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196화 (1,194/1,239)

1196화

* * *

테라의 바다가 대나무 울타리 덕분에 생태계가 풍부해지고 있는 사이에 마신 진영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키이~ 키이!”

대악마(大惡魔) 아스모데의 전령 이차원 이동을 하여 마신의 권역에 들어왔다. 덩치는 인간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 등에는 지렁이가 들러붙어 있었다.

그 괴기스러운 악마는 오직 차원 이동을 하기 위한 존재였다.

직함마저도 ‘차원 전령’이다.

본래 잘 사용하지 않는다.

악마는 ‘파괴자’이며 별을 부수는 존재였다. 끝없이 파괴충동에 시달리는 초월자였다.

그건 육체의 세뇌라고 할 정도다.

호르몬의 분비 때문에 성욕이 들끓는 사춘기 소년처럼 악마 또한 육체에 정신이 휘둘리는 존재였다.

그런 놈들이 전령을 보내는 건 대단히 이례적이었다.

‘그 대상이 마신이라면 납득 가능하지.’

정해진 차원 좌표에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 법칙이었다.

이 좌표는 시간에 따라서 매번 달랐고, 그 표도 가히 수만 개에 달했다. 혹시 모를 사고를 막기 위해서였다.

좌표를 지키고 있는 마수가 대단하지는 않다. 심지어 덩치도 작았다.

마수. 플랑크톤.

그게 그 덩치가 작은 마수의 계통이다.

그들의 머리에서는 무언가가 뚝뚝 흘러내렸는데, 머리카락 끝에 매달아 놓은 병에 그 액체가 담기고 있었다.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 물속에는 대량의 미생물이 살아가고 있었고, 모두 마수들의 삶에 좋은 미생물들이었다.

마수 플랑크톤은 이를 통해서 마수들의 환경을 개선했고, 그 외에 이들은 비교적 덜 안전한 곳의 경비를 선다.

경비인력은 그 중요성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슈, 슈슉. 슉. 슈슉! 마, 마신께 드, 드드, 드리고 싶은 정보가 있다. 슈슉!”

차원 전령의 정신상태는 좀 안 좋아 보였다. 그렇지만 그가 가져온 양피지는 아스모데가 가진 정보를 충분히 설명해 주었다.

차원 전령은 마신 성현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신은 그 정보를 확실하게 접할 수 있었다.

마신은 이 정보를 테라를 전담하고 있는 미노타우르스들에게 보냈다.

미노타우루스들은 최근 아주 조용히 지내며 행성의 내실을 다지고 있었다.

“아카타베루가 25년 뒤에 테라의 차원에 도착한다더군. 그때 맞춰서 테라를 침공한다면 큰 업을 벌 수 있다고.”

“아스모데라……. 악마를 신용할 수는 없어도 그녀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겠지.”

그 의도는 분명 진실일 것이고 그 의도를 통해서 진짜를 분별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먼저 아카타베루의 테라 침공은 분명 예정된 것이고, 진실일 확률이 높다.”

마신 진영에서는 악마들에게 정보를 뿌렸다. 그 시기를 생각한다면 거짓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그들 또한 그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다.

“아카타베루는 대악마 여럿을 집어삼켰고, 막강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

“아스모데가 살아남았고, 여기에 차원 전령을 보낼 정도로 역량이 남아있다는 것을 유추했을 때, 아스모데 또한 재미를 봤다는 뜻이다.”

“적게 볼 리는 없지. 악마니까, 화끈하게 한탕 해 먹었을 것이고.”

무려 40년에 달하는 차원 항해였다.

보통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악마니까 가능했던 것이다. 그들은 더 대단한 별을 부수고 싶어 했으며, 더 막강한 업적을 얻고 싶어 했다.

“판도에 변화가 있었고…….”

아스모데는 온갖 것들을 적어놓았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야 하듯이, 진실을 숨기기 위해서 다양한 거짓을 심어놓았다. 이 때문에 양피지의 양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미노타우르스들은 곧바로 선별에 나섰다.

그들은 마신에게 막대한 업을 벌어다 준 참모들이었고, 소위 엘리트 중에서도 경력을 쌓은 엘리트들이었기에, 그 작업이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많은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참전해야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은데.”

“테라가 얼마나 발전할지 모른다. 그림자 마수도 통하지 않고, 은밀하게 행성 자원을 빨아먹는 작은 마수들도 더는 통하지 않는다.”

방비가 대단했다.

예전과는 다르게 파동으로 변한 상태에서 드낙의 정찰 범위가 많이 늘어나 버린 탓이다.

