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195화 (1,193/1,239)

1195화

* * *

우상을 위한 제단. 드낙이 직접 제작해야 하는 제단이다.

제단의 내부에는 악마의 힘이 득실거리며 우악스럽게 피를 집어삼킨다. 종종 잡고기를 제물로 바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또한 쉽게 잡아먹는다.

버리는 잡고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재활용 기계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덕에 우상을 위한 제단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손질하면서 버린 고기나 내장 따위는 모두 한곳에 모아두었다가 제단에 바쳐지고 있었다.

본래라면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을 도시에 하나뿐인 우상을 위한 제단에 바친다. 매우 효율적인 일이었다.

다만, 도시에 하나가 있다고 해서 모든 기득권층이 반마(半魔)의 격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직업에 따라서 자격이 존재했다.

기사라면 능히 그 실력이 좋아야 했으며, 전술과 전략에 능해야 했다. ‘미래’를 확실하게 맡길 수 있는 실력자는 되어야 반마의 격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반마의 격을 얻는 경쟁은 절대적 평가가 아니라 상대적 평가였다.

우상이 있는 제단은 도시에서도 철통같이 보호되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을 중심으로 상인의 무리가 하나둘 모여서 자리를 잡는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 대상(大商)이라 불릴 만한 자들이다.

상인을 반마로 만드는 일은 반드시 필요했다. 무엇보다 경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없다면,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었다.

돈 잔치를 하면서 파산하는 기업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기업이 공기업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허허, 이번에는 좀 많이 모았나?”

“자네보다는 확실히 많을 거라 생각하네.”

지극히 당연하게도 대상들이 반마의 격을 얻는 방법은 바로 ‘돈 경매’다.

경매해서 도시에서 가장 많은 돈을 낸 상인이 선택받는다. 반마의 격과 돈을 교환하는 셈이다.

“3년 만의 기회야. 이번에 놓치면 안 돼.”

인구가 많을수록, 고기를 소비하는 이들이 많을수록 우상을 위한 제단은 반마의 격을 자주 토해낸다.

이 도시의 경우는 3년이 걸렸다. 더 많은 인구를 도시에 들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또는 출산율을 높이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도시에 사는 이들의 피가 우상을 위한 제단에 스며드는 탓이다.

동시에 상인들은 돈도 모아야 했다. 경쟁을 위해서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가벼운 일이 없었다.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 경매는 10만 금화로 시작하겠습니다.”

돈의 액수는 빠르게 커졌다.

반마의 격은 긴박한 경매 끝에 무려 금화 50만 닢에 낙찰되었다.

한화로 따지면 2조 원에 가까운 돈이었다.

말도 안 될 정도로 돈을 쌓아온 인물이었다. 그가 크게 환호성을 내질렀고, 이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반마의 격을 받아들였다.

제단에 무릎을 꿇고, 고여 있는 피에 이마를 박았다. 서서히 피가 스며들며 격이 빠르게 상승했다.

쾌락.

“끼요오오오오옷!”

육체에 힘이 넘쳐흘렀다.

노폐물이 쏟아지고, 쌀떡처럼 튀어 오른 뱃살이 줄어들었다.

완벽한 변모.

그 모습에 상인들과 수행원이 하나같이 손수건을 꺼내 들어서 코와 입을 막았다. 더러운 냄새가 퍼져나간다.

곧, 아티팩트에서 꽃바람이 불며 악취를 몰아내며 중화시켰다.

머리카락이 크게 펄럭거렸다.

“우하하하하하! 히히히히! 크하하하하하!!”

반마가 된 상인이 크게 고함을 내질렀다. 상쾌했다. 골골거리던 관절도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새하얀 머리카락도 본래의 금색으로 돌아왔으며, 침침해서 안경을 써야만 했던 눈도 더는 안경이 필요하지 않았다.

제법 비싼 안경을 바로 벗어 던졌다. 안경이 바닥을 굴렀다.

그가 양손을 뻗자 많은 상인이 이를 축하해 줬다.

박수를 치던 상인이 옆의 상인에게 말했다.

“나이 90에 반마라니, 자식들이 싫어하겠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잖아. 대단한 양반이지. 분명 오늘부터 여자를 침실에 들일걸?”

남자는 모두 똑같았다.

