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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156화 (1,154/1,239)

1156화

“말싸움은 하기 싫고.”

“나도 마찬가지인데.”

“근데 왜 구라를 쳤냐고.”

“거짓을 말한 적은 없다.”

“아예 말을 안 한 거니까!”

드낙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주피터라고. 태양의 인신이다. 그녀는…….”

세파리아스는 가감 없이 말해 줬다. 어찌 되었든 그와는 한배를 탔고, 테라를 지키는 존재는 세파리아스가 아니라 드낙이 될 것이다.

그는 다른 차원으로 가서 인간의 고혈을 빨아먹는 초월자를 죽여야 했다.

그런데 테라를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평생 그 구도를 유지해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드낙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주피터를 감시해야 한다. 네가 하는 게 좋겠지.”

세파리아스의 표정은 조금 상기 되어있었다. 태양의 인신에 대해서 말했는데, 다른 차원으로 향하여 자신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겸사겸사, 인신을 죽일 생각도 하고 있었다.

“주피터는 지금도 너의 존재를 못 알아차리고 있지.”

주피터의 수준이 낮은 게 아니다. 태양 빛을 통해서 업을 생산할 수 있다는 괴랄한 권능을 가진 것이 주피터였다.

천생 싸움꾼은 세파리아스는 그 권능을 하찮게 생각했지만, 결코 하찮은 권능이 아니었다.

되래 드낙이 괴물 같은 놈이다.

그 세파리아스가 수련을 하고, 표적 훈련을 해서 겨우 드낙을 표적 하여 그 존재감을 알아차리는 훈련을 하는 것처럼 해야 그나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른 이는 애초에 드낙의 존재조차도 몰랐기에 그를 염두에 두고 수련이나 훈련을 하지 않는다.

초월자에 올라선 이가 수련을 하는 것도 우습다.

동생을 잃고, 형을 잃고, 아버지를 잃고 이제는 어머니를 잃은 팔레스타인 소년 하나 지켜주지 않는 것이 신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인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노력을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불멸자이며, 불멸자에게 있어서 필멸자의 삶은 사실 어찌 되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런 놈들이 피를 깎는 노력을 할 리가 없었다. 드낙만 해도 요 10년간 재미나게 놀고먹고 즐겼다.

“감시라…….”

드낙은 썩 좋은 표정을 짓지 못했다. 귀찮은 일을 맡은 것 같기 때문이다. 퇴근을 스타트 찍는 정신 나간 대리를 바라보는 팀장의 표정이다.

유치하지만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싶을 지경이다. 나는 일하는데 건방진 부하가 먼저 퇴근을 하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세파리아스는 안 하는데, 내가 해야 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힘이 약해진 인신이다.”

“강철 태양으로 힘을 회복하고 있다며. 어디서 장난질이야? 내가 그렇게 빙다리 핫바지 호구 쓰레기 병신으로 보이냐?”

“…그 누구도 너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드낙의 자학 개그를 세파리아스는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농담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인생 참 재미없게 산다.’

그냥 얼굴만 봐도 재밌고, 남은 음식을 두고 가위바위보를 해도 웃음이 나오는 것이 인간관계인데, 세파리아스는 결코 그 기분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란 기분이 들자 드낙은 그가 측은해졌다.

평범한 것을 작은 것이라 여기는 세파리아스는 그렇기에 계속 높은 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걸지도 몰랐다.

중립신 때문에 강제로 위로 올라간 드낙은 지금에 아주 만족하고 있었다.

조금 더 욕심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했다.

반대로 세파리아스는 계속 올라갈 생각밖에 없었다. 드낙은 세파리아스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구경하는 것도 재밌는 일이라 여겼다.

“정신체가 이차원 너머로 향하는 어떻게 걸 막아?”

정신은 곧 영혼이다. 공격하는 게 아니라, 통제하고 억압하는 건 같은 초월자도 힘들어하는 일이다.

“권능으로 삼고, 해야 할 일 같은데.”

초월자를 가두는 감옥 같은 건 권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업을 소모해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권능으로 삼아도 감당이 안 될 거다. 그저 이차원 밖으로 나가서 다종족 연합과 접촉한다면 나중에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다.”

그 말에 드낙이 이해했다.

‘죽일 생각으로 가득하네.’

