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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185화 (1,183/1,239)

1185화

깡깡!

넝쿨 분노자는 그저 아가리로 무는 것만 공격 수단이 아니었다.

앞발은 호랑이처럼 두툼하며 훌륭한 둔기였다. 나무로 강철을 때리는 선명한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허나, 강철 전투 인형을 부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250cm에 달하며 크게는 1t까지 나가는 것이 강철 전투 인형이다. 말 그대로 컴퓨터처럼 몸 내부가 텅텅 비어있지 않았고, 알이 꽉 찬 문어처럼 속이 강철로 꽉 차 있었다.

함성도 내뱉지 않는 이들의 싸움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오직 부수는 소리.

오직 파괴하려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치고, 박고 싸우면서 그 어떤 감정이 불러일으켜지지도 않았다. 강철로 빚어진 전투 인형과 넝쿨로 빚어진 인형의 싸움이다.

“끝도 없네!”

다이앤타가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정말로 이 상황을 재밌게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나도 없었다.

수백에 달하는 전투 강철 인형은 통로에 맞춰서 사각진을 갖추고 있었고, 넝쿨 분노자는 그 맨 앞에 서 있는 강철 인형도 고꾸라뜨리지 못했다.

깡!

관절을 철저히 보호하는 ‘무술’을 사용하는 것이 강철 인형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의 몸 중에서도 가장 약한 부위인 ‘관절’을 보호하는 전법을 썼다.

넝쿨 분노자는 넝쿨이었고, 잘 쳐봤자 나무에 불과했다. 결코, 강철을 이길 수는 없었다.

넝쿨 분노자들은 강철에 짓밟혔다.

발 그대로 발로 걷어차이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나뒹굴어야 했다. 체급 차이는 크게 나지 않았지만 체중 차이가 심했다.

무게 차이로 똑같이 부딪쳐도 뒤로 나가떨어지는 건 넝쿨 분노자들이었다.

그들은 가히 수천에 달했으나, 수백이 죽자 뒤로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을 구성했던 넝쿨들이 사라졌기에 통로는 말끔해진 상태다.

“회수하라!”

전투 이후에 다이앤타는 죽은 넝쿨 분노자를 회수하여, 위로 올려 보냈다.

그들의 시체를 받아 든 크레시미르는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초월의 힘이 아직도 내부에 깃들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서로 복원을 하려는 모습입니다. 주문을 사용해서 굴라의 힘을 상쇄하지 않으면 넝쿨 분노자가 다시 살아날 겁니다.”

파편이 된 것조차도 굴라의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복원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곧바로 주문을 사용하여 그들이 복원하려는 것을 꾸준히 저지시켰다.

이를 통해 덩치에 따라서 회복되는 정도를 살피고 기록했다. 또한, 해당 정보를 다른 이들에게도 메시지 마법을 통해서 전달했다.

이 소식을 받은 세파리아스는 옳다구나 싶었다.

“그럼 그렇지. 굴라는 보어리안의 신일 뿐만 아니라, 자연의 신이구나. 그러니, 보어리안에 대한 애착이 적었던 거다.”

관심이 적은데 민감하게 반응할 리가 없었다.

“자연의 신이라… 잠깐…….”

세파리아스는 자신들이 직선 거목 숲을 완전히 박살을 내놓은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굴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건 자연의 신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육식주의자들은 채식을 파는 식당에 쳐들어가서 난동을 피우지 않지만, 채식주의자들은 정육점에서 난동을 피우는 것처럼 모순적인 일이었다.

‘어긋나 있다.’

“이런 판에서는 드낙이 먼저 앞서나갈 것 같은데.”

세파리아스의 눈이 좁아졌다. 그러기 전에 드낙과 미리 협상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세파리아스를 엿 먹이기 위해서 며칠에 한 번은 차원 다리를 오가는 생쇼를 하고 있는 게 드낙이다.

굴라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퍼지면서 세파리아스는 곧바로 드낙과 마주할 수 있었다.

* * *

“웬일?”

“굴라의 신격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가 왔다, 싶어서.”

드낙이 자리에 앉았다. 이스핀이 만들지는 않았지만 이스핀의 이름이 담긴 벌꿀 주를 마셨다.

향이 강하게 퍼지면서 달콤함이 입을 지배했다. 충치로 인해서 고통받을 치아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것이 초월자니까.

“지금 소유권을 정하자? 네 것이라고?”

“지분을 정해놓자는 거다. 차원 다리를 건설한 것은 신제국이 아니냐? 마땅히 지분을 가져야 한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차원 다리를 공사하지 않았다면 이차원에서 부유하던 태양의 인신과 조우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인정. 어느 정도를 원해?”

