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155화 (1,153/1,239)

1155화

25. 태양 차원 (2)

은퇴한 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수도로 상경했다. 그 행렬은 제법 조직적이었다.

“깃발 거수!”

우국 향우회(憂國 鄕友會)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먼 곳에서 온 이들에게 깃발을 들어 올렸다.

이것은 하나의 행사였고, 수많은 이들이 구경했다.

처음 그 행사에 참여한 이들은 고작 100명도 되지 않았다. 작은 마을에서 지내던 베테랑은 겨우 그 정도에 불과했다. 베테랑의 숫자는 열 명도 되지 않았다.

그들은 굳건하게 의식을 치르고, 다음 마을로 향했다.

다음 마을은 인구도 제법 많았다.

“깃발 거수!”

그들은 금방 50명이 됐고, 서서히 그 행렬은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움직임은 잘 제어가 되고 있었고, 가는 길은 행군과 같았다. 그 덕에 많은 이들이 이를 기록했고, 팔아먹었다.

백발이 성성한 베테랑들의 행군은 그것만으로도 운치가 있었고, 마음을 뒤흔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행렬은 수도권에 들어섰을 때는 천을 넘어섰다. 그것도 한 방향에서나 그러했고, 합치면 3만은 그저 뛰어넘었다.

10년간 신제국에서 은퇴한 이들 중에 다시 싸울 이들이 3만 명이나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그들만으로 군단을 하나 만들어도 됐다.

“예상 범주를 넘어섰다.”

세파리아스는 그 행렬을 보며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이 더욱 호응했다는 것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꾸는 꿈을 이들도 같이 꾸고 있다.’

인간을 등 처먹기만 하는 초월자를 모조리 죽이겠다.

그런 꿈에 찬동한 이들이다. 그들은 늙었음에도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서 부름에 응했다.

세파리아스는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그들의 가치가 썩 좋지는 않았다.

언제 자연사할지 모르고, 노력한다고 해도 일군을 이끌 수는 없었다.

재능 자체가 병졸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 탓에 딱히 해줄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었다.

‘적어도 그들이 원하는 죽음을 내리겠도다.’

그들 모두 싸우기 위해서 왔고, 그들은 만약 죽는다면 싸우다 죽는 것을 생각할 터였다. 적어도 그들은 원하는 곳에서 싸울 것이며, 원하는 곳에서 죽을 것이다.

“그들에게 흉갑과 방패를 하사하겠노라.”

은색의 흉갑과 은색의 방패를 쥔 노병들, 은 방패군단이 조직됐다. 본래 기획 단계에서는 은 방패병단이었지만 그 숫자가 상상 이상으로 많아서 군단으로 새로 이름을 받았다.

군대의 변동은 기본으로 깔고 갔다.

그 덕에 많은 이들이 본격적으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돈 있는 이들은 ‘전쟁 국채 발행 조짐’에 대한 정보를 먼저 선점했다. 하지만 그 선점 효과를 볼 수는 없었는데, 세파리아스가 신문을 통해서 1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애국하라, 애국하라, 애국하라! 인간의 척수를 빨아먹는 악신을 부수는 전쟁에 참여하는 건 창칼을 드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전쟁 국채 구매를 독려하는 온갖 행동이 쏟아져 나왔다. 밥을 먹을 때도 그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우리 사장은 빚을 내서라도 사겠다던데.”

“그렇게까지 사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왜 아니야? 연이자가 최소 8%야. 돈 묵혀두는 것보다 나라한테 투자하는 게 낫지. 신제국은 멸망할 일이 없어!”

아래부터 위까지 모두 전쟁 국채에 큰 관심을 가졌다.

다른 차원의 싸움이고, 차원 문만 철통같이 지키면 본진이 털일 일은 없다. 그러니 돈 벌 기회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세파리아스가 유도한 일이기도 했다.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을 억지로 참가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돈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나라의 빚을 개인이 빚을 내서까지 사들이려 하고 있었다.

드낙이 본다면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개인을 쥐똥으로 보는 세파리아스의 마음은 조금 변하기는 했지만, 그 붉은색 그대로였다.

그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회사채 발행도 거침없이 행했다.

신제국은 수많은 알짜배기 산업을 독점하고 있다. 신제국의 회사에서 내는 회사채 구매를 회사원에게 강요하거나 독려했다.

