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2화
* * *
직선거목 숲에 자리 잡은 신제국은 거대한 야영지를 완성했다.
야영지에는 미리 만들어둔 강철 벽이 세워졌다. 얇은 강철판은 충분히 뚫을 수 있어 보였지만 아주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방어책이었다.
야영지는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강철 문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귀찮지만 구역은 문이 열려 있지 않았다. 철저히 구분하고 있었다. 귀찮기는 해도 반드시 해야 했다.
첨탑이 세워지고 있었는데, 철판 구조물을 두고, 그 외벽에 벽돌을 쌓고 있는 게 보였다.
야영지는 서서히 앙상한 요새라고 불러도 괜찮을 정도로 변하고 있었다.
그사이에 신제국은 직선거목을 벌목하고, 숲을 수색하고, 더 많은 흔적을 찾아 나섰다. 동물을 죽이고, 자체적으로 식량을 확보하기도 했다.
“몬스터가 없는 게 이상한데.”
“생각보다 살기 좋은 곳일지도?”
“어이, 어이, 조심하라고. 방심하다가 한 방에 죽는 수가 있다고. 크큭.”
“미친놈. 말투가 왜 그딴 식이야?”
“어이, 어이!”
“어이, 어이, 같은 소리 하네.”
서로 시비를 걸면서도 도축하는 손을 멈추지는 않았다.
큰 사슴을 도축하는 건 힘든 일이다. 아무리 건장한 이라도 익숙하지 않으면 크게 다치기도 하고, 익숙한 이라도 숙련되기 전까지는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도축을 하고 나면 손의 떨림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인데,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만큼 힘이 들어서였다.
그 자리에서 도축하는 이유는 아직 야영지에 도축할 설비가 만들어지지 않아서였고, 피를 흘리면서 흔적을 야영지까지 끌고 갈 수 없는 탓이다.
콸콸콸!
소주잔에 불과한 공간이 있고, 나머지는 꽉 차있는 물통에서 물이 흘러내렸다. 피를 말끔하게 씻었다.
“돌아간다!”
기사가 말하자 병사들이 돌아갔다.
그들은 하나같이 새나 사슴, 토끼 등의 동물들을 도축한 것을 가득 짊어지고 있었다.
“열어라!!”
“서어엉문을 열어라!”
오고 가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숲에는 길이 생겼다. 야만적인 길이었지만, 다져지고 또 다져지면서 인간이 오가기에 좋았다.
신제국의 군대는 그 길을 만들려고 일부러 나뭇가지가 뻗어나가듯이 일정한 루트로 걸어가서 작전 활동을 했다.
그들이 만든 길은 위에서 보면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그 길은 야영지에서 가까울수록 넓어진다. 무릎까지 오는 수풀을 쳐내고 있는 게 보였다.
엎드려서 오가는 적군의 정찰을 막기 위해서 하는 작업이다. 숲이라 금방 다시 자라겠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곳곳에서 벌목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야영지 밖에 감시초소가 건설되었다.
기둥의 골조는 철골과 콘크리트로 탑처럼 쌓고, 그 위에 목재 감시초소를 조립하여 곧추세웠다.
사람 다섯 정도는 무리 없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다.
대한민국 육군에게는 까무러칠 정도로 넓은 초소였다. 높이가 높았기에 여름에 가장 덥고, 겨울에 가장 추운 곳이 감시초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직선거목이 벌목된 곳마다 설치가 이루어졌기에 햇빛이 강하게 내려왔다.
이곳의 태양은 특히나 뜨거웠다. 나무가 어떻게 그렇게 크게 성장할 수 있는지 알 정도였다.
하지만 밤은 이상할 정도로 짧았다. 겨우 4시간에 불과했다.
반면 낮은 약 24시간 이상으로 길었다. 하루의 단위가 약 28~30시간이었는데, 매일매일 조금조금 차이 나서 법칙성을 찾기가 모호했다.
직선거목은 휴양지나 대중목욕탕 등, 문화 시설을 짓는 데 사용될 최고급 목재였다.
사람의 인식을 아득히 벗어나는 위대한 크기를 지닌 통나무 기둥은 그 자체로 압도적이다.
개발 속에서 야영지의 북쪽에는 거대한 창고가 들어설 준비를 했다. 지반을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거대한 창고는 보급고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도와줄 터였다.
신제국의 영역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숲에 사는 지성 종족을 자극시켰다.
* * *
“꾸꿔꿕.”
돼지 소리를 내며 게걸스럽게 다람쥐를 잡아먹는 멧돼지 인간이 눈을 깜빡였다. 그 귀가 쫑긋쫑긋 분주하게 움직였다.
보어리안(boarian).
그들은 멧돼지 인간으로 이 차원을 지배한 신을 모시는 자였고, 그 신으로부터 잉태된 존재였다.
200cm에 달하는 거대한 키를 지닌 보어리안은 머리는 멧돼지요, 그 밑은 인간이었다.
