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1화
* * *
‘아아! 태양 빛이 내 눈에 가득해!’
파동 세계에서 태양 빛 입자를 모은 드낙은 실로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햇빛의 따사로움.
그 권능이 주는 위대함은 드낙의 표정을 한없이 자비로운 표정을 짓게 하였다.
이런 권능을 가진 주제에 인간의 고혈을 빨아먹은 주피터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그만큼 햇빛 권능은 초월자를 푸근하게 만들어 준다.
그 속에서 드낙은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항상 야간 근무를 해서 그럴까. 단 한 번도 일광욕다운 일광욕을 해보지 않아서 그런 걸까.
이유는 모른다. 다만 지금까지 드낙은 햇빛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마음 깊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마치, 퇴근길에서 달을 본 기억이 없는 것처럼 태양을 깊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 잘못은 아니지. 태양 잘못이지.’
용접 안경을 끼지 않고는 태양을 보면 안 된다. 그러니, 태양을 볼 리가 없었다.
궁핍하기 짝이 없는 변명을 하면서도 드낙은 제법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어렸을 때는 반지하에서 살았었지.’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 반지하의 벽에 얼룩진 습기와 곰팡이의 형상은 아직도 드낙의 뇌리에 강하게 새겨져 있었다.
사람을 지하에 처박히게 살게 만든 사회는 있어서는 안 된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회였다.
노모를 모시고, 30대의 젊은 혈기를 지닌 이가 자살하게 만드는 사회 또한 존재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 면에서 햇빛은 드낙의 깊은 마음속을 비추는 무언가였다. 그 감성을 건드리는 뭔가가 있었다.
‘모든 사람이 햇빛을 볼 권리를 가져야 하지.’
지하 연합에 살아가는 이들이 눈에 밟혔다.
그들은 지하 종족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햇빛을 받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햇빛은 평등해야 해.’
가진 자들은 당연하게 햇빛을 누리기에 햇빛의 소중함을 모른다. 못 가진 자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에 햇빛을 가지지 못한다.
드낙은 자신의 예전 삶을 추억했다.
그리 좋은 추억은 아니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매일 씻어야 했던 편의점 야간. 물건을 진열하는 걸 도와주던 택배 아저씨와 함께 담배를 피우고 인사를 하던 삶.
주야를 번갈아 가며 사람을 갈아 넣었던 공장. 주야 교대에 결국 쓰러지던 50대 퇴직자 아저씨가 응급실에 실려 가는 모습.
그들 모두 햇빛 아래에서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밤의 가로등 아래에서 살기를 원했다.
죽어서도 양지바른 곳에 묻히는 이들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그들은 얼마나 양지를 좋아했을까. 탐했을까. 원했을까.
드낙은 그런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충분하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면 된다. 적어도 자신의 다종족 연합은 하루하루, 달라지는 게 있다는 걸 보여주면 된다.
능력이 아닌 권능다운 권능을 만드는 데 첫 번째 걸림돌은 목적이다.
드낙은 태양을 모든 이들이 누리는 동시에 자신에게 이득이 되도록 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업은 성장하지 못할 터였다.
‘태양 축적의 권능은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었다. 이를 그대로 내 권능으로 삼아도 되지만, 그래서야 주피터와 다를 것이 없다.’
더욱더 스마트한 권능으로 만들고 싶었다.
‘굳이 내가 태양 축적을 할 필요는 없지.’
먼저 주피터는 자신 스스로가 태양 빛을 먹는 식이다. 아주 이기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었다.
드낙은 먼저 이를 고쳤다.
‘물건에 부여하는 식으로 해야지.’
다만 그렇게 되면 권능의 효율성이 낮아진다. 주피터가 괜히 자신만 이득을 보게 한 것이 아니다.
‘금에만 부여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면 조금이나마 괜찮겠지.’
부여할 물건을 금으로 더욱 좁혔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효율성을 내기 위함이다.
‘작으면 부여가 안 된다는 제한을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사람 몸통만 해야 사용할 수 있는 권능으로 뒀다.
제한이 많이 될수록 더 쓰기 좋은 권능이 된다.
‘이렇게 해도 이기적으로 혼자 쓰는 것보다는 못하네.’
