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7화
* * *
인간을 가축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고, 끝없는 전쟁 속에 시달렸다. 라그랑지언을 만들 정도로 인신들은 위기에 내몰렸다.
주피터가 있던 차원은 그런 상황이 오래 지속됐다. 파괴의 지성 종족이라 불리는, 보어리안(Boarian)과의 경쟁 때문이다.
마치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전쟁처럼, 그들은 끝까지 싸웠고, 네안데르탈인처럼 패배한 인간을 버리고 인신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마지막 싸움에서 큰 피해를 본 주피터의 삶은 초월자였음에도 그리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전지전능하지 않고, 욕망을 지닌 인신은 치킨을 바라봤다. 치킨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튀김 물을 묻히고 튀기는 치킨과 불맛을 입히기도 하고, 수육처럼 삶은 것도 있다.
‘먹음직스러운 게 많다!’
그런 다양한 닭 요리를 이것저것 살피던 주피터는 어느새 음식 냄새만 쫓아다니고 있었다.
“매콤한 소떡소떡 나왔습니다!! 동화 1닢입니다.”
‘매콤한 냄새가 나네. 어떤 맛일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들떴다.
“점보 튀김 우동입니다!”
엄청난. 말 그대로 우동 그릇 위를 뒤덮었다고 할 정도로 두툼한 돈육튀김이 올려진 우동의 비주얼은 압도적이었다.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주피터는 이를 지켜보았다.
석! 석!
두툼하게 잘라내고, 젓가락으로 자른 튀김을 하나 푸욱 우동 밑으로 넣는다. 그리고 꺼내서 입에 털어 넣었다.
“허으, 허어어!”
뜨끈하다. 멸치 육수에 간장으로 간을 한 국물 덕분에 간이 잘 되어있었다. 씹으면서 간이 약해지는데 이때, 국물을 한 숟갈 떠서 넣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돼지고기의 텁텁 살을 썼기에 텁텁한 살 속으로 간장 국물이 거침없이 들어갔다. 거기에 튀김 속에 갇혀있던 돼지고기의 육즙도 씹어먹을수록 빠져나와서 조화를 이루었다.
세 가지의 소스가 종지에 담겨 있었는데 하나는 매운 것이고, 하나는 소금이고 다른 하나는 머스터드 소스와 케첩을 섞은 것이다. 그 위에 마요네즈를 듬뿍 뿌린다.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차원이 있을 수 있는 거지?’
주피터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여신을 숨어서 지켜보는 드낙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제멋대로 살아가는 여신이다.’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모습은 실로 돼지 같았다. 본래 목적은 다종족 연합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일 텐데, 먹을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뉴에이지 시티에서 나오는 식량이 사실 좀 비상식적이긴 하지.’
도시 자체가 농업을 관장한다. 그들이 관리하는 평야는 가히 프랑스의 대국이 가진 평야와 비견할 수 있다.
그곳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물량은 ‘시장 가격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폐기가 되지도 않는다. 그저 되는대로 퍼뜨린다.
이 때문에 풍족한 외식이면서도 싸게 외식을 할 수 있었다. 서서히 다종족 연합은 집에서 음식을 해먹기보다는 사서 먹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됐다.
‘그런데 결론은 결국 하나로 이어지겠지.’
먹거리에 집중했지만, 오히려 그 먹거리에서 오는 막강함을 마주하게 된 주피터의 기색이 변하는 것을 본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깡패 같은 식문화를 보고 다종족 연합의 거대함을 느끼게 됐다.
‘그런데 지하로는 또 안 가네.’
드낙은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태양의 인신이라서 그런지, 지하에는 가려고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화물이 지하로 올라오는 것을 쳐다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다른 곳으로 향했다.
‘지하 운하가 대박인데.’
지하 연합은 지하 운하를 건설하는 걸 좋아한다. 육지에 뱃길을 만드는 것이다. 화물 운송업으로 많은 재미를 보고 있었고, 제법 중요한 곳으로 차근차근 운하를 건설하고 있었다.
이 지하 운하를 이용하는 것으로 많은 이득을 취득하고 있었다.
신제국의 차원 다리 건설에 지하 연합의 운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걸 확인을 안 해?’
싫어도 해야 하는 게 인생이다.