“신격을 가지면 그건 그대로 신제국의 것이 되겠지. 하지만 만에 하나, 다른 이가 이를 획득하게 된다면 신제국은 그에 마땅한 프리미엄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인정하느냐?”

“그래. 다 좋다. 그래서 뭘 원하는데?”

“신제국의 부흥이 아니겠느냐. 태양 축적의 권능을 배워서 남 좋은 일을 하고 있지 않으냐.”

드낙이 기가 차서 피식 웃었다.

“남 좋은 일이라니. 그거 하나 만드는 데 황금이 5t이 필요해.”

황금 5t짜리 반영구 태양광 발전소 겸업 수급기.

말만 들으면 정말 기본 자금이 많이 들어갈 것 같았다. 지구에도 금은 수십만t이 잠들어 있지만, 그걸로 만든다고 해도 수만 개밖에 못 만든다.

행성 전체의 금으로도 수만 개밖에 못 만드는 셈이다.

상식 이상의 물건이었다. 그런데도 하려는 까닭은 하루 24시간 내내 태양광 발전소를 돌리면서 업도 취득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하루에 반나절도 못 돌리고, 기상 변화에 취약한 기존의 태양광 발전소를 생각하면 몇 배의 이득이었다.

그게 수만 개가 된다면, 시민들은 더는 전기세를 내지 않을 수도 있었다.

‘얼마나 행복할까.’

전기세를 내지 않는 세상이라니.

전기세를 내지 않는 삶은 상상할 수 있어도, 모든 이들이 그런 혜택을 받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환경을 위해서 전기세가 생길지도 몰랐다.

그 미래는 세파리아스도 똑같이 보고 있었다.

“너한테 업을 좀 나눠줄까?”

“필멸자 때 두 개의 봉우리를 가지지 못한 나에게는 의미가 없다.”

세파리아스는 드낙처럼 신과 악마의 씨앗을 가지고 있지를 못했다.

되돌아간다고 하여도 다시 필멸자로 시작해야 했으며, 드낙이 그 과정에 수작질해 놓는다면 세파리아스는 또 다른 세파리아스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리스크를 짊어질 수는 없었다.

결국, 타인은 타인이다.

관계가 변할 뿐이며, 부르는 이름만 달라질 뿐이다. 때로는 가족, 때로는 친구, 때로는 연인으로 변하고 또 변할 뿐이지 그 본질은 타인이다.

드낙과 10년을 함께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10년을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오만이었다.

평생을 약속한 결혼조차도 이혼하는 이들은 사막의 모래알처럼 많았다.

항상 방심해서는 안 된다.

“신격 협정이라고 하자. 먹는 놈이 다른 놈에게 뭐라도 보상을 해주면 되겠지? 신격을 똑 나누어서 거래할 수는 없으니까.”

120억짜리 다이아몬드를 짜갈라서 배분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장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신제국의 1년 세금.”

세파리아스가 딜을 넣었다.

“보험치고는 세다. 좀 적게 할 수는 없어? 반대로 넌 신제국의 1년 세금을 줄 수 있냐?”

“5년 분할로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겠지.”

세파리아스는 당당했다. 이미 모든 계산을 마치고 온 듯했다.

드낙은 궁리를 하다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굴라라는 신은 특별하다. 분명 내가 관심을 가지는 신격을 가지고 있을 터다.’

만약 드낙이 만족할 수준이라면 곧바로 굴라의 신격을 먹고 드낙은 인신으로서의 권좌에 앉으면 된다. 그렇게 된다면 악마이기도, 신이기도 한 초월자가 탄생하게 된다.

“좋다. 그렇게 하자.”

결론을 내리자 세파리아스가 웃었다.

“약속한 거다.”

아무래도 드낙이 추적에 능하기 때문에 굴라의 신격을 먹는다면 드낙이 가져가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찾아도 거래를 해서 돈으로 가져갈 생각이지만.’

세파리아스는 추가적인 신격에 대한 욕망이 없었다.

그 이유는 중립신 때문이다.

‘대신으로 가는 과정에서 다른 신격을 뒤섞는다면 그만큼 신격은 높아지겠지만, 신격의 순수함은 혼탁해진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중립신이 괜히 권능을 하나만 가진 것이 아니다.’

세파리아스는 거기에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아직도 권능을 만들고 있지도 않았다. 혹시 모를 제한에 걸려서 대신이 못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즉, 애초에 세파리아스는 신격을 잡아먹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차근차근 자신에게 신앙을 주는 신제국의 하위 인간들을 통해서 계단식으로 성장할 생각이었다.

