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178화 (1,176/1,239)

1178화

30. 덫

“뭐 하러 여기까지 왔느냐?”

“테라는 안정화가 잘 되어있더라고.”

“부패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회가 존재하면 부패가 존재한다. 그것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소위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군인들조차도 생계형 비리를 저지르고, 밥 한 끼 먹기 위해서 수백억 비리를 저지르기도 한다.

밥 한 끼 먹는 게 그만큼 힘들다.

그게 부패라는 놈이다.

굶주림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 목을 치기 전까지.

그 목구멍이 돈을 삼키는 게 아니라 피를 토하게 될 때까지 계속 먹게 되는 게 부패한 인간이었다. 이를 막으려면 끝없는 감시만이 답이다.

“자주 감시를 왜 해? 욕먹고 싶어서 안달이 났어? 이런 건 주기마다 하는 거야.”

“그 주기가 10년은 아니겠지?”

그 말에 드낙이 웃었다.

“해묵은 부패 관리가 많긴 많더라. 그 덕에 세수도 많이 들어왔잖아?”

다종족 연합에게 있어서 부패한 인간은 그저 돈주머니에 지나지 않았다.

드낙이 잡지 못하는 건 없다. 그는 비밀창고마저도 ‘촉’을 느끼고 찾아낸다. 그 어떤 단서도 없이 ‘추적’해 버리는 것이다.

드낙은 다른 이들과는 현격히 다른, 신을 초월할 정도로 사냥꾼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중립신이 부른 용병이기에 쓰고 버릴 정도로 칼날이 잘 버려진 존재가 드낙이었다.

“전쟁에 참전할 것이냐? 너 혼자?”

“그래.”

“너 좋아하는 필멸자들이 가만히 둘까?”

“이미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해놨다. 신제국을 위해서 지하 연합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아니, 애초에 내가 판단할 이유가 없지. 난 권력을 이양했고, 그 권력을 쓰는 건 그치들 마음대로니까.”

“그런데도 의견을 피력했다?”

“내 생각을 알릴 필요는 있으니까.”

세파리아스는 그 대화 속에서 드낙이 홀로 우뚝 선 것을 느꼈다.

“혼자서 되겠느냐?”

“그래. 나 혼자서 너를 도와주겠다.”

그 말에 세파리아스는 조금 마음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상대 초월자에 대한 정보는 아직 이름뿐이다.”

“자중하도록 하지. 먼저, 이 세계에 대한 정보를 모아볼까?”

드낙이 세파리아스에게 묻자, 세파리아스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자극할 필요는 없다. 짐승과 야만과 가장 관계되는 놈들이다. 들킬 수 있다.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때…….”

드낙이 손을 들어 올리며 세파리아스의 말을 끊었다.

“내가 봤을 때, 보어리안의 결집력은 약하다. 사회가 아직 부락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거기에 그들은 지금 크게 방심하고 있지.”

“뭘 말하고 싶은 것이냐?”

드낙이 주먹을 들어 올리고 꽉 쥐었다.

“구심점(求心點). 사회를, 국가를, 군대를 쉽게 격파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구심점을 부수는 일이다. 지금 보어리안의 구심점은 뭐냐?”

부락을 이끄는 족장인가? 맞다. 하지만 그건 보어리안 종족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 부락 하나만 대변할 수 있고, 부락 하나만 이끌 수 있는 작은 구심점에 불과하다.

그런 구심점은 드낙과 세파리아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굴라.”

“보어리안의 신이다. 놈만 죽이면 보어리안은 애초에 모일 수가 없다. 더 많은 필멸자를 살리는 길이다.”

굴라를 끌어들이자는 소리였다.

“놈을 찾아가는 건 할 수 없다.”

드낙과 세파리아스 홀로 밖에 나가서 굴라를 찾아내서 죽이는 것도 가능하지만 리스크가 있었다.

이 세상은 야만적이지만 초월적이다.

‘방심하면 안 된다.’

초월자는 무적이 아니다. 세파리아스와 드낙은 충분히, 말도 안 되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무적은 아니었다.

변수는 항상 존재했고, 현실은 게임처럼 쉽게 능력치를 볼 수 없었다.

수치화를 하려면 수학의 발전과 동시에 정보가 쌓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권총의 위력이 450J이라고 수치화가 되어있지만, 정확히 그게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 체감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 굴라를 찾아가서 죽이는 건 추천하는 방법이 아니다.

굴라는 짐승인 보어리안이라는 생명체를 거느린 신이다. 짐승은 송곳니가 있게 마련이다.

“그 송곳니가 무엇인지 알아야 승리할 수 있다.”

잔인한 말이지만 필멸자가 죽으면서 이를 알아내야 했다. 그전까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게 중요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최대한 많은 물자를 준비해서 죽는 이들이 없게 해야 해.”

