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190화 (1,188/1,239)

1190화

* * *

“쫓아라!”

스틸 챔피언들이 전투 강철 인형들과 함께 평야를 내달렸다. 모두 강철마를 타고 달리고 있었으며, 강철마의 등자 뒤에는 말의 인체를 생각해서 만든 둥근 원형의 배낭이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 내부에는 마력 배터리가 들어가 있었다.

거침없이 내달리는 기병들을 피해서 도망치는 건 보어리안들이었다. 하나같이 어린 새끼들을 둘러메고 도망치고 있었다.

보어리안 일가족 중 가장 늙은이가 결국 결단을 내렸다.

“먼저 가라! 내가 막아보겠다!”

“부탁한다!”

이때 희생해야 할 사람은 결국 정해져 있었다. 그도 이를 잘 알았다.

오래 살 보어리안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죽을 보어리안은 정해져 있다.

번식할 수 있는 보어리안은 죽으면 안 된다. 커서 번식해야 할 어린 보어리안은 죽으면 안 된다. 적어도 바로바로 버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소거법에 따라서 늙은 보어리안이 죽어야 했다. 또한 늙은 보어리안은 체력도 모자라서 쉽게 지쳐가고 있었다.

끝까지 못 따라가고 기어코 나중에 따라잡히게 된다. 그럴 바에는 장렬하게 산화하여 자신의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좋았다.

그건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하게 되는 일이었다.

늙은 보어리안이 고개를 돌리며 돌도끼와 뗀석기를 움켜쥐었다.

사람 머리통만 한 뗀석기다. 걸어 다니는 공성 병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m가 넘는 보어리안은 그 자체로 인간들을 멸종시킬 수 있는 퍼포먼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놈들이 지배한 이차원을 침공한 테라의 인간들은 그들을 잡아먹고 있는 포식자였다.

과학을 받아들이고 마법을 발전시킨 덕분이었다.

“변하는 게 없네.”

스틸 챔피언은 지루함을 느꼈다. 하나같이 똑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지긋지긋하다. 이러려고 내가 스틸 챔피언이 되었던가?’

그런 회의감마저 들 정도였다.

이들은 오크처럼 ‘타투’조차도 없었다.

새삼 녹색 도끼가 얼마나 무서운 초월자인지 알 법도 했지만, 스틸 챔피언은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는 테라를 관장하는 초월자도 아니고, 녹색 도끼를 상대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직책에 올라있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은 보어리안을 포획하는 것이 중요했다.

“쏴라!”

투웅!

거대한 공이 둔중한 소리를 내며 투척됐고, 정확하게 보어리안을 지나가듯이 날아가더니 철이 쏟아져 나오며 늙은 보어리안을 포획했다.

“뀌이이이이익!”

보어리안이 끔찍한 소리를 내며 발악했다. 뗀석기를 끼워 넣고, 발로 걷어차서 구멍을 뚫으려고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돌도끼로 내려쳐도 변하는 건 없었다.

“뀌이이이읶!!”

마법으로 강화되고, 현대 과학으로 제련된 강철로 만든 그물이었다.

보어리안은 수면 마법에 잠에 빠져들었고, 꽁꽁 묶어놓았다. 뒤에 따라오던 마차에 놈이 실렸다.

이런 작업이 수많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건 아니다.

신제국은 먼저 덤비는 보어리안은 모두 죽여버린다.

그들은 하위 인간의 국가였기에 보어리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되레 신제국에서 하층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최대한 빨리 이곳으로 데려와서 이주시키고 있었다.

신제국의 코가 석 자인 셈이다.

공산주의와 현대의 자본주의조차도 현대의 자본주의조차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굶주림이다.

신제국은 말할 것도 없었다. 사회가 존재하는 한, 막노동하는 인간과 물약을 만드는 인간 사이에 계급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신제국은 더 많은 영토와 더 많은 집, 더 많은 식량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어리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프리카 국가에서 아프리카의 난민들을 받아들인다는 소리를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듯이, 자기 코가 석 자인 이들은 결코 남을 도와줄 수 없다.

“잡았다, 요놈들! 싹 다 이송하라!”

이들은 크레시미르와 다이앤타의 자치령인 ‘약향기 자치령’ 소속의 전투 강철 인형들이었다. 필요한 인구와 작업자를 테라에서 조달하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한계가 있었다.

경제가 워낙 잘 돌아가서 여기까지 올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그 수준도 형편없었다. 적어도 크레시미르, 다이앤타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

이 때문에 차라리 현지에서 조달하기로 한 것이다. 그게 보어리안이 됐다.