드낙은 5t 이하의 금덩이에는 권능이 스며들지 못하게 되도록 제한을 걸었다. 그래도 부족했지만, 덩치를 키운 덕은 볼 수 있었다.
‘능력과는 확실하게 다르다.’
업을 다루는 일이다. 확실하게 막대한 업이 소모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여 드낙은 조금 쉬기로 했다. 불완전한 상태의 권능을 바라보고 숨을 돌렸다.
이내 또 하나의 방법이 떠올랐다.
‘전초극의 권능을 만들면 얼마나 많은 권능이 들어갈까.’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난도가 높아서 시도도 하지 않았었다.
쉬면서 아이디어도 하나 낼 수 있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사용할 수 있으면 더 좋겠는데.’
앞으로는 태양 빛을 받으며 이를 업으로 치환하고, 그림자가 생기는 뒤로는 또 다른 효력을 발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쁘지 않았고, 스마트했다.
‘역시 초월자는 스마트해야지.’
적어도 주피터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동시에 그림자는 드낙의 특기이기도 했다. 그런 드낙의 특기를 이어받은 것이 뿔 쥐들이다.
‘그림자와 관련된 권능이라…….’
무궁무진해서 도리어 뭘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태양 빛을 굳이 지하로 보낼 필요는 없다.’
더 많은 휴가.
더 많은 행복.
이것들을 위해선 일하는 데 태양 빛을 받게 하는 건 안 된다. 그건 정말 미친놈의 발상이다.
오랜만에 나가는 외출, 그 여행길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진짜 태양 빛이며, 양지바른 길이라 할 수 있었다.
‘태양 축적의 권능을 내가 사용하게 된다면, 많은 업을 추가로 얻게 되겠지.’
그중 30%~50% 정도는 다종족 연합의 필멸자를 위해서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혹은…….
‘그림자 권속 악마를 만들거나.’
그림자 하면 떠오르는 것은 몇 가지가 있었다.
먼저 뿔 쥐들의 드낙이 사용하는 그림자의 힘이다.
‘그 힘을 다른 이들이 이용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내정에 어울리는 힘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종족 연합의 생명체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결국 경제가 중요하고, 부의 배분이 더 중요했다.
이번 아이디어는 쓸 만하지 않다.
‘아스톨포 왕자의 그림자 힘.’
사용하는 사람이 달라지지만 크게 변하는 건 없었다.
‘마지막으로…….’
레우치터. 원시 주술과 주술의 경계선에 있는 소환 주술로 탄생하는 존재.
‘초월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놈이지.’
이를 권능으로 삼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태양 축적의 권능은 ‘업’을 얻을 방법이기 때문에 레우치터가 이를 자신의 양분으로 삼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림자 권속 악마를 생산하면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막노동하는 사람들을 돕는 그림자 권속 악마를 생산한다면, 괜찮은 권능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낙은 그 구조를 정리했다.
5t짜리 금덩이를 우주 공간에 세우거나 혹은 지상에 높은 곳에 둔다. 최대한 햇빛을 많이 받는 곳을 지정한다.
태양 빛은 업으로 치환된다. 이를 통해서 드낙은 더 많은 업을 벌어들이게 된다.
그중 절반 혹은 일부를 그림자 권속 악마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그 악마는 막노동하는 이들을 돕는 권속 악마가 될 것이다.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또 하나의 업 수급 장치를 얻고, 동시에 내정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밑에 사람들을 돕는 일이 될 것이다.
택배 일을 하는데 외골격 장비를 쓰는 것 같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금 더 편하게 조금 더 빨리 일을 끝낼 것이다.
‘만약 내가 현대에서 살아갈 때 날 도와주던 이가 있었다면 내 삶은 바뀌었을까?’
변하지는 않겠지만, 그는 분명 바뀌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자 권속 악마부터 어떤 걸 만들지 생각해야겠다.’
급이 높은 권속 악마는 시작부터 쳐냈다.
노동자 계급을 위한 권속 악마기에 급이 높으면 숫자도 적어진다. 그래서야 수를 맞추는 데 오래 걸린다.
‘태양 축적의 권능도 금에 담는데, 권속 악마라고 물건에 담기지 말라는 법은 없지.’
허리를 보호해 주는 밴드에 그림자 권속 악마를 넣을 생각을 가졌다. 애초에 그림자였기에 마력으로 먹고살면 될 듯했다.
