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2화
31. 굴라 (1)
“이게 뭐지?”
“아아, 이건 사탕이라는 것이다. 달콤하지.”
“뭐라고 지껄이는 것이냐!”
보어리안과 뿔 쥐가 사탕을 놓고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뿔 쥐는 움냠냠 소리를 냈다. 온몸에 털이 난 덕에 귀여워 보였지만, 보어리안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상대는 자신을 포박하고 이곳까지 끌고 온 악인이다.
결국 뿔 쥐가 억지로 먹이자 보어리안이 뱉으려다가 다시 혀로 사탕을 꽁꽁 싸매듯이 가져갔다.
“흐흐흐! 어떠냐! 단맛의 파괴력이!”
그 외침에도 보어리안은 대답하지 않고 괜히 고개만 돌렸다.
최대한 회유를 하면서 뿔 쥐는 보어리안의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
“의자.”
“의자.”
서로 언어를 맞춰나갔다. 이 작업이 완료되어야지만 보어리안을 회유할 수 있었다.
그들은 덩치가 대단했고, 호전적이었다. 오크가 더 강하긴 하지만 보어리안도 충분한 종족 값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지하 연합이 보기에는 그러했다.
고블린까지 받아들인 것이 지하 연합이다.
‘고블린은 내정으로 돌리고, 보어리안을 전투 요원으로 쓴다면, 지하 연합은 더 완벽한 구색을 갖추게 된다.’
손재주가 좋고 덩치가 작아서 유지비도 덜 나가는 고블린은 내정에 투입했을 때 가장 극대화가 된다.
당장 다종족 연합의 메이드와 집사는 모두 고블린들이 꿰차고 있었다.
내가 하면 귀찮으면서도 희생을 해야 하며, 모든 이 세상의 가장 힘든 일을 하는 것 같은 설거지와 빨래, 청소를 고블린에게 맡길 수 있었다.
일반 가정에도 고블린 메이드가 들어갈 정도로 대흥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돈의 일부는 지하 연합의 세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섬뜩하면서도 음습한 지하 연합의 계략이다.
그런 짓을 더 많이 하게 된다면 지하 연합은 결코 무너질 수가 없었다.
‘드워프들이 우주로 먼저 향했지만 뿔 쥐라고 우주 정거장을 짓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지.’
다른 종족이 하는 걸 자신들도 하려고 노력하고 있기도 했다.
‘모두 우리들의 살아 숨 쉬는 신을 위하여.’
오늘도 뿔 쥐는 먹을 것을 보어리안에게 내어주며 그들의 언어를 배웠다.
언어를 최대한 배움과 동시에 그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문장’ 또한 보어리안 포로를 통해서 획득했다.
유럽 여행 500문장과 같이 포로 회유 500문장 식으로 필요한 문장만 따기 시작했다.
보어리안에게서 단어와 문법을 배웠고, 기록했기 때문에 비교, 대조하면서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감별했다.
보어리안을 무조건 믿을 수는 없었다.
호전적이고, 닥치고 돌격밖에 못 하지만 보어리안은 분명 사회를 이루고 있었고, 진짜 멍청하지는 않았다. 거짓말을 할 정도의 지능은 가지고 있었다.
그게 단어와 문법을 취득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 과정을 하는 데에만 3개월이 걸렸다.
보어리안 포로 중에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대는 놈이 있는가 하면, 어떤 건 진실, 어떤 건 거짓을 말하는 놈도 있어서다.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지고 확신을 하고 나서야 완성할 수 있었다.
지하 연합은 본격적으로 보어리안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반갑다. 우리는 지하 연합 소속의 뿔 쥐들이다. 우리는 다양한 종족이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며, 카드놀이를 할 수 있는 휴식 시간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포로가 된 채로 닷새 동안 조용히 지내다가 대면하게 된 보어리안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카드놀이?”
“지하 연합의 가장 큰 즐길 거리이다. 카드놀이를 싫어하는 놈은 없지. 휴식 시간은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께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으며…….”
뿔 쥐들은 지하 연합의 좋은 점을 말해 줬다. 그러고 나서 보어리안에게 지하 연합에 투신하라는 말을 했다.
“투신하시오. 지하 연합에 소속되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시오. 다른 포로들 또한 절차를 밟고 있소.”
진중한 어투로 말했다. 보어리안들의 지배 계층이 사용하는 어투였다.
보어리안의 세계는 정말로 끔찍했다. 언어마저도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있는가 하면 사용 못 하는 언어도 있었다. 소위 있는 것들의 단어나 문법이 존재했다.
그 불합리함을 일부러 꼬집은 것이다.
“으음…….”