이런 광경은 도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반마가 되기 위해서 도시로 향하는 이들마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남들이 자리를 펴둔 곳에서 반마가 되리란 어려운 일이었다. 재능이 필요했다.

그나마 굴러들어온 돌도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사회라서 다행이었다.

재능이 있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다. 다만, 상업은 은근히 벽이 컸다.

그런데도 드낙이 이를 관망하는 건 영생을 2조 원에 팔아치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 도시에서 말이다.

그 압도적인 세금으로 더 압도적인 일을 행할 수 있었다.

필멸자들이 우상을 위한 제단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초월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영원토록 젊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마세(半魔稅)’라는 황당한 세금이 존재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1년 병원비라고 생각하면 쉬웠다.

오늘도 금화 50만 닢이 국고로 들어왔다.

도시 하나의 추가 세금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돈이었다.

* * *

오크들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우상을 위한 제단은 ‘녹색 도끼’를 믿는 오크들에게 전해지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줘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을 터였다.

신앙을 바꾸는 건 오크들에게 있어서 미친 짓이었다.

그들은 죽을 때가 되면 녹색 도끼와 마주하는 꿈을 꾸거나, 심지어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녹색 도끼는 그가 용맹했던 시기, 오크를 위해서 살아왔던 시기, 위험에 처했던 시기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오크들이 괜히 녹색 도끼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괴물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모험가 놈들!”

절로 욕지거리를 날렸다. 어느 곳에든지 나타나서 괴물을 잡는 모험가 놈들은 그야말로 무법자였다.

수틀리면 주먹이 먼저 날아가는 건 오크들도 흡족해할 만한 행동이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이러다간 타투를 얻는 오크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오크들의 전투력이 급감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막막했다.

“주술사에게 물어보는 건?”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서 오크에는 주술사들도 많이 살고 있었다. 다만 대부분이 젊은 주술사였다.

이미 자리가 꽉 찬 동 오크 제국보다는 서 오크 제국 쪽의 자리가 널널했기 때문에 젊은 주술사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괴물들을 다른 곳에서 키우는 건?”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일인데…….”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험가가 오지 못하는 바다에서 키우는 것이 좋다. 섬이다, 섬!”

섬에 키울 생각을 했다. 섬이라면 유지비도 크게 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 수준의 주술사로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뉘앙스는 당연히 옆 동네 오크 제국에게 도움을 청하자는 것이었다.

“이건 우리 서 오크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 오크 또한 문제가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꼰대들이 우리 말을 알아들을까?”

“이야기는 한 번 해봐야지! 그게 바로 전.사.다!”

이상한 논리였지만 서 오크 제국은 화끈했다.

동 오크 제국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격론에 휩싸였다.

“건방진 놈들, 아쉬울 때 되니까 찾는 것 봐라?”

“그래도 이대로 놔둔다면 큰일이 날 것이다. 타투를 가질 수가 없게 될 터이니.”

“예언을 해보면 되겠지만…….”

“이런 일에 쓸 수는 없는 노릇이지.”

예언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역량은 충분하지만 자주 해서는 안 된다.

녹색 도끼가 한 차원에 있는 오크들에게 할당한 예언의 개수는 한정되어 있기에 정작 필요할 때 못 볼 수 있었다. 아끼고 또 아껴야 했다.

“오크 전사들은 우리 제국에도 있다. 그들은 서 오크보다 더 타투를 새기기가 힘들다.”

오크들은 괴물을 잡고, 동물을 쫓으며 사냥한다. 이를 통해서 다양한 타투가 몸에 새겨진다.

그것은 녹색 도끼의 선물이며, 오크 종족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러니 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공동으로 추진을 해야 한다.”

“이번에는 같이 해줘야지.”

“기분 나쁘지만, 이번에는 양보를 해줘야겠지.”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괴물을 최소 세 쌍에서 열 쌍 정도를 포획하여 섬으로 옮기는 작업을 추진했다. 시작은 그저 야생마나 들개 같은 것으로 시작했다.

물론 그것만 옮긴 건 아니다.

먹고 살 수 있도록 주술로 환경을 조성하고, 쥐나 토끼 따위를 함께 풀어놓았다. 육식을 못 하는 경우에는 더욱 주술 기둥을 많이 세웠다.

“덩치가 큰 괴물은 그만한 섬에 풀어야 하는데, 그런 섬은 드물다.”

