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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177화 (1,175/1,239)

1177화

* * *

“심심하네.”

드낙이 뒹굴거렸다. 최근 부인들도 각자 사업을 하면서 바빠졌다.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고, 드낙이 딱히 반대하지 않으니, 더욱 욕심이 난 것이다.

이 때문에 되레 드낙과 어울릴 시간이 적어졌다.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압박과 책임감으로 인해 공부했다. 시키지 않았음에도 그들 스스로 노력을 했다.

적어도 부모에 걸맞은 자식이 되고자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야망에 걸맞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 자체로 큰 행운이었다.

그런 걸 생각한다면 드낙은 자식 복이 있다고 봐야 했다.

또한, 부패를 줄이는 드낙의 거친 행보는 다종족 연합 관리들에게 경각심을 줬다.

공무원은 자기 할 일만 하면 철밥통이다. 그런데 그런 관리들이 자기 할 일을 넘어서서 남의 일까지 해주고 있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드낙으로서는 할 일이 없어 심심했다.

‘일하고 싶다.’

그런 정신이 나간 욕망이 스멀스멀 들 정도로 심심했다. 너무 놀다 보니 반대로 일에 대한 욕망이 생겼다.

인간의 마음은 실로 갈대 같았다.

자신이 해보지 못한 것을 항상 원하고, 그것을 가지게 되면 금방 손에서 놓게 된다.

이를 알고 있어도 실천하는 건 어려우며, 평생 유지하는 것 또한 힘들다.

* * *

“찍찍!”

그런 드낙에게 뿔 쥐들의 방문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어이구야, 둥실둥실!”

“찍찌이이이이이이익!!”

드낙이 토실토실한 오겹살 통통배를 쓰다듬자 뿔 쥐 정보원이 콧김을 내뿜으며 코를 꿈실꿈실 잘도 움직였다.

‘기분이 좋은 것 같군!’

드낙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살이 쪄 덩치가 커졌지만, 오히려 더 귀여워졌다. 뿔 쥐들은 야만적인 삶을 살았기에 조금만 먹어도 살찌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비만 뿔 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로 왔어?”

“찍찍!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신제국이 빅보어 사육을 시작했는데,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나도 듣긴 들었다. 하지만 나보고 도와달라는 소리는 안 하던데.”

관심이 갔지만, 도와달라는 소리를 안 하니, 도와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드낙도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희 뿔 쥐들도 빅보어를 키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신제국이 이를 허락하던가?”

“허락 안 하면 어쩔 겁니까? 지하 연합은 그들이 말하는 차원 해방 전쟁에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값을 치른 것도 있었고, 값을 치르지 않은 것도 있었다.

지하 연합은 신제국이 뚫어놓은 기회를 잡기 위해서 많은 대가를 치렀다. 그 대가에 대한 보답으로 신제국만이 빅보어를 독점할 수는 없다.

“그럴 리가 없는데.”

“지하 연합에서 나오는 빅보어 고기는 지하 연합에서만 소모하기로 했습니다.”

“그런 거라면 또 말이 되네.”

드낙이 몸을 일으켰다.

“내가 도와줬으면 하는 게 빅보어 사육이지?”

“예.”

드낙은 뿔 쥐와 함께 이동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지하 연합은 질 좋은 육류에는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식문화가 나날이 발전하여 다른 지성 종족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희 뿔 쥐 요리사들이 요리 대회에 항상 출전하지 않습니까.”

자신감이 뚝뚝 묻어져 나왔다.

“지하에서 가축을 키우고 있기도 합니다.”

“정말?”

“예.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드낙은 뿔 쥐들의 변화가 즐거웠다.

지하 연합 내부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이라면 바로 깔끔하다는 점이다.

통로도 반듯하게 사각형으로 만들어서 깔끔했다. 올해 지어진 지하철역처럼 새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대리석으로 벽과 천장, 바닥을 쌓아서 그런지 고급스러움도 있었다.

곳곳에 전등이 자리 잡고 있어서 예스러움을 더했다.

빅보어는 워낙 성깔이 더러워서 전신이 포박된 상태로 있었다. 당연히 위협이 되는 뿔은 모두 잘랐다. 그것 때문에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는데, 탈모가 된 것 같은 모욕감을 느껴서다.

“흠. 이놈이 그렇게 맛있다지.”

드낙의 말에 빅보어가 순간 흠칫했다.

