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158화 (1,156/1,239)

1158화

주피터는 고민했다.

‘이거 어떡하지?’

또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전투 강철 인형의 손이 수전증 환자처럼 달달달 떨렸다.

한국 막장 드라마 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람처럼 손을 달달달 떨지는 않았다. 드라마 보지 말라고 말하는 미친놈들은 없으므로 중독 증세가 나올 정도로 압박을 받지 않는다.

대신 게임 중독 증세를 보이는 청년처럼 손을 덜덜덜 떨었다. 부모님의 강요로 게임을 즐겨야 하는데 못 즐기게 되었으니 손발을 떨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새벽 4시까지 봐도 ‘문화를 즐기는 바른 청년이군!’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게임으로 새벽 4시까지 한다면 바로 몽둥이찜질을 시작하는 것이 옳은 사회인 아니겠는가.

그런 그녀는 진정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여기에 오래 있으면 안 돼.’

차원의 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다. 몇 번 보지 않았지만 세파리아스의 알 수 없는 자신감 때문은 아니다.

그저 무언가.

주피터에게도 오랜 세월을 살면서 쌓아온 연륜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어리석은 인신이라도 그 나름대로 연륜이 있는 것이다. 괜히 라그랑지언이라 불리는 인신들의 모임을 운용한 것이 아니다.

그녀도 나름은 인신 중 인신인 셈이다. 그저 드낙이나 세파리아스의 입장에서 바보처럼 보였을 뿐이다.

주피터는 이차원에서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건 분명 ‘알 수 없는 불안감’이었지만 현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육감이었다.

그런 그녀는 실로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늘 하루만 더 태양 빛을 받고 가자.’

본래 차원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세파리아스가 도와주겠다고 하지만 적극적으로 도와주려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 나름대로 지배욕을 가지고 있었으니, 성공하더라도 자신은 찬물을 뒤집어쓸 것이 분명하다.

권력이란 건 자식한테도 주지 않는 것이다.

세파리아스가 자신의 차원을 다시 수복하고 여신에게 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 셈이다.

‘물론 곧 나보고 도와달라는 소리를 할 수 있지.’

전쟁 준비에 공을 세우고, 전쟁에서도 공을 세운다면 약간의 자치령은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서 태양의 인신, 주피터는 고민하고 있었다.

‘내일 하루만 더 태양 빛을 받고 가자.’

* * *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내게 됐다.

빛을 업(業)으로 바꿀 수 있는 주피터의 권능은 확실히 이 상황에서 뿌리칠 수 없는 쇠사슬이 되어 주피터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여신이 만든 권능이 여신을 방해하고 있는 셈이다.

그 속에서 드낙은 간사한 짓을 시작했다.

“강철 태양 하나 더 내어줘. 힘에 집착하고 있다. 회복률이 두 배가 되면 어떤 생각을 할지 뻔하다!”

강철 태양을 선물 받자 주피터는 순간의 욕심을 참지 못했다. 세파리아스는 그런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니, 지금 충분히 힘을 회복해 두라.

―고마워요. 태양이 두 배라고? 이건 못 참아!

그녀는 더욱 하루하루를 이차원에서 보내게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세파리아스가 미리 약 쳐놓은 것처럼 그녀는 지구의 문화에 뽕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아직은 물이 덜 들어있어서 강철 태양에 조금 더 신경 쓰던 주피터였지만 그사이에 강철 태양을 하나 더 주는 퍼포먼스 덕분에 오래 붙잡히게 됐고, 드디어 지구의 문화가 주피터의 정신을 변질시켰다.

―헤헤헤!

폐인이 되어버리는 건 한순간이었다.

‘이것만 보고……. 저것만 보고……. 요거까지만 보고…….’

완결에 속편, 거기에 후속편까지 섭렵했다.

종국에 가서는 게임까지 건드리게 되었는데, 그게 결정타였다.

주피터는 극한의 노가다 게임을 좋아하는 취향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드낙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게임이지.’

좋아하는 드낙과는 반대로 세파리아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아무리 해봐도 게임에서 재미를 못 찾았기 때문이다.

“생각 이상으로 망가져 버렸군. 난 재미가 없던데.”

“그건 너라서 그런거고. 싹 다 망해 부렸잖냐. 저 여신은.”

드낙은 그녀의 심리 상태를 쉬이 짐작했다.

게임은 훌륭한 도피처였다. 겜돌이가 취직하면 게임을 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그녀는 실직자나 다름없었다. 게임을 하기에 최적화된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지.’

