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9화
다이앤타는 이미 모든 영토에 선이 그어지고, 경쟁하게 될 테라에서 자기 영토를 가지려는 생각을 접었다.
“오라버니도 마찬가지잖아? 그래서 스틸 로드가 된 거고.”
밖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병사가 필요하다. 몇 가지의 국가 산업을 맡는다고 해도 전쟁을 수행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상상 이상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현금 파이프라인 없이 살아가겠다는 현대인과 다를 바 없었다.
한 번 시도하고 쫄딱 망한다면, 다시는 시도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태양 식민지는 모든 조건에 부합한 상태다.
“이미 다 정했다던데?”
“다 정하면 방법이 없나? 가족이잖아.”
미친 논리였지만 설득력이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앞서 말했다시피 크레시미르 또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태양 식민지에서 영지를 얻고, 관리한다. 그곳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다른 차원이 뚫렸을 때 외할아버지와 함께한다. 그게 진짜 베스트라고. 안 그래?”
크레시미르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겐 통치 또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스틸 챔피언은 무력형 현장 지휘관이라 내정엔 별 쓸모가 없었다.
장군이 도시를 다스리게 하는 병신은 없다. 관우는 형주를 다스리고 동시에 군대도 다스릴 수 있지만, 장비는 형주를 다스릴 수 없다. 너무 잔혹한 성정 때문이다.
군법을 시민에게 적용하니, 도시를 제대로 굴릴 수가 없다.
이처럼, 사람은 그 가치가 모두 제각각이다.
그렇기에 스틸 챔피언은 도움이 안 된다.
‘반면 스틸 커맨더는 다르다.’
그들은 지휘력을 가지고 있었고, 참모 혹은 모사라 할 만하다. 후방에서 보급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군대도 행정이 필요하다.
괜히 행정병이 다른 간부들의 일을 대신하는 게 아니다. 그만큼 개같이 짜증 나는 업무가 바로 행정이라는 놈이었다. 남에게 떠넘기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로 고된 일이다.
그걸 수행 가능한 것이 스틸 커맨더들이었으며, 스틸 커맨더들은 무려 스틸 로드에 종속된 존재였다.
중세스러운 이 세상에서는 그런 것이 가능했다.
현대에서 군권은 끔찍하리만치 독립적인 존재였지만 이 시대는 아니었다.
특히 드낙의 혈육은 개인 사병을 가지고 있어도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고,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내가 생각해 봤는데… 무식하게 돌진하는 게 가장 잘 먹힐 것 같아. 자치령을 얻는 거지.”
다이앤타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이에 크레시미르가 학을 뗐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 여동생아!”
“오라버니. 우리 커리어 정도면 할 수 있다니까.”
‘우리’라는 말에 크레시미르는 등골이 오싹했다. 다이앤타가 무엇을 노리는지 잘 알고 있어서다.
그 모습에 다이앤타가 비릿하게 웃었다. 혼자서 마지막에 남은 컵라면을 몰래 먹는 막내의 표정이다.
“같이하면 더 허락받기 쉽겠지?”
“내가 너랑 어찌 같이 자치령을 운영하겠느냐.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냐?”
절대 싫었다. 한다면 따로따로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건 다이앤타가 원하는 일이 아니다.
‘짜증 나긴 해도 오라버니는 올곧다.’
파트너로서 가장 잘 어울린다. 위선이라도 그게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유지한 것만 봐도 이미 그는 선(善)이라고 할 만하다.
많은 이들이 크레시미르를 따르고 있었으며 여기에 오지는 못했지만 막대한 돈을 기부하고 있기도 했다. 크레시미르가 세상을 조금 더 밝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를 돕는 데 자기 자식을 보낼 정도였다.
다이앤타는 그 극렬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더욱 크레시미르의 위대함을 잘 알고 있었다.
먼저 굽히면 그냥 짓밟힌다. 호의를 권리로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비이성적인 존재였다.
그런 것을 생각했을 때, 크레시미르는 ‘예외’라고 말할 만했다. 그가 굽히면 다른 이들은 더욱 굽힌다.
‘아’ 다르고 ‘어’ 다르듯이 단추 하나가 잘 맞아떨어졌고 크레시미르라는 존재와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런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크레시미르에게 미리 머리를 굽히기도 했다.
‘오라버니가 꼭 필요해.’
“해줘.”
“뭐?”
“해줘!”