초월자의 권좌에 앉아있으며 악마이기도 하며, 음습한 재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높아 짐승에게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심을 주었다.

그것을 느낀 것을 확인한 드낙이 웃었다.

“역시 야성적인 놈들이 나를 잘 안다니까.”

그가 무서운 줄 알았다.

그에 반해 주피터 같은 인신은 정신체가 두 번 양단되고 나서야 굴복했다. 꼭 피를 봐야 굴종하는 것이 지성 종족의 특징이다.

그렇다고 그 힘으로 빅보어를 얌전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수컷과 암컷 빅보어를 모두를 본 드낙은 이것저것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눈을 가려. 그래야 얌전해져.”

모든 짐승의 공통된 특징이다.

이에 뿔 쥐들이 겹겹의 천으로 눈을 감아서 꼼꼼하게 시야를 차단했다.

그제야 빅보어의 거친 숨결이 잔잔한 호수처럼 변해갔다.

“좋아. 그다음에는 시설을 지어야지.”

동물원으로 사용할까 싶었지만, 번식을 위해서는 오히려 지켜보는 눈이 없어야 더 활발해진다.

“지하는 환경이 안 좋은데. 환경도 좋아야 번식을 잘해.”

빅보어는 지상 생물이다. 이를 목축하려면 당연히 그와 비슷한 설비가 필요하다.

“자연이 풍부한 곳으로 만들고, 천장을 높게 해서 하늘이 있는 것처럼 꾸미는 것도 좋겠지.”

환경도 개선할 생각을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빅보어의 덩치가 크고, 성질머리가 고약해 그런 방법을 쓰면 좋지 않은 꼴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뿔 쥐들은 드낙의 컨설팅을 쉽게 받아들였다. 주변 자연환경을 적당히 조성하고, 빅보어의 목에 찰 구속구도 준비했다.

또 온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형벌도 설계했다.

자신이 고집을 부리면 좋은 꼴을 못 본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또한 최대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방목 형식으로 키우기로 했다. 성질머리가 지독하기 때문이다.

지하 빅보어 목축장은 빅보어가 난동을 부려도 상관없을 정도로 단단한 재질로 만들었다. 그 규모도 대단히 컸고, 천장도 아주 높았다.

기계식 사료 지급기를 만들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빅보어들에게 먹거리를 줄 수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나 곡물, 사료를 먹일 생각이었다.

우주 낙원으로부터 얻은 기술과 과학은 빠르게 정착하고 있었다.

“구속구도 확실하게 하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제압할 수 있어야 했다. 계속 자라나는 뿔을 잘라내고 또 잘라내고 반복하기 위해서다.

“구속구는 접합형으로 하지.”

드낙이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사극 드라마에서 죄인들이 칼을 차고 힘들어하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냥 구속구인데 구속 마법을 통해서 잠깐 못 움직이게 하고 나서 바로 추가적인 구속구를 접합하는 것이다. 그렇게 무겁게 만들어서 머리를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다.”

머리가 땅에 붙어있을 정도로 무겁게 만든다면, 빅보어는 아무 짓도 못 할 것이다.

무려 8t짜리 빅보어를 키우는 일이었다. 8,000kg이고, 8,000,000g이다. 1인분을 200g으로 치면 40,000인분이다. 4만 인분이 한 번에 나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확실히 판타지는 판타지야.’

드낙은 빅보어를 이미 먹어봤기에 군침이 돌았다.

“최대한 머릿수를 키우고 난 다음에는 순한 놈들을 솎아내어 계속 기를 생각입니다. 찍찍.”

“아주 좋은 생각이다. 하하하!”

드낙이 크게 웃었다. 그는 온 김에 대장 쥐를 비롯한 뿔 쥐 의원들과 술을 한잔했다.

“전쟁은 어찌 되고 있느냐?”

“뿔 쥐와 고블린들이 신제국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크놀들은 군수품을 만들어서 신제국에 납품을 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그 돈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겠지.”

신제국은 자신의 역량을 모두 사용해서 차원 해방 전쟁에 임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역량 외에 다른 외부의 자원을 들이는 데에도 공을 들였다.

“혼자서 다 해 먹지 않겠다는 것만 봐도 세파리아스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제국 식민지 시대. 유럽이 함께 어깨를 둥실둥실 함께하며 식민지를 먹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경쟁하고 전쟁을 벌였다.

