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159화 (1,157/1,239)

1159화

* * *

대사건이 터졌다.

한직으로 밀려난 용병 지구인이 벌인 짓은 아주 끔찍한 것은 아니었다. 인명피해가 없어서다.

다만, 수많은 이들이 떠들기에는 충분했다.

강력한 파동은 평범한 사람도 느낄 정도로 괴이한 것이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음모론을 떠들거나 궁금한 표정을 지을 정도는 되었다.

마법사들도 난리였다. 그들은 조금 더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이런 판국이니 다종족 연합이 크게 들썩인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다른 용병 지구인들은 몸을 사렸다. 그들을 싸잡아서 욕하면서 시위를 하던 이들은 당연히 잡혀 들어갔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며 다 때려잡는 쪽바리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문명인이고, 충분히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이 소식은 차원 문 내부에 있는 세파리아스에게도 전해졌다.

“용병 지구인이…….”

“한직으로 물러나서 거기에 앙심을 가진 것 같습니다. 정신상태도 좋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용병 지구인은 테라에 잘 적응했다. 그러지 못한 이들이 있었는데 직함을 줘서 평안한 삶을 살도록 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로다.”

세파리아스는 황당해했다. 자신의 나라에서 벌어진 이리라 두통이 밀려왔다.

‘매번 나만?’

뭐만 터졌다 하면 신제국이었다. 그건 참 기가 차고 억울할 따름이었다.

‘도렌 국왕을 데려와야 하는데.’

그 이유가 도렌 때문임을 세파리아스는 잘 알고 있었다. 불만을 가진 이들은 도렌 자치령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드낙에게도 이를 전해야 하는데.’

이건 다종족 연합이 나서야 했다.

이차원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걸 차단해야 하는데, 막대한 돈이 들어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차원 전파라…….”

놀라운 걸 개발해 냈다.

다만 그 기술은 소실됐다. 용병 지구인 테슬라가 발명한 후, 당연히 파기시켰다. 이를 복구시키는 건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모방하면 되니까.’

본 이상 그걸 목표로 삼고 달리면 그만이다. 보지 못했다면 달리지도 못했을 터다. 이게 매우 중요하다.

파워 아머를 타고 다니는 걸 보면 그와 비슷한 고철 파워 아머를 입고 다니게 마련이었다.

기술 발전에 있어서는 그것이 매우 중요했다.

“드낙?”

세파리아스가 중얼거렸다. 그에게 정보를 주려면 주피터에게 방문해야 했는데,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살아온 세월이 있고 눈치가 있다.

지금까지 찾아가지 않다가 갑자기 찾아간다면 ‘이유’가 합당해야 했다. 변명거리를 만들어도 신이 납득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니 뜬금없이 찾아갈 수가 없었다.

‘지금은 중요한 시기다.’

지구의 문화를 빨아들이며 소비하고, 태양 빛을 통해서 업을 획득하고 있는 주피터는 건드리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신없이 빠져있는 상황에 툭툭 건드리면 누구나 화나게 마련이다.

“드낙 불파겐. 드낙.”

다시 한번 허공에 대고 말을 했지만 드낙은 나타나지 않았다. 분명 그는 이 말을 듣지는 못하겠지만 이상한 기분은 느낄 터였다.

“이놈. 듣고 있는 거 다 안다.”

그런데도 세파리아스는 드낙이 나타날 것이라 믿고 있었다.

드낙은 일부 분야에 관해선 과대평가를 받고 있었다. 세파리아스조차도 과대평가하는 면이 있었다.

정말로 가능하기에 그러했다.

‘하, 요놈 봐라?’

결국 세파리아스는 포기했다. 아무래도 드낙은 주피터와 관련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듯했다.

‘이처럼 집중하고 있다니.’

그런 드낙은 요 근래에 처음 봤다.

사실 드낙은 자신의 분야에서도 노력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도 재능이 꽃을 피우고 과실을 토해내는 탓이다.

악마의 권좌에 오른 드낙은 매일매일 경험치를 알아서 축적하는 괴물이다.

어느 게임의 플레이어가 이랬다면 버그 신고와 커뮤니티가 폭발해서 게임의 서비스가 종료되었을 터다.

‘괜히 불안해지는데.’

