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174화 (1,172/1,239)

1174화

29. 차원 해방전 (2)

전투 후, 신제국의 군편제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면 세파리아스의 역량을 너무 쉽게 보는 것이다.

“총기가 통하지 않는다.”

9×19mm 탄의 위력은 450~750J이다. 5.54mm 탄이 1,400J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은 위력을 지니고 있는 게 권총이다.그냥 맞으면 바로 전투 불능에 빠질 수밖에 없다. 확장 탄창에 긁혔음에도 보어리안은 건재했다.

“건재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 그대로 무가치했다는 뜻입니다.”

전투 불능이라도 빠졌다면, 권총을 계속 사용했을 것이다. 더 많은 병사에게 더 많은 총기를 지급하기 위해서는 소총보다는 권총을 대량 양산하는 것이 더 좋았다.

이미 많이 생산되고 보급이 이루어졌기에 사용을 하지 않는 결단은 막대한 손해를 끼치게 된다.

“사용 중단은 명백하다.”

세파리아스는 시작부터 결단을 내렸다. 다른 수많은 이유를 곁들이지 않았다. 그런 것마저도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다.

“다른 의견이 있느냐.”

“없습니다. 전투 중에 전투 불능에 가까운 피해를 주지도 못했으나, 병사들은 계속 총기를 모두 사용하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를 생각한다면 회수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대로 된 피해도 주지 못하는데, 권총을 사용하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려면 회수밖에 답이 없었다.

시작부터 계획이 크게 어긋났다. 보급 계획의 한 부분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더 강한 충격량을 지닌 총기를 사용해야 했다.

“소총이나 샷건을 사용해야 한다. 샷건을 사용할 걸 그랬다.”

세파리아스가 탄식했다. 아티팩트를 비롯해서 냉병기를 100% 포기하지 못했기에 휴대하기 편한 권총을 채택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인 듯했다.

“신제국 총기 공장을 모두 개편해야겠다.”

“헉.”

누군가가 깜짝 놀라서 소리를 냈다.

“덜덜…….”

입 밖으로 손 떨림을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다.

“권총 총기 공장은 300곳이 넘어가고 있고, 한 해에 50개씩 더 지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싹 다 갈아엎는다? 보통 돈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공장을 바꾸는 일은 모든 소재를 바꿔야 한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진행한다. 권총은 이번 전쟁에서 쓸모가 없다.”

별수 없는 일이다. 세파리아스의 실책이라 역사서에 적히겠지만, 그런 쓴소리를 듣기 싫어서 안 하는 건 더 많은 논란을 키울 뿐이다.

“샷건으로 바꾼다.”

단발 샷건이 오히려 더 보어리안을 저지하고,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들을 설득하지는 않았다. 선조치, 후보고처럼.

먼저 세파리아스의 명으로 일을 진행하면서 다른 이유가 하나씩 추가될 것이다.

그게 무인의 정치였다.

상황에 따라서 대처하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태세 전환이 대단히 빠르다고 볼 수 있었다.

선택하지 않으면 죽게 되는 전쟁터에서 오래 지낸 세파리아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제국은 그렇게 권총 보급품을 샷건 보급품으로 바꾸기로 했다.

다만, 권총 수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죽을 상하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보어리안의 신체 정보를 토대로 변명거리가 생겼다.

“겹가죽이라……. 확실히 특이하긴 특이하다.”

“권총은 사거리가 짧긴 하지만, 가죽을 처리하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이다. 회전이나 전투가 오래 지속될 때는 필요할지도 몰랐다.

아티팩트에 담긴 힘을 모두 사용한다면, 권총도 좋은 대화 수단이 될 수 있다.

“전술 교리를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보어리안에 대한 전술 교리를 하나 만들어서 권총 사격은 최후에나 쓴다면, 도움이 될 겁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지키는 병사가 많을 것 같지는 않지만, 중요한 권 현재 글록 권총은 신제국의 신병들에게도 지급될 정도로 많이 생산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다.

세파리아스는 이를 받아들였다.

“병사들의 심리에도 좋긴 하겠지.”

비이성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서 쓸모없는 권총도 심신 안정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들은 나약하니까.’

이끌어줄 이가 필요했다.

동시에 보어리안을 카운터 치기 위한 무기 개발에 착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크게 득세했다.

다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서로 똑같지 않았다.

