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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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국에서는 약 2시간짜리 연설이 녹음되어서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워낙 긴 연설이라 마법 크리스털로 영상에 담을 수 없었다.
영상 처리 기계를 지닌 가구도 적었기에 녹음된 것이 라디오를 통해서 도시마다 온종일 떠들고 있었다.
세파리아스가 말한 연설이다.
[인류의 해방! 신제국은 인신으로부터 해방됐다! 전쟁은 사라졌고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다른 차원은 그렇지 못하다.]
연설은 개입해야 할 이유를 말하고, 그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끝도 없이 탄생하고 있는 수백 개의 차원, 수만 개의 차원에서는 아직도 인신이 인간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고 있다. 결국, 그들은 우리를 노릴 것이다.]
거대한 적은 항상 강력한 구심점으로 작용한다.
[가만히 있는다면 신제국은 잡아먹힐 것이며, 다종족 연합도 패배하게 될 것이다.]
끔찍한 미래가 있다고 거듭 언급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항상 걱정거리를 스스로 만들려고 애를 쓰는 공포 추종자들이다. 이런 위협은 그들의 심리를 크게 작용시켰다.
[오직 신제국의 군대와 신제국인과 우리의 동맹만이 이 위협을 이겨낼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야말로 인류를 해방시키는 최전선에 있으며, 우리가 최초의 해방군이다!]
명예를 드높였다. 모두가 먹고살 만하니, 명예에 더욱 관심을 지니는 이들이 많았다. 그 명예를 자극했다. 나이가 제법 먹은 이들마저도 여기에 걸려들었다.
젊고, 세상 모르는 어린 것들은 별다른 작업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덫에 들어올 지경이었다.
[위험은 가깝다! 지금도 한 걸음씩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차곡차곡 다가오고 있다. 마신이 그러하고 악마가 그러하다. 우리는 그 괴물들을 마주한 경험이 있다.]
과거, 그들을 괴롭혔던 이들에 대해서도 논했다.
이 연설 전에 게릴라 전쟁에 대한 사설이 무료로 곳곳에 배포된 것을 생각한다면 많은 신민이 이를 상기할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싱싱한 지식이었고, 그만큼 더 잘 기억이 났다.
[밖의 차원에는 강력한 적이 있다. 가만히 있으면 그들은 더 많은 차원을 지배할 것이고, 우리는 상대적으로 계속 약해질 뿐이다. 적은 밭을 늘려가고 있고,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 전쟁을 원하는가? 필요하다면, 오늘날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급진적인 전쟁을 원하는가? 인류를 해방하여 우리들의 동맹을 늘리는 전쟁을 원하는가! 신제국의 신민들이여, 분연히 일어나서 폭풍을 일으키자! 내가 가장 앞에 나서겠다!]
해방 연설은 곳곳에서 들려왔다.
어디에서든지 들려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이를 먹은 노인들도 라디오는 켜놓고 시간을 멍하게 보내기도 했다.
그들은 노쇠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신제국은 하나의 공장처럼 가열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세파리아스의 야망을 구현하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하며 그들은 자신들의 자식을 전쟁으로 밀어 넣었다.
그들의 자식들은 온몸에 흥분과 쾌감을 느끼며 그 구렁텅이로 자진해서 들어갔다.
“전진하라! 전진하라! 신제국의 군대여! 우리가 바로 인간이다!”
“가자, 가자, 동지여!”
“가세, 가세 가세!”
군가를 부르며 그들이 차원 다리를 건넜다. 사람이 걸어가는 곳의 반대편에는 마차가 오가고 있었다.
신제국이 만든 야영지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조심! 조심! 야!”
곳곳에서 욕지거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지반을 단단하게 다진 곳에 이동식 목조 막사를 설치하는 일은 한 번 사고가 나면 크게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반듯한 돌이 자리 잡은 곳에 길쭉한 집 한 채가 내려앉았다. 여기에 일곱 명의 병사가 거주하게 된다.
창문은 몇 개 없었다. 높이도 낮은 축에 속했다. 키가 큰 사람이면 머리가 천장에 쉽게 닿을락 말락 할 정도였다.
창문은 적었지만, 하나같이 유리로 된 창문이 자리잡혀 있었다.
군대에 납품하는 물건들이 그러하듯이 낮은 단가로 만들어지는데, 유리창을 집어넣는 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 간단한 천막을 세우지 않은 것도 이상한 일이다.
욜로를 추구하는 것처럼 흥청망청 돈을 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게 나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병사들을 위한 일이다.
“침구류를 정비하라!”
“와아아아아!!”
