청했지만 언제 어디에서 무슨 사고가 벌어질지 모른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기에 이처럼 구역이 나뉘어 있는 것이다.

고블린들은 버스에서 내린 후, 흩어지거나 또 다른 스팀 버스를 기다리기도 했다. 라따는 전자에 해당됐다.

그는 깨끗한 길을 걸어서 자신의 일터로 향했다.

골목길에도 쓰레기 하나 없었다. 비행을 저지르기엔 고블린들은 돈을 충분히 벌고 있었으며, 취미 생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뒷골목에서 더럽게 시시덕거릴 이유가 없었다.

공장 입구에는 경호원이 있었다.

“내가 1등은 아니겠지?”

“1등이야. 하하하.”

“제기랄!”

탄력적 근무였기에 근무 시간만 8시간을 채우면 된다. 일찍 오는 이들도 있었고 늦게 오는 이들이 있었지만 1등으로 온 고블린 작업자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쁘게 마련이었다.

남들과 똑같이 돈을 받지만, 왠지 더 일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은근히 이것 때문에 10분, 20분 조금 늦게 출근했는데, 점점 더 시간이 늦춰지고 있는 듯했다.

라따는 자기 자리로 향했다. 그가 하는 일은 주술 아이템으로 쓰이는 나무를 깎는 일이었다.

주술은 그 형태에 따라서 나무 또한 그 형태가 달라야 했다. 그리고 반드시 지성 종족의 손을 타야 했다. 공장에서 기계를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어떤 주술은 기계로 깎은 나무에도 들어가기야 들어간다.

어떤 주술이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가 하는 일은 작업 현장에서 지성 종족을 보호하는 주술인 ‘깃털 나뭇잎 주술’을 깃들게 하는 나무를 깎는 일이었다.

이 깃털 나뭇잎 주술은 고층 건물을 짓고 있는 현 상황에 가장 알맞은 주술 아이템이었으며, 심지어 파쇄기나 고철을 찌그러뜨리는 곳에서도 사용됐다.

사람을 구하는 데에는 일품인 주술 아이템이었다.

다만 라따는 윗부분만 깎는다.

드르륵!

오른쪽 발판을 밟자 컨테이너에 고정된 통나무가 그에게 다가왔다. 통나무는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아주 잘 버려져 있고 근력을 상승시키는 칼로 거침없이 다듬었다. 단번에 주술 문양이 새겨진 통나무의 윗부분이 완성됐다.

다시 발판을 밟았다.

드르륵!

컨테이너가 움직이며 또 통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통나무 깎는 고블린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이제 곧 점심시간이네.’

점심시간은 딱 정해져 있었다. 조금 엉망진창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밖으로 나가려던 라따는 호출을 받고 사무실로 향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이긴. 하하하.”

고블린 관리자가 자리를 권했다. 라따가 앉자마자 서류를 건넸다.

“다름이 아니라, 이제 햇수로만 5년을 근무하지 않았더냐? 좋은 기회가 있어서.”

라따가 서류를 들어 올렸다.

“주술 견습?”

“자네, 1월에 받은 종합검사에서 주술 재능이 D등급으로 나왔던데?”

“예. 근데 그거랑 근속 5년은 무슨 상관입니까?”

둘은 크게 관계가 없어 보였다.

“한 공장에서 5년 동안 일한 고블린은 드물지.”

지하 연합은 인구수도 많고, 일자리도 많았다. 필요하다면 교육도 쉽게 받을 수 있었다. 인적자원의 개발은 지하 연합이 밀고 있는 중요한 과업 중 하나였다.

똑같은 1%의 발전이라도 지하 연합은 인구수가 막대해서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블린들은 교육도 받고 실업수당도 받으면서 이직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근데, 라따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현재에 만족하는 고블린이었다.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라따가 깍듯하게 말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생활이 좋았다.

적당히 놀고, 적당히 살고. 그냥 적당한 삶이다.

책도 읽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면서도 한 달에 한 번은 제법 비싼 식당에서 한 끼를 먹는 그런 삶이다.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지만,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그런데 주술 교육이라니.’

“겨우 D급에게 그런 자리가 있습니까?”

황당할 노릇이긴 했다.