드낙이 이 정도로 자신의 여력의 끝자락에 올라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것이고, 상당한 의미를 지닌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세파리아스는 그게 불안했다.

‘여기서 드낙이 갑자기 격차를 올리면…….’

판도는 또 바뀌게 될 것이다.

그게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세파리아스도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때 세파리아스가 드낙과 담판을 지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자신이 가야 하는 길과 깊게 연관될 것만 같았다.

이런 예상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드낙과 관련된 일이니까, 예상과는 다를 수 있었다.

‘사고만 치지 말았으면 좋겠거늘…….’

세뇌에서 풀린지도 시간이 많이 지났다.

이제는 뜨낙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했다. 세파리아스는 드낙이 뜨낙의 모습으로 이득을 챙기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꼴불견이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겠다.”

세파리아스가 드낙 대신 움직이기로 했다.

드낙은 응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일이야말로 드낙의 ‘권력 배분’이 중요한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없을 때, 제대로 운영되려면 드낙이 함부로 권력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

죽은 권력을 받드는 이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살아있는 권력으로 만들려면 드낙조차도 조심해야 했다.

세파리아스는 정신체의 몸으로 순식간에 다종족 연합을 돌며 대책 회의를 개최할 준비를 시작했다.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설득을 해야 했지만 다행히도 모두 쉽게 설득당했다.

드낙이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다는 말을 하니 쉽게 믿었다. 나중에 드낙이 뭐라고 해도 변명거리가 있었고, 이는 세파리아스가 짊어지게 될 터였다.

오히려 세파리아스가 구라를 치기를 원했다. 그러지는 않았지만.

26. 태양 차원 (3)

회의는 시국이 시국인 만큼 언택트로 진행됐다. 신제국 덕분에 발전한 차원 기술이 적용되었다.

제법 큰 구조물에 서로의 모습이 드러났고,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많은 에너지가 있다면 넘어가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렇게 하면 큰 사달이 날 터였다. 그 정도로 에너지가 축적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랜만이다.”

세파리아스의 말에 모두 근황을 묻고 깔깔호호후후 웃으며 분위기를 띄웠다. 서로 안면식이 다 있어서 가능했다.

그중에서도 세파리아스는 은근히 도렌에 대한 야욕을 불태웠다.

“이스핀 백작은 잘 지내느냐?”

“하하하. 그는 여전합니다. 잠을 자는데 드워프가 그 손을 잡아 맥주를 만드는 홉을 주무르게 했다가 아주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여전했다.

괴이하게도 이스핀이 만든 술은 그 둔한 드워프들이 각성제를 먹지 않아도 눈을 부릅뜰 정도로 효력이 대단했다.

“그래도 자치령은 좁지 않나?”

“아직도 그것을 마음에 두십니까?”

“100년 지나도 같겠지.”

세파리아스가 어둠이라면 도렌은 빛이다. 세파리아스가 빛이라면 도렌은 어둠이다. 서로 상생할 수 있었다. 세파리아스가 하지 않는 걸 도렌은 중히 여기는 탓이다.

근황을 나누고 난 다음에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됐다.

“사안이 사안이다. 테라의 정보가 차원 전파라는 괴이한 기술을 통해서 퍼져나갔다. 분명 만신전이나 마신까지 이 정보를 얻을지 모르고, 야만적인 차원에서도 초월자라면 닿을 수 있다.”

세파리아스의 말에 회의에 참석한 지배자들이 고개를 거침없이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테라의 차원 좌표가 퍼진 것은 아닙니다.”

“차원 전파에 대해서 연구한다면 역추적을 할 수 있습니다.”

초월자는 세파리아스뿐이었기에 다른 이들은 말을 높였다. 초월자가 된다면 그 관계는 사라질 가능성이 있었다.

“전파가 퍼지는 것을 생각했을 때, 역추적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그 정도로 공을 들이는 초월자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없다는 건 아니지. 다종족 연합은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안 그런가? 여기가 본진이며 수도 행성이다. 이곳에 전쟁이 벌어지면 많은 것이 파괴된다.”

경각심을 가질 필요는 있었다. 국토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무조건 손해였다. 다른 국가 땅에서 싸우는 것이 100번 낫다.

“풀린 정도는 끔찍할 정도로 자세하지만 그 분야가 제한적입니다.”