“고급 물약을 만드는 데 노동자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보어리안 중 이를 받아들인다면 살 것이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죽을 것이다.

보어리안 중에서 선별되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태양 식민지는 이렇게 수많은 보어리안을 죽이면서 시작됐다.

지하 연합 또한 그들을 자신들의 종족으로 받아들이는 데 많은 피를 쏟고 있었다.

“죽어라!!”

호전적인 보어리안은 쉽게 타협하지 않았다.

힘이 있는데 왜 타협을 해야 한다는 식이다. 지팡이 짚고 지나가는 노인을 발로 툭 걷어차며 낄낄거릴 힘이 있는 것이 그들이었다. 그 힘을 사용하지 않는 건 오히려 죄라고 여기는 보어리안도 있었다.

이 때문에 지하 연합에서도 보어리안을 많이 죽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선별된 이들이 지하 연합에 소속되어서 보어리안의 종족 운명을 이어받았다.

그 시류에 반하는 자는 드물었다. 보어리안은 지켜주고 싶은 외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외형은 중요하다. 모든 이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했다.

보어리안들은 죽여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멧돼지의 머리를 가진 괴물들에 불과했다. 인간에 해로운 것이다.

지하 연합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보어리안들의 호전성 때문에 그들을 죽여야 했다. 그 수많은 죽음 속에서 보어리안들은 서서히 밀려났지만, 여전히 행성의 주종족이었다.

많은 영토를 개발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이들로 인해 점진적으로 확장할 수밖에 없었다.

보어리안들 중에서 빠르게 적응한 이들은 항상 약자들이었다. 가장 먼저 짓밟힌 이들. 동족에게도 짓밟혔던 자들.

“감사합니다!”

테라의 언어를 어눌하게 사용할 정도로 눈치가 빠른 보어리안은 자신의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물을 틀면, 물이 나옵니다. 이게 바로 수도관이라는 겁니다.”

“뀌이이이이익!!”

이들은 테라의 문화를 숭배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수도관부터 소형 골렘과 같은 마법 골렘까지. 그 모든 것을 숭배했다.

심지어 털을 깨끗하게 정돈할 정도였다. 엄니라고 할 수 있는 기형적으로 자라있는 이빨도 뽑는 자들도 있었다. 테라의 생명체들과 최대한 잘 어울리기 위함이었다.

그 시도 덕분에라도 전향한 보어리안들은 나쁘지 않은 대우를 받았다. 일하면 일한 만큼 돈이 지급되었고, 자신들의 삶을 가꾸어 나갈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말을 듣지 않는다고 손을 베어버리는 제국주의 시대의 어둠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죽을 때까지 사탕 농장에서 일을 하며 사탕수수밭에서 죽어간 노예들이 아니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잡초를 싹 다 밀어버리겠슴다!”

그들은 거친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였다. 노예와 노동자의 차이는 매우 컸다. 한 해에 아홉 명이 죽는 택배회사가 있는 현대에서는 노동자가 노예로 취급받지만, 태양 차원으로 전향한 보어리안들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들은 그들이 일한 만큼 대우를 받았으며, 이들은 땅이 넓고, 개발은 되지 않았기에 자신들의 땅과 집을 받을 수 있었다.

“살기 좋은데?”

“우걱, 우걱!”

보어리안의 자식이 삶은 감자를 한 입 크게 베어 먹고, 입을 쩍 벌리며 소금을 입 속으로 털어 넣었다.

“꺼어어어억!”

보어리안 가족들은 감자만 먹어도 행복했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들은 보어리안 사회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었다.

‘그랬는데…….’

가족들을 쉽게 먹여 살리고, 돈도 쌓이자 보어리안 사회에서도 짓밟혔던 평범한 보어리안들은 점점 순해졌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보어리안도 있었다.

‘내 친척도 데려오고 싶다.’

그날로 스틸 커맨더를 찾아갔다. 챔피언들이 밖에서 보어리안들을 포획해서 온다면 스틸 커맨더는 후방에서 보어리안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그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친척을 데려오고 싶다고? 좋다. 병사를 내어주지. 하지만 처음이니까, 제법 많이 가게 될 것이다.”

이 현상은 보어리안들의 사회를 크게 뒤흔들기 시작했다.

보어리안의 말을 듣고 온 이들이 빠르게 합류하기 시작했고, 그 공백 때문에 보어리안은 더욱 서로 싸우게 됐다.