스트레스를 쌓는 게 게임의 주목적이다. 거기서 오는 달성감이 있었다. 지금 주피터에게 필요한 스트레스와 자극을 게임이 대신 주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2년은 쉽게 버티겠어.”

“태양 차원이다. 그곳이 발견되는 순간 주피터를 죽인다.”

“알고 있어. 여러 번 말하지 마.”

드낙은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채로 세파리아스와 대화했다. 은근히 주피터의 권능이 여럿이라,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주피터를 폐인으로 만들어버린 다음에 드낙이 한 것은 그녀를 지켜보는 일이었다.

‘배울 점이 있다.’

드낙은 악마의 권좌에 앉은 초월자다. 그에게 있어서 권능이란 그렇게 만들기 쉬운 것이 아니다.

‘세파리아스도 마찬가지지.’

인간에서 초월자에 올라선 세파리아스 또한 권능 제작에는 젬병 염병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피터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자신의 권능을 실시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는 일은 분명 드낙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뭐든지 모방이 쉽지.’

근처에 맛집이 생기면 바로 베껴서 똑같이 내는 것이 요식업의 국룰이다. 수틀리면 표절해서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장르 소설계의 국룰이다.

안 하는 놈이 병신인 셈.

걸리면 필명을 바꾸면 그만이다.

수많은 모방 속에서 살아남는 놈이 진짜가 되는 세상이었다. 드낙은 지금 주피터를 표절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똑같이 따라 하는 것도 못 하겠어?’

그 행위 속에서 드낙의 권능 제작 숙련도는 분명 한 단계 진화할 것이 분명했다.

‘언젠가 신격도 획득하게 될 거고. 그때를 대비해서 연습하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지.’

권속 악마를 만드는 일과 내 신앙자들을 위해서 만드는 능력과는 또 달랐다. 드낙은 거기에 분명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를 해소할 기회가 왔다.’

세파리아스는 이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원하는 권능을 만들려고 할 뿐 다른 권능을 굳이 가지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하여간 자신감이 넘치는 놈이야.’

그는 그렇게 성장하게 될 것이다. 혼자 몰두해서 길을 찾을 터다. 그는 그런 놈이니까.

반면 드낙은 쉬운 길을 보면 지나치지 않는다. 숲이나 산에도 있는 게 지름길이다. 사냥꾼은 지름길을 마다치 않는다.

우직하게 먹물로 공부한 이들만이 지름길을 좋지 않은 눈으로 쳐다보게 마련이다.

겨울에 토막을 세워서 식물을 키우는 것도 유교답지 못하다며 부수라고 시키는 것이 먹물쟁이들이었다.

‘태양 빛은 중력에 굴절될 것처럼 주피터에게로 향한다.’

그건 놀라운 일이다. 중력이 없는데도 주피터에게로 향하기 때문이다.

만약 주피터가 태양 축적의 권능을 사용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태양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빛이 그들의 망막으로 들어가지 않는 탓이다.

‘어둠의 세계.’

주피터는 태양의 신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어둠의 세계를 이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의 욕심은 지금만 봐도 대단했다. 그녀가 인신으로 오롯이 존재했을 때는 더 심했을 터였다.

‘주피터가 왜 테라의 식문화를 보고 그렇게 놀랐는지도 알게 됐다.’

주피터가 세상으로 뻗어 나오는 태양 빛을 모조리 흡수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세상에서 인간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리가 없고, 당연히 망할 수밖에 없다. 즉, 인간에게 기생한 인신이 되레 인간을 멸망시킨 꼴이다.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만 다른 차원을 침공할 때는 요긴하게 쓰일 것 같았다. 테라에서 군량을 대체하고, 반대로 다른 차원에서는 태양 빛을 집어삼켜서 행성 자체의 식량 자원을 말살하는 건 굉장히 끔찍한 결과를 도래할 터였다.

‘마신의 차원을 발견하면 써먹어 봐야지.’

마신 또한 드낙을 건드린 대가를 치르긴 치러야 했다.

‘보면 볼수록 개꿀이네.’

항성(恒星)은 수많은 은하에 많이 존재했다. 그 항성의 빛을 흡수하는 태양의 권속 악마를 놔둔다면 드낙은 지금보다 더 많은 업(業)을 수급할 수 있을 것이다.

‘테라 차원의 우주 또한 광활하니까.’