드낙의 말에 세파리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보급품은 모두 경매를 통해서 최저가에 낙찰받은 이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만드는 것조차도 그랬다. 가장 싸게, 가장 많은 숫자에게 쉽게 보급하는 게 뭣보다 중요하다.

현실적인 문제였기에, 해결하기 쉽지 않았다. 그저 끝없이 개발하며 경제가 발전하기를 기대할 뿐이다.

같은 1%라도 1조와 1,000조의 1%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보어리안과의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들었는데.”

“밖으로 팽창하고 있으니까. 그쪽 부락과 부딪치고 있다. 승리를 거두고 있지는 않지.”

뜻밖의 일이었다.

“신제국이 패배하고 있다고?”

“그래.”

세파리아스가 미소를 띤 채로 말했다. 이에 드낙은 그 패배가 의도한 것임을 알게 됐다.

“일부로 패배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언제 패배하고 있다고 했느냐? 승리를 거두고 있지 않다고 했지.”

“싸우지 않고, 부딪힐 것 같으면 물러난다는 소리야?”

세파리아스가 긍정했다.

“말을 좀 배배 꼬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봐.”

귀족의 화법은 개 같았다.

“야만인을 상대하는 방법은 적들에게 자신감을 부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니 마주하면 도망치는 것이다. 이를 반복하다 보면 상대가 아무리 많아도 적은 달려들게 마련이지.”

“달달한 꿀이라도 발라놨나? 그렇게 쉽게 달려들게.”

“도망칠 때마다 적당한 보급품을 놔뒀다. 최근에는 식량과 옷만 두는 편이다.”

보어리안은 농사를 짓지 않는 미친놈들이었고, 이 때문에 식량과 양질의 옷은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약탈품으로 여겨졌다.

신제국 놈들은 자신들을 마주하면 도망치기 때문에 신제국에게 식량을 의존하려는 모습마저도 보이고 있었다.

적에게 식량 의존을 한다는 것이 황당하지만 정말로 그러했다.

그만큼 신제국은 보어리안에게 당근을 주면서 그들에게 자신감을 부여하고 있었고, 더 많은 보어리안이 이에 현혹되면서 자연스럽게 거대한 전투가 벌어질 조짐을 보였다.

이때 딱 맞춰서 드낙이 등장한 것이다.

“행성의 크기로 봐서는 여기는 한 부분에 불과하다. 굴라는 지금까지 제대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때 이 주변을 확실하게 털어서 큰 업(業)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낸다.”

죽은 보어리안은 굴라에게로 갈 것이고, 죽은 다종족 연합은 세파리아스와 드낙에게로 향할 것이다.

그 여파는 굴라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것이고 그때가 되면 굴라는 움직일 것이다.

“멍청하게 바로 우리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서 힘자랑한다면 죽이면 될 일이다.”

그것으로 태양 해방 전쟁의 가장 큰 변수는 사라진다.

“신중하게 접근한다면, 놈의 권능과 능력을 살피고 난 다음에 사냥을 시작한다.”

어느 쪽이든 굴라는 드낙의 존재를 모른 채로 덤비게 될 것이다. 세파리아스는 자신의 존재감을 숨기기 어려웠다.

“나타나지 않는다면 계속 확장하면 되겠지.”

“보어리안은 노예로 못 만들 정도로 호전적이긴 하지만, 땅은 아니니까.”

신세계가 있는 것만으로도 다종족 연합의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 이들을 데리고 와서 이곳에 자리를 잡게 해서 성공 ‘당하게’ 만든다면 그것 또한 이로운 일이었다.

‘자기 집만 있어도 이곳에 올 이들은 많다.’

30년 동안 아파트 대출을 갚는 평범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모두 ‘내 집’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돈을 번 이들은 재산을 청산하고 다시 다종족 연합의 중산층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식 교육은 태양 차원과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골렘도 개발하고 있다.”

전력과 컴퓨터 시스템 그리고 마법.

이 조합을 통해서 드낙은 야만적이지만 농업 골렘과 목축 골렘을 만들었다. 그것도 이제 10년이 지나면서 개량을 거치며 발전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소형 골렘’이 인기다. 무게가 적을수록 마력 소비량이 적기 때문이다.

밭일하는 데 무조건 힘이 들어가는 건 아니다.

단순히 잡초만 매일 같이 제거하고, 벌레만 포획해도 소형 골렘은 그 값어치를 해낸다.

설거지, 세탁, 빨래 말리기, 등등. 가사 도우미처럼, 농업 또한 힘이 들지 않지만 귀찮은 일을 해결해 주는 소형 골렘은 특히나 미래가 밝았다.

