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6화
32. 굴라 (2)
“종교적인 의미가 아닐까요?”
“아니야. 확실히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야.”
드낙은 확신했다.
다이앤타나 크레시미르는 진짜 자본주의의 무서움을 모른다. 엄한 집도 쪽방으로 갈라서 월세를 타 먹는 세상이다. 늙은이들을 돈으로밖에 보지 않는 세상이었다.
그들 또한 늙은이가 될 수 있었기에 더욱 악착같이 돈을 모으게 된다.
종이 화폐의 노예였다.
‘이곳은 그런 곳을 떠올리게 만든다.’
15평.
넓다. 하지만 침대 하나만 있는 이곳은 왠지 모를 섬뜩함을 주고 있었다. 마치 실험실을 보는 듯했다. 오직 잠을 자기 위한 용도로 만든 것 같았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 그나마 평수를 넓힌 것 같은 모순적인 인간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그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드낙은 이곳이 실험실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추적은 이미 초월의 경지에 닿아있었다. 현대의 소설과 드라마를 수없이 봐왔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 상상력이 없었다면 그 어떤 추측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계단을 찾아라. 반드시 있다. 난 따로 움직이겠다.”
드낙은 이미 하고 있는 것을 더욱 집중해서 하라고 명령한 뒤에 그림자로 변했다.
벽을 드나들고, 천장에 스며들었으며, 바닥을 훑었다. 그러고 나서야 지하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찾아낼 수 있었다.
지하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는 곳에 지하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다.
벽에 숨겨져 있었고, 그 벽이 대단히 두꺼웠다.
‘폐쇄했다.’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일부러 막아둔 듯했다.
이런 종류의 영화를 드낙은 본 적이 있는 기분에 휩싸였다.
‘지하 1층의 지하통로에는 보안을 지키기 용이하지.’
출구가 그곳뿐이라면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불편하긴 해도. 효과적이다.
‘물류는 어떻게 옮겼지? 그것도 확인할 필요가 있어.’
지하 2층의 거대한 실험체 보관실을 봤다. 못해도 수천의 생명체가 있었을 것이다. 15평이면 최소 인간 혹은 그 이상의 생명체였을 터다. 어쩌면 보어리안일지도 몰랐다.
그런 놈들을 유지하려면 물류가 많이 운반되어야 한다.
그런 곳도 확인을 해봐야 했다.
드낙은 벽을 부수지 않고, 그림자를 통해서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주문을 읊어서 빛을 토해냈다.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통로 전체가 넝쿨로 뒤덮여 있었다.
저벅, 저벅.
드낙은 일부러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혹시나 있을 변수를 미리 끄집어내서 자신이 차단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넝쿨들은 넝쿨 분노자로 변하지 않았다.
계단을 다 내려갔고, 드낙은 본격적으로 지하 3층을 훑어봤다.
‘지하 1층 통로에는 동상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장식 하나 보이지 않아.’
지나칠 정도로 삭막했다. 넝쿨이 정말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에 틈틈이 넝쿨을 드러내서 벽을 확인해 봤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지하 3층은 구역별로 벽이 꼼꼼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드낙은 그런 벽들 중에서 초월의 힘이 남겨져 있는 것을 확인했고, 이를 해석할 수 있었다.
‘마법이다. 마법으로 벽을 세워서 빠르게 차단했다.’
무엇을 차단하려고 했는지는 쉬이 알 수 있었다. 이 넝쿨이다.
이것이 확산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람의 시체는 볼 수 없었고, 그저 넝쿨을 갉아 먹으며 살아가는 쥐들의 사체만 볼 수 있었다.
사체는 뼈밖에 안 남아있거나 넝쿨에 살짝 덮여있었다.
드낙은 쥐들과 넝쿨이 서로 공생관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쥐들의 사체 더미를 봤기 때문이다.
‘개체 수가 늘어나면 넝쿨을 너무 많이 잡아먹게 되니까. 넝쿨 분노자가 모습을 드러내서 이 쥐들을 잡아먹는다.’
질병으로 죽거나 수명이 다해서 죽은 쥐들 또한 넝쿨의 양분이 된다. 또 넝쿨을 잡아먹기 위해서든 길을 뚫기 위해서든 파괴하면 넝쿨 분노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몸길이 3m에 달하는 야수의 형태를 지닌 넝쿨 분노자는 걸어 다니는 공포나 다름없었다.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말이지.’
악마 침공을 대비하고 있는 테라의 군사 체계를 넝쿨 분노자는 이길 수가 없었다.
‘평범하게 들어왔다면 사상자가 제법 나왔겠지.’
드낙은 태평하게 지하 3층을 돌아다녔다.