젊은 신병이 고함을 내지르며 돌격했다. 그들은 가장 좋은 자리를 찾아 나섰다. 구석진 곳이 최고였다.
“내 자리야!”
“덤벼!”
그들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신병은 훈련을 오래 받지 않아서 베테랑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지만, 현장 지휘관은 신경 쓰지 않았다.
‘더 큰 문제가 일어나야 내가 개입할 수 있지.’
저런 자잘한 것에 사사건건 개입하면 전투 시에 뒤통수에서 칼침을 맞을지도 모른다. 섣불리 지랄하는 것보다는 명확한 문제에 나서서 제지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확보해야 한다.
쉴 때 농담도 못 할 정도면 자기 등을 지킬 수 있는 든든한 동료가 되지 못한다.
야영지를 꾸리며 고급진 나무가 신제국으로 들어갔다.
그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신제국은 벌써 이득을 보고 있었다.
대한 목조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거대한 나무가 필요한 법이다. 이를 통해서 지은 거대한 온천이나 목욕탕은 큰 인기를 끌 것이다.
30m짜리 통나무를 그냥 세워놓기만 해도 관광상품이 된다. 그걸로 지은 초거대 대중목욕탕은 그냥 돈을 벌 어들일 것이다.
편백 나무를 사랑하는 한국인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비싼 집에 항상 있는 게 편백 나무였다. 나무는 항상 옳고, 자연을 생각하게 한다.
“이건 왜 캡니까?”
가죽으로 보호되는 뭉툭한 장갑을 낀 병사가 쭈그려 앉은 채 불평했다. 자신은 군사교육을 받으면서 멋진 역할을 기대했지만 지금 하는 건 그냥 노가다였다.
“생태보고서를 써야 하거든. 그중에 좋은 것이 나오면 물약에도 사용될 수 있겠지. 좋은 게 있으면 물약 단가가 낮아지거나 물약의 효능이 증가할 수도 있고.”
연금술사가 나긋나긋하게 답했다. 별명도 ‘나긋님’이라고 지어졌다. 묻는 건 항상 답해 줘서 만능해결사로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세 별명은 아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작업하던 병사 중 하나가 고함을 내질렀다. 이에 너도나도 도망 줄을 놓았다.
‘이런, 새끼들이?’
“야, 이 새끼들아! 자리를 지켜!”
연금술사도 도망을 가지 않고 외쳤기에 눈치 빠른 놈들이 냉큼 연금술사의 곁을 지켰다. 도망치는 놈들도 조금 뒤에 허겁지겁 다시 복귀했다.
연금술사라도 이곳에 온 이는 군사교육을 단기로 받았고, 계급도 현장 지휘관급이었다.
얼굴이 시뻘게진 연금술사 장교에게 병사들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머쓱.”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고 이를 입 밖으로 낸 병사에게 연금술사가 뺨을 후려쳤다.
“나 빼고 도망을 쳐? 나도 챙겼어야지!”
‘아, 그거 때문에 삐진 거야?’
“당연히 먼저 가서 살핀 겁니다. 다른 애들이 챙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새끼들이, 내가 앞에 나가서 사위를 살피고 도주로를 파악했는데 너희는 뭐 했어?”
“나도 도주로를 살폈습니다!”
“저돕니다! 여기 이쪽이 가장 좋아 보입니다!”
“여기는 사람이 안 다녀서 길도 없습니다. 가다가 넘어질 수 있어서 제가 먼저……!”
말을 못 하는 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한 놈이 물꼬를 제법 잘 틀어준 덕이다.
“다음에는 어림없어. 내가 평범한 장교였으면 너희들 벌써 싹 다 군사 재판감이야!”
“암요! 암요! 제가 오늘 캔 것을 보십시오!”
너도나도 그를 챙겼다.
끔찍한 비명을 저지른 병사가 본 것은 사람의 해골이었다.
“이걸로 그런 소리나 내고!”
“죄송합니다.”
해골은 오래된 것이 아니다. 아직도 살이 붙어있었고, 부패가 많이 진행되어 있어서 수분은 하나도 없었다. 바짝 말라 있어서 썩은 내는 나지 않았다.
“일단 보고를 하자. 우리가 할 일은 아니다.”
잠시 뒤에 시체는 발굴됐다.
“무기는 없지만, 박살 난 방어구는 있습니다.”
무기는 노획되었고 방어구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 같다. 한마디로 부서져서 가져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리할 수가 없단 소리다.”
상대할 적이 굉장히 미개했다는 소리였고, 혹은 인간들의 수준이 야만적이란 소리다.
인간을 죽이는 건 인간도 가능한 일이다.
부서진 방어구는 무두질 된 가죽이었다. 무두질을 하면 털가죽과는 다르게 오래 쓸 수 있었다.
