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191화 (1,189/1,239)

1191화

33. 30년 (1)

불룩! 불룩!

악마 드낙의 근육이 볼록거리며 움직였다. 마치 근육 속에 벌레가 들어있는 것처럼 극명했다.

근육이 떨어져 나가며 작은 형체를 만들어냈다. 이내 그것은 졸X맨처럼 변했다가 다시 근육 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꽈아아악!

신체가 마음대로 수축하고, 이완했다. 골격 구조상 불가능한 일도 가능해졌다.

모든 경계가 허물어진다. 이 악마의 몸 상태로 싸운다면, 할 수 없는 것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신기하다.’

드낙은 스스로가 그렇게 했음에도 놀라웠다. 느껴지는 힘과 제어력이 남다르다.

‘뉴에이지 시티를 만들려고 현현했을 때와도 또 다르다.’

그때는 아직 영혼이 악마의 격을 모두 받아들이지 못한 듯했다.

‘혹은 신격의 꽃봉오리 때문일지도 모르지.’

드낙의 내부에는 신격 또한 존재했다. 꽃을 피울 때를 기다리며 업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악마에 오른 직후에도 악마로서 제구실을 못 했던 것일 수도 있다.

‘악마 단련.’

10년이 흘러서야 하게 됐다.

‘악마가 할 수 있는 일은 권속 악마의 생산만 있는 게 아니다.’

그것만 있다면 별을 파괴하고 다닐 리가 없었다.

조금 더 근본적인 의미에서 악마는 강력한 전투 초월체였다.

‘육신 자체가 초월의 힘이다. 그것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나는 깨닫고 있지 못했었다.’

인간은 육신에 마력을 담는다. 신성력 또한 담을 수 있고, 개체에 따라서는 주력도 품을 수 있다. 수많은 종류의 초월의 힘을 받아들이는 게 가능하며, 그 과정에서 그릇이 만들어지며 마법사 같은 존재로 거듭난다.

그렇다면 악마의 육신은 무엇인가.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마력으로 베를 짠 천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다만 완벽한 설명은 아니다. 악마가 지닌 ‘힘’은 육체에 존재했고, 그 육체는 힘을 사용하면 사멸하는 모습을 보였다.

즉, 육체가 힘이다. 힘이 육체였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기적을 일으키는 것도 가능했다. 육체를 소모하는 일이지만, 이를 통해서 하늘을 어둡게 만드는 것도 가능했으며, 행성을 반으로 쪼개는 것도 가능했다.

충분한 육신이 있으면 그런 기적을 보여줄 수 있었다.

‘다만 악마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준비가 필요하다.’

그 준비는 당연히 육체를 키우는 것이었다. 악마 스스로가 지닌 격으로는 수백m짜리 덩치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다른 이의 육체를 먹거나, 권속 악마를 번식시켜서 잡아먹거나. 그런 짓을 해야 한다.’

악마의 육체는 그릇이며 동시에 동력원이다. 자동차로 비교하자면 엔진임과 동시에 연료였다. 이는 크게 키우면 키울수록 좋았다.

지름 4만m짜리 행성만 한 덩치를 가지게 된다면 별을 파괴하는 것도 쉬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유지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소모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권속 악마들을 번식시켜야 한다.’

세계 2차대전처럼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고, 전선으로 밀어 넣고 갈아버리듯이 막대한 소모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건 옳은 건 아니지.’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악마 침공에서 악마를 막으려면 드낙 또한 그에 맞춰서 덩치를 불려야 했다. 혹은 ‘세상을 속이는 경지’를 더욱 극한으로 곧추세워야 한다.

다양한 발전소를 통해서 전력을 확보하는 현대를 생각하면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없었다.

30살에 월급쟁이가 된 사람이 60세에 은퇴를 했다고 했을 때, 그가 받을 수 있는 월급의 횟수는 360회에 불과하다.

월급 외에 대리운전을 뛰고, 택배회사로부터 새벽 배송을 책임지기도 하는 까닭은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내 자식이 적어도 나처럼은 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 목표를 위해서 오늘도 그들은 야심한 밤에 남의 자동차 운전대를 움켜잡는다.

드낙 또한 마찬가지다. 테라를 지키고, 자신의 영화(榮華)를 누리고, 자식들의 앞길을 생각한다면 더 많은 힘을 가져야 한다.