지하 3층은 곳곳이 벽으로 폐쇄되어 있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서서히 이곳에 대한 정보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삭!
양피지가 오래되어서 건들자마자 감자 칩처럼 부서졌다.
이를 보며 드낙은 주문을 통해서 조심스럽게 넝쿨을 드러내고, 섬세하게 양피지를 펼치고 또 펼친 다음에 조각난 것을 붙였다.
문자는 알 수 없었지만 그림 자료가 제법 있었다.
‘멧돼지.’
멧돼지의 신체 부분이 그려져 있었다. 다리, 골반, 두개골…….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이내 사람의 몸과 멧돼지의 머리가 붙어있는 그림을 찾아냈다.
‘보어리안.’
인간은 보어리안을 만들고자 했다.
‘이곳의 인간들은 신을 넘보려고 했다.’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이를 통해서 인간들은 더 발전된 미래를 그릴 수 있었다. 옥수수도 개량해서 씨알이 굵은 놈으로 만드는데, 인간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다만, 그게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보어리안을 통해서 대신 싸워줄 놈들을 원했다.’
지금의 전투 강철 인형처럼 인간들은 보어리안을 통해서 전쟁에서 죽는 사람들을 구하려고 했다.
그게 왜 ‘넝쿨’이 되었는지는 드낙으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지하 3층은 본격적으로 사람을 해부하고, 해부한 것을 보관했으며 정보를 축적하는 용도로 쓰이는 연구실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곳은 고문 기구가 많기도 했는데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딜 수 있는지’ 알아본 것으로 여겨졌다.
드낙은 그런 것들을 보고 느끼고 추측하면서 서서히 ‘흔적’을 쌓아갔고 이내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이쪽이다.’
자신의 사냥꾼 직감이 가르쳐주는 곳으로 향했다. 통로는 점점 넓어졌다. 이내 천장이 확 트였다.
“와우.”
드낙이 감탄했다. 그곳은 천장이 뻥 뚫려 있었고,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상당히 멀리까지 왔다.
그곳의 위로 올라가 봤다. 빽빽하게 넝쿨이 휘감고 있었으며 나무와 나무를 넝쿨이 연결하며 성벽처럼 두르며 이곳을 숨기고 있었다.
다시 아래로 향한 드낙은 넝쿨을 드러내며 흔적을 찾았다.
‘물류가 이곳으로 옮겨졌다.’
동시에 드낙은 넝쿨들이 지나칠 정도로 두껍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넝쿨들은 세 종류로 서로 한 겹씩 겹쳐서 세 겹이었다면 이곳은 십 겹은 기본으로 넘길 때도 있었다.
‘변수.’
이곳에 무슨 일이 생겼거나 시작됐다. 여기가 시발점이 되어서 연구실이 폭망한 것 같았다.
드낙은 갑자기 멈춰 서서 발로 바닥을 꾹꾹 밟았다.
“…….”
곳곳을 밟던 드낙은 이내 한곳에 있는 넝쿨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매캐한 소리가 나며 넝쿨들이 문어처럼 쪼그라들었다. 넝쿨 속에 근육이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 괴이한 광경 속에서 넝쿨 분노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넝쿨이 서로 엮어지며 호랑이 같은 나무 야수가 모습을 드러냈으나 그들은 고개를 두리번거릴 뿐, 드낙을 특정하지 못했다.
드낙은 넝쿨을 모두 불태우고 그곳을 들여다봤다.
거대한 구멍이 보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낙하하는 드낙은 상상 이상의 공간에 조금 놀랐다.
마법 빛을 내뿜는 구체를 곳곳으로 보냈다.
그에 어마어마한 동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의 월드컵 경기장 두 개를 합친 것처럼 무지막지한 공간이었다.
가히 수천 개의 발광체를 보내고 나서야 그 규모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뚝 솟은 기둥과 우뚝 솟은 해골 더미를 볼 수 있었다.
해골 더미는 마치 버섯의 진균처럼 아주 얇은 넝쿨이 살포시 덮고 있다.
드낙은 한 곳을 바라봤다.
드낙과 눈이 마주친 존재가 씨익 웃었다.
“안녕?”
“안녕.”
그건 무언가 망가진 인형처럼 보였다.
뭉개지고, 뒤엉켜 있었지만 인간처럼 보였다.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음에도 인간으로 여겨졌다.
“넌 누구지? 이곳의 주인인가? 아니면 여기에 희생된 사람인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드낙이 질문을 던졌다.
“흐흐흐. 히히히.”
그 말에 그것은 낄낄 웃었다.
드낙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가 외쳤다.
“멈춰!”
그 말에 드낙은 코웃음을 쳤다.
“멈추라고 한다고 멈출 리가 없잖아?”