“병사로 일하게 될 것이며, 매달 돈을 지급해 주겠다.”
뿔 쥐가 보어리안에게 은화 한 닢을 보여줬다. 반짝반짝 광을 낸 은화였다.
보어리안이 은화를 집어 들었다. 그 눈동자에 은화가 담겼다. 탐욕스러운 보어리안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 *
지하 연합은 보어리안 포로들을 천천히 회유했으며, 빠르게 보어리안 포로의 숫자를 늘려나갔다.
무기력하게 감옥에 갇혀 있는 것만으로도 보어리안들은 답답해했다. 3일만 지나도 마음이 변할 정도였다.
“동지! 날래날래 넘어오라우! 지하 연합의 돈맛을 맛보라우!”
회유된 보어리안은 적극적으로 보어리안 포로를 지하 연합으로 끌어들였다. 은화를 보여주며 매달 이렇게 받을 수 있으며 이곳에서 살아가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 수 있다고 말했다.
“필요하다면 가족도 빼 오면 된다.”
그들은 거침없이 자신들의 동족을 배신했다.
‘구심점이 없으니까, 쉽지.’
기껏해야 부락이다. 가족도 데려올 수 있었다. 그리고 보어리안 포로는 전투를 경험했기에 더욱 지하 연합에 속하고 싶어 했다.
특히 붉은 실크를 두른 보어리안의 세련됨에 매료됐다.
“거기로 넘어가면 그런 보들보들한 가죽을 주는가?”
“아아, 이건 실크라는 것이다. 감촉이 정말 좋지. 이곳으로 넘어오면 기본으로 지급된다고. 친구.”
수많은 혜택이 입 밖으로 나왔다. 그건 부락에서 피지배층으로 살아가던 보어리안에게는 특히나 더 대단해 보였다.
우월한 문화. 월등한 물건.
그것만으로도 능히 그들을 회유할 수 있었다. 인간들은 멧돼지 머리를 지니고 온몸에 털이 많은 보어리안을 인간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도축할 괴물로 여기고 있었지만 지하 연합은 아니었다.
날카로운 도끼를 선물해 주기도 했다. 이글거리는 화염이 득실거리는 마법 도끼는 보어리안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전사지만 땅을 파야 한다. 그게 지하 연합의 전사다!”
“허엉? 전사인 내가… 땅을 파야 한다고? 그건 짐승이잖아!”
“그게 전사다! 어깨를 당당하게 펴라!”
그렇게 회유된 보어리안은 먼저 지하 공간을 넓히는 데 동원됐다. 그곳에는 뿔 쥐부터 고블린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현장에서 무구를 수리할 크놀들 중에서도 차출된 이들이 있었다.
“장인들까지 땅을 판다고?”
“그래. 이게 지하 연합의 문제 중 하나지. 우리는 지하에 자리를 마련하기 때문에 안전하기도 하지만 땅을 넓히려면 땅을 파야 하거든. 지상과는 달라.”
고블린 주술사가 주술을 통해서 흙을 덜어내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나뭇잎들을 흙으로 덮고, 빼내고 있었다.
그 광경을 구경하는 것도 잠깐, 보어리안들도 삽질을 시작했다.
“하하하!”
워낙 활력이 넘치는 이들이라 삽질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웃게 됐다. 육체를 사용하는 것. 그 자체가 즐거웠다.
그뿐만이 아니라 언제든지 얼음물을 마실 수 있었다.
와드득!
얼음을 깨 먹으면 목도 축일 수 있었고 재미도 있었다. 종종 온몸에 물을 뒤집어쓰고 일을 하기도 했다. 그 누구도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일만 하면 그만이고, 안전상의 이유가 아니라면 그 외의 일은 모두 허용되는 편이었다.
나중에 가서는 입에 사탕을 물고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지하 연합은 착실하게 태양 차원의 지하를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보어리안 토착 종족을 회유하여 자신들의 시민으로 삼았다.
* * *
신제국에서는 범죄자를 끌고 와서 요새 밖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범죄자들이 하는 일은 당연히 개간이었다.
“일해라! 범죄자들아!”
그들은 새벽 일찍부터 일을 시작했다.
“X발!”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범죄자들은 착실하게 일터로 나가는 길에 올랐다. 마차를 타고, 움직였다.
“으으, X발. X발!”
그들은 하나같이 극도의 스트레스에 쌓여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이 자는 것. 지내는 곳. 먹는 것. 그 모든 것에 비용이 책정되고 있었다.
화장실을 1회 이용하는 것에도 동화 1닢을 써야 했다.
‘개 같다.’
신제국은 범죄자 노동력을 착취하는 데 눈을 벌겋게 뜨고 있었다.
