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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187화 (1,185/1,239)

1187화

드낙은 가장 먼저 분신을 죽였다.

파동으로 끌고 가서 단번에 가루로 만들었다. 이에 넝쿨이 크게 출렁이는 걸 볼 수 있었다.

‘피해를 많이 받네. 분신이라서 그런 건가.’

좋은 반응이었다.

넝쿨은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럼에도 드낙을 특정할 수 없었다.

반면 드낙은 주문을 사용해서 곳곳에 불을 지피고, 얼음으로 넝쿨을 부수고, 무너지는 땅을 지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넝쿨들을 긁고 지나갔다.

선명한 궤적.

불의 길이 이어지며 넝쿨들이 타올랐다. 넝쿨 속에 내재된 굴라의 힘을 상쇄하고도 남을 불꽃 주문이 넝쿨을 불살랐다.

공기가 없어도 마법 불꽃은 불타올랐기에 가장 쓰기 좋았다.

드낙은 지하 공간을 관통하며 일직선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는 행성의 제법 깊은 곳에 들어왔다. 때문에 주변의 지질이 넝쿨들로 대체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흙으로 덮여있기는 했지만, 전부 넝쿨뿐이었다.

‘맨틀이나 외핵까지 넝쿨로 이루어진 건 아니겠지.’

지나친 억측일 수 있었다. 여기는 깊어 봤자 수km에 불과했다. 지열이 조금 느껴지기는 했지만 하찮은 수준에 불과했다.

드낙은 난장판을 피우며 넝쿨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리고 넝쿨을 모조리 태우면서 빈공간이 만들어진 곳에 흙과 돌을 쌓아 올라 기둥을 만들며, 천장을 바위로 채웠다.

전쟁터를 스스로 만든 드낙이 두 팔을 벌리며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하찮구나! 이런 넝쿨로는 나를 이기지 못한다! 내가 바로 악마, 드낙이다!”

그 몸은 덩치가 커져 있었다. 몸의 표면적을 넓혀서 체내에 있는 마력을 최대한 빨리 몸 밖으로 내뿜기 위해서는 몸의 표면적이 넓어야 했다.

마신장(魔神將)이 강한 주문을 단발성으로 내뿜는 것도 다 그 덩치 덕분이었다.

무엇보다 드낙은 악마다. 인신과는 다르게 육체, 자체가 힘이다. 그 덕에 육신을 늘리고 줄이는 데에는 도가 텄다. 업이 소모되는 경우도 없었다.

쭈욱, 쭈욱!

드낙의 덩치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쭉쭉 늘어났다.

동시에 빈 공간에 넝쿨들이 거세게 벽을 부수고 들이쳤다. 굴라의 분신은 보이지 않았다.

‘대화할 생각이 없거나, 아까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가루로 만들어 버리면 손해가 크니까.’

드낙은 굴라의 약점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곳곳에 마련된 분신을 처리한다면 능히 굴라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콰과과광!

넝쿨이 드낙의 육신이 있던 곳을 노렸지만, 허공을 가르며 이내 바닥과 벽에 부딪혔다. 넝쿨이 어찌나 큰지, 상상 이상의 굉음이 사방을 흔들었고, 지축이 크게 흔들리며 천장에서 흙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놈의 본체를 찾아야 하는데, 정신체의 형태를 가지고 있을 게 틀림없다.’

행성을 파괴하는 게 악마다. 신은 100% 정신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필요에 따라서 육신을 가질 뿐이다. 이번 경우 굴라는 그 육신을 ‘넝쿨’로 삼은 셈이다.

드낙은 수십km를 파동으로 질주하며 지나갔다.

수초 뒤에 뿌려놓은 마력이 주문으로 변하며 마법 불꽃이 넝쿨에 들러붙었다.

흙이 달구어지고, 매캐한 가스가 누출됐다. 모래가 녹으며 용암처럼 변하여 넝쿨을 덮쳤다.

드낙의 덩치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짧은 순간에도 많은 마력을 쏟아낼 수 있었다. 거기에 늘어나고 확장된 몸은 마치 아티팩트처럼 기능했다.

몸에 주문을 때려 박아서 순식간에 주문이 토해지고 있었다.

그 끔찍한 파괴 속에서도 굴라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우직하게 똑같이 넝쿨로 대처했다.

드낙은 도망치는 분신을 하나 잡을 수 있었다. 끝내 굴라는 더 깊은 지하로 도망치고야 말았다.

“녀석. 귀엽게 노네. 미안하지만 너와 나의 격차는 수천 년이란다.”

드낙은 무려 중립신의 대계에서도 살아남은 존재였다.

전란이 밥 먹듯이 일어났던 유럽의 과학이 동아시아를 침탈했던 것처럼, 드낙과 굴라의 차이는 그와 비견될 수 있었다.

한 번 싸워본 드낙은 그대로 놈을 쫓았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며 중력이 드낙을 짓눌렀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악마다.

드낙의 피부가 불그스름하게 변했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드낙은 그 속에서 상쾌함을 느꼈다.

