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4화
* * *
세상에는 열심히 일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열심히 일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동시에 착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은 테라에서 멸종시키지 않은 괴물들을 잡으며 돈을 번다. 누구보다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남들보다는 많은 수익을 올린다.
우리는 그들을 ‘모험가’라 불렀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살면서 주먹질하는 일이 손에 꼽는다. 평생에 걸쳐서 아주 드물다.
하지만 이들은 다르다. 시작하면 주먹질이다.
테라의 세력들은―지하 연합을 제외하고― 이런 모험가들을 통해서 다양한 소재를 얻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생산자이며, 가장 많이 죽어가는 직종에 종사하는 숭고한 이들이었다.
그 숭고함은 폭력으로 변질되어서 그 누구도 인정해 주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모험가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따, X발 것. 엉덩이 보소.”
사이탄이 서빙하는 불끈불끈 근육질의 남자의 엉덩이를 훑었다.
같은 테이블에 있는 모험가들은 그 모습에 개 같은 기분에 휩싸였지만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사이탄은 이 모험가들을 이끄는 리더였다.
항상 가장 먼저 나서서 근육의 힘을 보여주는 사이탄!
그 곁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모험가들의 생존율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탱커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차이는 크다.
탱커가 있다면 탱커가 먼저 들어가고 후진입하면 쉽게 이길 수 있지만, 탱커가 없다면 선진입하는 놈이 없었다. 즉, ‘싸움’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눈치를 보다가 다 죽을 수 있다.
모험가들에게 있어서 이런 ‘선진입’하는 이들을 적극 전사라고 부르는데, 사이탄이 그런 이였다.
그는 대장 노릇도 제법 잘할 줄 알았다.
게이만 아니었어도 훨씬 많은 이들이 그의 곁에 머물렀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사이탄과 함께하는 이들은 남자는 한 명뿐이었고, 여자만 다섯에 달했다. 하나같이 쭉쭉 빵빵 했고, 어디 부자와 결혼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여기 벌꿀 주 세 병이요!”
라이나의 말에 사리탄이 날카롭게 흘겼다. 은근히 팔뚝을 모아서 자신의 이두박근 근육을 도톰하게 튀어나오게 했다.
게이가 아닌 남자인 발사스가 눈을 질끈 감으며 음식을 입에 넣었다. 아주 끔찍한 광경이었다.
“넌 또 술을 시키닝? 여자는 술 마시면 안 돼. 남자들이 좋아할 뿐이라니까.”
“아, 또 지랄이네.”
“그럼, 지랄 안 하게 생겼어? 피부 봐. 완전 고블린 털처럼 변해 버렸잖아.”
“임무를 끝마쳤으니까, 당연한 거고! 내일부터 관리 들어가면 돼.”
“빚쟁이가 쉴 시간은 있어?”
“흐흐, 한 놈 꿰찼지. 걔가 빚 절반을 벌써 탕감해 줬는걸?”
“와우.”
사이탄이 감탄했다. 라이나가 데려오는 놈들은 하나같이 뇌보다는 다른 걸 먼저 생각하는 놈들이지만 돈이 많았다.
초보인 발사스는 이 이야기도 주의 깊게 들었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경험으로 다가왔다. 예쁜 여자에게 저런 식으로 대화를 하는 사이탄이 신기하기도 했고.
라이나의 피부는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었다.
“그것보다, 원래라면 헤어져야 하는데 갑자기 웬 술자리야? 라이나만 좋아하는 자리는 아니겠지?”
“당~연하지. 날 뭐로 보는 거닝?”
사이탄은 혼자 돌아다니며 척후나 정보를 모으는 키리니를 안심시켰다. 그러고는 품에서 구겨진 종이를 하나 건네줬다. 척 보기만 해도 빳빳하고 질이 좋아 보였다.
어디에서나 유통되는 건 아니다.
“호우.”
“메우라고 해야지.”
“뭔 미친 소리야?”
딱! 딱!
사이탄이 손을 튕겼다. 겨우 자신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의뢰서다. 요즘 가장 핫하다.”
“얼만데요?”
“두당 1골드.”
“의뢰서치고는 좀 하네.”
의뢰서는 주는 돈이 적다.
