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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176화 (1,174/1,239)

1176화

뿔 쥐들은 그림자 이동술을 통해서 빅보어의 관심을 유도했다. 엉덩이만 쫓아다니면 쉽게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사이에 고블린 병사들이 주술 아이템을 사용하여 빅보어의 다리를 묶었다.

다리 네 개를 모두 무력화시킬 필요는 없었다. 두 개를 한 번에 묶어서 포박하듯이 묶으면 목적 달성이다.

올가미에 걸린 빅보어는 기동력이 크게 감퇴했고, 결국 아무것도 못 하게 됐다.

그 뒤에는 그저 대동맥을 끊어서 과다 출혈시키면 됐다.

목 가죽이 어찌나 두껍고 지방이 많은지 목에 무기가 잘 들어가지 않아서 목을 가르긴 어려웠고, 그나마 앙상한 다리를 톱질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나마 다리가 상대적으로 앙상해.”

앙상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지만, 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앙상한 다리를 노리는 것이 더 효과적인 건 사실이었다.

빅보어 사냥을 마무리한 그들은 빅보어의 사체를 운반할 준비를 했다.

피를 다 빼내는 데만 몇 시간이 소요됐다. 주변이 피로 진창이 될 정도로 양이 엄청났다.

지렁이들이 피로 진흙탕이 된 곳에 올라왔다.

고블린들이 굵은 지렁이들을 보고 감탄했다.

“이것 보소?”

“지렁이는 못 참지.”

씨알이 굵은 지렁이를 냉큼 잡아 끝을 따고, 내장이 있는 곳을 잡고, 쭉 밀었다. 그러자 흙을 비롯한 내장이 땅에 떨어졌다. 그다음에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물컹.

소름 끼치는 식감이지만 고블린은 광대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맛있게 씹었다.

지렁이는 풍미가 있었다. 체액은 목을 축이는 데 도움이 되고, 씹을 거리도 충분했다.

내장을 없앴는데도 꿈틀거렸기에 살아있는 싱싱한 것을 먹는다는 기쁨도 있었다.

인간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식습관이지만 지하 연합은 곤충도 쉽게 먹는 이들이다.

다만 그 방법은 제각각이다. 생식을 포기하지 못한 고블린이 있는가 하면, 지렁이를 구워 먹는 걸 좋아하는 이들도 있었다.

혹은 닭 먹이로 효과적이고, 보양 중의 보약인 왕지네에게 먹이로 줄 생각을 가지는 뿔 쥐도 있었다.

지하 연합엔 다양한 식문화가 공존한다.

보어리안의 시체는 통으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작업하는 건 많은 어려움이 있어서다.

처음에는 신제국 몰래 지하로 가져가려고 했지만, 너무 쉽게 들켜 버렸다. 세파리아스가 정신체로 정찰을 하며 지하 연합의 군대가 나간 것을 보고 있다가 너무 늦게 돌아오지 않자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야영지로 운반하라. 정보는 모두 공유해야 하지 않겠나?

“찍찍.”

아쉽지만 그렇게 해야 할 듯싶었다.

결국 신제국의 도움을 받아서 야영지로 옮겼다.

* * *

조사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보어리안의 뗀석기 흉터가 보입니다.”

“보어리안이 빅보어를 사냥했단 소리다.”

같은 멧돼지 주제에 동족을 살해하다니, 무서운 놈들이었다. 마치 인간 같았다. 가볍게 볼 수 없었다.

빅보어의 뿔은 탄성이 대단히 뛰어나서 가공하여 사용하기 좋아 보였다. 굳이 뿔을 가공해서 산업에 쓸 필요가 있냐, 싶겠지만 이건 모두 드낙 때문이었다.

인구 증가에 사활을 건 드낙 때문에 인구가 너무 많아서 자원이 항상 부족했다.

인도의 빈부격차가 극심한 것처럼, 모든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끔찍한 사회문제가 생길 것이다.

“목재 건축재료와 함께 사용하면 좋겠는데.”

탄성이 좋았기에 신축성이 있는 목재와 잘 어울릴 듯했다. 목조건물은 6년이 지나면 오래된 건물로 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자주자주 재개발해서 새 건물처럼 만들어야 사는 맛이 나게 마련이다.

반지하에 사는 이들이 목조건물에서 살게 되면 행복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끝없는 재개발. 끝없는 건축.

다종족 연합이 자원이 항상 부족한 이유이기도 했다.

드낙은 자신이 한량 같은 삶을 추구하듯이, 자신과 함께하는 이들도 최대한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했다.

