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4화
* * *
철컹철컹!
소아성애자들이 감옥에 가는 소리를 내며 강철 전투 인형이 진격했다. 그들은 새벽에 출발해서 새벽에 예상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폐허잖아.”
“석재로 이루어진 곳이다. 보어리안의 것은 아니다.”
보어리안은 흙을 굽거나, 나무 혹은 점토를 사용해서 집을 짓는다. 그것도 아니라면 대충 나무 위에 나무를 덧대듯이 걸쳐서 적당히 살아간다.
그런 놈들을 많이 본 건 아니다. 하지만 보고서를 통해서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경계를 설 이들을 보내라.”
군대가 둘러 나누어져서 폐허 밖을 점령했다. 높이가 그리 높지는 않은 언덕에 주둔하고, 철봉을 접합시켜서 길게 만들어 깃발을 크게 내걸었다.
깃발의 크기는 사람보다도 컸다.
멀리서도 이를 쉽게 알아볼 정도였다.
곳곳에 깃발이 내걸려야 보어리안들이 함부로 오지 않는다. 이 인근의 보어리안은 강철 전투 인형의 무서움을 잘 모르지만, 그들이 거대한 군세를 이루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식량이 필요 없고, 마력만으로 구동한다는 것도 무서운 점 중 하나였다.
전투 강철 인형은 점심시간을 보장해 주지 않아도 되었으며, 잠도 자지 않았다. 야전은 오히려 그들이 좋아하는 전투였다.
“많이 무너졌는데.”
“작은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겠지. 전투 강철 인형을 운영하는 데 조심해라. 지하 공간이 있어서 땅이 무너질 수 있다.”
오래된 곳이라 무거운 체중에 땅이 무너질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진형이 헐거워졌다.
석재를 쓴 거대한 도시는 폐허가 되기 전에는 상당한 문화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였다.
“인신들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는데.”
그럴듯한 추론이었다.
“조금 더 공을 들인 곳 같기도 하고. 도시라고 하기에는 작아.”
“특수한 시설로 썼다는 이야긴데. 지나칠 정도로 오래됐어.”
“오래전에 지어진 거겠지.”
연식이 오래된 상태에서 침공을 받아서 폐허가 된 것이다.
“건물 잔해를 치워라.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야 한다.”
적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지상의 건물 잔해를 깔끔하게 치우고 이곳의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부서진 비석을 확인했습니다.”
“헤지긴 했지만 그림도 발견했습니다.”
스틸 커맨더와 스틸 챔피언이 쓸 만한 것들을 모아오기 시작했다.
작업은 전투 강철 인형이 했지만, 감별은 그들이 해야만 했다.
“인신들의 모습은 없는데.”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보어리안이 짓지 않았다면 인간들이 지었을 것이고, 그들이 숭배하는 것은 주피터를 필두로 한 라그랑지언 소속의 인신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림이 너무 오래된 것으로 보여. 점토 덕분에 멀쩡해 보이는 거지…….”
다이앤타는 이곳이 아주 오래된 곳이라고 보고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 봐야 한다는 거네.”
그곳에는 초월의 힘이 관측되고 있었다.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지하 출입로는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무식하게 땅을 팔 수는 없었다. 지반이 무너지고, 지하 공간이 쑥대밭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건축물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주변을 벌목하고, 기둥으로 삼은 통나무를 수급해야겠어.”
다이앤타의 의견에 크레시미르도 동조했다.
“보어리안을 대비해서 그게 좋겠다.”
며칠을 준비하며 수색한 끝에 그들은 외곽에서 지하 출입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본래 입구는 아닌 것 같아. 원래의 입구는 봉쇄했겠지.”
이곳을 침략한 이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무너뜨렸을 것 같았다.
“내가 들어갈래. 오라버니는 밖을 봐줘.”
“내가 왜? 이건 정말 흥미로운 일이야. 난 내가 들어가야 한다고 봐.”
“누군가는 밖을 지켜야 해.”
“경험이 적은 내 동생이 이번 기회로 삼아서 주둔하는 군대를 잘 다스리는 노하우를 얻었으면 하는데.”
크레시미르의 말에도 다이앤타는 계단을 하나 내려갔다. 보여주기식이다.
“그래, 그래라.”
크레시미르는 여동생의 고집을 보며 깔끔하게 포기했다. 이런 거로 감정싸움을 하고 싶지 않은 탓도 있었다.
다이앤타는 악마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감정에 휘둘릴 때가 많았다.
크레시미르가 군대를 맡았고, 다이앤타는 스틸 커맨더 하나. 스틸 챔피언 넷. 전투 강철 인형 수백을 이끌었다.
