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0화
세파리아스의 말을 듣던 지배자들이 대경실색했다. 감히, 신제국도 못 하는 것을 지하 연합에게 논했다.
“나는 할 생각이다.”
반면, 세파리아스는 무덤덤하게 이를 이어나갔다.
“전력 시설이나 중요 시설의 위치 정보가 유출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이전시키는 건 너무한 것 아닙니까.”
“강요하지는 않겠다.”
세파리아스는 그 반박에도 담백함을 유지했다. 분노도, 증오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필요한 것을 이 대책 회의에서 발언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고, 적어도 신제국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착실하게 중요 시설을 옮길 생각이다.”
그 말에 모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갈림길이 생겼다.’
세파리아스의 발언으로 명확한 갈림길이 생겼다.
그 갈림길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나중에 어떤 것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책임을 지고 안 지고가 결정될 터였다.
‘먹으면 독이고, 먹지 않고 놔둬도 흉물이다.’
흉물을 처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곤욕을 치를 수 있고, 독을 먹었다는 이유로 온갖 욕에 시달릴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을 유도한 세파리아스는 실로 정치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신제국의 정치체계는 세파리아스와 인간 해방 이데올로기가 가장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특징상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건 아주 쉽다.
나라도 두 쪽으로 내는 것이 이데올로기의 무서움이었다.
옛 제국은 영혼 제국으로 변모하면서 끔찍한 피의 역사를 지녔고, 그 덕에 신제국의 인간 해방 이데올로기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었다.
거기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굵직한 성과를 내는 세파리아스 또한 맹목적으로 믿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 상황이기에 세파리아스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
마오쩌둥도 참새를 싹 다 죽여버릴 수 있는 권력을 지녔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아사시키고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다. 그게 바로 공산주의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이데올로기였다.
반면 다른 이들의 정치체계는 ‘지배자 입장’에서는 엉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배자 입장에서는 그냥 독재가 최고의 정치체계였다.
오크는 둘로 나누어져 버렸다. 개 같은 짓을 하면 그냥 다른 오크 세력으로 옮기면 된다.
상위국 또한 네 개의 자치령으로 나누어졌다. 전력, 전기 및 중요 시설을 은근히 많이 지어놓았다면 이를 옮기다가 사람들이 다른 자치령으로 이주하게 될 터였다.
지하 연합 또한 말할 것 없다. 그들은 오히려 지하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시설을 옮기는 단가가 많이 비싸다.
똑같은 건물, 똑같은 용도라 해도 지하 공간에서 설비를 옮기는 건 지상에서보다 인건비가 곱절은 더 들어간다.
적어도 지하 연합은 강력한 위원회로 무장하고 있지만, 정치가 아니라 공사비를 생각한다면 세파리아스의 공세는 제법 매섭게 느껴진다.
‘이런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놀라웠다. 사람 뚝배기 깨는 데는 일가견이 있어도 지독하게 있다.
회의는 침묵으로 내려앉았다. 다만 뿔 쥐 위원회의 수장, 대장 쥐만큼은 태연했다.
‘세파리아스는 정신체를 가지고 있다.’
그의 눈이 반짝였다.
인신의 가장 큰 장점은 육신은 육신대로 정신체는 정신체대로 운용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세파리아스는 알게 모르게 지하 연합의 이모저모를 알고 있다.
지하 연합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드낙을 위한 광신도들이 많았기에, 분명 많은 돈을 투자해서 완벽하게 리스크를 지우려고 할 것이다.
‘막대한 기회비용을 잃는 셈이지.’
그 돈으로 다른 곳에 투자했다면 더 엄청난 성장세를 이룩할 수 있는데 그 성장이 사라지게 된다.
세파리아스의 발언은 수많은 세력을 견제하는 것이 되었다.
곧, 전쟁을 수행하는 나라의 지배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세파리아스가 기존의 시설을 열성적으로 옮긴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건 안다.”
세파리아스의 생쇼가 시작됐다. 그는 자신이 입에 담은 일을 구색으로 할지, 진심으로 할지 자신조차도 알 수 없었다.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었다.
“본인 세력에 있는 시설들의 정확한 용도는 몰라도 위치 정보만큼은 확실하게 유출됐다. 한 번에 모조리 파괴되는 미래가 있을 수 있다.”
“그런 미래를 보고도 놔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적어도 신제국은 오늘부터 과거의 실수를 만방에 알릴 것이며, 이동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안 그런가?”
