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7화
‘인신을 업의 생산자로 만든다.’
그건 실로 효율적인 일이었다.
여기에는 인신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점을 해결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내가 본 불멸자는 결코 좋은 놈들이 아니다.’
카실레안은 그들에게 분명 은혜를 받았으나, 그들의 근본이 결코 선함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살기 위해서 지구인들을 보살피는 꼴이지.’
그들에게는 명확한 욕망이 존재했다.
만신전의 경우에는 권력이다. 초월자로서의 권위와 권력에 집착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전쟁을 쉽게 알고, 전쟁에 나서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전쟁의 승리를 자신들의 것으로 삼는다.
‘어디에서 자주 본 놈들이지.’
어디에나 있는 놈들이다. 그리고 카실레안은 그런 놈들을 가장 혐오했다.
인신은 결국 인간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살아야 하는 정신 기생충이다.
물론 그들은 현대 지구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건 부정하지 않지만, 인신의 한계는 분명 존재했다.
필멸자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를 생각한다면, 업을 생산하는 인신 3팀을 지정한 건 신의 한 수나 다름없지.’
만신전이 하는 짓을 우주 낙원에 적용시킨 것일 뿐이다. 그들은 현대 지구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나의 차원에 더 많은 업을 생산하려면 인신들의 권능을 업을 생산하는 권능으로 삼으면 된다.
이를 통해서 현대 지구에 더욱 틀어박힐 수 있었고 더 많은 인신과 우주 낙원을 외차원으로 보낼 수 있었다.
우주 낙원은 식민지를 건설할 것이고, 그곳에서 나오는 업을 만신전으로 가져오게 될 터였다.
그 순환은 만신전의 새로운 사업 도구이기도 했다.
카실레안은 만신전의 행태를 보면서 수많은 필멸자가 고통받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그가 만신전을 배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적할 수 없으니까.’
패배하는 걸 알고 싸우는 전술가는 없다. 충무공조차도 싸울 수 있는 싸움에만 임했었다.
그러니 카실레안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저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신 다섯 개체에게 업 생산 권능을 구축하라는 명령은 가장 그럴듯한 것이다.
‘장기전을 할 수도 있고.’
오래 버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카실레안 또한 인신(人神)이다. 그 또한 업이 필요하니, 다른 인신은 더욱 절박할 것이다. 그런 절박함을 해소시켜 준다면 카실레안에게 조금 더 충성할 수 있을 것이다.
‘세력에 대한 사랑도 싹트겠지.’
조금 더 이곳에 남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시너지 효과도 일으키겠지.’
카실레안은 조금 차별은 있었지만, 최대한 공정하게 우주 낙원을 배분해 줬다.
그곳에는 용병 지구인들이 살고 있고, 그들로부터 신앙을 얻으며 업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선택을 아주 좋아하겠지.’
그런데 업의 생산 권능을 구축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면 더욱 그와 함께하고 싶어질 터다.
‘이제는 거침없이 당근을 줘야 하니까.’
피 묻힌 채찍은 채찍이 아니라 단두대로까지 보였다. 삼국지로 치자면 조조가 벌였던 서주 대학살을 벌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정말 당근, 당근, 또 당근을 보여줘야 했다.
‘당근 파는 마켓의 마음으로 당근을 베풀어야 한다.’
그게 바로 이번 일이었다.
‘그렇게 하는 이유.’
카실레안이 가지지 못한 전술적 이점이 존재해서다.
‘전쟁에서 이기는 놈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놈이다.’
모든 선택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 국가는 패배할 수가 없다.
‘결국, 돈과 인구, 세력이라는 것이지.’
이번에는 그것이 가능해 보였다.
‘전술적 후퇴를 하고도 나는 내 자유를 위해서 움직일 수 있다.’
카실레안은 도망치기 어려운 상황을 많이 겪어왔다.
여기에서의 ‘도망’이란 전쟁터를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도망을 치는 것을 뜻했다.
‘나한테 우주 낙원 300기를 줘?’
그로 인해 엘 마르토 카사다민이 얼마나 만신전의 역린인지 알 수 있었고, 동시에 카실레안은 드디어 처음으로 만신전을 벗어나서도 생(生)을 쫓을 수 있게 됐다.
즉, 만신전이고 현대 지구고 나발이고 도망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카실레안만의 새로운 세력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인신 15에 우주 낙원 300. 그 정도면 어디에 가서도 자리를 잡을 수 있고, 빠르게 차원을 개발할 수 있을 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중립신이라는 거대한 존재의 태동을 포착한 만신전은, 카실레안이라는 거대한 존재에게 날개를 달아주게 됐다.