통로가 좁았기에 길게 늘어섰으며, 만약을 대비하여 나무 기둥으로 지반을 받치고 진행했다. 종종 통로 전체를 개수(改修)할 정도로 엉망일 때도 있었다.
물이 똑똑 떨어지는 걸 본 다이앤타의 눈이 아래로 향했다.
물기 때문에 지반이 크게 무너져 내렸으며,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바닥의 지하에 마법을 써봤지만, 그 깊이를 알 수는 없었다.
적어도 30m는 되어 보였으며, 저 밑바닥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바닥을 깔고, 지나갔다.
통로의 끝에는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다이앤타의 시선이 그 옆에 있는 계단으로 향했다. 아래로 향하는 계단에는 넝쿨이 잔뜩 있었다.
천장, 벽, 바닥 모든 것을 뒤덮고 동상마저도 뒤덮고 있었다.
다이앤타가 거칠게 동상의 넝쿨을 뜯어냈다.
동상의 이목구비는 닳아서 사라져 있었다. 다만 인간의 형태라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외에 외형은 뭉툭하기 그지없었다.
“질 좋은 석재는 아니야.”
다이앤타가 동상을 손으로 만졌다.
거칠고, 단단하다. 이걸 동상으로 만들려면 수천 번, 수만 번을 정으로 깎아야 한다. 그만큼 무식하리만치 단단한 석재를 썼고, 그 덕에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넝쿨은 왜 1층 통로의 입구까지는 오지 않았을까?”
동상만 뒤덮고 지상층으로 뻗어나가지 않은 것도 신기했다. 초월의 힘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햇빛 하나 없는데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넝쿨은 기이했다.
“넝쿨의 종류도 다르다.”
세 종류가 뒤섞여 있었다.
하나는 얇았고, 아주 가늘었다. 그것은 가장 벽과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이 넝쿨을 덮고 있는 넝쿨이 있었다. 짙은 초록색이었으며 굵기는 사람 새끼손가락만 했다.
그 넝쿨과 사람 팔뚝만 하거나 허벅지만 한 굵기의 넝쿨이 있었다.
크기가 큰 넝쿨은 그리 많지 않았다.
“찍찍.”
다이앤타가 쥐 소리에 흠칫했다. 자연스럽게 천장부터 훑어봤다.
그림자 이동술을 사용하는 뿔 쥐들은 천장으로 이동하는 걸 좋아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천장에 향하고 있지 않아서다.
‘그럴 리가.’
뿔 쥐가 여기에 있을 리 없었다. 두리번거리는 다이앤타는 손전등의 빛으로 쥐를 찾을 수 있었다.
쥐들은 아주 굵직한 넝쿨을 뜯어 먹고 있었다. 어찌나 질긴지 힘을 합쳐서 한 곳을 공략하고 있었다.
침을 바르거나 계속 물고 늘어져서 기어코 뜯어내서 먹고 있는 모습은 생명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이앤타는 반마(半魔)의 힘으로 주문을 읊어서 쥐들을 죽였다.
그 배를 갈라서 확인해 봤지만, 내장 속에는 넝쿨만 잔뜩 들어있을 뿐이었고, 가장 큰 크기를 지닌 넝쿨만 있었다.
‘거대한 넝쿨은 식용으로 쓸 수 있는 건가?’
“넝쿨을 캐서 밖에 가져다줘라.”
전투 강철 인형 열 명을 가려 뽑아 밖으로 보냈다. 그다음에 다이앤타는 1층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공사를 진행했으며, 아티팩트를 통해서 조명을 달고 방어 마법도 여러 곳에 배치했다.
혹시 몰랐다.
이곳에 보어리안이 아니라 인간이 살고 있다면 전투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지하 공간의 공간 자체가 붕괴할 수 있었다.
고립 상태에서 죽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체된다. 다이앤타는 그게 싫었다.
1층을 충분히 만족스럽게 보강하고, 그다음 층으로 내려갔다.
계단은 넝쿨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어떤 흔적도 없었다. 그저 설치류 같은 동물들이 큰 넝쿨을 먹은 흔적뿐이다.
“분명 이것들을 먹을 포식자가 있을 텐데.”
포식자가 없다면 쥐들의 숫자가 이렇게 적을 리가 없었다.
드낙이 인구수에 집착했던 만큼 그의 자식인 다이앤타 또한 인구에 관한 많은 공부를 했다.
분명 포식자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없었다면 큰 넝쿨은 이미 싹 다 먹혔을 터였다.
지하 2층은 방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방이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방들이었다. 텅텅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툭 튀어나와 있는 석제 침대만 있었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넝쿨로 가득했다.
그런 방들이 수백 개, 수천 개가 존재했다.
방 하나의 크기는 15평 남짓했기에 지하 공간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알 수 있었다.
그 흔적들을 살피면서 다이앤타는 시체가 가득한 곳에 들어섰다.