“국운을 걸어야 하는 일이지.”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 적어도 후쿠시마 꼴은 피하고, 체르노빌에서 멈춰야 했다. 그러려면 막대한 돈과 인력을 소모해야 한다.
“오랜만에 대규모 토목사업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아무리 노력해도 위에 있는 돈을 아래로 향하게 하는 건 어려운 일 아닌가.”
자꾸만 한곳으로 모이는 돈을 적법한 방법을 통해서 재분배하는 방법은 지독하게 어렵다.
세파리아스의 화두는 지배자들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회의는 그것으로 끝났다.
그는 드낙이 아니다. 신제국의 신황제일 뿐이기에 강제할 수는 없었다.
다만 신제국은 이후 어느 정도 정보를 대대적으로 발표하며 막대한 손실을 보더라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그 노력에 들어간 돈과 인력은 평범보다는 조금 덜 미쳤다.
전쟁을 앞두고 있었기에 큰 행동을 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오히려 그 외에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있었다.
무엇보다 신제국은 강철 전투 인형을 적게 운용하는 탓에 사람에 기대는 것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분명한 것은 신제국도 천천히 중요 시설을 옮기고, 그 터를 유지해서 간사한 계략을 내뻗고 있다는 점이었다.
* * *
상위국은 골머리를 싸매야 했다.
“하기는 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투 강철 인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많은 여력을 소모했는데, 허어…….”
그들은 통일되지 않은 정치 구도를 지니고 있었다.
이 때문에 힘을 100% 사용할 수가 없었다. 또한 마력을 지닌 상위 인간을 많이 탄생시키고 있었기에 더욱 많은 자원을 그곳에 쏟아부어 버렸다.
“차라리 신제국에 용병으로 스틸 로드(Steel Lord)와 전투 강철 인형을 파견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렇게라도 이권을 받아내야 이 일을 추진할 수 있어 보였다.
“안 할 수는 없으니…….”
“신제국 또한 결국 혼자서 차원 전쟁을 감행할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들의 차례가 있다는 겁니다.”
신제국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병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스틸 로드는 합당한 시험을 통해서 그 실력을 이미 검증했다.
그들은 어디든지 든든하게 버텨줄 군대였다.
“사절단을 보내고, 천천히 조율해 봅시다.”
“어차피 2년 뒤에는 결정이 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한 것은 우리, 상위국이외다!”
상위국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들은 10만 대군이라 할 수 있는 전투 강철 인형을 완벽하게 편제한 강철의 비 우수 국가이자 강철 인형 선진국이라 할 수 있었다.
문제가 있긴 했지만, 다종족 연합은 그들 나름대로 차선을 택하며 빠르게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몸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다종족 연합의 몸이 서서히 달아오르며 열기가 세상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이었다.
* * *
세상이 그렇게 ‘태양 차원’에 대한 기대감으로 먼저 반짝반짝 빛을 낼 때, 드낙은 혼자서 주피터를 감시하면서 자신의 권능을 빚어내고 있었다.
‘중립신이 만든 능력을 난 권능으로 삼았었다. 하지만 그건 반쪽짜리에 불과했어.’
그걸 권능으로 삼은 것 자체가 큰 잘못이나 다름없었다.
소위 드낙 스스로가 자신이 만든 ‘권능’을 삼은 것은 무려 24가지에 달했다.
그 권능을 하나하나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첫 번째 권능은 당연히 ‘정신세계의 피의 잔’이라 할 수 있다.
종족 값이 낮은 이들에게 추가적인 악마의 힘을 몰래 체내에 침투시켜서 제공한다.
종족에 따라서 불가능하기도 했는데 고블린이 그러했다. 이 때문에 고블린을 위한 권능을 따로 만들어야 했다.
어찌 되었건, 이 정신세계의 피의 잔은 권능처럼 보였지만 그 속내는 중립신이 만든 능력이나 다름없었다.
권능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는 탓이다. 피의 잔을 받는 필멸자는 분명 좋아하겠지만, 악마인 드낙에게 도움이 되는 권능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권능이라고 할 수 없었다.
중립신의 권능인 전초극의 권능만 봐도 중립신에게 크게 이로운 것이다.
‘그게 권능과 능력의 차이는 아니다. 중요한 건 그릇이다.’
가장 중요한 건 그릇의 크기다.
피의 잔은 쪼잔하게 논다.
필멸자 하나하나의 객체마다 존재하며, 그 크기는 좁쌀처럼 작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한 차원을 지배하는 신이 가질 권능이라고 소개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오히려 태양 축적의 권능이 더 그럴듯한 권능이다.’