모험가들은 의뢰를 수행하면서 수익으로 삼는다. 괴물, 야수, 도적 등등. 수익으로 삼을 만한 것들은 많았다. 어지간한 모험가는 약초나 광물에도 조예가 깊다.
“좀 하기는, 금 내놓는 의뢰서는 처음 본다.”
“그래. 이런 의뢰서는 보기 힘든 거야앙.”
사이탄이 그렇게 말하며 의뢰서를 펼쳤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이를 확인했다.
다만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이거, 이 씨. X되라는 거 아닙니까?”
초보지만 발사스가 의외로 똑똑한 소리를 했다.
“태양 차원으로 가라니, 그곳에서 금을 찾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장비는 지원돼.”
사이탄이 의뢰서에는 없는 걸 말했다. 이에 다른 이들의 표정이 또 변한다.
“아니, 우리랑 말도 안 하고 따로 또 말을 했어요?”
“아닝~ 걔들이 날 먼저 찾아왔다니까. 그중에 진짜 새끈한 남자가 있는데. 이게 눈매가… 짜릿해. 내가 예쁜 여자 알고 있다고 하니까, 관심 좀 가지던데?”
“소개받을 거면 나지.”
“넌 남친 있잖아?”
“남친은 남친이지. 결혼해? 뭘 해?”
여자들이 너도나도 그 남자에 관심을 가졌다.
시간이 지난 이후에야 다시 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장비는 대단해. 아티팩트도 고가의 장비야. 대여식이고, 부숴 먹으면 재료가 사라진 것에 대해서만 퉁치면 되고, 그게 아니라면 무상으로 교체해 준대.”
“장비로 장난질은 못 하겠네.”
“오크 간이 배 밖으로 나와도 금 내놓는 의뢰인에게 장난칠 치겠어?”
“모르지. 전에 내가…….”
“노우. 노우. 잡담은 거기까징.”
사이탄이 이번에는 잡담을 막았다.
“우린 골드 러시를 하게 될 거야. 태양 차원에서 말이야.”
금!
그 말에 모두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터트리면 대박이고, 안 터트려도 검사한 지역 데이터를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은을 받을 수 있어. 이 정도면 나쁜 일이 아니지.”
위험하기는 하겠지만 1,000평당 은화 30닢을 받는다.
“작정하면 5년 만에 은퇴할 수도 있어.”
“딜.”
“나도 딜이야.”
너도나도 딜을 외쳤다. 초보인 발사스도 그냥 거기에 휘말려서 들어갔다.
누구누구가 대세라고, 모든 이들이 그를 칭송할 때 그 파도에 휩쓸려서 투표하고 1년도 안 되어서 후회하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시류를 거스르는 일은 평범한 사람들이 항상 입에 담는 소리다.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성공은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하는 일이라고 자주 나오는 소리였다.
허나,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직장인이 밤잠을 쪼개가며 자기 사업을 할 수 있을까? 힘든 일이었다. 아래에서 치고 들어오고, 위에서 찍어 누르고. 일에 시달리고.
그렇게 살아가는데, 운동부터 시작해서 내 삶의 질을 높이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직장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우리는 그들을 ‘괴물’이라고 부른다.
내가 하지 못하는 걸 하는 순간 그 사람은 괴물이다. 그게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함이었다.
발사스는 거기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게이인 사이탄에게서 경험을 쌓을 정도로 형편없는 모험가였다.
비단 사이탄의 무리만 태양 차원으로 가서 금을 찾는 건 아니었다. 수많은 모험가가 의도된 ‘골드 러시’에 동참하고 있었다.
찍찍!
그 모습을 뿔 쥐가 염탐했다. 오랜만에 정보원 노릇을 하는 뿔 쥐는 좀 어색한 모습을 보였지만 빠르게 적응했다.
드낙에게 보고가 되었다.
“많다!”
드낙이 보고서에 적힌 숫자를 보며 흡족해했다.
“모두 금을 발견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탐욕에는 신앙이 없었습니다. 찍찍!”
뿔 쥐가 불쾌해했다. 하지만 드낙은 그저 웃고 있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 결국 그들은 내 뜻대로 움직이고 있다.”
“나중에 가서 딴소리를 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찍찍!”
이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변명하지는 않았다.
‘돈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언제든지 신발을 거꾸로 신을 수 있지.’