미친 듯이 자주 집을 재건축하고 리모델링 하는 이유가 괜한 것이 아니다.

너도, 나도 오래된 집에 살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드낙이 새집에 사는 만큼 다른 이들도 새집에 살아야 마땅하다.

뿔을 가공하여 건축재료로 쓴다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당장 복합궁을 만드는 데도 뿔을 가공한 것을 사용하기 때문에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특히 지성 종족은 목조건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빅보어의 뿔은 강한 탄성을 지녔기에 철근 콘크리트처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무는 방향에 따라서 강함과 약함이 변하기 때문이고, 비가 오면 팽창하는 성질도 있었다.

빅보어 뿔의 탄성은 능히 이를 받쳐줄 만했다.

빅보어의 가치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고기 맛이 대단합니다.”

상상 이상으로 고기 맛이 뛰어났다. 야생에서 자란 놈들은 염증과 질병에 시달리며 고기 맛이 떨어지게 마련인데, 빅보어는 누린내도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천상에서 구한 고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질기지도 않다.’

질긴 가죽 내부에 있는 빅보어의 고기는 대단했다. 삶았는데도 육즙이 배어 나올 정도로 육즙을 가두는 힘이 뛰어났다. 비현실적일 정도의 요리 재료였다.

당장 다종족 연합에 수출한다면 은과 똑같은 무게로 교환할 수 있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고기의 강함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육즙. 다른 하나는 식감. 마지막으로 누린내다.

빅보어는 그 어떤 요리 방법에도 상관없이 세 가지의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수육으로 끓어도 고기 내에 육즙이 남아있다는 비현실적인 육류의 등장에 모두 호들갑을 떨었다. 먹고살 만하니, 더 맛있는 걸 먹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진 탓이다.

고기에 대해서 아는 이들이 제법 됐다.

“빅보어를 사육해야 한다.”

세파리아스가 바로 결론을 냈다. 육즙이 풍부한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덩치가 크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만큼 거대한 사육장을 만들어 내면 그만이다.

“생포해서 신제국으로 데려가겠다. 그곳에 사육장을 건설한다.”

신제국이 빅보어 생포에 열을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보어리안과의 전투도 잦아졌다.

이곳저곳 들쑤시면서 숲이 시끄러워졌고 동시에 이 소식이 사방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보어리안들은 수많이 분열되어 있었다.

그들은 제각각의 부락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부락이 아닌 채로 작은 무리를 유지한 채 살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지배체계가 엉망인데도 보어리안이 인간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까닭은 당연히 그만큼 보어리안의 개체값이 높기 때문이다.

굴라(Gula) 또한 이 지배체계를 유지했다. 보어리안과 보어리안의 싸움에서 그녀 또한 업(業)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신인 굴라는 신제국의 침공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보어리안이 서로 싸우면서 보내오는 업은 매일 달랐고, 격차도 컸기에 직선 거목 숲에서 싸우는 보어리안과 인간의 싸움에서 발생하는 업은 굴라를 긴장시키지도 못했다.

* * *

세 달 동안 직선 거목 숲에 대한 공세를 유지한 신제국은 비로소 직선 거목 숲을 자신들의 영토로 삼을 수 있었다.

그간 죽인 보어리안의 숫자만 해도 4천에 달했다.

적다면 적은 숫자였다. 90일 동안 4천여 마리를 죽였으니, 하루에 45마리꼴을 죽인 셈이다.

그동안 세파리아스는 적 초월자의 시선 또는 존재를 찾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내가 놓쳤을 리는 없다.”

세파리아스는 드낙을 적으로 상정하고 수련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노력하는 천재다.

‘초월자는 내가 여기에 온 줄을 아직도 모르는군.’

상상 이상으로 어리석은 놈 같았다.

세 달 동안 보어리안을 숲에서 밀어낸 것이 성과의 전부는 아니었다.

빅보어의 새끼를 본토로 보냈으며, 직선 거목 또한 신제국으로 옮겨 심어 키우며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었다.

이미 차원 해방 전쟁의 이득이 신제국 곳곳에 알려졌으며 다종족 연합도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하루에만 수십 그루의 직선 거목이 벌목되어서 본토로 옮겨지고 있었다.

차원 다리가 건설되었기에 가능했다.

벌목한 곳은 개간이 이루어졌고, 감자나 고구마 같은 구황작물(救荒作物)을 심었다.

이를 통해서 식량을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려는 것이 신제국의 목표였다.