“어떤 권능을 만들어야 합니까?”
수많은 것이 거론됐다.
“태양 빛이 어떻습니까.”
“이 이차원 항해 중에 항성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지금 있는 것을 통해서 얻어야지.”
카실레안은 5일 동안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본인이 나섰다.
자신의 위대함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여기에 있는 인신들은 막 태어난 인신들이다.
그 경험이 일천하다 할 수 있었고, 노력해서 다양한 지식을 탐닉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염(念).”
“생각… 말씀이십니까?”
카실레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인간은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 그 가루들을 모아서 업으로 치환하면 될 일 아닌가.”
그 판단은 인신의 사멸을 봤기에 가능한 판단이었다.
염이 뭉개지고, 파편화되어서 밀도마저도 옅어지며 사그라지는 것을 본 카실레안은 ‘정신력’이라는 것을 하나의 자원으로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방법이라면, 초월자의 정신력 또한 업으로 치환할 수 있습니다.”
“다섯이 모아서 권능 하나 만들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할 수 있습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중립신은 다양한 이름으로 테라에 간섭하고 있다. 드낙, 세파리아스. 그런 이름들을 쓰고 있다. 그가 암약한다면, 이 기회를 더욱 잡아야 할 것이다.”
카실레안은 건곤일척의 전쟁을 준비했다.
그가 얼마나 제대로 준비하느냐면 300명의 하찮은 신병보다도 못한 인신을 95% 죽일 정도였다.
* * *
드낙 또한 결심하고 있었다.
‘의외로 유해 동물이 많다.’
이 세상에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당장만 해도 비둘기가 그러했다.
비둘기들이 똥을 싸는 족족 부식이 일어난다. 냄새는 말할 것도 없었으며, 질병도 옮긴다.
‘모기도 마찬가지고.’
모기. 끔찍한 괴물이다.
만약 모기는 유해곤충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뚝배기를 깨보아라. 전선으로 이루어진 사이보그 로봇 사이코패스 살인마일 것이다.
이처럼 인간에게 도움이 안 되는 동물과 곤충은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그래야 다종족 연합은 조금 더 효율적으로 행성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지성 종족을 위한 세상의 완성을 위해서라면 모기는 반드시 죽여 없애야 했다.
‘여름이 될 때마다 끔찍하지.’
그런 유해한 것을 죽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돈을 마련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드낙은 결심했다.
‘장애인으로 구성된 이들로 이를 해결하자.’
불구가 되면 고칠 수 있다. 하지만 정신이 온전치 않은 이들은 고치기 힘들다. 원래 그렇게 태어났고, 유전자를 비롯한 고차원적인 행위가 필요했다.
하지만 다종족 연합의 과학 기술은 그리 좋은 수준은 아니었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이들을 모으는 건 모두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정신이 온전치 못하지만 육체의 성욕과 욕망을 가진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분노할 때면 가족이 크게 다치기도 했다.
노인복지와는 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단순히 격리만 해서는 그들의 삶이 불쌍하다. 그래서 숲이나 산에 모기를 잡는 통을 설치하고 이를 교체하는 일을 주려고 했다.
사회복지를 원하는 이들을 뽑아서 그들을 관리하게 했으며 동시에 그들은 사회에서 조금은 동떨어진 곳에서 생활하게 됐다.
드낙은 그런 결단만 한 것이 아니다.
장애인 범죄는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해결했다.
이를 찾아내서 확실하게 분질러 버리는 것에 시간을 할애했다.
그 덕에 사회의 부패율은 낮아지고, 사회자원의 효율성은 높아졌다.
신제국으로서도 기쁜 일이었다. 드낙이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장애인 국가 관리 협회를 만들어서 장애인들을 조금 더 조직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확량이 적어도 작물을 키워내면 그만큼 이득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신제국의 영토 중 텅텅 비어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신제국이 세워진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인간이 사용하고 있지 않은 곳이 존재했다.
그런 곳에 장애인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잔혹하기 그지없었지만, 정작 장애인들은 그곳에서 행복감을 느꼈다. 특히 어중간한 장애인들이 특히나 그러했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그들이 왕이었다.
간사하게도 그곳에서도 계급이 탄생했다.
자급자족과 외부에서 유입되는 다양한 자원들이 그들을 살게 했으며, 그들이 만든 것은 다시 사회로 이동됐다.
이들은 숲과 산에서 유해 동물과 유해곤충을 잡고, 강에서 놀면서도 벌레를 잡았다. 종종 비료가 부족하여 휴경한 농지에서도 이런 활동을 이어나갔다.