“무두질한 가죽에 잿가루가 묻어있습니다. 무두질 방법도 원시적입니다.”
아주 원시적인 방법으로 만든 가죽 방어구였다. 가죽에 붙어있는 털을 제거하기 위해서 잿가루를 섞은 물을 쓰는데 그게 묻어나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방어구는… 처참합니다.”
새까맣게 탄 부분이 많은 체인메일이었다. 그것도 종종 어떤 부분은 구리를 녹여서 대충 엮거나 밧줄로 묶어서 고정한 곳도 있었다.
한 번 무기가 훑고 지나가면, 방어구의 한 부분이 뚝 떨어질 것이다.
“아교로 붙인 흔적도 있군.”
제대로 된 체인메일이 아니었다. 무식하기 그지없는 방어구였다.
유골의 사망을 추정할 수 있었는데, 갈비뼈가 성인 남성의 주먹만 한 크기에 맞은 것처럼 부서져 있어서다. 동그란 주먹 같은 참상에 갈비뼈가 부서진 흔적은 사망 원인을 충분히 알 수 있게 해줬다.
“구체? 그런 것에 맞은 것 같은데.”
뼈로 알 수 있는 건 그저 투포환 같은 것으로 맞은 흔적만 있다는 점이다.
시체는 그대로 수거되어서 보고서로 작성되었으며 마법 크리스털에 영상으로도 남았다.
이를 토대로 군사 회의가 세파리아스의 명령으로 이루어졌다. 갑작스러웠음에도 많은 이들이 모였다.
“이번에 발견한 시체다. 예사롭지 않아서 회의를 열었다.”
회의를 조례처럼 매일 하는 것은 대단히 비효율적이다. 필요할 때 딱 한 번 하는 것. 그게 바로 ‘진짜’가 일하는 방식이다.
하루에 다섯 번 회의를 하는 회사가 있다면 당장 이직을 준비해라. 남아있으면 그저 괴로울 뿐이다.
‘그저 뼈인 것을.’
부패가 완벽하게 진행되지 않아서 표본으로서의 가치는 있었지만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렇게 표면적으로만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자신의 의견을 내비치기에는 세파리아스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항상 그들의 생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럴 수도 있지만 항상 불신하긴 했다.
열 명 중 세 명은 항상 자신을 개새끼로 보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불신하는 이들은 언제나, 죽어서라도 세파리아스를 불신할 것이다.
모순적이지만 그런데도 그들은 세파리아스의 곁에 머물렀다. 그가 주는 꿀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달콤했다.
“직선거목 숲은 일반적인 숲이 아니다. 유해에서 발견된 가슴뼈를 부순 큰 상처는 상상 이상의 충격력을 보여주고 있다.”
세파리아스의 말이 거기서 끊기고, 그가 주변인들과 눈을 2초간 마주치며 둘러봤다. 정확하게 2초는 아니었다.
“무슨 생각이 드느냐?”
그래도 난다 긴다는 이들이 모였다. 세파리아스가 생각하는 답과 똑같은 답을 내놓을 이가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결국 세파리아스가 낸 답이 진짜 답이니까.’
괜히 답을 말해도 쓴소리만 들을 것이 분명했다.
깨끗한 우물에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것처럼, 세파리아스와 함께 회의를 하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뭘 해도 세파리아스가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나쁜 버릇이긴 했지만 세파리아스를 만족할 리가 드문 것이 현실이다.
인재라는 건 하늘에서 점지해 주는 것이지, 세파리아스가 아무리 개발악을 해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운이 좋아야 했다.
“투사체다.”
그 말에 많은 이들이 어리둥절했다.
“상대는 대단히 야만적입니다.”
“파손된 방어구를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제련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야만적인 놈들이 분명한데, 투사체라니… 그 말씀은 조금.”
수많은 이들이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코웃음을 쳤다.
“어리석은 놈들. 내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 내기라도 할 테냐? 난 내 목을 걸겠다.”
미친놈이었다.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다만 세파리아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 난 투사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본다. 직선거목 숲은 확실히 원거리 싸움을 하기 좋은 곳 아니냐?”
그 말에 또 찬성하는 이들도 나왔다.
“나무가 워낙 커서 다른 식물은 제대로 자라지 못했습니다. 끽해야 무릎까지 옵니다. 이족 보행하거나 덩치가 큰 놈은 보일 수밖에 없지요. 저는 투사체 방어에 찬성합니다.”
그 말에 많은 이들이 찬성으로 돌아섰다.
돈이 많이 들어가겠지만, 정말로 상대가 강력한 투사체를 발휘한다면,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다.
“준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