“사람 머리통만 한 뗀석기를 투척하는 놈들입니다. 그것만 확실하게 막을 수만 있다면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막강한 방어력을 통해서 보어리안에게 입는 피해를 원천 봉쇄하자는 의견은 가장 단순한 의견이었다. 다만 그 논리는 제법 디테일이 있었다.

지휘관이 두 팔을 쩍 벌리며 시선을 확 사로잡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보어리안이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면, 그들과 회전을 벌이게 될 겁니다. 그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요리왕 비X이 만든 요리를 먹은 이들이 하나같이 눈을 감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듯이 그 말을 들은 이들이 눈을 감으며 상상했다.

어마어마한 돌진. 초근접 거대 뗀석기 투척. 광폭한 기세.

그런 것들이 생각났다.

“이를 막으려면 결국 방어, 방어, 방어입니다! 적의 강점을 막는 것만으로도 승리는 코앞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정론이다.

카운터를 치려면 상대의 강점을 꺾는 것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할 터였다. 또한 이는 냉병기 결전과 닮은 점이 있었다.

“모루를 강화하자는 소리군.”

“예!”

세파리아스의 말에 지휘관이 깔끔하게 답했다.

적과 부딪치는 모루를 강화한다면, 적은 쉽게 돌파하지 못할 것이며, 난전마저 틀어막고, 전선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승리할 수 있다.

‘체력 승부에서 질 리가 없다.’

장기전에 들어가면 보어리안은 그 덩치와 체중 때문에 인간보다 빨리 지칠 수밖에 없었다. 지치고 나면 그 뒤에는 쓸어 담을 뿐이다.

“다만, 이는 굴라라 불리는 초월자의 힘이 관여가 안 되었을 때를 상정했습니다.”

방어력을 높이자는 의견을 지닌 지휘관은 실로 간사하기 짝이 없었다.

먼저 호응을 이끌어낸 다음에 단점 혹은 변수라 할 수 있는 것을 마지막에 내던지며 앉았다.

“다른 의견은 없느냐?”

이에 눈치가 빠른 지휘관이 일어섰다.

앞서 지휘관이 상대의 강점을 틀어막은 의견을 냈다면, 자신은 그 반대로 행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서도 세파리아스의 눈길을 받을 수 있다. 나쁜 장사는 아니라 여겼다.

“아무리 덩치가 크고, 큰 뗀석기를 투척한다고 해도 결국 보어리안이 가진 한계점은 원거리 사격에 대한 취약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겹가죽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느냐?”

“예. 공성 병기라면 능히 보어리안을 곤죽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대규모 마법을 사용한다면, 보어리안의 가죽 또한 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권총도 쉽게 적을 섬멸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화력. 오직 화력.

이를 외쳤다. 부족하면 더 충원하면 될 일이다.

“적 초월자가 직접 나서더라도, 우리에게는 위대한 신황제께서 계십니다. 오히려 압도적인 원거리 공격으로 적을 답답하게 만든다면 전쟁을 쉽게 끝낼 수 있습니다.”

답답함에 적 초월자가 전선에 나선다면, 그 뒤는 그걸로 끝이다.

이쪽에서 힘을 내보이지 않던 세파리아스가 개입하여 일기토를 벌여서 죽여버리면 그만이다. 세파리아스를 이길 초월자가 있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나쁘지 않습니다만, 적어도 직선거목 숲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거대한 나무. 말 그대로 30m짜리 나무다. 그 둘레만 해도 압도적이다.

그런 곳에서 원거리 투석기를 사용하기란 요원했으며, 미사일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미사일은 테라의 방위에 쓰이고 있으며 제작단가도 매우 높았다.

신제국은 그런 비싼 물건을 사용하지 않는다. 한 발에 금화 5천 닢이 기본으로 들어가는 정신 나간 미사일을 개발하는 건 드워프 제국이나 할 짓이다. 적어도 신제국이 할 법한 일은 아니었다.

다른 대체재를 사용하면 될 것이다. 수학적으로 잘 만들어진 투석기가 그러했다. 원시적이지만 그렇기에 더 싸다.

“당장 사용할 수 없다면, 나중에라도 사용할 수 있겠지.”

세파리아스가 결론을 내리자 지휘관이 앉았다.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론이 제기되었다. 성을 쌓는 것도 그중에 한 방법이다. 더욱 확실한 지연전술이다.

성을 뚫는 동안 보어리안들은 힘과 체력을 소비하게 될 것이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건 힘들고 고된 일이다.