모기들은 빠르게 그 개체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모기의 대체재는 얼마든지 있었기에 생태계에 변화는 없었다.
이러한 행동 속에서 드낙은 주피터의 감시를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낌새를 느꼈다.
사냥꾼의 촉이다.
‘도망치려고 하고 있네. 하긴 이제 힘을 많이 회복했으니까.’
주피터는 태양 축적의 권능을 통해서 많은 업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제 그녀가 할 일은 도망을 치는 일이다.
* * *
주피터는 아무리 생각해도 1년이 넘도록 세파리아스에게 다종족 연합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확답을 듣지 못했다. 몰래 그곳을 드나들었지만, 정식으로 초대를 받지는 못했다.
그 태도만 봐도 세파리아스가 주피터를 경계하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경계하니, 같이 살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주피터의 결심은 세파리아스가 유도한 결과였다. 너도 속였으니, 사실 나도 속인 거야. 그런 개소리를 하기 위한 명분이 생긴 것이다.
명분이라는 건 사실 진흙탕만 되어도 버틸 만했다.
역사에는 비리를 저지른 놈이나, 그것을 불법으로 캐낸 놈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명분으로 재미를 본 경우도 존재했다.
더러운 짓이지만, 대중에게 그놈이 그놈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서 명분을 짓이겨 버리는 건 훌륭한 귀족적 처세 중 하나였다.
군중은 인내심이 대단치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런 방식은 굉장히 효과적으로 적용된다.
주피터에게 그런 짓을 하는 이유는 당연히 만약을 대비해서였다.
‘무엇보다 이제 태양 차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주피터는 결단을 내릴 때가 됐지.’
세파리아스와 결전을 벌이지는 못할 것이다. 차원 문밖을 돌아다닌 덕분에 신황제라 불리는 존재가 강하다는 걸 인식해 버렸기 때문이다.
드낙은 주피터를 무력화시킬 때를 기다렸다.
준비랄 것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태양 차원 좌표를 관측하기 전. 태양 차원에 도착하기 6개월 전에 일어났다.
* * *
전투 강철 인형에서 주피터가 극한으로 잠자고 있던 정신체를 끄집어냈다. 자연적으로 힘이 소모되기 시작했다.
필멸자를 두르지 못한다면, 그녀는 소모를 이어나갈 것이나, 그녀에게는 훌륭한 소재가 눈앞에 있었다.
일렁거리는 정신체가 튀어나온 전투 강철 인형이 강철 태양을 집어 들었다.
강철 태양은 엄청난 무게를 지녔지만, 그녀는 손쉽게 이를 들어 올렸다.
정신체가 마치 거미줄처럼 거대한 강철 태양을 집어 들었고 물리력을 행사했다.
‘이제 튀면 된다.’
도망치는 방법은 간단했다. 이곳은 이차원이니, 그냥 뛰어내리면 끝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이행하지 못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체가 반으로 쩍 갈라졌다.
―아악!
그녀가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고통과 함께 정신체가 절단되는 감각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서둘러 그녀가 양단된 정신체를 하나로 모았다.
쿵.
육중한 강철 태양이 땅이 박혔다.
―……?
주피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그 무엇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공격당했지만, 그 주체를 찾을 수 없었다.
드낙이 애초에 모습조차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드낙을 찾으려고 했다. 정신 가닥을 뽑아서 사위를 훑었고, 진동을 내어 이상한 점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다.
―누구냐…….
그 말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드낙은 대답 대신에 다시 한번 더 주피터에게 자신의 무서움을 보여줬다.
소리도 없었다. 그저 주피터의 정신체를 한 번 더 양단했다.
세상을 속이고, 관측에서 벗어났으며 미시세계의 파동으로 존재하는 드낙은 계속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숨만 쉬고 있어도 그 재능은 꾸준히 산을 올랐다. 결국 이제는 파동 세계 안에서도 밖을 관측할 수 있었다.
나는 되는데, 너는 안 되는 식이다.
―악!
주피터가 UDT 훈련 생도가 된 것처럼 악 소리를 냈다. 두 번째에도 그녀는 드낙을 관측하는 데 실패했다.
그제야 주피터는 자신이 창 없는 감옥에 갇힌 것을 깨달았다.
―흐흐흑…….
그대로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초월자였기에 더욱 깊게 체감할 수 있었다.
초월자였기에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걸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이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을 때린 것처럼,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드낙은 그녀가 너무 쉽게 꺾이자 되레 당황했다.
‘이게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