군침이 뚝뚝 떨어졌다. 굳이 그 권능을 다른 사물이나 이에게 옮기지 않고 자기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주피터가 너무 어리석어 보였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겠지.’

어리석지 않았다면 차원을 지배하며 거대한 세력을 일궜을 터다.

‘무엇보다…….’

드낙은 주피터의 최후를 생각했다.

그녀를 죽이면 신격 또한 토해내게 된다. 그 신격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거나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그녀가 지닌 권능을 연습하고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터다.

실시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태양 축적의 권능은 드낙이 열심히 베끼기 시작했다.

난이도는 어려웠지만, 계속 보면서 비교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아이디어도 좋아서 이런 계통의 권능은 전혀 만들어 보지도 않은 드낙에게 큰 배움이 되었다.

드낙은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르고 몰두했다.

* * *

테라에는 용병 지구인들이 대거 살고 있다.

그들은 이 테라에 살면서 수많은 지식과 기술을 전해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우주 낙원에 있던 모든 지식은 오롯이 다종족 연합을 위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용병 지구인, ‘테슬라’는 후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후회해도 늦어버렸지.’

그는 우주 낙원에서도 제법 지위가 있는 몸이었다. 전력 총괄 디렉터로 우주 낙원의 전력 시스템을 관리하던 일등 관리였다.

모두가 그를 믿었지만, 그는 자신의 명줄 하나 이어붙이겠다고 그 모든 것을 배신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엔 오직 후회하는 인간만이 남게 됐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중국이 제시하는 큰돈을 보고 이직하는 기술자들은 수없이 많다. 돈 앞에서는 남의 뭐라고 지껄이든 개소리로, 밖에 안 들린다.

잘 먹고 잘사는 놈들, 중국 빨면서 거드름 피우는 이들은 수없이도 많다.

화교가 장사하는 가게에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게걸스럽게 돈을 그들에게 가져다 바치는 놈들은 애국자고, 기술 파는 건 매국노 취급이다.

그 모습을 보며 테슬라는 적어도 그런 애국심은 가지지 말자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다종족 연합의 차원 침공 소식을 듣고 나서 자신의 가족들을 죽이는 힘이 자신이 제공한 지식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됐다.

‘한 번 뺨을 때렸다.’

그들은 결코 이를 잊지 않고 보복할 것이다.

신제국은 정말로 전쟁 분위기를 내고 있었으며, 신문에서는 매일 같이 국뽕 유튜버도 배울 만한 헤드라인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나치즘이다. 신제국은 나치다!’

끝없는 프로파간다는 역사를 배운 테슬라에게 아주 익숙한 악마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그들은 끝없는 전쟁을 원했으며, 이 행성에 평화가 도래했는데도 다른 차원으로 가서 창칼을 드높이려고 하고 있었다.

‘이를 막아야 해.’

막기 위해서는 만신전(萬神殿)이 나서야 했다. 하지만 테슬라는 황당하게도 만신전을 믿지 않았다.

‘그저 현대 지구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놈들일 뿐이다.’

매일 같이 연회를 열고, 업을 사치스럽게 사용하는 인신들이었다.

그들의 행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우주 낙원의 전력을 관리했던 테슬라는 더욱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날 믿고 따라와 줬던 이들을 모두 배신했다.’

그들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모두 자신을 욕하면서 죽어 나갔다. 끝까지 지구를 위해서, 지구인을 위해서 저항했던 자들이다.

이제 테슬라는 다시 날아오를 것이다.

끝도 없는 상승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상승기류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상승기류는 만신전이 아니었다.

‘전쟁의 신. 그가 이곳에 와야 한다.’

그게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테슬라는 똑똑한 기술자였다.

‘차원 전파를 보내서 내가 아는 테라의 정보를 모두 넘긴다. 그리한다면 만신전도 놀랄 것이고, 놀라지 않아도 모든 이들이 이 정보를 취득할 터이니, 만신전이 원하지 않아도 전쟁의 신께 테라에 대한 정보가 가게 될 것이다.’

“지구의 수호를……!”

만신전에게 지배당했지만 그래도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수백억 지구인들을 위해서 용병 지구인은 강력한 차원 전파를 보냈다.

그 전파는 테라에 있는 초월자와 반마(半魔), 상급 권속 악마와 수많은 마법사가 느낄 정도로 거대한 파동이었다.

다만 외차원에 있는 드낙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때문에 22분 뒤에 테슬라는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당연하게도 그 시간은 충분히 많은 정보를 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