차원 해방 전쟁도 마찬가지다. 대항해 항로를 알고 있는데, 이를 다른 이와 공유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 덕에 신제국은 자신들의 전력을 상대적으로 아낄 수 있었다.

“그래도 하루에만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찍찍.”

“저항은 별로 없다고 하던데? 굴라라 불리는 신도 나타나지 않았다며?”

“서서히 정보가 퍼져나가고 있어서 보어리안과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드낙이 조금 뜸을 들였다. 이에 대장 쥐가 눈치를 채고 바로 답했다.

“혹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씀만 해주소서. 저희는 오직 드낙 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그럴 수는 없지.”

그 말을 들은 드낙은 확신을 가지게 됐다.

‘역시, 사람 몇 죽는다고 지하 연합을 전쟁에 참여시키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사람을 구하는 일이지만, 뿔 쥐와 고블린을 죽이는 일이다. 그러니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남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자국의 장병들을 파병시키자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무지몽매한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드낙은 다시 한번 결심했다.

‘남을 위해서 내 사람을 죽이는 짓은 하지 않겠다. 지금이 좋다.’

“잊어라. 오직 지하 연합만을 위해서 살아라. 그게 곧 나를 위한 길이다. 날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면, 결국 내가 슬퍼질 뿐이니까.”

이에 뿔 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진정으로 이를 따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들은 드낙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더 많다고 여기는 자들이었다.

* * *

드낙은 뿔 쥐들과의 술자리를 끝내고 곧바로 신제국의 차원 다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다.”

“예?”

말단은 드낙의 얼굴을 모르는 듯 반문했다. 이에 드낙이 가볍게 말했다.

“드낙 불파겐이다.”

말은 투박했지만, 말투가 경박했다. 피가 끓어오르고 있어서 그런 면모가 나온 걸지도 몰랐다.

중립신에게 세뇌가 된 드낙은 특히 전투를 많이 겪었기에 전투가 있을 때 조금 경박한 습관이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놀란 병사가 급히 사과했다.

드낙은 그 어깨를 대충 두드리고 차원 다리로 향하며 신제국의 관리들과 마주했다.

“내가 참전하겠다. 대가는 나중에 세파리아스에게 받도록 하겠다.”

“예! 신황제께서는 태양 차원에 계십니다!”

프리패스로 통과할 수 있었다. 드낙은 그렇게 정식 순서를 통해서 차원 다리에 진입했다. 그리고 대놓고 마차를 타고 차원 다리를 건넜다.

“멋지다.”

이 차원에 건설된 차원 다리는 그 자체로 웅장했다.

아치형의 굵은 철근은 부유 마법이 펼쳐져 있었고, 꾸준히 마력이 보급되고 있었다. 그 위로는 콘크리트 시공을 한 도로가 만들어졌다.

이를 지나는 수많은 마차는 끝도 없이 늘어져 있었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이동하고 있었다. 정차하는 경우가 없었기에 효율이 높아 보였다.

다리마다 질서를 확립하려는 병사들이 가득 있었다. 경찰 마크를 달고 있었지만, 드낙이 보기에는 군인이나 다름없었다.

‘구색 갖추기다.’

병사와 경찰의 분리는 10년도 전에 드낙이 명한 것이지만 아직 신제국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이를 바로 잡으라고 말했지만 세파리아스는 들은 척도 안 했다.

그가 봤을 때, 있는 놈들을 때려잡기에는 군인만 한 게 없었고,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건 주먹이지, 상냥한 대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질서는 유지되고 있었다.

태양 차원에 도착한 드낙은 공사장에서나 맡을 수 있는 냄새를 맡았다.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세파리아스를 만나려고 한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기사가 안내를 맡았다.

이에 다른 이의 표정이 달라졌다. 안내를 맡은 기사의 평판이 좋아서 그런지, 놀란 표정이다. 드낙이 어떤 인물인지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내 얼굴을 광고하는 것도 좀 그렇지.’

드낙은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세파리아스는 가장 심장부에 있었는데,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정신체로 다른 곳을 둘러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드낙이 방 안에 들어서자 바로 눈을 떴다.

‘소름이 끼칠 정도네.’

그가 드낙에 대한 ‘대처’를 만들어 둔 것이 분명했다.

눈을 뜬 세파리아스가 입을 뗐다.

“네놈.”

좋은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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