‘하기 싫다고 이걸 안 한다고?’
기가 찼다. 어떤 삶을 살았을지 더욱 이해가 됐다. 그리고 저런 여신을 따랐던 인간이 왜 멸망했는지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자기 원하는 대로 살았겠지.’
그룹이 부도 위기로 싹 다 내몰리는 상황 속에서도 해외로 여행 가서 스테이크를 씹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코,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직장인들은 기업에 자신의 삶을 맡긴다. 기업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적어도 직장인이 이직하기 전까지는 노력해야 한다.
‘지하에 대한 공포가 있다라…….’
드낙은 그걸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용할 때를 찾지는 못했다. 결국 주피터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일시적으로 통제할 수밖에 없겠지.’
초월자는 그리 쉬운 상대가 아니다. 중립신조차도 초월자를 제어하지 못해서 배신당하지 않았나. 드낙은 엘 마르토 카사다민처럼 많은 인신을 관리할 능력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죽이고 그 신격을 회수해서 다른 곳에 사용하는 게 낫다.’
드낙은 주피터가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녀는 태양 빛을 찾아서 이곳에 왔으니, 그 신격을 등대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흉험한 생각을 가졌다. 그만큼 세뇌를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사용했으며, 이를 권능으로까지 삼은 주피터에 대한 증오는 대단했다.
세파리아스의 끝없는 전쟁 야욕에 드낙이 쉽게 이를 용인한 것은 초월자에 대한 거대한 증오가 자리잡혀 있는 까닭이다.
‘당장은 아니다.’
2년 뒤에 여신의 차원이 드러났을 때, 그녀는 죽게 될 것이다.
그 심장을 움켜쥐는 것은 드낙이 될 것이다.
* * *
모든 구경을 마친 주피터는 되돌아갔다.
항상 이차원의 문이 열려 있기에 돌아가는 건 쉬웠다. 세파리아스는 그사이에 한 번도 오지 않았다. 그 덕에 주피터는 크게 안도할 수 있었다.
그사이에 드낙은 세파리아스에게 주피터가 행한 바에 대해 전해 주고 있었다.
“지배자의 덕목 하나 갖추지 못한 버러지가 신격 하나로 성공했구나.”
세파리아스는 통탄할 표정을 지었다. 수많은 인간이 태양의 여신을 섬겼고, 그리고 배신당했다. 믿음을 제대로 받아주지 못할 거면 애초에 신을 해서는 안 된다.
믿음에 보답하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인간을 배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족함을 알면 내려와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하지 않았다.
그건 분명 큰 죄였다.
“의외로 여신은 부족한 면이 많다. 2년 동안 편안하게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지 않냐?”
드낙의 말에 세파리아스가 동의했다.
“내가 나설게.”
특히 드낙은 여기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초월자를 괴롭히는 재미, 여신을 속이는 건 큰 재미가 있었다.
중립신에게 복수하는 기분마저 들게 했으니까.
“그렇게 해라. 우리는 중립신 이후의 초월자이며, 앞서 태어난 초월자와는 현격히 다른 존재임을 보여주겠다.”
주피터는 그날 이후부터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많은 고민을 하는 듯했다.
그사이에 신제국은 또 하나의 신문을 퍼뜨렸다.
[차원 초강대국 신제국.]
[악신이 경악한 신제국의 식문화?]
[대체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경악스러운 위대함! 신제국 신민이 위대한 이유.]
[외부 차원의 초월자가 신제국의 시민들의 삶에 경악한 까닭!]
[외차원은 신제국보다 50년이나 도태되어 있다. 우리는 선두주자!]
[세계를 지배하려 했던 악신이 신황제 때문에 피눈물 흘리는 이유는?]
수많은 국뽕이 쏟아졌다.
이에 신제국은 크게 열광했다. 동시에 많은 어리석은 자들이 전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커허허흐흐흐허허흐허헤헤헤헴!”
거드름을 잔뜩 피우며, 헛기침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뿜고 있는 돼지 상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에 휘황찬란한 장식품을 주렁주렁 매단 채였다.
어디서 한 부패 할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 실상은 신제국의 상업 유동성을 크게 드높인 위대한 상인, 울바페 가르단이었다. 세파리아스로부터 성씨까지 받을 정도로 공헌한 바가 컸다.