당연히 국채보다 이자율도 높았다. 거기에 둘 다 10년 장기 국채다.

어지간히 당겨먹을 수 있단 소리다. 또 쿠폰으로 얼마를 중도에 빼는 것도 가능했다.

투자금액의 10%였는데, 이 쿠폰을 사용한 국채 인증서는 당연히 그 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신제국이 이처럼 막대한 돈과 자원을 갑자기 쏟아내자 다른 세력도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 * *

다종족 연합은 드낙의 이름 아래 교통이 극단적으로 많이 발달해 있었다.

지하에는 수운도 있을 정도다. 지하 연합 최고의 운송 수단이며, 엄청난 양의 물류가 이동하고 있었다. 다만 그 수운은 한정된 곳에만 있을 뿐이라 지하 수운을 통해서 마음껏 다닐 수는 없었다.

“신세계가 나타났다!”

“엄청난 이득을 볼 신제국으로 가야 한다!”

오크가 먹다 남긴 것이라도 빨아먹으러 당장 움직여야 했다.

그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보통 이상의 돈을 벌 것이다. 돈이 모이는 서울과 돈이 모이지 않는 외딴 마을의 격차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야망이 있다면 돈이 모이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 당연했다.

실패해도 돈 없는 곳에서 실패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더 남을 것이다. 그게 경험이라고 할지라도.

“노예도 많이 얻을지도 모르지.”

“아니, 그런 끔찍한 일을 신황제가 저지르겠는가?”

“아아, 내가 말을 너무 심하게 해버렸군. 요는 싼 인건비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 세계에 사는 이들이 많이 굶주렸다면 밀 한 포대로도 능히 고용하여 써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상인들은 신세계에 대한 기대감을 여실 없이 보여줬다.

특히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오만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바빴다.

평생 돈 세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이들이다. 옛 제국 때도, 신제국 때도, 돈을 좋아하는 인간을 돈을 좇게 마련이다.

그들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이 몰락하여 죽어도 또 다른 비슷한 인간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울 것이다.

“나무만 캐와도 이득 아닌가?”

“좋은 점토가 있는 곳을 점거한다면 도기 사업에서 큰 우세를 점할 수 있지.”

상인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신제국으로 향했다. 이미 사업을 크게 하고 있는 이는 일부를 떼어내서 보냈다.

보내지 않은 이는 없었다.

상인들은 기회란 건 그렇게 자주 오지 않는다는 걸 사회생활 하면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기회란 곧 실패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성공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무조건 해야 했다.

단순히 국채만 사는 이들도 있었다.

주어진 기회를 그들에게 맞게 활용했다.

이는 외부자원이 신제국으로 빨려 들어가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순간적이지만 신제국은 하나의 태풍이 되었고, 엄청난 저력을 단기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세계와 다종족 연합의 가격 차이는 곧 무역 성공을 의미했다. 그러니 신제국에 안 가는 이가 적었다.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 군수품이다! 군수품!”

병사가 먹을 것.

병사가 입을 것.

병사가 쓸 것.

그 모든 것이 비싸질 것이며, 원자재 가격 상승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생산력에 비해서 군대의 덩치가 커지면 물가는 자연스럽게 오를 수밖에 없다.

“외교관을 파견해라!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야 해!”

“연합 도시가 있지 않습니까.”

“길은 여러 개일수록 좋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했다. 정보가 정확할수록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신제국은 특별히 반응하지 않았다. 그들로서는 협력해야 할 이유를 못 느꼈다. 이에 세파리아스를 제외한 세력이 연합 도시에 안건을 올렸다.

* * *

우주. 땅으로부터 100km. 강철의 탑. 392층.

그곳에 드낙이 기술자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종족이 대단히 다양했는데, 엔지니어의 재능이 높으면 거침없이 이곳으로 보내지기 때문이다.

“크고 아름답다.”

“후하하하!”

드낙은 아주 들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오랜 시간 끝에 드디어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이라고 할 만한, ‘트라이던트 C4’가 실전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길이는 10.39m에 달하는 미사일이다. 중량은 33,000kg으로 무식하리만치 비대하다.

사정거리는 또 어떤가. 7,400km에 달한다. 속도는 21,000km/h로 빠르다 못해 무섭다.