다만 그 피부 거죽이 인간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지나칠 정도로 두꺼웠고, 갈라진 부분에는 피부 가죽이 툭 튀어나와서 뜯겨 있었는데 그 속에 또 가죽이 자리 잡혀있었다.
겹겹으로 가죽을 두르고 있었으며, 그 가죽은 지나칠 정도로 두꺼웠다.
또 통각이 없는 것 같았다. 생체 방어구로서는 훌륭했지만, 감각이 둔해 보였다.
자연적인 겹가죽으로 무장한 보어리안은 혼자 다니지 않았다. 그들도 엄연히 지성 종족이었고, 언어가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다.”
“숲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확실하다.”
다람쥐의 눈알이 이빨에 끼인 보어리안이 손톱으로 이빨 사이사이를 긁었다. 잔혹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광경이다.
보어리안 중 하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볼을 긁었다. 볼 가죽이 찢어졌는데 그 가죽 속에 또 가죽이 있었다. 뜯어진 가죽을 뜯어낸 보어리안이 이를 버렸다.
인간의 신체적 특징과는 확연하게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들은 허리나 어깨에 멘 밧줄에 온갖 물건을 묶어서 다니고 있었는데, 절반이 돌과 돌을 부딪쳐서 만든 뗀석기였다.
그 뗀석기는 둔탁해 보이지만 확실히 뾰족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고, 사람 머리통과 비견될 정도로 컸다.
또한 돌도끼를 몇 개나 허리춤에 달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손잡이가 덜렁거리며 그들을 때렸는데도 다리에 멍이 든 이는 한 마리도 없었다.
돌의 차가운 감각도 계속 허리에 붙어있다 보면 미지근해져서 아무 상관 없었다.
그들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움직였다. 아주 약한 소리였지만 분명 자연적인 소리가 아니라서 능히 추적할 수 있었다.
촉감은 대단히 둔감한 것이 보어리안이지만, 그 외에 다른 것은 훨씬 인간보다 뛰어났다.
여기에는 신제국의 실수도 있었다.
북쪽에 거대한 창고를 짓는 행위는 땅이 크게 울리는 작업이 많았다.
그 덕을 보어리안들이 본 것이다. 보어리안들은 심심찮게 땅에 귀를 대본다. 덩치가 큰 놈일수록 공기보다는 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소리가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런 큰놈이 있는 게 직선거목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신제국은 아직 그 덩치 큰 사냥감과 조우하지 못했다.
덩치 큰 사냥감은 빅보어라 불리는 놈이었고, 덩치가 아주 큰 탓에 활동반경이 아주 넓었다.
하지만 보어리안들은 거침없이 움직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숲 지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맨발로 다녔지만, 가죽이 워낙 굵어서 날카로운 돌부리에 긁혀도 상관없었다. 그저 가죽만 베일 뿐이다.
촉각이 두드러진 인간의 피부, 다른 동물의 피부와 확연하게 달랐다.
겹겹으로 계속해서 가죽이 빠르게 생성되기를 반복하는 보어리안은 태어나면서부터 갑옷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게 그들의 강함이었다.
나아갈수록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왔다. 벌목하는 소리는 보어리안에게 가장 익숙한 소리이기도 했다.
“인간이다!”
“꿔꾸꾸꿔어어억!”
오랜만에 야들야들한 인간의 엉덩잇살을 탐할 생각을 하니, 함성을 내지르던 보어리안의 입에 군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질질 흘러내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인간이었다면 부끄러움을 느끼고 얼른 손으로 닦았겠지만 보어리안은 그런 부끄러움도 없었다.
“굴라(Gula)! 굴라(Gula)! 굴라(Gula)!”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그렇게 외치자 그 몸에서 거무죽죽한 액체 같은 것이 피어나더니 이내 전신을 둘렀다.
다른 이들도 똑같이 자신들의 신의 이름인 굴라를 외쳤다.
전신이 검은 액체로 뒤덮였고, 고무처럼 형질이 변해갔다. 탱글탱글하면서도 탱탱해 보였다.
동시에 그들은 허기가 져 근처에 있는 수풀에 손을 가져가서 단번에 뜯어내 이를 입에 우악스럽게 집어넣었다.
우걱, 우걱!
아주 맛깔나게 수풀을 집어삼켰다.
보어리안은 굴라로부터 많은 힘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때마다 배가 고파진다.
굴라가 보어리안에게 간사한 짓을 하는 셈이다.
보어리안들은 전혀 몰랐다. 오히려 익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배가 고프면 먹으면 그만이지!’
그들은 흔한 삼사십 대 아저씨들처럼 두둑한 술배가 나와 있었다.
심심하면 뭐든지 먹어 치워서 나중을 대비하는 건 보어리안의 가장 큰 미덕이다. 배가 나오지 않은 보어리안은 성적으로 매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많았다.
위험할 때, 힘을 많이 사용하면 배가 쏙 들어가기 때문에 더욱 보어리안 암컷들은 배가 두둑한 보어리안 수컷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의 거침없는 달리기 소리는 신제국의 병사가 모를 리가 없었다.