“재능이 적어도 항상 자리는 있게 마련이지. 특히 자네는… 평범한 삶을 추구하지 않나? 조금 노력해서 조금은 더 넉넉한 삶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D등급 주술사라면 결국 주술 아이템을 만들면서 살아가게 되어있다. 그 삶은 넉넉할 것이고, 편안할 것이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몸과 마음이 나른할 터였다.

생각은 짧았고, 결정도 빨랐다.

“함 해보이겠심더.”

“그래. 잘 생각했다. 오늘 바로 퇴근하고 준비하고 있어라. 담당 고블린이 찾아갈 거다.”

라따는 서류를 챙겨 들고 나갔다.

D등급을 받은 수많은 고블린이 주술사가 되려고 하고 있었다. 그건 지하 연합이 서서히 초월의 힘을 으뜸으로 생각하는 초월 국가로서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력도 중요한 자원이었지만, 그보다 초월의 힘이 물리 법칙을 거스를 수 있어서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단치 않은 C급 미만의 인력들이 주술사 노동 계급으로 만들려는 지하 연합은 대단히 무서운 대계를 그리고 있었다.

한 해에 십만 마리에 달하는 하급 고블린 주술사를 배출하려는 지하 연합의 프로젝트는 ‘바나나 지배 프로젝트’라 불리고 있었다.

“바나나는 나무가 아니다.”

“하지만 나무다!”

“으음……! 심오하군!”

“하급 주술사를 통해서 바나나를 계절에 상관없이, 땅의 비옥한 정도에도 상관없이 생산할 수 있다면, 지하 연합은 또 하나의 무역품을 얻을 수 있다.”

바나나는 숙성 기간이 존재한다. 그 기간은 곧 유통기간이나 다름없었다. 적게는 한 달. 길게는 6개월 동안 서늘한 곳에 숙성시킨 바나나는 그제야 먹을 만해진다.

이는 토마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건 충분히 해볼 만했다.

‘바나나는 달고 맛있지.’

바나나는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제외한다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과일이다. 그런 것을 지배한다면? 알짜배기 사업이 될 것이다.

그것도 지하 연합 차원에서 시작하는 국가사업이다.

지구에서는 1억t을 생산하는 무지막지한 사업이었다. 그것이 지하 연합을 군침 돌게 만들었다.

지하 연합은 그런 식의 사업장을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바나나를 지배한다면 엄청난 부(富)를 축적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바나나 또한 유통을 해야 한다. 거기서 오는 직업의 개수도 짭짤하다.

사람은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택시 운전을 하는 사람도 있다.

둘 다 필요하기에 직업 수는 중요했다.

바나나를 통해서 압도적인 유통 직업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바나나 주술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주력을 통해서 바나나를 생성할 뿐이다. 이를 통해서 모든 지성 종족이 바나나 나무를 심을 이유가 없게 만들 생각이었다. 돈으로 구매해서 즐기면 그만이다.

“바나나 1억t 생산.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지?”

“못해도 20년은 봐야 합니다.”

매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뀌는 5년지대계를 생각한다면 충격적인 세월이었다. 한국인들은 까무러칠지도 모른다.

세상에 어느 정책이 5년마다 바뀌지 않고 20년마다 바뀐단 말인가? 말세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

회의하던 이들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소고기 짜장라면이 단돈 2닢! 2인분 이상에 술까지 시킨다면 단돈 1닢이오!!”

라면집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지하 연합은 호객꾼을 고용할 정도로 먹을 것에 진심인 편이다. 그만큼 많은 돈이 식당에 많이 들어오니, 호객꾼 같은 직업이 생길 수 있었다.

호황기에 엘리베이터 안내원이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였다.

“오늘은 소고기 짜장라면이다!”

“자~ 드가자!!”

뿔 쥐 관리가 거침없이 들어섰다. 이를 본 다른 호객꾼들이 크게 아쉬워했다.

뿔 쥐들은 대식가가 많아서 매출을 가장 크게 올리는 주요 고객이었다.

맥주 하나 시키고, 꼬지 두 개 시킨 채로 1시간 넘게 테이블을 차지하는 일본 사람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그들은 시작부터 짜장라면 5인분과 함께 소고기를 추가 주문했으며 맥주도 한 통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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