고체 연료 3단을 사용하며 1979년에 개발된 미사일을 오늘에서야 다종족 연합은 생산할 수 있었다. 그것도 실패 없이 양질의 품질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그 크고 아름다운 미사일에는 소형핵탄두 대신에 화약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드낙에게는 약간의 고집이 있었다. 그건 실로 소시민적인 고집이었다. 방사능에 대한 공포로 살아온 소시민은 지배자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방사능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충분하다.’

끝도 없이 쌓아놓고 있다가 악마 침공 때 한 방에 터트린다. 제법 볼 만할 것이다.

물론 그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대륙 간 탄도는 우주에서의 싸움을 대비한 것이다. 지상 지원도 가능하지만 그건 따로 준비했다.

“이게 불벼락 망치인가?”

“예.”

대륙 간 탄도미사일보다 더 거대했다.

길이는 12m에 달했으며 너비는 55m까지 넓었다. 강철의 탑에 넣을 수 없어서 외부에서 꽂아 넣는 식으로 보관한다. 이를 위한 층의 개수(改修) 또한 이루어지고 있었다.

“중량이 몇이라고?”

“101,000kg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벼락 망치는 그 중량만으로도 일대를 박살을 내기에 충분했다. 많이 사용하면 지진과 쓰나미도 유발할 수 있었다.

표면적이 넓은 망치의 형태는 공기 저항을 많이 받을 것 같았다.

“지면에 마법이 닿을 즈음에 불벼락을 쏟아내면서 하강합니다.”

아티팩트를 발사하는 셈이다.

“크고 작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될 겁니다.”

오우거조차도 이 불벼락 망치를 맞으면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마신장(魔神將)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자원이 요구되지만, 다종족 연합은 능히 이를 대처할 수 있었다.

지하와 대장장이의 드워프 제국.

지하와 머릿수의 지하 연합.

둘이 합치면 지하자원은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연합 도시에서의 연락입니다! 초월자시여! 신세계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드낙의 귀에도 신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갔다.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신제국의 신문도 손에 쥘 수 있었다.

“불벼락 망치와 트라이던트 C4를 양산하라! 압도적인 승리는 압도적인 자원으로 이룩해 낼 수 있다!”

박수 소리를 들은 드낙은 곧바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속이고 파동으로 변했다.

순식간에 신제국의 수도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평소보다 더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소란이야? 나도 끼어야지!”

드낙은 곧바로 인파에 파묻혀서 정보부터 캤다. 세파리아스를 만나도 제대로 안 알려줄 것이 분명했다.

돌아가는 꼴은 술집에만 들러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라떼는 말이야!”

“내가 보수야, 보수! 지금 상황에서는……!”

“보수란 새끼가 왜 여기에 있어! 군대 가!”

“뭐? 이 새끼가, 보수는 무조건 군대 가야 하냐?”

“쳐봐! 쳐봐! 새끼야!”

개새끼, 소 새끼가 모조리 총출동했다.

그래도 알짜배기 정보를 나누는 점잖은 술꾼들도 있었다. 차림새는 추레해도 하는 이야기는 제법 그럴듯했다.

잠깐 뿔 쥐로부터 정보를 얻기도 했다.

“선 넘네…….”

외부에서 온 초월자가 나타났으면 바로 알려야 하거늘, 그걸 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드낙을 개로 본다는 소리였다.

“세파리아스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예.”

“그건 내가 알아서 찾아보지.”

드낙은 가만히 놀았지만, 그의 재능은 여전히 세파리아스를 뛰어넘는다.

가만히 있어도 30분에 한 번씩 멈추는 지랄 같은 KTX가 아니라 끝없이 질주하는 기차 위에 올라타 있는 것이 그의 재능이다.

그는 감각이 이끄는 데로 움직였다.

세파리아스는 신제국의 땅에 있었고, 딱히 어디로 간 것도 아니다.

그는 이차원에 있었다. 드낙이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그 누구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직 ‘드낙 맞춤형 수련’을 한 세파리아스만이 그를 알아차렸다.

그마저도 불가해의 감각으로 이해했다.

“나타나라, 건방진 놈.”

“건방진 건 너겠지. 시건방지게 초월자가 나타났는데도 나한테 바로 안 알리고. 테라의 수호는 나한테 맡긴다며?”

“초월자는 테라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차원에 있고, 테라가 있는 차원에는 발 하나 내밀지 않았다. 그러니, 테라에 나타난 적이 없는 거지.”

그 말에 드낙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귀족 새끼들의 어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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