위대한 대한민국은 범죄자들이 아프다고 징징대면 약도 공짜로 내어준다. 범죄자 인권을 위해서였다.
그 돈은 모두 국민들이 짊어져야 한다.
반면 신제국의 범죄자들은 자기가 아프면 자기 돈을 내야 했다. 돈이 없다면 나라에게 빚을 지게 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개간에 참여해야만 했다. 한 시간에 동화 1닢을 주는 개간일은 고되지만 그래도 나쁜 돈벌이 수단은 아니었다.
하루에 10시간을 하면 동화 10닢을 주는 셈이다.
나쁜 거래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돈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정말로 하루 10시간 노동 환경에 처해 있었다.
죽는 이들이 나올 정도로 막노동 10시간은 끔찍했다. 식사 시간이 1시간 30분이 아니었다면 벌써 많이들 죽어 나갔을 것이다.
그들은 작업이 끝날 때마다 밥을 먹고 곯아떨어졌다.
그 한 시간 남짓의 수면은 범죄자들의 생명을 확실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개간 사업과 동시에 토양에 대한 정보가 세파리아스에게 들어왔다.
“특이한 점이 있다?”
“예. 비옥하다는 건 똑같지만 땅 깊은 곳까지 고루 비옥합니다. 또 땅마다 비옥도가 달라야 하는데, 균일합니다.”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마치 누가 계산한 것처럼 땅이 비옥하다, 라…….”
의미심장했다.
“굴라가 농업의 신인가? 그건 아닌데.”
보어리안은 농업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땅이 농사를 짓기에 좋았다. 생명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굳이 농업이 아니라도 살 수 있을 정도로 땅이 좋다.
신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기에는 너무 균일하다.
‘주피터 같은 기존의 인신들이 했다기에는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이 차원에 없었다.’
그사이에 식물과 곤충들이 자라나고 죽기를 반복하며 토양의 상태를 변화시켰을 터였다. 그러니 균일할 수가 없었다.
꾸준히 관리를 해왔다는 뜻이었다.
“굴라가 틀림없다. 하지만 왜?”
세파리아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토양을 마법, 주술, 과학기술을 통해서 면밀하게 조사해라. 태양 차원의 토양을 테라로 가져가는 것은 엄격하게 금하겠다.”
“예!”
만약을 대비함과 동시에 굴라에 대한 의심이 더욱 꽃 피워졌다.
개간한 곳에서는 밀을 재배했다. 빵을 굽기 위해서였다.
목축지를 만들기도 했다. 땅이 비옥해서 가축을 키우기에도 좋았다. 또 군대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를 가축이 먹게 하여 효율적으로 사룟값을 아끼는 것도 가능했다.
신제국은 이를 통해서 유통에 대한 부담을 덜 생각을 했다.
범죄자들만 노동에 동원된 건 아니었다. 나름 전문가들과 기술자들도 곳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전문인력이 동원된 곳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도로 공사였다.
건설적인 일도 했지만, 보어리안을 쳐 죽이는 것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식량을 건네주고, 적들의 전투 가능한 인력을 모두 약탈에 투입하도록 유도한 다음 덫을 깔고, 회전으로 한 방에 싹 죽이는 전술로 보어리안 부락을 멸망시키기 시작했다.
이 최전선에 합류한 상위국의 스틸 로드(Steel Lord)들도 본인들이 맡은 바 임무를 다했다.
보어리안들은 자신과 덩치가 비슷하면서도 체중은 몇 배에 달하는 전투 강철 인형들 앞에서 처참하게 깨져야 했다.
그 1년의 과정 동안 굴라는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찾아봐야겠다.”
드낙이 나서려고 했지만 세파리아스가 이를 말렸다.
“적의 함정일 수 있다. 주피터도 그 덫에 걸려서 큰 피해를 입었는지도 모르지. 지금은 확장하면서 굴라에게 신앙을 바치고 있는 보어리안을 줄여나가야 한다.”
초월자를 죽이거나 속박하는 거대한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에 드낙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좋다. 상대가 이렇게까지 숨어있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우리를 두려워하거나 ‘덫’을 준비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있는 보어리안을 죽이고, 회유하며 굴라가 아닌 다른 신을 믿게 해주겠다.”
드낙이 본격적으로 적 필멸자를 죽이거나 회유할 생각을 가졌다. 그건 태양 차원에 살아가는 보어리안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세파리아스도 막지 않았다.
“빨리하면 할수록 좋겠지. 테라의 악마 침공이 머지않았으니까.”
태양 차원을 정상화하면 할수록 테라는 더 많은 힘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굴라. 놈만 제거하면 모든 게 잘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