군대의 방어력을 증가시키고, 성벽을 건축하며, 샷건을 제작하는 것이 신제국의 새로운 방침이 됐다. 이러는 사이에 테라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신제국이 태양 차원에 들어가자마자 이득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모두 직선거목(直線巨木) 때문이었다.

* * *

“이게 무슨!”

“말도 안 돼애애애애애!!”

그중에서도 가장 까무러친 것은 오크들이었다.

오크들은 약재를 통해서 오크 나무를 키운다. 약재를 먹고 자란 오크 나무는 그야말로 최강의 목재가 된다.

하지만 오크 나무의 단점이 있다면, 덩치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리 통나무로 써도 크기가 크지 않아도 단 하나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틈이 존재하고, 내구력이 좋지 않았다. 두 개의 통나무 사이에 있는 그 틈. 그게 바로 오크 나무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이거, 이거다!!”

그 평생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 직선거목이다. 크기가 큰 직선거목을 이곳으로 가져와서 키운다면, 분명 오크 나무는 한층 더 진화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나무를 오크 나무로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 수많은 오크가 콧김을 뿜으며 잔뜩 흥분했고, 신제국에 문의를 넣었다.

그러나 신제국은 이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꼬우면 차원 다리를 또 하나 만들라는 식으로 굴었다.

오크들이 큰 욕망을 가지고 있다면 그 욕망에 걸맞은 돈을 내라는 것이 신제국의 입장이었다.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 아닌가? 군수품을 원할 테니. 그것으로 퉁치자고 하면 될 일이다.”

“물건으로 물건을 교환한다. 그게 최고지 않은가.”

동 오크든 서 오크든 똑같은 생각을 했다. 화폐를 쓰기보다는 자기들이 지닌 돈은 그대로 유지하고, 생산한 물건으로 물물교환을 하는 것이 더 좋아 보였다.

최근 큰 거래는 대부분 어음으로 쓰는 것도 이런 경향을 만들었다.

안달이 난 오크들이 직선거목을 많이 구매했다. 그 덕에 가격 상승이 빠르게 일어났다.

목재를 좋아하는 건 오크뿐만이 아니다.

소위 돈 있는 것들도 경쟁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신제국의 이득은 고무적이었다.

드낙은 이를 견제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내가 왜?’

테라는 공평하게 발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 되는 놈의 뚝배기를 갈겨서 자중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신제국은 차원 다리 건조에 많은 힘을 쏟아부었고, 그 과실을 탐할 때가 된 것뿐이다. 내가 견제할 필요는 없다.”

선을 그었다.

지금까지 경쟁에서 뒤처진 것이 신제국이다.

신제국은 오늘에 와서야 차원 떡상을 하게 됐다. 그것을 보고 그 성장세가 무섭다고 여기며 드낙에게 견제를 청하는 것은 옳다고 할 수 없었다.

“신제국은 적법한 방법으로 행동하고 있다.”

드낙이 그를 두둔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 때문에 신제국은 아이스크림 31종처럼 골라서 군수품을 싸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중에는 식량이 가장 많았다.

‘뉴에이시 시티의 곡물을 많이 사주는 것만으로도 간접적으로 이득을 보고 있는데, 견제라니.’

신제국은 보이지는 않지만, 차원 너머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후방에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드낙은 그간 축적해 온 자신의 사비를 탈탈 털어서 신제국의 국채를 구매했다. 그 분위기는 더욱 신제국에 자본이 집중되게 만들었다.

* * *

아비야아스(Aviyaas).

그는 주술사들이 집권하고 있는 동 오크 집단의 새로운 실력자다. 거기에 그는 대전사(大戰士)에 오른 지 겨우 3년이 지났을 정도로 젊은 대전사였다.

그런 이가 주술사들의 앞에 섰다.

“무슨 일입니까?”

말석 중의 말석이다. 아비야아스는 어리둥절해했다.

이에 주술사들이 빵긋 웃으며 말했다.

“서 오크의 전사 계급이 신제국에 용병으로 참전했다지, 뭔가. 우리도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겠나?”

그 말에 아비야아스 대전사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경쟁이 안 되기 때문이다. 즉, 이건 버림 패를 모으는 일이었고, 그 일선에 자신이 선택됐다.

개 같은 기분이 스멀스멀 가슴 속에서 닭백숙처럼 푹 우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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