바사삭!
점점 맛대가리 없게 얇아지며 ‘감자 기술’이라고 허세를 부리는 감자 칩 회사들의 감자 칩처럼 사라지고 있는 뼈를 볼 수 있었다.
‘무슨 뼈가 이렇게 많지.’
오싹했다. 당장에라도 언데드가 모습을 드러낼 것 같았다.
뼈들은 모두 설치류의 것들이었다. 작은 두개골이 다이앤타의 눈에 밟혔다.
그중에 몇몇은 누가 씹은 것처럼 부서져 있기도 했다.
‘포식의 흔적이다.’
고민하던 다이앤타는 큰 넝쿨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내 그녀가 명령을 내렸다.
“큰 넝쿨을 수확해라. 부수고, 자르고, 죽여라.”
“예!”
스틸 커맨더와 스틸 챔피언이 크게 답하며 전투 강철 인형을 움직였다.
“스틸 커맨더. 너는 주변을 살펴라.”
“예!”
전투 강철 인형이 닥치는 대로 큰 넝쿨을 수확하여 한 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그 작업이 1시간을 넘었을 때, 다이앤타는 촉이 왔다.
‘넝쿨이 움직인다.’
“다이앤타 로드!”
“나도 안다! 모여라!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작업하던 강철 인형이 모였다. 250cm에 달하는 거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천장에 머리가 닿을락 말락 했다.
사박. 사박. 꽈아아악.
넝쿨이 알아서 움직였다. 세 개의 넝쿨은 서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마치 신경계와 근섬유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묶이며 하나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짐승이다.
날렵하고, 귀가 뾰족하다.
고양이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지만, 호랑이처럼 크다. 몸길이가 3m에 달했다.
넝쿨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쉽게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놈. 아니, 놈들은 울부짖음도 없이 모습을 드러냈고, 조명 속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빠르게 그 숫자는 증가했다.
‘넝쿨이 병력이 되어간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아주 효율적이기도 했다.
자연이란 너무 쉽게 자신의 세력을 넓힌다. 인간이 행성의 주종족이 되었음에도 아직도 식물은 압도적인 개체 수를 가지고 있었다.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통로의 끝에서 끝으로 조명을 설치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놈들이 존재했다.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서 자신의 늠름한 모습을 뽐내기라도 하는 듯이 개체 수가 갑자기 많아졌다.
놈들은 적정 수준이 되자 그대로 달려들었다.
도약했고, 벽을 박차 다시 궤도를 한 번 바꾸며 날렵하게 원형진 속으로 들어왔다.
무기가 허공을 갈랐다.
“재빠르다!”
다이앤타가 감탄했다. 그녀를 정확하게 노리고 덤빌 정도로 도약력이 높았다.
넝쿨을 부수면 나왔기에 다이앤타는 저 넝쿨 호랑이를 ‘넝쿨 분노자(Vine Avenger)’라 이름 붙였다.
넝쿨 분노자는 앞발 중 한 발로 천장을 건드리며 다시 한번 궤도를 수정하며 더욱 거리를 내뻗어 다이앤타가 있는 중심부까지 들어왔다.
콰드득!
다이앤타가 양손으로 쥔 롱소드가 정확하게 발부터 시작해서 어깨를 잘라냈다.
넝쿨 분노자의 돌격력이 대단해서 그 덕을 봤다. 상대가 목숨을 각오하고 돌진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깔끔하게 갈라내지는 못했을 터였다.
우드득!
나무 획득하는 소리를 내며 넝쿨 분노자의 떨어진 팔이 넝쿨로 변하며 산 낙지처럼 꿈틀거리며 다시 엮어 들어갔다.
다이앤타가 이를 잘라내고 롱소드를 휘둘렀다.
넝쿨 분노자가 바퀴벌레처럼 몸을 낮췄다. 지나칠 정도로 납작했다.
‘물도 아니고! 맙소사!’
액체라고 생각할 정도로 납작 엎드렸다.
다이앤타가 최대한 검을 아래로 움직였지만, 살짝 아쉬웠다.
카가가각……!
롱소드가 이를 긁고 지나가는 사이에 넝쿨 분노자가 아가리를 벌리며 그대로 달려들었다.
다이앤타의 팔이 물릴 뻔했지만, 그녀의 판단은 더욱 재빨랐다. 그대로 주먹을 쥐고, 아가리에 자신의 팔을 욱여넣으면서 놈을 바닥에 냅다 꽂아버렸다.
쾅!
석재가 부서지며, 충격이 넝쿨 분노자의 전신을 흔들었다. 충격에 넝쿨이 흐트러지고, 육체의 구성이 무너졌다. 빠르게 회복하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이앤타의 화염 주문으로 전신이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