다이앤타가 크레시미르에게 엉겼다. 태어날 때부터 쿼터 데몬이라 똑같이 반마에 올라섰지만 크레시미르가 신체 능력은 아래여서 순식간에 넘어졌다.
“해달라고!”
“하아…….”
크레시미르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도 오빠에 불과했다. 여동생이 지랄하면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대신 한 달에 한 번, 내 말을 따라주는 날은 있어야 한다.”
“내정에 개입하겠다는 거야?”
“우리라며? 그 정도는 해줘야 한다, 동생아!”
그게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분기에 하나.”
“좋다.”
“아니, 반년에 하나!”
“늦었다!”
“…좋아! 까짓것 그렇게 하지!”
구두 약속에 불과했지만, 다이앤타는 분명 그 말을 지킬 것이다.
* * *
두 사람은 곧바로 세파리아스를 찾아가지는 않았다. 맡은 바 임무를 다하며 1년을 보냈다.
그사이에 세파리아스와 지하 연합은 빠르게 영토를 확장했다. 하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도로 하나 없는 곳이다. 땅이 비옥했고 태양이 뜨는 시간도 길었지만 반대로 준비할 건 또 많았다.
당장 땅 수십만 평을 가진다고 한들, 그걸 모두 정상화시킬 수는 없었다.
그 덕에 크레시미르와 다이앤타는 짬이 났다. 1년 동안 두 사람은 페이커 헥사곤 헤어초크와 소베니르 크냐지 퀀터티와 접촉했다.
둘 모두 평민 출신의 스틸 로드였다. 상위국 출신이며, 그곳에 속한 스틸 로드이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다이앤타의 엄마가 상위국왕이다.
두 사람을 포섭하는 데 그 어떤 리스크도 없었다.
“해볼게요. 캐리.”
페이커는 수긍했다. 새로운 길이었다. 걷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새로운 길이었지만 그 길은 위로 향하고 있었다. 소베니르도 페이커가 가는 길을 똑같이 따라갈 생각이었기에 거부는 없었다.
준비를 단단히 해놓고 크레시미르와 다이앤타는 세파리아스와 마주했다.
“태양 식민지에 자치령을 받고 싶습니다.”
본론부터 꺼냈다. 무인(武人)인 세파리아스는 정치에도 능통하고 처세술에도 능하지만, 그 취향은 직설적인 것을 좋아한다.
특히 초월자가 되면서 더는 처세술이 필요가 없게 되면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자신들의 외할아버지이니 더욱 잘 알았다.
“시민은 누구를 둘 생각이냐?”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들어는 보고. 얼마나 준비를 잘했는지 봐야 하지 않겠느냐.”
이에 두 사람이 계획서를 건넸다.
세파리아스가 이를 훑었다.
“고급 회복 물약 공장?”
“예.”
상당한 규모였다.
마력을 품은 약초를 키우는 일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고, 손도 많이 간다. 대신 돈은 많이 벌 수 있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인생의 내일이란 것은 그저 시간을 관측하지 못하는 이들의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 그런 의미에서 고급 회복 물약은 능히 내일을 맞이하게 해줄 수 있는 물품이었다.
“사업하기 어려울 텐데.”
“예. 하지만 저희는 저평가된 고급 시장을 노리고 싶습니다.”
“저평가된 고급 시장? 하하하. 고급스러운 것이 어찌 저평가될 수 있겠느냐.”
“물론 비싼 건 비싼 만큼 잘 팔립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이앤타 또한 입을 열어서 툭 내뱉었다.
“말씀드리고 싶은 건 결국 경쟁 대상이 무서운 놈이냐, 아니냐예요.”
“경쟁 대상이라…….”
“네. 봐요. 아빠는 농산물을 심고, 그 양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태양 식민지도 마찬가지죠.”
평범한 사람들은 먹고사는 데 가장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돈’의 총량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렇게 노력한 지 10년이 지나 태양 차원이 발견되었음에도 이곳에서 또 식량을 생산하려고 하고 있었다.
현대조차도 굶어 죽는 이들을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인구의 증가를 식량 증가가 못 따라가서이며, 중간 유통과 생산 단가에 대한 자본주의적 시각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그건 테라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식량의 단가를 극단적으로 낮추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오죽하면 태양 차원에서 옥수수를 키우고, 사료로 만들어 가축을 많이 생산할 생각을 하겠는가?
“…이를 생각했을 때, 고급품이 아니라 평범한 것을 생산한다면 큰 이윤이 나지 않습니다.”