“캬하하하하!!”

그 상쾌함은 마치 냉장고에서 꺼낸 콜라를 바로 뚜껑 따서 500mL를 숨도 한 쉬고 바로 들이켰을 때의 상쾌함을 초과할 정도로 끔찍한 상쾌함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그 정신을 못 버틸 정도로 쾌감이 대단했다.

평생을 약골 멸치로 살아온 이가 하루아침에 UFC 세계 랭킹 1위의 육신을 가진 것보다도 더한 쾌감이 드낙을 지배했다.

‘짜릿하다. 이렇게까지 악마의 힘을 사용한 적은 없다.’

육신이 스스로 변모하고 있었다. 주변 환경에 맞춰서 근섬유가 얽히고설키며 알아서 그 구조를 변경하고 있었다.

몸에 힘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며 당장에라도 내달리고 싶은 마음을 생기게 했다.

이는 곧 파괴본능(破壞本能)을 탄생시켰다.

드낙은 왜 악마가 벌을 파괴하고, 차원을 침략하는지 알 수 있었다.

‘육신에 정신이 휘둘린다.’

찌리릿.

드낙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는 눈시울마저도 붉어졌다.

‘이 감각…….’

육신이 정신을 지배하고 휘두르는 이 감각은 중립신의 세뇌와 지극히 닮아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악마가 중립신의 세뇌라는 건 아니었다.

‘그 반대다.’

중립신의 세뇌가 바로 악마의 이런 육신을 벤치마킹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소름이 안 돋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제야 중립신의 세뇌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게 됐구나.’

중립신은 드낙의 정신을 조정한 것도 있다. 하지만 그 근본은 육신을 통해서 정신을 조종했다.

몸이 나른하면 정신이 아무리 팔팔해도 아무것도 못 하게 마련이다. 움직일 수가 없는데 어찌 정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는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생각한다면 중립신은 정말 치밀한 신이었다. 정신과 육체에 동시에 세뇌작업을 한 것이니까.

그리고 필멸자인 드낙은 육체를 떠나면 죽는 것밖에 안 된다.

다만, 드낙은 미소를 지었다.

‘그게 도움이 될 줄이야.’

중립신의 세뇌에서 벗어난 경험이 드낙에게는 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벗어났지만 그게 도움이 됐다.

악마가 지닌 진짜 파괴본능은 드낙을 위협했지만 드낙은 금방 적응을 했고, 곧 마음이 평온해졌다.

피부가 붉어졌으며 흰자위가 검게 변하고, 동공은 붉은 눈동자가 된 드낙은 등에 있는 날개를 펼쳤다.

그 날개에서 끝도 없이 불이 쏟아져 나와서 지하에 득실거리고 있는 넝쿨들을 불살랐다.

어느새 드낙의 덩치는 5m에 달했다.

그 목소리조차 변했다.

“끝까지 해보자!”

드낙은 끝없이 추락하며 날개를 통해서 속력을 늦춤과 동시에 몇 번이고 외쳤다.

“별의 파괴자를 목도하라! 굴라!”

그 끔찍함에 거대하고 깊은 통로는 불길로 가득 차올랐다.

꽝!

바닥에 내려앉은 드낙이 날개를 펄럭였다. 흙먼지가 사라지고, 불의 마법으로 넝쿨이 불타며 주변을 밝혔다.

굴라의 심층부까지 들어섰음을 알게 됐다. 그 공간에는 넝쿨이 있었지만, 불꽃으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분신 여섯 개가 하나 되어 모여 꽃잎처럼 포개어져 있었다. 드낙은 굳이 이를 부수지 않고 말했다.

“계속해 볼 테냐? 난 한 달 내내 싸울 수 있다. 이 행성에 있는 모든 넝쿨과 분신을 죽인다면 너는 어찌 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가 있겠다.”

“…강맹하도다…….”

굴라의 분신이 암담함을 느끼며 황망해했다.

많은 피해를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적은 피해도 아니었다. 결국, 이렇게 강제로 대화의 장이 열리게 됐다.

“자, 이제 좀 말해 봐라. 주피터는, 너는. 뭐 하는 놈들이냐? 그 신전은 또 무엇이고?”

이에 굴라의 분신이 답했다.

“주피터와 그 인신들은 라그랑지언이라 불리는 인신들의 단체를 조직했다. 나는 그 일원이었고, 말석에 있었다.”

그들은 당연하게도 인간들을 생체실험했다. 그렇게 보어리안이 탄생했고, 보어리안은 노예로, 전사로 사용되었다. 자연스럽게 보어리안 중 몇몇이 야생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그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나는 그 실험에 많은 공을 들였고, 결국 보어리안들로부터 업(業)을 얻게 됐다. 반면 다른 인신들은 그러지 못했지.”

“종(種)이 바뀌었는데 업을 취득해?”

“그래. 권능으로도 삼지 않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그 말에 굴라가 흘흘 웃었다.

“이 행성에 내 신격과 정신체 절반을 녹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피터를 비롯한 다른 인신들은 내가 보어리안의 업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날 죽였다.”