“…….”
그 말에 상대가 침묵했다. 아까는 웃었지만, 지금은 웃지 않았다.
그 눈은 드낙을 보고 있었지만 드낙을 볼 수 없었다.
“뭐지? 이게 뭐지? 난 널 보고 있는데. 하지만 널 볼 수가 없어.”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에 드낙은 상대를 간파할 수 있었다.
‘인형 같은 거다. 본체는 따로 있고, 넝쿨을 통해서 날 다른 방식으로 관측하고 있다.’
100의 입자가 들어간 공간이 있다. 그곳은 입자로 가득한 곳이기에 입자가 없는 공간을 되레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드낙을 볼 수 없었지만 드낙은 넝쿨을 밟고 있었고, 그 덕에 상대는 드낙을 관측할 수 있었다.
그건 정말 이상한 감각이었다.
드낙에 대한 경계심을 피워올리기에 충분했다.
“네가 굴라인가?”
“그래. 내가 굴라다. 너희들 인간이… 아니, 넌 인간이 맞나?”
그가 혼란스러워했다. 드낙은 조금 고민했다.
‘인간에게 원한이 느껴진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물론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은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태생이 인간이었다. 인간과 함께하고 있다. 등등.
“난 다른 차원에서 온 악마다. 이차원에서 태양의 신, 주피터를 만났으며 그녀를 죽여서 신격을 획득했고, 이곳에 대한 좌표 또한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곳에 왔다.”
“아! 주피터! 여신을 죽였다고? 그 증표를 보여줄 수 있나?”
드낙은 어깨를 으쓱했다.
“5t짜리 황금이 있었다면 그녀의 권능을 보여줄 수 있다. 난 신격을 아직 꽃피우지는 못해서 그런 식으로밖에 증표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
이에 굴라의 분신이 말했다.
“황금이 매장되어 있는 곳을 안다. 그곳에 데려가 주면 태양의 권능을 볼 수 있다.”
“근데 내가 왜 따라가서 보여줘야 하지?”
“나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나? 보여주마. 이 땅에 있었던 인신과 그들을 따랐던 인간들이 어떠한 놈들인지 이야기해 주마.”
그건 충분히 흥미가 돋는 일이었다.
“좋아. 보여주지. 너는 주피터를 증오했나?”
“증오했다.”
“내가 그 원한을 부서트린 것을 보여주마.”
쿠구구구구……!
벽 한구석에서 넝쿨이 촉수처럼 쏟아져 나와서 흙을 파헤쳤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올라오자 드낙이 주문으로 이를 말끔하게 날려 버렸다.
송곳처럼 날카롭고 코끼리 상아처럼 밝은색을 지닌 넝쿨이 드문드문 툭툭 튀어나와서 입구를 단단하게 조이며 뚫는 동안 물러진 흙을 다시 뭉치도록 만들었다.
그곳에 드낙이 거침없이 들어서려다가 굴라의 분신을 보며 말했다.
“너는 안 가냐?”
“난 움직일 수 없다. 그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을 뿐이지.”
무슨 제약에 걸린 것처럼 굴었는데, 드낙은 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굴라는 지금까지 결코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 분신이 자유롭지 않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드낙은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그는 굴라에게도 보일 수 있는 그림자로 이동하여 순식간에 그를 따라잡았다.
넝쿨이 흙을 파헤치고 길을 만들었고, 그럴 때마다 드낙은 빠르게 따라잡았다.
황금이 가득한 곳에 도착했다.
넝쿨들이 황금 광석을 모아왔다. 드낙은 이를 녹여서 단번에 거대한 황금의 웅덩이를 만들었다.
빠르게 식힌 후 곧바로 태양 축적의 권능을 사용했다.
넝쿨들이 고치처럼 내려앉았는데, 그곳에서 굴라의 분신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정말로 죽었구나.”
그 말에는 조금 허탈함이 담겨 있었다.
“이제 너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
“너는 인간과 함께하고 있는 초월자렸다?”
굴라는 드낙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지만, 이곳에 온 침략가들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 하지만 그들을 이끄는 건 내가 아니라 다른 신이다. 인신이며, 세파리아스라 불린다.”
“세파리아스 인신의 목적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있나?”
이에 드낙이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난 이 정도면 충분한 답을 줬다고 본다. 너의 대답을 원한다.”
그 말에 사방에서 넝쿨이 튀어나오고 벽이 무너져 내리며 천장에서 거대한 돌덩이가 떨어져 내린다.
그곳에 파묻히며 분신이 말했다.
“죽어라.”
그 말에 드낙이 빙긋 웃었다.
“왜 이렇게 안 나오나, 했다.”
힘이 가지고 있는 자가 타협과 양보를 할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