도렌이 말했다. 그는 짧은 시간에 과중한 격무 속에서도 이 사태를 주의 깊게 한 번 훑어본 듯했다.

“용병 지구인 혼자서 한 일입니다. 여기에 소속되기 전에 우주 낙원에서 제법 직위가 있었던 인물입니다.”

“배신을 하면 그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는데, 신제국은 왜 그에게 한직을 줬습니까.”

“이용 가치가 떨어졌으니까.”

세파리아스가 즉답했다. 모두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가혹한 것 아닙니까?”

“가혹하다니. 한직이라고 하나,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넉넉하게 돈을 주고, 여분의 땅도 줬다.”

성공적인 은퇴라고 할 만했다. 그런데도 일을 벌였다.

“결혼을 하지 않은 게 크다고 생각합니다.”

조용히 지내며 자신의 가문을 우뚝 세우며 큰 세력을 구가한 아크온 상위국왕이 입을 뗐다. 모두 수긍하는 눈치였다.

“결혼을 해야 정말로 정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용병 지구인 중에 미혼인 이가 제법 중요한 자리에 있기도 한데, 이를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용병 지구인 미혼남들은 결혼할 위기에 처했다. 특이하게도 용병 지구인 중에는 여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여자든 남자든 강제로 결혼을 시켜야지.”

“서로 살을 맞대면 정도 들고 아이까지 생기면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자기 아이니까 애착이 갈 수밖에 없다.

용병 지구인 강제 결혼 정책은 곧바로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반대하는 이들은 없었다.

결혼은 훌륭한 통치 수단 중 하나였다. 결혼하고 나면 더는 딴짓거리나 위험한 짓은 할 수 없었다.

그건 그 자체로 지배자들에게 있어서 사회를 손쉽게 통치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차원 전파 차단 기술을 개발하여 곳곳에 설치해야 합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큰 돈이 들지 않습니까. 테슬라라는 인간은 이미 잡혔고, 그가 개발한 기술은 모두 파기되었습니다.”

세파리아스가 이야기를 경청했다.

‘결국은 돈이다.’

빌어 처먹게도, 정말로 중요한 일은 돈이 전부다. 전쟁조차도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없는 놈들은 전쟁은 무슨, 소규모로 빨빨빨 거리며 마을이나 약탈할 뿐이다.

다른 땅을 점령할 생각은 꿈도 못 꾼다.

“전기와 전력에 대한 정보는 매우 깊게 퍼져나갔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은 차원 전파를 차단하는 게 아닙니다. 이미 그 부분은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쟁점이다.

하나. 차원 전파 차단기를 모든 곳에 설치하여 이를 방비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결코 아니지.’

격론을 펼치는 이들 모두 그럴듯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이에 세파리아스가 정리에 들어갔다.

“차원 전파 기술이 파기되었다고 믿도록 파괴 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 테슬라를 따르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혹 따르지 않더라도 다른 곳에 숨겨뒀다가 나중에 밝혀질지도 모를 일이지.”

가능성은 열려있었다.

현실은 그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는다. 실낱같은 작은 정보는 잊히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모든 것을 판단하려면 상상력도 필요했다.

후쿠시마 원자력이 그렇게 터질 줄 그 어떤 세계인이 알았겠는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리스크가 있는 한, 차원 전파 차단기는 반드시 개발해야 한다.”

동시에 세파리아스는 한 마디 더 거들었다.

“차원 기술의 개발은 무조건 우리에게 좋은 것이 아니란 소리다. 어차피 나중에도 해야 할 일이고, 지금 해서 나쁠 것도 없다. 만약 테라의 차원 좌표를 취득한 용병 지구인이 있다면 더 위험해지겠지.”

“이미 알고 있는 용병 지구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차원 좌표를 보낼 수 있는 차원 전파가 용병 지구인 ‘테슬라’에 의해서 개발됐다. 이제는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

결국 해야 하는 일인 셈이다.

“동시에 또 한 가지 일을 해야 한다.”

세파리아스가 단언했다.

“모든 전기, 전력 시설을 이전시켜야 한다.”

충격과 공포의 발언이었다.

“그 무슨!”

“발전소 하나 이전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알고 말하는 겁니까!”

“파산이다! 파산!”

“신제국조차도 하지 못할 일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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