새도 잡고, 인근의 동물도 잡아서 그들이 있는 숲은 숲치고 대단히 조용한 편에 속했다. 무언가가 달려오는 소리는 명확하게 귀에 들려왔다.
사위를 살피던 기사가 이를 가장 먼저 들었다.
“집합!”
“집합! 집합! 집합!”
병사들이 하던 작업을 멈추고 모였다.
기사 한 명이 병사 오십 명을 통솔하고 있었다. 작업병들은 순도 100% 신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끔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이유도 그들은 군사교육을 오래 받지 못해서다.
기사는 그 수준을 잘 알고 있었다.
작업이 쉬운 게 아니다.
작업하다가 죽거나 크게 다치는 공병은 심심찮게 발생한다. 단순히 다리를 만드는 것만 해도 그곳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연락병! 메시지 마법을 발동해라!”
“예!”
등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던 신병이 가방을 서둘러 벗었다. 가방 속은 깡통이라서 휘청거리면서 무릎을 꿇으며 엉망진창인 모습을 보여줬다.
“천천히 하라! 아직 시간은 있다.”
“죄송합니다!”
가방 내부에 있는 철로 된 덩어리는 세 개의 보석이 박혀 있었다. 그중에 한 곳에 손을 올리고, 나사를 돌리듯이 돌리자 보석이 점점 깊게 들어가더니, 이내 빛을 냈다.
“지원 요청을 보내라. 위치도 말하고.”
기사가 소리가 나는 곳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동시에 기사가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멍하게 있던 놈들은 정말 인형처럼 보였고, 어리숙해 보였다.
“방패를 땅에 꽂아라! 창을 세우고, 진형을 갖춰라!”
“악!”
대답은 악으로 한다.
병사들이 방패를 땅에 꽂았다. 동시에 시동어를 외쳤다.
“확장 방패!”
방패에서 물과 흙 그리고 불꽃이 일어나며 확장하여 형태를 갖췄다. 물과 흙은 진흙이 되었으며, 불은 방패의 앞을 맴돌았다.
하늘로 메시지 마법이 솟구쳐 오르며 야영지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메시지 마법 송신 완료!”
“투사체 방어막 전개!”
연락병은 첫 번째 보석을 다시 돌려서 빛이 나지 않게 만들고, 두 번째 보석을 돌려서 단단히 끼워 넣었다.
전방에 불투명한 막이 펼쳐졌다. 그 막은 벽처럼 쌓아 올려졌고, 병사들의 목까지 올라왔다. 많은 범위를 막아주는 건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벽이었다.
동시에 목 위에 타원형의 방어막도 마련됐다.
마지막으로 기사는 허리에 매고 있던 화살통 같은 것을 끄집어냈다. 거기에는 막대가 있었는데, 이를 하나씩 땅에 박아 넣었다.
막내는 나무였는데, 끝이 뾰족했다. 또 온갖 주술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나무였고, 수풀이었다.
막대 끝에서 주술이 펼쳐졌다.
솔솔솔.
나뭇잎이 천천히 생성되며 이내 완전한 모습을 갖추자 날아가 병사들의 몸 곳곳에 묻었다. 상처를 입으면 치료를 해줄 것이다. 오크들의 물건이다.
“소리를 질러라!”
“아아아악!”
병사들이 악다구니를 썼다. 목이 쉴 정도로 계속 외치게 하였다.
창은 내뻗은 진형은 마치 고슴도치를 연상시켰다.
“우리의 임무 목표는 단 하나다!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면 그만이다! 야영지는 여기서 멀지 않다! 이것도 못 한다면 모든 이들이 비웃을 것이고, 술안주로 삼을 것이다! 술집에 들어갈 때마다 너도나도 비웃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싸우자아아아아!!”
잔뜩 흥분해서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무기로 방패를 때리는 놈도 있었다.
군율이 엄정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들은 늑대나 다름없었다.
“뀌이이이이이이이익!!”
적은 모습을 드러내자 잠시 멈추며 그들을 살폈으며 크게 소리를 냈다. 멧돼지 소리가 숲을 쩌렁쩌렁 울렸다.
꿀꺽.
그 소리는 엄청나서, 작업병들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의 얼굴은 모두 앳되어 보였다.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그 속에서 오직 기사 한 병만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가 롱소드를 높이 세웠다.
투구는 눈 빼고 모든 것을 가리고 있었다.
“인류를 위하여! 해방을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해방을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신제국의 군대가 가장 많이 외치는 구호였다.
“인류를 위하여! 해방을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해방을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와!”
“와아!”
“와아아아!”
그 외침 속에 보어리안 다섯은 피식 웃더니 그대로 덤벼들었다. 머릿수 차이가 10배가 났음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인간의 신체는 가장 키가 큰 이라고 해도 190cm를 넘는 건 기사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170~180cm 사이에 불과했다.
‘한 놈 빼고는 기세가 영 아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내뿜는 기세가 하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