‘쉐도우 서포터라고 이름 짓자.’
* * *
드낙은 그 뒤로 거의 3개월간 권능 제작에 매달렸다. 틈틈이 주피터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움직인다면 바로 알 정도로 주피터에게만 시선을 두기도 했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드낙은 비로소 자신만의 제대로 된 권능을 곧추세우게 됐다.
[그림자 태양 축적의 권능]
태양 빛을 업으로 받고, 그 업을 통해서 탄생하는 쉐도우 서포터의 숫자는 대단히 많았다. 악마였기에 이제는 권속 악마를 만드는 데 업이 사용되지 않았지만, 이 경우에는 사용됐다.
그 덕에 막대한 숫자를 뽑아낼 수 있을 거라 기대가 됐다.
5t짜리 황금을 만드는 건 미친 듯한 돈이 들어가는 일이었지만, 광산 원재료 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 다종족 연합의 세력들이었다.
최소한의 단가로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쉐도우 서포터들은 척추 보조 허리 밴드에 스며들어 본격적으로 노동자들에게로 지급됐다.
동화 50닢이라 제법 비싼 축에 속했지만 10개월 무이자 납부가 가능해서 한 달에 동화 5닢만 내면 그만이었다.
힘든 일을 하는 이에게 지급이 우선되었지만, 범죄자들은 그 우선에서 빠지게 됐다.
아무리 효율성을 추구한다고 해도 ‘그림자 태양 축적의 권능’에서 탄생하는 쉐도우 서포터들은 노동자들을 위한 권속 악마 장비였다.
이를 범죄자들에게 사용한다면, 그 목적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아! 드낙 님이시여!”
“이런 걸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회복 물약에 기대지 않아도 되겠어! 큰돈을 아낄 수 있을 거야!”
“이걸로 내 집 마련에 한 걸음 다가간 것이나 다름없어!”
노동자들은 크게 좋아했다.
공산주의에서도 계급의 차이는 존재했다. 하물며 다종족 연합이라고 해도 있는 자와 없는 자는 나누어져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돈을 잘 버는 이들. 돈을 잘 지키는 이들.
그런 이들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어서다.
그사이에 드낙은 큰일이 터졌다는 것도 알게 됐다.
“차원 전파라니! 테라의 정보가……. 아아악!”
드낙이 끔찍한 소리를 냈다. 그만큼 막대한 손실이 따로 없었다.
‘당장 차원 낙원만 해도 신제국의 수도에 강습을 했는데…….’
만약 이 정보가 풀어진다면 소규모의 연속적인 공습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일이 마무리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안심하게 됐다.
* * *
드낙은 신제국에 머물게 됐다.
지금 가장 폭풍의 중심에 있는 곳은 신제국이었다. 태양 차원이 곧 나타날 것이며, 그곳으로 신제국의 군대가 들어설 것이다.
‘새로운 초월자들과 새로운 적이 모습을 드러내겠지.’
그곳의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다종족 연합의 필멸자들은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교역으로 얻는 이득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를 터였다.
반면 태양 차원에서 핍박받으며 살았던 필멸자들도 전쟁 이후에는 평화를 얻게 될 것이다. 비록 권력자들은 납득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민초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드낙은 어디서 배 두드리고 전쟁을 건 주제에 자기 자식은 죽음으로 내몰지 않는 개새끼들보다는 민중의 삶에 더 감정을 이입하는 초월자였다.
세파리아스는 단순히 인신들과 초월자에 대한 복수심과 명예욕으로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드낙은 세파리아스의 도움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유해 동물?”
“그렇다. 네가 좀 나서줘야겠다.”
“신제국의 농경지를 돌아다녀 보면 문제를 바로 알 수 있을 터다.”
“무슨 헛소리야. 빨리 정보를 토해내.”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웃으면서 태블릿 하나를 던졌다. 드낙이 이를 낚아챘다.
곧바로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겨울잠쥐?’
한낱 쥐새끼가 신제국의 농경지를 괴롭히고 있는 유해 동물이라니? 놀라운 일이었다.
‘쥐덫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는데 굳이 나를 시킨단 말이지.’
“어울려주지.”
10년 동안 놀았기에 드낙의 열정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다. 세파리아스는 이를 훌륭하게 이용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