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0화
28. 차원 해방전 (1)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그사이에 드낙은 내실를 다지는 데 힘을 쏟았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누가 죽인데?”
드낙이 피식 웃었다. 다만 그 눈은 결코 웃고 있지 않았다.
‘참으로 인간은 변하지 않는구나.’
어찌 이렇게 탐욕을 부리는 걸까.
자신의 실력이 안 된다면, 재능이 부족하다면 거기서 멈춰야 한다. 3년 5년, 10년! 그렇게 매달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매달리고, 더 많은 권력을 탐하려고 한다.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다른 수법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부패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부패는 전염병처럼 주변으로 퍼진다는 게 문제였다.
비리를 저지르고, 작은 것을 주머니에 넣다가 이내 큰 것을 탐하게 된다. 껌이나 사탕을 훔치던 놈이 과자나 큰 것을 노리다가 이내 돈까지 훔치고 남의 집 담을 넘게 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악의 길은 정형화가 되어있었다.
목록의 한 줄. 숫자 하나를 해 처먹다가 이내 점점 욕심을 부리는 관리들도 똑같았다.
이들은 자신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순진한 생각이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걸 알면서도 덫으로 향하는 멧돼지와 같다.’
처음에 걸리지 않았을 때는 그게 너무 작아서였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그게 쌓이고 쌓인다. 눈에 보일 수밖에 없었다.
‘끝나지 않는 굴레.’
왜 불교가 윤회를 으뜸으로 삼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되풀이되고 있었으며 사람만 바뀌고 있었다. 하는 짓은 똑같았다.
“노동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를 바란다.”
그들은 다시는 관리가 될 수 없었다. 노동하며 일하면서 살아가는 길밖에 없었다.
그런 길을 걷는 것도 당장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국가에 끌려가서 노동징역형에 처한다. 그간 해 처먹은 것을 모두 토해낸 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못 낸 이들은 더 가중된 삶을 살게 된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0년까지도 차이가 났다.
자랑스러운 법치 국가인 대한민국처럼 무슨 회장이면 똑같이 감옥에서 일해도 1시간에 천만 원을 변제하는 것과는 다르게 다종족 연합은 최저임금으로 계산하기 때문이다.
한 도시를 좌지우지했던 내정관이라고 해도 광산에서 일해서 받는 돈은 다른 이들과 똑같았다.
위대한 대한민국의 법과 다종족 연합의 법은 같을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범죄자 인권이 가혹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었다.
특히 강간범에 대한 처우가 심하다는 소리가 종종 나왔다. 여자 인생을 개박살을 냈어도 3년 뒤에 다시 사회로 나와서 다른 여자에게 똑같이 행동하고 감옥에 들어가는 걸 되풀이하는 걸 용인하는 대한민국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드낙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그런 범죄자 인권을 높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드낙은 소시민적 사고관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범죄자를 노예처럼 부릴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간 네가 해 처먹은 것. 남한테 피해를 저지른 것. 그것만큼만 일하다가 오면 그만이야. 요즘은 석탄도 별로 안 써. 대신 철이나 구리는 끝도 없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다종족 연합을 위해서 헌신해라.”
네 몸이 철 가루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그 죄를 씻을 때까지.
부패를 척결하는 일이 인간에게만 일어난 건 아니다.
오크도 마찬가지로 부패한 오크가 존재했다.
“그아아아아!!”
오크가 발악했다. 걸쭉한 침이 바닥에 떨어졌다. 어찌나 난동을 부리는지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오크가 더 엉망일 줄은 몰랐는데.”
동 오크는 주술사들이 최고 권력을 독점한 상태였다. 그런 주술사들은 자신들의 야욕을 펼치는 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자신의 질서를 세상에 세우는 것은 정말 재밌는 일이었다. 내가 하라는 대로 법이 제정되는 뽕 맛은 마약보다도 더 심한 쾌락을 줬으며 엄청난 중독성이 있었다.
권력의 쟁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돈이다.
상업이 굉장히 발달했으며 지하에는 뿔 쥐들이 운용하는 지하 운해가 존재한다. 이 덕에 내륙에서도 싱싱한 대게를 먹을 수 있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돈을 싫어하는 오크가 없게 됐으며, 돈으로 팔지 않는 것도 없어져 버렸다.
일이 그렇게 되니, 오크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도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 결과를 위해서 과정이 옳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드낙이 거기에 개입했다. 많은 증거를 확보하고, 현장에서 주술사들을 잡았다.
“이게 무슨 짓이오!”
당연하게도 오크 주술사들이 너도나도 항의했다.
“이곳은 서 오크 제국이오! 아무리 드낙 님이라고 해도 선을 넘으셨소이다!”