“하지만 너는 행성과 연결이 되어있어서 살아남았고.”

“반대로 이 행성을 나는 벗어날 수 없게 됐다. 불완전한 신격을 가진 채 살아가며 보어리안들을 도와서 인신들을 토벌했다.”

드낙은 그제야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결국 인신들의 욕심으로 발아된 것이었다.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드낙은 결론을 냈다.

“행성에 속박된 굴라야.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 거냐? 네 목적이 있었을 것 아니냐.”

“불완전한 신격과 이 행성에 정신이 묶여있는 나에게 무슨 미래와 목적이 있었겠느냐? 그저 업만 모으면서 살았다.”

그 목소리에는 허탈함만 가득했다.

“복수 또한 이미 이루어냈다. 보어리안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고, 인신들은 결국 보어리안들을 막지 못했다. 크크큭. 행성을 지배한 나를 이기지는 못했다.”

허탈함도 잠시, 주피터와 인신들을 족쳐 버린 것을 떠올리며 굴라가 웃었다.

“그렇게 업을 먹었는데도 행성을 벗어나지 못했나?”

“그렇다.”

그 말에 드낙이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이에 굴라의 분신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웃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 웃는 것이냐? 내 처지를 비웃는 것이냐?”

“아니다. 내가 있던 차원에 중립신이라 불렸던 인신이 있었다. 그 인신은 자신의 행성에 자신을 녹여내려고 했다.”

“자살이다.”

“그래. 자살이다. 하하하.”

스스로 죽을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죽음에서 말 그대로 새로운 세상이 탄생하려고 했다. 이를 방해한 건 드낙이다. 살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있을까.’

굴라는 타의 반, 자의 반으로 행성에 갇혔고, 중립신은 오로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행성에 갇히려고 했다.

둘은 비슷했지만, 전혀 다르기도 했다.

중립신이 진짜 대단한 놈이었다면, 굴라는 진짜 허접한 놈이었다.

“네 권능은 넝쿨뿐이냐?”

“봐와 놓고는 무엇을 더 묻느냐.”

“그런가.”

“그렇다.”

드낙은 결국 굴라의 신격에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말 그대로 그는 불완전한 신격을 가지고 있었고, 그 신격마저도 행성에 녹아 있었다. 이를 추출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분신을 데리고 가줘야겠다. 세파리아스라고 이곳에 자리 잡은 인간들을 다스리고 있는 인신이다.”

“인신!”

혐오감이 절로 생겨났다. 굴라 또한 인신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어허, 진정해. 다 같은 인신이 아니니까. 세파리아스 인신이 왜 이 차원에 침공했는지 아느냐?”

“왜냐?”

“바로 초월자를 싹 다 죽여서 인간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다.”

“대단한 초월자로다.”

굴라가 좋아했다. 그 또한 인신들에게 내쳐진 인신이 아니던가?

드낙은 분신을 데리고, 세파리아스에게로 향했다.

넝쿨의 정체가 굴라의 몸이라는 걸 알게 된 세파리아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불완전하다고 해도 넝쿨이라니. 하하하!”

굴라의 분신이 인상을 찡그렸다.

“어쨌든 이 행성은 말 그대로 굴라의 몸이다. 넝쿨도 굴라의 몸이긴 하지만. 우리는 굴라의 몸 위에 서 있는 것이 된다. 이 행성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면 굴라와 타협하는 게 좋다.”

“추출하면 될 일 아닌가? 보어리안의 신이라며? 그렇다면 내가 죽여야 하는 신이다.”

세파리아스는 그게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이에 굴라가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느냐?”

“어째서기는. 그 어떤 초월자도 도달하지 못한 기술의 극에 달한 것이 이 몸이다.”

세파리아스가 당당하게 말했다. 이에 드낙이 한숨을 내쉬었다.

“백날 넝쿨을 베어봐라. 굴라를 죽일 수 있나. 이놈은 행성을 파괴하지 않으면 못 죽인다니까.”

드낙이 답답한 듯이 말했다. 세파리아스에게 굴라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렇다면 어쩌자는 것이냐?”

세파리아스가 드낙을 째려봤다.

‘으휴, 이 욕심쟁이. 내가 나서면 굴라를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네.’

태양 차원을 오로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세파리아스의 고약한 심보를 엿볼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드낙으로서는 세파리아스에게 태양 차원을 전부 양도할 생각이 없었다.

“어쩌기는. 욕심도 적당히 부려야지. 5할! 5할만 먹어.”

굴라의 분신이 그렇게 말하는 드낙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

“무슨 상황이기는. 이제 영토를 서로 정해야지. 아니면? 진짜 끝까지 해봐?”

드낙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이에 굴라의 분신이 침묵했다.

잠깐 마주한 것뿐이지만 드낙의 무한한 활력과 마력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단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수천km에 퍼져 있던 넝쿨이 싹 다 불태워졌다.

이 말이 무슨 의미냐면 행성 전체에 있는 넝쿨을 충분히 단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단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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