노예 짓을 하던 보어리안이 부락에 없으면 노예 짓을 할 보어리안을 데려와야 했다.

그 전쟁은 태양 차원을 서서히 강렬한 불꽃으로 변해갔다.

* * *

이런 극렬한 상황 속에서도 드낙은 태양 차원에 없었다. 태양 식민지는 잊고, 테라로 돌아갔다.

그가 되돌아간 까닭은 굴라가 하찮은 인신이며, 신격조차도 반 토막이 나서 제대로 된 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위협은 없다.’

돌아간 드낙은 한 달 동안 빈둥거리다가 한 달 보름이 되어서야 겨우 엉덩이를 떼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건 바로 악마에 대해서다.

드낙은 지하 공간에 마련된 거대한 장소에 홀로 있었다.

수많은 조명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개미 한 마리 없었다.

철저하게 통제된 곳이었다.

드낙은 가만히 서서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나는 악마가 되어서도 전력을 다한 적이 없다.’

육체의 힘. 그것에 대한 깊은 고찰이 없었다.

‘이유는 파동의 힘 때문이지.’

세상을 속이는 경지에 닿은 드낙은 초월자의 권좌에 앉았다고 해서 이를 전투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내정에 사용됐다.

누군가를 반마로 올려세우거나, 권속 악마를 탄생시키거나, 그런 것들만 했다.

‘덩치만 무식하게 키운다고 해서 악마가 지닌 육체의 힘을 모두 다뤘다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지.’

사람은 훈련하지 않아도, 교육받지 않아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변할 수 있었다. 단순히 책임감만 생겨도 사람의 기질은 변하게 된다.

이처럼 작은 요인에 크게 변하는 것이 인간이다.

드낙은 인간은 아니었지만, 인간성은 유지하고 있는 초월자였다.

‘인간 출신이 아니더라도 감정을 지닌 신과 악마가 득실거리는 곳이다. 나는 내 강함을 조금 더 갈고 닦아야 한다.’

여기서 만족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드낙은 더 많은 것을 손에 쥐고 있어야 했다.

평화를 위해서라도, 자신의 삶을 위해서라도.

‘그땐 몰랐다. 노는 것도 정도가 있다.’

10년 놀아도 아쉽다는 사람이 있었다. 30년 놀아도 아쉽다는 사람이 있다. 평생을 놀아도 정신 못 차린다는 소리를 들으며 노는 이들이 있다.

드낙 같은 경우는 10년 정도 노니 지겨워졌다. 그래서 일을 했다.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을 일을 진행하고, 부패한 관리를 때려잡아서 정의를 바로 세웠다.

그건 재밌는 일이었다.

‘노는 것 같았지.’

놀아서 얻는 재미를 일에서도 얻을 수 있었다. 신선했다.

드낙은 그렇기에 더욱 이 자리를 마련했다.

‘오랜만에 수련을 해봐야지.’

그의 몸이 거침없이 커졌다.

인간의 피부색은 붉게 변했다. 악마 그 자체로 변화했다.

붉은 피부에 박쥐 날개가 있고, 뿔이 생겼다.

드낙은 악마의 권좌에 앉아서 생기는 모든 것을 세상에 드러냈다.

‘억지로 몸을 키울 필요는 없다.’

자연스러운 것이 중요했다.

드낙의 덩치는 마왕이라 불렸던 마신장보다도 작았다. 겨우 10m에 불과했다.

자신의 몸을 마법 거울을 통해서 확인한 드낙은 깊은숨을 내뱉었다.

‘괴물.’

그냥 괴물의 모습이었다. 더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었다.

검은 뿔은 산양의 뿔이며, 어두운 곳에서 보면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박쥐 날개 또한 마찬가지였다.

‘게임 같은 곳에서는 멋있었는데, 이건 뭐 좀…….’

멋이 없었다.

펄럭!

활짝 펼쳐보니 조금은 볼 맛이 났다. 접어 놓은 박쥐 날개는 쭈글쭈글한 것이 접혀 있어서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잡힌 가죽 같았다.

육체에서 토해지는 거대한 힘은 파괴 본능을 일깨웠다. 그건 인간이라는 종족은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거대한 파괴본능이다. 하지만 드낙은 이조차도 쉬이 견뎌냈다.

중립신의 세뇌가 이를 닮아 있었다.

똑같은 것에 두 번 당할 드낙이 아니었다.

주먹을 움켜쥔 드낙은 눈을 감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힘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악마 침공을 대비해서, 악마라는 권좌에 어울릴 만한 악마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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