대가리를 들이밀었는데, 드낙은 그런 오크 주술사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거리가 제법 있었음에도 아무 상관 없었다.
“악!”
“건방진 놈들이, 뭐가 어쩌고 저째? 미쳤어? 정말로 나와 끝까지 갈 생각을 지닌 주술사가 있다면 지금 당장 손을 들어라.”
그 말과 동시에 주변 사물이 검게 변질되어 갔다.
바닥도 천장도 해양 도시답게 발전하여 아름다운 유리창도 모든 것이 그림자로 뒤덮였다.
농밀한 그림자는 햇빛마저도 가리는 막처럼 이용됐는데,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그 초월적인 힘 앞에서 모든 것이 무력해 보였다.
주술사들은 자신들의 몸조차도 두 눈으로 볼 수 없었다.
칠흑과도 같은 어둠 속에서 드낙이 말했다.
“나한테 덤빌 놈이 있으면 지금 말해라. 너희는 나를 그냥 평범한 초월자로 보는데, 난 그 어떤 초월자와도 다르다. 나는 중립신(中立神) 엘 마르토 카사다민에게 부름을 받은 필멸자이며, 그와 연결된 유일한 존재였다.”
그런 자가 초월자가 됐다.
다른 초월자와는 격이 달랐다.
“…….”
그 누구도 답하지 못했다.
드낙과 대화를 할 정도로 간 큰 놈은 주술사 중에 없었다. 대전사라도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이곳에 있는 대전사들은 동 오크 제국으로 가지 않은 대전사들이다. 대전사인데도 머리가 제법 간사하게 돌아간다는 소리다.
자신의 가치가 동 오크로 가는 것보다 서 오크에 있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할 수 있는 전사들이 이곳에 남았다. 그들은 대단히 정치적인 전사들이었다.
“부패를 눈감아준다면, 오크들이 다종족 연합에 폐를 끼칠 수 있다. 내가 잘못한 것이냐?”
“아닙니다.”
“아닌데 왜 지랄이냐?”
“죄송합니다!”
드낙은 서 오크들의 기강을 바로잡았다.
“자정작용이 안 되니까, 내가 온 것이다. 알아서 똑바로 해라. 너희에게 준 해양 도시는 녹색 도끼가 너희에게 준 것이 아니다. 부패한 오크들 때문에 오크들이 피해를 입고, 더 나아가 다른 피해자들도 생긴다면…….”
드낙이 날카로운 눈을 하며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동 오크에게 너희가 지닌 해양 도시를 하나씩 이양하는 수밖에 없다.”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러기 싫으면, 부패율을 낮춰라. 적당히 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철저하게 임해라.”
드낙이 강하게 명령했다.
다만 이것을 실천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으며 독일의 아우토반(Autobahn)이 운용되는 것처럼 해야 해서 불가능에 가까웠다.
세상에서 속도 무제한 구간이 많은 곳이 아우토반이다. 아우토반은 사고율이 낮기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단속률 때문이다.
차 세 대를 추월하려면 1차선과 2차선을 세 번 왔다 갔다 해야 할 정도로 법이 빡빡하다.
암행어사처럼 일반차량과 다르지 않은 경찰차가 순찰을 많이 하는 곳이기도 하다.
1차선이 싹 비어있는 아우토반을 보면 한국 운전자들은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자신들과 똑같은 시대에 사는데, 차량 교통에서 한국이 얼마나 후진국인지 알 수 있었다.
1차로에 절대 진입하지 않는 대형 차량과 버스들을 보면 눈물을 줄줄 흘리는 운전자도 있을 것이다.
벌금으로 500유로를 내본 사람은 아우토반의 악명을 잘 알고 있었다. 외국인이라서 현찰로 그 자리에서 줘야 한다.
드낙은 그건 몰랐다. 그는 지구에 살면서 다른 나라의 삶이 어떤지 전혀 모른 채 살아갔다. 그저 노동자로서, 현대 사회의 밑바닥 계층에서 살아가는 일개 일개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드낙도 하나는 알고 있었다.
“계속해서 때려잡다 보면 물이 계속 맑아지겠지.”
무식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고, 그 어려운 일을 하는 건 자신이 아니었다.
자신은 꾸준히 할 필요가 없었다.
오크들을 협박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드낙에게 반항할 수 없었다.
‘그 뒤에는 다종족 연합이 있다.’
당장 오크들의 해양 도시를 원하는 이들도 많았다. 막대한 해양 자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주술사와 전사 정치 권력이 양분해 있다는 것도 컸다.
협박하기 딱 좋았다.