마신의 기운을 여러 번 겪어봐서 그와 관련된 ‘추적’은 그야말로 귀신 같았다. 할 수 없는 걸 쉬이 해냈다.

“더는 공세를 펼칠 수 없다. 게릴라가 안 통한다.”

남은 건 전면전뿐이다.

마신 세력은 중립신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데도 테라를 노리는 건 다름이 아니라, 중립신 때문이었다.

‘그가 뿌린 씨앗이 평범할 리가 없다.’

반드시 부숴야 했다.

연쇄살인마가 나타나면 특별 대책반이 생기듯이, 테라를 위해서 미노타우르스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

“그저 전면전만 한다고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는다. 우리는 10번도, 100번도, 1,000번도 싸울 수 있다. 중요한 건 초기에 끝낸다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잘 이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이라는 망국(亡國)도 몇 번을 싸워서 이겨냈다. 하지만 결국 국운이 고꾸라져 버렸다.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며, 역량이 계속 소모된 탓이었다.

테라 또한 성장하기 전에 부숴 버린다면, 조선꼴이 나도록 만들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서라면 전면전이 가장 좋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운석 마수는 어떤가.”

“좋은 생각인데?”

운석 마수는 말 그대로 행성 표면 타격에 적합한 마수였다.

“문명을 부수기 가장 좋은 선택이기도 하지.”

“유지비도 들지 않는다. 동면 상태의 운석 마수는 작전 개시 직전에 깨우면 된다.”

그들은 광산 행성 하나를 가지고 있다.

마신 진영은 끝없이 팽창했으며 많은 곳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영토가 넓었고, 사는 이들도 많았기에 지금 행성 하나를 받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운석 마수를 통해서 테라의 표면을 모조리 박살을 내놓는다면, 다음 침공을 결코 막지 못할 것이다.”

미노타우르스들은 이 계획을 아마겟돈이라고 이름 지었다.

“운석 마수를 차원 항해시킨다면,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야 도착하게 될 터다.”

“지금부터 차원 이동을 할 준비를 해야 한다.”

남은 기간은 20여 년에 불과했다. 그에 미노타우르스들은 조금 다급해졌다.

곧바로 운석 마수, 미티어(meteor)의 생산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졌으며 동시에 대규모 차원 이동을 위한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20년을 조용히 있는다면, 놈들도 방심할 거다. 안 그런가?”

미노타우르스들이 웃음소리를 냈다.

차원 이동에 대한 그릇을 제공하는 건 그림자 후작이라 불리는 로노베가 도맡았다. 일반적인 광물이나 제련한 철괴에 그림자를 씌우는 것만으로도 몇 배에 달하는 마력을 담을 수 있었다.

그들의 프로젝트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마수 진영의 극히 일부는 그렇게 테라에 대한 방침을 송곳처럼 날카롭게 세웠다. 무려 20년이나 갈고닦는 송곳이기에 결코 평범할 수가 없었다.

* * *

드낙은 생각한다.

“요리 대회의 폐해가 생겼다.”

손발이 덜덜 떨렸다.

‘이 정도로 끔찍한 부작용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꼴깍!

침이 크게 삼켜졌다.

‘왜 몰랐을까.’

자신은 너무 이 야만적인 세계에 길들여져 버렸다.

다른 이들도 쉽게 이를 넘겼다. 애초에 그들은 현대인으로서 살아온 세월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요리 대회를 통해서 튀어나오는 압도적인 풍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식재료값이 싸졌고, 박리다매의 형식으로 총공세를 펼쳤기 때문이다.

‘인스턴트 라면이 없다.’

덜덜덜!

드낙이 신경질적으로 다리를 떨었다.

‘북경 짜장이 먹고 싶다.’

라면의 뺨을 후려치고 대가리를 깰 정도로 굵은 면발.

‘원재룟값을 낮추면서 돈맛을 본 옛날 짜장라면은 조미료 맛밖에 안 나지.’

원재룟값을 낮추면 승진은 떼놓은 당상이다. 원가가 낮아지니 순이익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쉽게 떠나간다.

맛알못이나 옛날 짜장라면에 목숨을 걸며 꼰대처럼 신토불이 지랄을 해댄다.

‘그런 의미에서 북경 짜장이 최고지.’

드낙은 옛날을 회상했다.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하면 언제나 짜장라면을 먹었었다. 그것도 단 한 개.

‘이제는 아니지.’

얼마든지 짜장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큰 착각이지.’

중학생 때 먹고 싶은 것, 군인일 때 먹고 싶은 것, 직장인일 때 먹고 싶은 것. 모두 다르다.