“땅! 땅! 땅!”

법원의 망치처럼 소리를 내며 드낙이 서명했다. 이를 서로 나눠 가졌다.

* * *

드낙은 조금 더 본격적으로 나섰다. 세파리아스가 새로운 정보를 내어줬기 때문이다.

태양 차원에서는 뿔 쥐들이 많은 정보에 접촉해 있지 않았고, 숫자도 적었다. 이 때문에 태양 차원에 관한 정보는 신제국이 거의 독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시간이 흐르면 드낙에게 전해지겠지만, 그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다.

“자연의 신이라…….”

드낙이 눈을 빛냈다. 사냥할 맛이 나는 놈이었다. 그는 곧바로 파동으로 변하여 관측을 진행하면서 다이앤타와 크레시미르가 있는 곳에 들어섰다.

“잘하고 있다고 들었다. 전투 강철 인형은 어떻더냐?”

“장단점이 있습니다만, 아주 든든합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기사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보석 뼈 전신 갑주를 입은 기사를 상대로? 어림도 없지.”

드낙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크레시미르는 이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현 테라에서 가장 최신식 장비가 보석 뼈 전신 갑주였고,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 준다.

“아빠!”

다이앤타가 드낙에게 안겼다.

드낙은 자신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딸을 보는 아버지의 표정은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크레시미르와 대조적이긴 했다. 그는 아빠한테 애교를 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둘이서 잘하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라.”

“제가 많이 양보해서 그렇습니다.”

“뭐래.”

세 사람은 서로 잠깐 떠들다가 이내 본론으로 들어갔다.

“심상치 않은 신전을 봤다고. 어떻더냐? 지금 탐색 중이라던데.”

“무작정 침입자를 처리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넝쿨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넝쿨로 만들어진 호랑이인 넝쿨 분노자가 나타나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은 지하 2층에서 내려가는 계단을 찾고 있어요.”

다이앤타가 탐색 현황을 말해 줬다.

“안전하게 차근차근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 보어리안이 있는지 없는지도 살피고 있고, 곧 마법 첨탑을 세우면 넓은 반경에 탐색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혹시 모를 변수를 원천 차단할 수 있게 된다.

“좋아. 내가 딱히 뭐라고 조언을 줄 만한 건 없네.”

드낙이 지하로 내려가자마자 곧바로 조언해 줄 거리가 생겼다.

“굳이 왜 1층 통로를 이렇게 좁게 해두는 거야? 확장시켜. 지금 여기에 20만의 전투 강철 인형이 있는데 그들이 만약 모두 필요할 때가 오면? 전력을 투사해야지.”

사람도 아니었고, 물건이나 다름없었다. 그냥 놔두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일을 시키는 것이 좋았다.

“그게, 아직 마력 자원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아.”

드낙이 작게 소리를 내며 수긍했다.

확실히 차원 다리를 통해서 태양 차원으로 향해야 하는 상황이다. 테라의 자원을 100%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신제국은 마력 자원이 부족한 유명한 국가다.

마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현장을 개선하지 못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막대한 마력 소비가 일어나는 상황이 온다면 크게 곤란해질 터였다.

“대신 차근차근 철통을 받아서 마력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스틸 커맨더와 스틸 챔피언 모두 마력 사용자니까. 그릇만 준비되면 시간이 해결할 수 있지.”

드낙은 1층을 둘러봤다.

특별할 것은 끝에 있는 동상 하나뿐이다.

“초월의 힘도 깃들어 있지 않고, 심플해. 그냥 비밀통로 같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2층을 제법 수색했는데도 계단이 안 나타난다. 이 말이지.”

드낙은 이곳을 좀 더 부숴서라도 비밀을 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가 발을 들어 올렸다.

“……?”

두 사람이 의문을 피워 올림과 동시에 드낙이 벽의 한 부분을 발로 걷어찼다. 벽에 드낙의 발이 박혔다. 그가 발을 빼내고, 확인했다.

제법 깊게 박혀있었지만, 안은 단단히 막혀있었다.

“저희가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닙니다. 지하 1층이 있는 곳은 지금도 찾고 있지만 깔끔합니다.”

“그래? 그럼 여기가 유일한 출입구란 것인데…….”

드낙은 조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납득하고 지하 2층으로 향했다.

지하 2층의 구조는 드낙을 더욱 황당하게 만들었다.

‘무슨 지하 거대 고시촌도 아니고… 이게 뭐람?’

15평의 방들이 똑같은 구조로 나열이 되어있는 거대한 지하 2층은 드낙의 정신을 어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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