“간척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간척사업은 큰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더 많은 흙. 더 많은 노동력. 더 많은 돌로 쉬이 가능했다. 강철판 따위를 수장시키기도 했다.

무식한 일이었다. 오크들은 우직하게 이를 행하면서 자신들만의 ‘타투 아일랜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섬에 접근하는 건 매우 조심스러운 행위였으며, 타투를 새길 수 있는 오크만 출입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엄격하게 통제가 되어야 했지만 인력을 많이 소모하는 일을 오크들이 할 리가 없었다.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

대신 부표(浮標) 따위를 세워서 경고를 날렸다.

또는 새로운 섬을 만들기도 했다.

먼저 바다에 수초가 살 수 있도록 돌 따위로 수중 섬을 만들고, 차곡차곡 기둥을 수장시켜서 구조물을 만든 뒤에 그 위에 흙을 쏟아내서 인공섬을 만드는 일이었다.

위험성이 높고, 바다를 헤엄칠 정도로 위협적인 괴물을 놓기 위해서는 내륙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 인공섬을 지어야 했다.

적어도 눈으로는 내륙이 보이지 않는 곳이어야 했다. 내륙이 보인다면 헤엄쳐서 올 수 있어서다.

또 먹이도 풍부해야 했다. 그러려면 무지막지한 인공섬이 필요했다.

동시에 ‘우주 낙원’의 지식을 찾는 주술사도 많아졌다.

“말이 쉽지, 그 먼바다에 인공섬을 어떻게 만드냐고.”

말단 주술사가 성을 냈다.

10년 동안 주술사의 숫자가 늘어났다고 해도 그에 준하는 산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택배회사가 모두 파업한다면 곳곳에서 소란이 일어난다.

당연히 인공섬을 만드는 데에 투사할 수 있는 화력은 적었다.

“토사가 빠져나가는 걸 막아야 합니다.”

“밑바닥에 물 붓기입니다! 아니, 바다에 모래 붓기입니다!”

말도 안 되는 짓이기도 했다.

다만, 주술사들은 ‘우주 낙원 지식’을 통해서 이를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대나무로 됩니까?”

“허어, 어찌 대해(大海)를 대나무로 막을 생각을 하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대나무를 쪼개서 얇은 울타리를 치고, 흙을 붓는 일이었다. 얼추 되긴 했지만, 대나무가 흙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하고 말았다.

그래서 흙 대신에 콘크리트를 붓기 시작했다.

무식한 일이지만 효과를 크게 봤다.

동시에 오크들은 독특한 짓을 하기도 했다.

“오~나~거~ 납신다아아아!!”

바짝 마른 건초 따위를 블록처럼 만들어 투석기를 이용해 섬으로 발사했다.

타투를 원하는 오크가 아니라면 괴물과의 전투가 필요하지 않았다.

괴물을 키우는 건 힘든 일이니, 허투루 죽일 순 없었다.

무분별한 인공섬 만들기는 나쁜 일인 것 같았지만, 망망대해의 수중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

콘크리트 위에 지어졌다고 해도 그 위에는 흙을 덮게 마련이다. 식물이 잘 자라고 초식 동물이 살 수 있도록 건초와 흙을 섞어서 단단하게 굳힌 블록을 투척하기 때문에 그 흙이 바다로 향하며 퇴적됐다.

반파된 대나무 울타리에서 작은 물고기가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포식자들이 모여들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타투 인공섬은 빠르게 건조되기 시작했다.

“오크의 타투는 영원하리라!!”

그들의 외침 속에 인공섬 아래에서는 머메이드들이 새살림을 차렸다.

“여기는 물고기들이 많네. 왜지?”

“아, 모르겠고. 일단 여기에 집짓기 들어간드아!”

바로 그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곧 대나무 울타리가 작은 물고기와 수초들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이에 곳곳에서 대나무를 구매하려는 머메이드들이 많아졌다.

바다 밑에는 물고기가 사는 곳이 있고, 안 사는 곳이 있었는데 물고기가 없는 곳에 대나무 울타리로 된 집들을 만들면 어느새 작은 물고기나 산호초가 자리를 잡고 번성했다.

“땅에 농사를 짓듯이 바다 또한 농사를 지어야 한다.”

대나무 바다 농사가 머메이드들을 크게 유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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