미래에 자신이 짜장면을 좋아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잔혹하지만 실제로 그렇다.

오늘의 음식 취향이 60년 이후에도 여전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인생의 중요한 멘토를 만나지 못한 불쌍한 청년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5분 만에 뚝딱 먹는 짜X게티.’

짜장 맛은 폭발적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춘장 또한 개발해야 했다.

드낙은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요리 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우주 낙원의 지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공장을 만들어 가볼까.”

짜장면을 먹게 된다면 세상의 식문화는 또 한 번 크게 달라질 것이다.

드낙은 이를 선도할 것이며, 간단하게 먹을 수 있기에 누구나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것이 가사 노동이다. 요리를 만드는 것도 귀찮고 짜증 나는 일이었다.

팔이 떨어지거나 죽을 수 있는 노동 환경에 비한다면 위험하지 않았지만, 귀찮은 일이다.

그 귀찮음을 덜어줄 수 있는 것이 라면이었다.

‘건더기 수프를 듬뿍 내줘서 더 풍미를 돋을 수 있지.’

건강도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하여 드낙은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는 라면을 먹고야 말리라 생각했다.

‘라면은 추억이니까.’

못 먹어본 지 너무 오래됐다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였다.

‘어디에 라면 공장을 지어야 잘 지었다고 소문이 날까.’

먼저 인구가 많아야 했다.

14명이서 3,000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대한민국에서 개고생하는 취사병이라면 능히 공감할 것이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라면을 끓여주고 싶다고.

재료 손질하다가 손목 연골이 나가떨어져도 제대하고 나면 모른 체한다. 입대 때는 우리 아들이지만 제대하면 느그 자식이다. 그게 국방부의 국뽕 넘치는 애국심이었다.

이처럼 인구수가 많은 곳은 라면을 먹고 싶게 마련이다.

‘인스턴트로 수많은 이들이 더 나은 대체 식량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한 끼에 4만 원짜리 족발을 먹을 수 있는 금수저가 있는 반면, 한 끼에 천원도 못 쓰는 흙수저가 있었다.

그렇다면 천원으로 두 그릇을 채울 수 있는 라면이 제격이다.

‘지금까지는 식량 생산을 계속 늘려왔다면, 이제는 그 식량을 싸게 쳐야지.’

라면은 충분히 싼 음식이다.

드낙은 라면의 비밀도 잘 알고 있었다.

‘일본 라면과 한국 라면은 다르다. 건더기가 많아야 국물 마실 맛이 나지.’

‘건더기 수프’에 대해서 생각했다.

지하 연합의 인구수가 가장 많고, 당연히 지하 연합은 드낙의 명령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찍찍! 위대한 생각! 위대한 지식! 위대한 뜨나아아악!”

광신도처럼 구는 이들의 등을 토닥토닥 다독여줘서 진정시켰다.

지하 연합의 노력으로 인해 라면의 시제품이 금세 만들어졌다.

‘건면과 튀김면. 두 가지를 주문했었지.’

“둘 중에 무엇이 좋았더냐?”

“건면과 튀김면 모두 나름의 장점이 있었습니다.”

“장점이라……. 들어보지. 어떤 장점이었더냐?”

“건면은 기름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고, 튀김면은 끓이는 시간이 적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맛은?”

“맛은 거기서 거기였습니다. 건면이나 튀김면이나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만…….”

뿔 쥐 요리사가 침을 한번 삼키고 말을 이어갔다.

“기름양의 차이로 맛 차이가 있기는 있었습니다. 다만 면의 차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튀김면은 기름이 많았기에 최고의 맛을 보여줬다. 반면 건면은 기름이 적었기에 최고의 맛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겠지. 그러면 건면으로 할 생각이냐?”

“예. 아무래도 기름을 쓴다는 것이 꺼려졌습니다.”

기름을 쓰기 위해선 생산량이 증가해야 한다. 그러려면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중세에서 현대까지 10년 만에 그 격차를 줄일 수는 없다.

“춘장 개발은?”

“손쉽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숙성까지 2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캐러멜색소는 당연히 넣지 않았겠지?”

드낙은 라면 시제품을 만드는 사이에 짜장에 관한 공부를 마쳤다.

‘춘장은 검은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헛소리지.’

검은색의 답은 캐러멜색소 때문이다.

“예, 넣지 않았습니다. 짜장 본연의 맛을 듬뿍 맛볼 수 있는 짜장라면을 개발할 생각입니다.”

모두 드낙이 원하는 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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