‘그런 소형 골렘까지 투입될 정도로 상황이 안정화된다면, 태양 차원은 막강한 자원 행성이 될 것이다.’

보어리안을 회유할 수 있다면 더 좋을 터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굴라를 죽이고, 굴라를 믿는 보어리안을 죽이고 죽여서 남은 보어리안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게 드낙이 바라는 해방 전쟁이다.

반면 세파리아스는 보어리안을 회유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모조리 죽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이 야만적인 세상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인간들이다.

그 사람들을 구하고, 굴라를 죽여 이 차원을 해방시키고, 인간이 지배하는 차원을 만드는 것이 세파리아스의 목적이었다.

서로가 목적이 달랐다.

드낙은 신제국 외에 다른 이들을 통해서 이를 해결할 생각을 가졌다.

‘보어리안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종족이다.’

그런 종족이 지하 연합에 추가된다면 분명 뜻깊은 곳에 사용될 터다.

고블린이나 크놀처럼 보어리안도 충분히 드낙의 한 축이 될 수 있었다.

* * *

다종족 연합은 드낙이 참전했다는 소식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신제국이 함구령을 내렸고, 드낙은 조용히 지냈다. 그가 한 일은 최대한 보수적으로 아군을 지키는 일이었다.

“때가 됐다. 덫을 준비한다.”

세파리아스는 인근의 보어리안이 충분히 자신감이 높아졌다고 판단하자마자 덫을 놓을 준비를 했다.

“목표는 단 하나다. 인근의 큰 보어리안 부락의 전멸이다.”

뿔 쥐 지휘관과 상위국의 사령관, 동 오크와 서 오크의 대족장과 대전사 등등이 모인 회의였다. 모든 이들이 힘을 합쳐서 한 번에 쓸어 담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7번 패배하고, 살수대첩을 일으킨 을지문덕 장군처럼, 신제국은 계속 싸움을 피했다.

“보어리안은 엄청난 군대를 일으킬 정도로 식량을 모았다. 모두 우리가 내어준 덕이다.”

보어리안들은 충분한 식량을 약탈하여 확보할 수 있었다. 자연히 대군을 일으킬 수 있는 역량이 강제로 생겼다.

“거대한 진지를 꾸리며 알박기를 할 생각이다. 적들은 진지가 완공되기 전에 우리를 노릴 것이다.”

전투의 시작은 진지 공사다. 완공되기 전에 공격을 유도할 생각이다.

“후방은 적을 포위하기 위해서 3시간 거리 밖에 땅을 파고 지대를 낮춰서 대기한다.”

굴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땅 자체를 낮춰서 적에게 보이지 않게 대기할 생각이었다.

“전방은 지하 연합이 굴을 파서 대기한다. 신호를 받으면 포위를 시작하여 후퇴하는 이들을 쓸어 담으면 된다.”

포위섬멸 작전은 사용하지 않는다.

적의 후방에 지하 연합을 둔 채로 한 번 싸워서 그들이 후퇴하게끔 만드는 것이 세파리아스의 전략이었다.

끝까지 저항하도록 포위하여 놔두지 않고, 도망치는 이들을 죽이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지하 연합 외에도 신제국의 황제 기사단이 함께할 것이다.”

“그들 모두 흐름(Stream)을 익혔나?”

드낙의 물음에 세파리아스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극점 찌르기(Zenith Sting)를 사용할 수 있다. 그 어떤 보어리안도 저항할 수 없을 것이다.”

극점 찌르기는 세상을 찌르는 것이다.

황제 기사단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이를 사용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누구보다도 빨리 단일 개체를 죽일 수 있다.

퇴각하는 놈들을 싹 쓸어 담겠다는 신제국의 고약한 심보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기병도 지원해 줬으면 한다. 찍찌익!!”

“그렇게 하겠다.”

기사단 또한 보내주기로 했다.

지하 연합은 더 많은 지하 공간을 만들겠지만, 전력이 더 많아지니 감수할 수 있다고 여겼다.

“오크들은 후방 공격대다. 돌격해서 좌우익을 쳐부수면 된다.”

인간이 막는 사이에 오크들은 튀어나와서 적의 좌우익을 곤죽 내기로 했다.

신제국과 상위국의 군대는 모루를 맡아야 한다. 적의 공세를 버티는 일인데, 진지 공사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막을 것이므로, 피해가 클 것 같지는 않았다.

“덫에는 미끼가 있어야 한다.”

세파리아스가 마지막으로 입을 뗐다.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었다. 바로 미끼다.

“평범한 것을 할 생각은 없다. 말 그대로 이 인근의 부락 모두 덤벼올 정도로 큰 미끼를 내걸어야 한다.”

이에 많은 이들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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