굳이 이렇게 하는 까닭은 당연히 ‘운송비’ 때문이었다. 이 운송비를 아끼기 위해서 신제국은 차원 다리가 건설된 곳에 다리를 비롯한 많은 투자를 통해 다양한 교통 인프라를 건축하고 있었다.

수많은 창고를 만드는 것은 기본이며, 운하도 건설하고 있었다.

육로는 해로를 이길 수 없는 법이다. 한 번에 엄청나게 수송하려면 역시 배로 옮기는 게 최고다.

이를 위해서 신제국에서는 무식하게 토목사업을 벌였다. 한 방향 통행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운해는 큰 도움이 될 터다.

괜히 지하 연합이 지하 운해를 많이 운용하고 있는 게 아니다.

직선 거목 숲을 빠르게 개간하며 신제국은 순식간에 그곳에 도시를 건설할 준비를 했다.

구룩, 구룩!

콘크리트가 꾸역꾸역 쏟아져 나왔다. 철근이 마련되어 있는 곳에 차곡차곡 덮여, 바닥부터 깔끔하게 평평하게 만들었다.

한 번에 천 평씩 콘크리트 바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옆에는 지반을 다지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다음 단계를 기다리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숲에 도시를 건설하는 일은 큰 비용이 드는 일이었지만 이곳에 차원 다리가 들어섰기에 다른 방도는 없었다.

좌표를 달리 설정하여 또 다른 곳에 차원 다리를 건설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똑같이 큰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다.

성벽은 개간이 다 이루어지지 않은 직선 거목 숲의 밖에 건설되기 시작했다.

성벽은 페인트칠을 한 강철 철판으로 만든 외벽을 만들고, 그다음에 비어있는 내부 공간에 철근을 깔고, 콘크리트를 쏟아부어서 굳혔다.

다만 특이한 것은 가치가 없는 작은 유색 보석들을 콘크리트와 섞었다는 점이다. 마법을 부여하기 위한 성벽이었기에 보석을 집어넣는 것이다.

성벽은 철판으로 되어있었으며 그 두께는 5cm에 불과했다. 워낙 넓은 반경을 방어해야 하기 때문에 은행 금고처럼 두껍게 할 수는 없었다.

성벽에 마법을 부여하는 건 신제국의 마법사들이었다.

대신 성벽에 마력을 부여하는 건 다종족 연합에서 살아가는 지능 높고, 공격성이 낮은 오우거들의 마력이 든 철통이다.

“마력 철통 연결 확인!”

마력 철통과 성벽을 연결하고, 곧바로 마력을 성벽으로 옮겼다. 그사이에 마법사들은 성벽에 마법을 부여했다.

“공격은 필요 없고, 오직 방어를 위한 마법만 부여하면 된다.”

트리플 디펜스 월(Triple defense wall).

그들이 만들 성벽의 이름이었다.

“하나는 공중 요격 마법이다. 적의 마법을 막는 상쇄 얼음판 주문이다.”

공중 요격 마법은 둥글고 굵은 얼음판을 쏘아 보내는 마법이다. 불 마법은 사거리가 짧아서 좋지 않다.

하지만 무식한 투석기나 초월의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투사체에는 반응을 하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서 투사체 검은 물 송곳 주문도 부여해야 한다.”

상쇄 얼음판이 요격 주문이라면 투사체 검은 물 송곳 주문은 성벽을 강화하는 식이었다.

성벽의 앞으로 검은 물로 이루어진 송곳이 길쭉하게 40cm~10cm 정도 튀어나오는데, 적의 투사체를 미리 맞아주는 식으로 성벽을 보호해 준다.

충격력이 높은 것일수록 점성이 높은 검은 물 송곳에게 취약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이 모든 걸 뚫을 수 있는 걸 상정하고 최후의 방어막 주문을 사용한다.”

최후의 방어막은 전방위를 막아내는 방어막이다.

상대가 한 방에 큰 화력을 투사할 때, 사용하는 강력한 카드인 셈이다.

상쇄 얼음판과 검은 물 송곳으로 버티고, 상대가 힘을 모으면 최후의 방어막 주문으로 맞선다.

오직 방어만을 위해 막대한 자원을 소비했다.

이곳이 거점이었기에 그만큼 공을 들였다.

그런 건설 현장을 바라보던 보어리안들은 결국 도망쳤다. 자신들의 수준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강한 부락에게 달려가 인간들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려줬다.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잖아?”

신이 그들을 저버렸지만, 인간은 아직도 이 세계에서 명줄을 이어가고 있었다.

보어리안의 큰 부락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고작 숲 하나를 먹은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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