태양 빛을 업으로 치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데미갓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에 준하는 태양 영웅들을 양산할 수 있었다.
인신인 주피터에게도 도움이 되고, 주피터의 울타리 안에 있는 가축인 인간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반면 피의 잔은 부족한 점이 많았다.
‘개량하기에는 늦었지.’
개량한다면 종족 값을 폭주하듯이 높이는 식으로 사용될 텐데, 그렇게 되면 필멸자의 삶이 고단해진다.
그것이 드낙이 주피터의 권능을 빚으면서 얻은 깨달음 중 하나였다.
그가 가진 두 번째 권능은 강철 배변이다.
앞서 말했듯이 고블린을 위한 권능―이제는 능력―을 내어줬는데 그게 바로 강철 배변이었다.
말 그대로 강철과 철 조각을 배변하게 된다. 이를 통해서 종족 값을 높일 수 있고, 몸에 철분이 쌓이며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임계점 땀 코팅 또한 훌륭하다. 대량의 땀을 모으면 연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초월 제어의 권능, 엘프의 녹안을 더욱 강화시키는 ‘엘프의 녹안 권능’ 혹은 영혼의 격을 상승시켜서 조금 더 필멸자의 그릇을 크게 만들어 반마로서 빨리 개화할 수 있게 돕는 영혼의 격 권능.
온갖 종류의 권능이 있었다.
심지어 ‘고블린 주력 창안’은 고블린 주술사를 더욱 양성하고 그 비율을 높이는 권능이기도 했다.
그러나 드낙에게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권능이었다.
그 모든 권능은 결국 권능이라 할 수 없었다.
‘중립신이 나에게 보여준 능력을 벤치마킹한 것에 불과하다.’
하나같이 필멸자에게 도움이 되고, 드낙의 업은 빼앗아 먹는 구도다.
중립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업을 빨아먹는 기생충이었고, 드낙은 그를 통해서 권능을 배운 탓에 그런 종류의 권능밖에 만들지 못했다.
드낙은 주피터를 통해서 자신의 권능이 잘못된 점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권능다운 권능을 만들어야겠지.’
그러기에 드낙은 주피터의 권능을 고스란히 복제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의외로 많은 것을 배운 덕분이다.
‘내가 만든 권능은 남에게 능력으로 줘야 한다.’
자신이 짊어져서는 안 된다.
적어도 반마들, 준초월의 권좌에 오른 이들에게 능력을 심어 그들로부터 아랫사람들이 그 능력을 전해 받게 해야 한다.
‘점조직처럼 운영해야겠지.’
피의 잔도 반마의 피를 다른 이들에게 조금씩 내어주도록 해야 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은 업이 성장할 것이고, 더 강력한 필멸자가 되어 다종족 연합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탤 것이다.
‘트리플 피지컬 팩터의 권능도 마찬가지다.’
뼈의 성장.
근육의 성장.
외모의 발달.
그 세 가지를 이룩하여 지성 종족의 번식을 유도하고, 성교를 더 많이 하게 하여 세상에 지성 종족을 가득 채울 생각을 했지만 이 또한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필멸자에게 심어질 능력은 반마들에게 내어줘서 그들이 사용하게끔 하는 게 좋겠지.’
언제 한 번 싹 다 정리할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의 권능 제작 숙련도는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고 있었다.
주피터가 사용하고 있는 권능을 훔쳐보는 건 난이도가 있는 일이었다.
본다고 해서 다 만들 수 있다면, 고생할 필요가 없다. 프로그램 코딩을 할 줄 모르면 프로그램을 못 만드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드낙은 철저하게 이를 역추적하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건 추적이나 다름없었고, 사냥꾼의 일이기도 했다.
그 착실함 속에서 드낙은 ‘태양 권능’에 대해서 알게 됐다.
‘태양 계통 권능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태양 빛. 이름만 들어도 뭔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 주피터의 권능을 훔쳐보고 따로 파동 세계에서 연습해 보면서 드낙은 그 위대함을 가장 크게 체감하고 있었다.
‘중립신이 왜 태양 빛의 권능을 자신의 것으로 삼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야.’
그는 왜 하나의 권능만 가졌을까?
다양한 이유가 떠올랐지만 정작 정확한 답을 들을 수 없어서 조금 답답한 마음마저 들었다.
드낙은 태양 빛에 집중했다.
‘이 따뜻함.’
생명의 시작.
위대한 빛.
고대인들이 섬겼던 신앙의 주체.
그걸 통해서 드낙은 ‘진짜 권능’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