그저 ‘경지’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권속 악마를 생산하되, 단백질 덩어리 따위로 생산하면 아무 상관 없다.’

그저 먹고 존재할 뿐인 하급 권속 악마를 양산한다면, 드낙의 악마 육신을 더 키워서 더 높은 출력을 가지고, 그 몸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문제는 결국 하급 권속 악마들 또한 ‘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식량은 중요하다.’

세계사를 배운 문과생이라면 더욱 잘 알 것이다.

일본인들은 과거에 식량 때문에라도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연료를 구하기 위해서 진주만을 공격했다.

드낙은 자신이 악마로서의 힘을 내비치기 위해서는 결국 무언가를 먹어 치우는 하급 권속 악마들을 번식시켜야 한다는 걸 알고는 흥미를 잃었다.

‘지금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10m의 거체. 끝없이 차오르는 힘과 재생력. 그저 육체의 힘.

그 가능성만으로도 이미 만족할 만했다. 다만 드낙은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았다.

“편법이 있을 거다.”

예를 들면 업(業)을 소모하는 일이다.

악마의 권좌에 앉기 전에, 앉고 난 직후에도 드낙은 업을 소모하며 이 일, 저 일을 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악마로서 숙련된 덕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업을 사용한다는 건 또 하나의 자원을 소모한다는 뜻이다.

그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느껴진다.’

지금도 수많은 곳에서 업이 들어오고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드낙을 위해서 피와 업을 바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엘프들이 유독 심했다.

업 세탁!

그들이 매일 꾸준히 하는 행위 중의 하나였다. 몸속에 업이 쌓이는 걸 놔두지 않았다.

반마를 양산하는 우상을 위한 제단에 피를 바치고 나서 또 따로 드낙에게 몰래 업을 집어넣고 있었다.

‘엘프들은 태양 식민지에도 출정하지 않았지.’

그들은 현재 아주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많은 명예와 더 많은 영토는 필요로 하고 있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90%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대한민국 시민 50%가 수도권에 살고 있다.’

그것만 봐도 엘프들에게 영토는 필요 없다는 걸 깊이 이해할 것이다. 엘프들은 17개의 도시를 보유하고 있었고, 끝없이 높은 빌딩을 세우고 있었다.

모두가 매일 같이 마력 자원을 생산하기 때문에 그들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생산적인 필멸자였다.

‘햇빛이 없는 곳에서 꽃을 피우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지하 연합 또한 많은 업을 드낙에게 주고 있었다.

상위국은 우상을 위한 제단을 통해서 반마를 양성하는 데 노력을 많이 기울이고 있어서 드낙에게 들어오는 업이 적었다.

‘그것도 국가 수준으로 보면 적다는 뜻이지.’

2020년의 대한민국은 하루에만 2만 명 이상이 죽었다. 1년으로 따지면 27만 명이 사망했다.

테라를 지배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드낙은 막대한 업을 벌고 있었다. 그건 세파리아스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그보다 여러 개의 세력을 보유하고 있는 게 드낙이었다.

그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10년 동안 식량 정책을 펼쳤고, 산맥을 쓸어버리며 농사만 짓는 도시도 건설했다. 태양 식민지에서도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10년 동안 끝없는 인구성장을 기록했다.

가만히 있어도 업이 하루에 수십만은 들어오고 있는 형편이었다.

악마가 별을 파괴하지 않고 관리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내부에 힘을 쓴 것도 주효했다. 삶이 즐겁고 여유로우며 경제가 항상 활황(活況)이니, 출산율이 낮아질 수가 없었다.

대부분이 천수를 누리고 죽었음에도 드낙은 그만한 업을 매일 같이 받아먹고 있었다.

‘다른 악마들이 육(肉)을 연료로 사용한다면 나는 업(業)을 연료로 사용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드낙은 업을 소모하여 단련을 시작했다.

촤악!

피부가 뜯기며 근육의 실타래가 마치 질주하는 기병이 내찌르는 창처럼 뻗어나가더니 순식간에 색이 변하며 강철이 됐다.

텅!

드낙이 추락한 강철을 움켜잡았다. 그것은 검의 모습이었으며, 연마한 것처럼 날까지 시퍼렇게 서려 있었다.

이를 확인한 드낙은 바닥에 꽂아두고, 오만가지를 시험해 봤다.

콸콸콸!

흘러나온 피는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고, 가죽은 퍼지고 모여 씨앗이 되어 싹이 되었다. 붉은 꽃이 피어났다.