마지막으로 드낙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그림자가 사라지고, 햇빛이 다시 유리창으로 들어왔다.
오크들은 눈이 부셨다. 그 속에서 드낙이 증거물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서 중요한 증거물은 싹 빼돌려 놓았다. 이제 그것을 보여줬다.
“이게 무엇입니까?”
어린 오크들의 작은 송곳니였다. 일생에 단 한 번밖에 나지 않는 것이라 유치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런 것이 수백 개가 쏟아져 나왔다.
“저 개새끼가 했던 짓이다. 고아들을 보살피며, 여물지 않은 오크들을 이용해서 농사일을 시키고, 고된 노동에 죽으면 그대로 묻어버렸지.”
“…….”
야만적인 일이었다.
그런 결정적 증거물을 떼거리로 내밀자 주술사들은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끝없이 찾아 나서라. 철저하게 행하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드낙의 부패 순시는 혁혁한 공을 내세웠다.
부패를 저지른 관리들로부터 얻은 돈은 오롯이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당연히 자기 도시에서 조금 의심스러운 놈을 찌르는 이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하지만 무고한 이들이 9할에 달했다. 단순 질투심으로 벌어진 일이 많았다.
대부분이 무죄로 풀려났다. 다만 증거를 아주 잘 숨겼던 1할은 그런 질투심에 휘말려서 진짜로 들키고 말았고, 큰 벌을 받게 됐다.
* * *
“약속의 날이 왔다.”
D-day.
태양 차원에 도착했다. 이차원으로 향하는 차원 문의 유지비는 많이 들지만, 차원 이동에 비하면 오우거와 고블린의 차이만큼 적었다.
이 이차원 차원 문을 통해서 연결된 다리로 그들은 다른 차원으로 막대한 자원을 옮길 수 있었다.
그 문이 오늘 열린다.
많은 이들이 도착해 있지는 않았다. 차원 다리는 넓지 않았다. 육로였고, 3차선 도로 너비 정도의 다리였다.
넓다면 넓지만, 육로의 한계가 존재했다.
파괴될 것을 생각해서 단단하게 구축된 차원 문이 자리를 잡았고, 마력이 서서히 차오르며 차원 문을 기동시키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용접하는 소리, 무언가를 갈아버리는 소리가 뒤섞여서 들려왔다.
이내 번쩍임과 동시에 건너편이 보였다. 주피터가 말한 좌표는 정확했다.
세파리아스가 가장 먼저 앞서나갔고, 그를 따르는 황제 기사단이 이를 따라갔다.
사박.
첫걸음을 뗀 세파리아스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상쾌한 숲의 공기가 맡아졌다.
끝을 모르고 자라있는 나무의 높이는 못해도 30m는 되어 보였다.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였고, 덩치도 대단하여 몇 사람이 둘러싸도 손을 맞잡을 수 없을 만큼 둘레가 대단했다.
‘일직선으로 자라나 있다.’
세파리아스는 홀린 듯이 그 나무에 다가갔다. 무지막지한 크기였다.
하지만 다른 나무도 똑같이 거대했다. 그러면서도 일직선으로 곧게 자라있었다.
‘최상급의 나무로다.’
가구로 만들기 좋았고, 무엇보다 목재 건물을 크게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의 휴식처로 다양한 건물 형식이 만들어지고 있었는데, 목재 나무는 건강에 좋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재료였다.
한 그루만 가져가도 많은 데 쓸 수 있다.
직선거목(直線巨木)이라 불릴 만했다.
“정말 울창한 숲입니다.”
“워낙 큰 나무 때문에 수풀이 적어서 시야도 비교적 넓습니다.”
특이한 숲이었다. 나무가 워낙 커 일조량을 막고 있었다. 넝쿨도 그 나무를 둘러싸고 있었지만, 나무가 너무 커 넝쿨마저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나무를 죽이지 못했다.
다른 작은 식물은 크게 자라지 못하고 조그맣다.
“주변을 정찰하고, 야영지를 건설한다.”
직선거목을 벌목하는 작업도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생명력이 가득한 땅이다. 이런 곳에서 초월자와 초월자의 싸움이 있었다.’
세파리아스는 새로운 땅을 밟은 채로 상념에 잠겼다.
무엇이 되었든, 세파리아스는 여기에 있는 초월자를 싹 다 죽이고 인간을 해방시킬 것이다. 그리고 인간 외의 종족을 모조리 멸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기는 것은 오직 인간이어야만 한다.
승리한 것, 남은 것 또한 인간이어야만 했으며, 일등을 해야 한다면 인간이 해야 했다.
그 첫 삽을 뜨는 데 다른 종족이 개입하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