그의 등장 전후로 신제국의 상업이 전혀 다를 정도로 대단한 업적을 세웠다. 다만 그 업적은 그저 돈 버는 것에 불과했다.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
더 유명해지고 싶었다. 더 많은 영예를 갖고 싶었다. 그 속에 치욕을 받더라도 영욕(榮辱)이 교차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치욕을 감수하고 영예를 얻는다면 어떠한 것도 감수할 만했다.
그 짜릿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한 탓이다.
오직 성공한 사람만 그 기분을 느낄 수 있고, 그 기분을 더 느끼기 위해서 더욱 자신을 채찍질하게 된다. 혹은 더 탐욕스럽게 남의 목을 가르고, 그 척수를 빨아먹으려고 한다.
대장인 울바페 가르단은 전쟁의 선두에 설 생각은 없었다. 적당한 장교 자리를 얻기 위해서 막대한 국채를 사들이고, 더 많은 기부금을 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행위는 신제국 입장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명예직 하나를 내어주고 많은 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세금을 아무리 때려도 부자는 결국 부자였다.
“허허허!”
그는 목적했던 바를 이룰 수 있었다. 보급 장교 중 명예직을 받은 것이다.
돈을 얼마나 사용했느냐에 따라서 받을 수 있는 명예직도 현격히 차이가 났다. 그 차이야말로 울바페 가르단 같은 덩치 큰 이들로부터 많은 돈을 갈취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다.
반면, 중산층은 확연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로 신제국과 신황제가 들어 올린 인간 해방 이데올로기에 심취된 자들이었다.
적당히 배부르고, 적당히 살 만하고, 적당히 인간관계가 좋고.
그런 이들이 중산층이었다. 없는 이들이 보기에는 가장 행복해 보이는 자들이다.
“국채 구입했어? 얼마나?”
이들은 부인들부터 남달랐다. 그들은 애국적이며, 이자율과 쿠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재테크를 하기를 좋아했다. 그 어떤 것보다 나라에 투자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돈도 넉넉하기에 거침없이 목돈을 쏟아부었다. 가족이 종종 반항하기도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오늘부터 나도 신제국을 위한 위대한 여정에 참가한다고!”
“믿고 있었다고, 젠장!”
한 번도 굶어보지 못한 순진한 젊은이들 또한 중산층에 많이 퍼져 있었다. 그들은 군적에 자신들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그중에는 재능이 많은 이들도 많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신제국의 중산층은 의외로 많은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옛날과는 다르지.’
현대 지구조차도 옛날에는 가우스 수학이나 미분, 적분을 못 하는 수학자들이 대나무 숲처럼 즐비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등학생도 미분, 적분을 한다.
인간은 그대로지만 그들이 가르치는 교육의 발전은 같은 인간도 확연히 다른 존재로 만들고 있었다.
옛날에는 난이도가 높아서 그 누구도 연주하지 못했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24개 카프리스’를 전곡 연주하는 20대 청년 바이올리니스트도 현대에는 볼 수 있다.
인간의 교육은 그만큼 세월이 갈수록 탑처럼 쌓여가며 하늘에 닿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 끝은 신의 반열일지도 몰랐다.
그뿐만이 아니다.
신제국 또한 전투 강철 인형이 존재했고, 그들을 지휘하는 강철 지휘관이 존재했다. 상위국과는 조금 달랐지만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 또한 전쟁 준비를 이어나갔다.
전투 강철 인형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력동력(魔力動力)이다. 마력 배터리를 최대한 많이 축적해 놓아야 했다.
전쟁 준비는 막대한 축적을 의미했고, 자연스럽게 신제국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신음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오직 빛만이 가득했다. 다른 것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두 눈에는 세파리아스가 말했던 인간 해방에 대한 이데올로기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 이데올로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 * *
고민을 끝내기도 전에 주피터의 앞에 세파리아스가 나타났고, 그는 수많은 기기를 내어줬다.
“이게 뭔가요?”
“시간을 보내기에 훌륭한 즐길 거리다.”
세파리아스가 준 것들을 주피터가 살폈다. 하나같이 처음 보는 것들이었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직사각형의 화면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 사용법을 세파리아스가 일러주고, 미국 드라마를 하나 보여줬다. 주피터는 순식간에 거기에 빠져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