드낙의 의지에 따라 다시 시들며 썩어 비틀어졌고, 먼지로 변했다.

‘흠.’

드낙은 그런 행위를 하면서 서서히 악마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먼저 악마는 신처럼 별이 필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종족이 필요가 없었다. 악마 본인이 가진 10m짜리―드낙의 경우― 육신을 통해서 가히 모든 걸 만들 수 있었다.

악마의 육신에서 나온 꽃을 먹는 권속 악마가 있다면, 능히 아무것도 없이 그들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악마는 혼자서 충분히 별을 침공하고, 파괴할 수 있다.’

반대로 악마는 행성에 도달하여 행성 자원을 집어먹으면서 권속 악마를 양산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서 빠르게 세력을 불려 약탈 경제로 전환하여 차원 침공을 속행할 수 있다.

‘다양한 방법이 존재해.’

그중에서도 드낙은 ‘이차원’에 자신만의 악마 세계를 만들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것도 테라 차원 인근의 이차원에 자리를 잡을 생각이었다.

‘가능할까?’

그 무엇도 없이 오직 권속 악마로 이루어진 악마 세계를 만드는 일이었으니, 쉬운 일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주먹을 쥐었다 편 드낙은 곧바로 북부에 있는 윈터 헬을 방문하여, 권속 악마들의 대표자들을 불러 모았다.

게페락스, 세린, 발바룽이 참석했다. 그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세력이 팽창하면서 자연스럽게 중심에 모이기보다는 흩어지게 됐다.

서로 힘을 합치기보다는 따로따로 놀았다.

그 덕에 드낙은 며칠 뒤가 되어서야 그들과 함께 한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불편하게 중앙에 모여있지 않았느냐?”

“서로 할 일이 많아서 그랬습니다. 노여움을 푸십시오.”

“노여움이 아니라 비효율적이라서다. 앞으로는 한곳에서 지내라. 중심이 한 곳에 우뚝 자리 잡고 있어야 판단하기가 좋다.”

괜히 부락 사회에서 중앙 집권 사회로 변한 것이 아니다. 뭉치면 일단 뭐든지 좋았다.

“앞으로는 금방 모일 수 있는 곳에서 지내겠습니다.”

“방비를 튼튼히 해야 할 것이다.”

“예.”

세 명의 권속 악마가 드낙의 말에 읍(揖)하며 공손히 대답했다.

“내가 여기에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악마 세계를 만들기 위함이다.”

“……!”

그들 모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드낙은 지금까지 악마 세계를 만들지 않았다. 그저 제법 등급이 높은 권속 악마를 뿌려놓고 번영하게 하였다.

‘악마 세계는 권속 악마들이 비료가 되는 세상이다.’

끔찍한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저…….”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흰여우 세린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드낙이 웃었다.

“하하하. 내가 어찌 지성을 지닌 너희를 악마 세계의 양분으로 쓰겠냐?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최대한 지성이 없는 이들을 쓸 생각이다. 예를 들면 식물 권속 악마 같은 거.”

가축조차도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드낙은 그들보다 더 하찮은 것들을 양분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예를 들면 비명을 못 지르는 식물이 그러하다.

“악마 세계의 가장 근본이 될 기본 권속 악마를 무엇으로 삼을지 너희와 고민하기 위해서 여기에 왔다.”

이에 대해서는 빅데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게페락스가 바로 일어서며 발언했다.

“드낙 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식물 권속 악마를 쓰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다른 이들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어서였다.

지금까지 악마 세계를 만든다는 생각조차도 해보지 않았다. 그나마 빅데몬 프로젝트를 만들며 수많은 ‘효율적인 거대 권속 악마’에 대한 상상을 펼쳤던 것이 게페락스였다.

그가 가장 그럴듯한 대답을 내놓았으니, 더는 말할 것이 없었지만 드낙은 고개를 저었다.

“식물도 결국에는 땅이 필요하고, 양분이 필요하다. 거름 말이다. 거름. 대류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악마 세계에서 식물이 웬 말이냐?”

‘…….’

드낙 자신이 한 말을 칼같이 자르자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게페락스 또한 이마 옆을 손으로 긁었다.

“한 달의 여유를 줄 테니, 온갖 것을 조사하고 마땅한 것을 찾아라. 나 또한 그렇게 하겠으니.”

“예!!”

일단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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