일부러 주피터가 잘못을 저지르게 할 생각인듯했다.

생각 이상으로 명분이란 건 중요하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명분이란 건 쉽게 만들 수 있었다.

모든 땅이 어느 공사의 것이듯이 그 진리는 불변하는 법칙과 같았다. 코에 붙이면 코걸이, 귀에 붙이면 귀걸이인 셈이다.

사람 하나, 세력 하나, 초월자 하나, 국가 하나 없앨 명분을 만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지 말고 그냥 솔직하게 나가자.”

“감시하는 것도 귀찮다고 말할 생각이냐?”

“그냥 하기 싫어. 귀찮아.”

“…….”

세파리아스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 또한 드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이런 드낙보다는 조금 더 사냥꾼 같은 면모를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차원 좌표는 알아야 할 거 아냐. 그전에 죽이려고?”

언제든지 주피터는 돌발행동을 할 수 있었고, 그때가 되면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

“주피터의 힘은 약하다. 아직은 움직이지 않겠지.”

힘을 회복할 수단도 있었다. 굳이 차원 문을 통해 테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솔직하게 나가자. 도와준다고 하면서, 엉?”

“안 된다. 상대가 병신도 아니고, 자기 차원 좌표를 왜 알려주겠느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번 해보고 말해. 제안하고 협상하고, 네 특기잖아.”

“하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넌 당분간 주피터를 감시해 줘야겠다.”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세파리아스는 안 해도 될 걸 해야 하는 사람처럼 주피터를 방문했다.

“오래 기다리게 했나?”

“아니에요. 힘을 회복할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완벽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소멸의 위험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은혜였다.

교통사고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이 자신의 은인에게 전 재산을 주고, 평생 모실 것을 결의를 하지 않듯, 주피터의 감사한 마음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은 형태를 가지지 않았고, 언제든지 변할 수 있었다.

“생각을 해봤다. 만약 인신들을 죽이고, 인간들을 도살하는 사악한 곳이 있다면 필히 정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훌륭한 생각이에요.”

자신의 힘을 믿는 세파리아스를 보며 주피터가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감히.’

여신이 이끌었던 인신들의 단체, 라그랑지언(Lagrangian)조차도 승리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 명에 불과한 인신. 그것도 권능도 제대로 된 것을 못 만든 인신이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하찮기 그지없었다.

‘그를 이용한다면, 내가 이차원 너머의 차원을 지배할 수 있겠지.’

주피터는 더욱 간사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미 그곳은 멧돼지의 신들이 점령했다.’

돈신들은 차원의 지배자가 됐고, 라그랑지언은 패배했으며, 그 단체의 수장이었던 주피터 또한 자신을 위한 신앙자 하나 없이 도망쳐야 했다.

그런 놈들에게 이 여물지 않은 인신을 던져주고, 자신은 새로운 차원에서 하하 호호거리며 다시 힘을 키울 수 있었다.

‘더 많은 태양 영웅들을 양산해서 이번에는 기필코 내 차원을 지키리라.’

“사려 깊은 제안에 감사드립니다. 그 제안, 받아들이도록 할게요.”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예. 사악한 악신을 토벌하여 그 세상에 있는 인간들과 죽은 인신들에 대한 복수를!”

주피터가 한껏 분위기를 냈다.

아주 비장해 보였다.

“좋다! 내 나아가서 그들을 무찌르리라! 내가 바로 신황제다!”

신이면서 황제를 논하는 모습은 실로 웃기기 그지없었다. 주피터는 강철 인형이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아주 고마웠다.

만약 인간의 몸을 제어했다면, 입꼬리를 내리려고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병신 취급하는 덕분에 일이 쉬워졌다.

지켜보던 드낙은 이를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었고, 주피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주피터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세파리아스에게 드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철두철미하게 모습은 숨기고, 속삭이기만 했다. 주피터의 권능이 몇 가지인지 모르기에 조심해야 했다.

“그녀는 배신할 생각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쉽게 안 알려주지. 상대가 너무 강해서 네가 죽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럼 오히려 다행이군. 적어도 이차원에서 벗어나지 않을 테니까.”

“그건 아니지. 주피터는 널 병신이라고 생각한다니까. 병신 눈치를 볼 이유가 없지. 난 여신이 밖으로 나온다면 바로 제압할 생각이다.”