한국에서도 기업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거는 봉건주의적 사상을 지닌 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사라졌다. 그들에게 있어서 기업은 왕국이었고, 자신은 기사였다.
회사를 위해서 살아가는 그들? 요즘 젊은 사람에게서는 보기 힘들다.
테라 또한 그렇게 되어갈 것이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하려는 사람이 득실거린다는 뜻은 아니다. 자본주의가 만연한 한국에서 돈을 많이 준다고 목숨을 내놓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들에게 주는 은화? 아깝지. 금화도 한 닢 주게 되는데. 아깝고 또 아깝지. 하지만 그들이 가져오는 건 지형 정보다.”
구리, 철, 아연, 석탄.
무엇이든 정보가 담겨서 온다. 그렇게 된다면 태양 차원은 훌륭한 광산 행성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황금을 많이 캐겠지.’
그 뒤로는 필요한 지하자원을 개발하게 될 것이다.
드낙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당연히 데스 스타 때문이다.
그를 위해서는 막대한 황금이 필요했다.
‘내가 나설 필요는 없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기회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소모하게 될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돈과 자신의 시간을 교환하는 일이었다.
“수많은 가전제품과 아티팩트를 더 많이 생산해야 할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은 소비에 중독되도록 만들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 드낙은 얼마든지 악마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소비하며 즐겁고, 드낙은 더 많은 프로젝트를 행할 수 있어서 즐겁다.
서로 윈윈이었다.
34. 30년 (2)
보고를 들은 드낙은 그 길로 부인들이나 자식들과 마주하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다만, 간단한 저녁 식사는 아니었다.
가족 수가 워낙 많고, 자식들이나 부인들도 하나씩 자기 사업을 하고 있었다. 크고 작은 사업이라도 바쁘게 마련이다.
일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지기 때문에 더욱 일에 매달리는 이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참석할 수 있는 인원은 매번 달랐다.
그게 아니더라도 마법 크리스털이나 편지로 왕래가 있었다. 귀찮아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만남은 중요하다.
‘토치라이트 가문.’
드낙과 결혼한 가문 중에서도 가장 말석이다.
“아버지.”
고작 15살. 어린 굴리엘모 불파겐(Guglielmo Bulpagen)가 예를 표했다. 드낙의 부인인 오리앤 토치라이트와 고작 10살 차이다.
“양식장이 잘 되고 있다고 들었다.”
“예. 오션 오크들과 머메이드와의 협업을 통해서 사업을 더욱 크게 키우고 있습니다. 이제 내륙으로 들어가는 청어의 절반은 저희 것입니다.”
배를 띄우는 일과 배를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든다.
가두리 양식장은 그보다 훨씬 적은 유지비가 들어간다. 또 그물에는 수초가 자라거나 이끼가 껴서 물고기들이 이를 먹기도 했다.
마법과 과학도 빠질 수 없었다.
가두리 양식장에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두리 양식장의 크기를 키우고, 가둬놓는 물고기의 양을 적게 하여 최대한 낮출 수 있었다.
“질병에 대해서는 어찌 대처하고 있느냐?”
“아버지의 말씀대로 최대한 적은 숫자를 키우고 있습니다. 질병 치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곤 해도 유지비를 최소로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남는 것이 땅이고 바다다.
평당 천만 원을 호가하는 서울이 아니었다.
이제 오션 오크도 머메이드도 가두리 양식장을 많이 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밧줄을 좌르륵 내려서 조개도 양식할 정도였다. 그렇게 양식장을 늘렸다.
“해산물은 중요한 식량이다. 해변에 지어지고 있는 별장들의 하수 처리에 엄청나게 까다로운 조건을 내가 요구한 것을 너도 알 것이다.”
“예.”
드낙은 전생에 굴 양식장 바로 옆에 지어진 펜션에서 온갖 오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이를 미루어서 해안가에 지어지든 모든 건물의 하수 처리는 엄청나게 까다롭고, 정화 시설에도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야 했다.
특히 항구 도시에는 양식장을 건설할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오션 오크는 양식장의 후발 주자였고, 점유율도 높지 않았다.
“잘해라. 열심히 해라. 무조건 비싸게 파는 게 능사가 아니다.”
드낙은 훈수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