희귀병 하나를 고치는 약 한 알을 먹는 데 20억이 들어가는 것도 이와 같았다.
고급품은 한도 끝도 없이 비싸질 수 있다.
“적게 팔아도 비싸게 팔겠다라…….”
“너무 비싸게 팔 생각은 없습니다. 죽을 사람이 돈이 없어서 죽는 것만큼 가슴 아픈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외과 기술이 전수해지고, 다양한 의약품들이 생산되고 있지만, 그 값이 비싸다.
하급 물약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중급 회복 물약도 때에 따라서는 그 약효가 미미하기도 하다.
고급 물약은 죽어가는 이를 삽시간에 되살린다. 그게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인구는 더욱 빠르게 상승할 터였다.
그리고 늘어난 인구만큼 돈을 잘 버는 이가 생길 것이고 그런 이는 더 많이 고급 물약을 들고 다닐 터다.
“돈이 넉넉한 이들을 노린다라…….”
실패하기 어려운 사업이었다. 국가가 도와준다면 더욱 실패할 수가 없었다.
유통도 쉽다. 공공기관에서 구매하여 보관만 해도 엄청난 수요가 발생할 터였다.
“특히. 테라에 있는 윈터 헬을 견제할 수 있죠.”
“…거기까지 생각을 했구나. 확실히 불모지의 권속 악마들은 물약을 팔면서 소득을 크게 올리고 있지.”
“독점이나 다름없습니다.”
불모지의 권속 악마는 규모의 경제에 따라 단가가 다른 이들보다 낮아질 수 있었고 중급 물약을 그만큼 싼값에 판매했다.
“중급 물약을 택하지 않은 것도 그놈들 때문이군.”
“경제가 발전하면 고급 물약의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겁니다.”
자기 연봉의 절반은 고사하고 연봉의 몇 배에 달하는 자동차도 구매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였다.
물약 또한 이와 같았다.
무조건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형편이 안 되어도 구매하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다양한 고급 물약을 개발할 거예요. 계획서의 뒤쪽에 향후 미래에 대해서도 적어놨어요.”
세파리아스가 계획서를 더욱 빠르게 훑었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진행해. 태양 식민지의 일부를 떼어주마. 한번 해봐라.”
신황제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사업은 많을수록 좋다. 지자체에서 기업을 유치하려고 발악을 하는 것만 봐도 우리는 이를 깨달을 수 있다.
크레시미르와 다이앤타는 곧바로 자신들의 땅으로 향했다.
영토 개발이 영토 확장을 따라가지 못해 그들의 군대는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여유는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휴가를 맞이하여 테라로 돌아가기도 했다.
“여기가 우리들의 자치령이다! 아하하하하항!”
다이앤타가 강철마를 거칠게 몰며 그대로 질주했다.
끝없이 넓은 땅이 크레시미르의 눈에 들어왔다.
‘진짜 허허벌판이구나.’
신황제는 그들이라고 우대하지 않았다. 개간되지 않았고, 개발되지 않았으며, 도로조차도 없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줬다. 아직 보어리안들의 피가 다 마르지도 않은 흙도 보일 지경이었다.
“개발에 필요한 자재들 모두 투자를 받고 하는 거니까. 다 갚으려면 제법 걸리겠다.”
“상관없어. 완성만 되면 그때부터는 수익이 나니까.”
황무지를 한 번 휘젓고 온 다이앤타가 상기된 표정을 한 채로 답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전투를 치르며 포섭한 보어리안들을 통해서 도로와 거주지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은 삼겹살에 맥주다아아아아!!”
다이앤타가 고함을 지르자 일하던 보어리안들이 득달같이 일어나 환호성을 내질렀다.
“뀌이이이이이이이익!!”
흙을 퍼 올린 삽을 하늘로 번쩍 드니 흙이 사방에 튀었다.
“뀌익!”
바로 주먹이 날아갔다. 순식간에 패싸움으로 번졌다.
하지만 다이앤타는 깔깔 웃기만 했다. 그러더니 조금 더 심각해지자 그 무리 속으로 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패버렸다.
“싸우면 패버린다! 알아들었느냐! 장난치는 건 괜찮지만, 적당히 해라!”
“뀌익! 뀌이익!”
모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 일 때문에 그다음부터는 패싸움을 해도 피가 나면 즉각적으로 멈췄다.
다이앤타는 보어리안과 아주 죽이 잘 맞았고, 크레시미르는 그사이에 심을 약초들을 가져오는 일을 총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