“죽이지는 않고? 그게 될 것이라 보느냐?”

세파리아스가 어처구니없어했다.

“의외로 말이 잘 통할지도 모르지. 아직 첫 단추를 잘못 맞춘 건 아니니까.”

이에 세파리아스가 이를 정리했다.

“그녀를 끌어들인다면, 나가기 전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게 좋지 않겠느냐.”

다만 그 말은 지나치게 드낙을 생각하는 마음이 들어있었다. 즉, 반어법이다.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난 손 뗄래.”

드낙이 쿨하게 결론을 내렸다. 이미 세파리아스에게서 태양의 인신이 한 짓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대화 자체가 농담이다.

드낙 또한 여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태양 영웅 탄생의 권능. 버러지 같은 여신이다.’

세뇌는 드낙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끝없이 베풀어서 그에 대한 충성심을 드높이는 뿔 쥐와는 다르다.

세뇌는 말 그대로 사람의 개성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것이다. 중립신은 그걸 숨기기라도 했지, 주피터는 그런 걸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차원 좌표를 알았지만, 그것마저도 거짓일 수 있다.”

“좌표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지?”

“5년이지만 다종족 연합에서 도와준다면 2년으로 단축시킬 수 있겠지. 결국, 차원 다리를 얼마나 빨리 건설하느냐에 달려있으니까.”

“도와달라?”

“네놈의 살기를 내 눈앞에서 숨길 수 있을 거라 여겼느냐? 지금 당장에라도 주피터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나.”

그 말에 드낙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도 세파리아스는 드낙의 감정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도 그지만 드낙 또한 초월자에 대해서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었다.

“흐흐흐.”

“크크크.”

두 명의 초월자가 웃었다.

다른 초월자가 나타났고, 그 초월자가 인간을 벌레처럼 취급하는 것만으로도 주피터의 죽음은 결정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 * *

그날부터 차원 다리는 완만하게 방향을 서서히 바꾸기 시작했다. 주피터가 말한 차원 좌표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드낙은 다종족 연합의 힘을 사용하여 차원 다리 건설에 많은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주피터는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의문이 들었다.

‘생각보다 여력이 상당하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발전된 차원이었다. 차원 다리의 골조도 절대 가볍지 않았다. 자원 채취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 정도로 번성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규모의 힘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그것이 대단한 것만은 알게 됐다. 조선 시대의 유학자들이 샌프란시스코에 당도한 것처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충분히 노력을 기하고, 시간을 보내면 값을 낼 수 있었다.

‘이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만큼 차원 문에서 들어오는 자원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고, 그 속력도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자원 투입.

‘무언가 벽을 넘은 듯한 느낌이다.’

주피터는 이내 결심을 굳혔다.

‘잠깐 나갔다 오는 건 가능해.’

업도 얼추 회복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정신체의 모습으로 전투 강철 인형에게서 빠져나왔다. 정신체의 아주 일부를 남겨둬서 연기하도록 만들고 차원 문을 넘었다.

* * *

땅! 땅!

“치킨!”

누군가의 목소리가 뒤섞인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본래라면 망치질에 관심을 가져야 했지만 주피터는 고소한 냄새에 이끌렸다. 아주 맛있어 보이는 냄새다.

지글지글!

거침없이 기름을 사용해서 잘 손질하여 토막 낸 닭을 튀기고 있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이럴 수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솥만 해도 수백 개에 달했고, 기름만 해도 엄청났다. 대규모의 조리 시설을 본 그녀는 까무러치듯이 놀랐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저 연기는 뭐지?’

괴이하게도 많은 연기를 내뿜고 있는 곳이 보였다.

서둘러 그곳에 가보자 인간들이 요리를 하는 것이 보였다.

닭 열 마리를 쇠꼬챙이에 단번에 꽂아 넣고, 길쭉한 탑 같은 곳에 쇠꼬챙이를 끼운다.

그리고 그 탑의 내부에서 활활 타고 있는 곳에 넣는다. 그 강력한 불맛을 머금은 닭은 서서히 돌아가면서 기름을 토해내기 바빴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요리하는 장면을 쉼 없이 지켜봤다.

‘먹고 싶다.’

초월자가 식욕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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