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154화 (1,152/1,239)

1154화

* * *

태양신, 주피터의 권능은 하찮게 여겨졌다. 물론 마력을 지닌 인적자원이 적었을 때는 분명 군침이 도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저 신이 수도에 거주한다면, 끝없는 소비가 이루어질지도 몰랐다.

모든 이들이 거리낌 없이 자원을 소비할 터였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태양신 주피터는 은근히 쓸 만한 인신으로 보이기도 했다.

‘인간에게 좋은 권능이다.’

만약 주피터를 쓴다면, 분명 많은 아티팩트의 가격이 내려갈 것이다. 태양 빛으로 업(業)의 힘을 축적할 수 있는 게 그녀의 권능이고 업은 정말 가히 만능의 자원이다.

―그대의 권능은 무엇입니까?

나도 말했으니, 너도 말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주피터는 세파리아스가 딴마음을 품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간단한 간 보기다.

친구와 대화할 때, 그 친구가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자신 또한 비밀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어물쩍 넘어간다면 분명 나중에 큰 화를 입게 될 것이다.

―나의 첫 번째 권능은 정신 파괴(Mental destruction)의 권능이다. 다만 아직 권능을 만드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정신 소모의 권능에 가깝다. 상대의 정신력을 소모시키는 권능이다.

세파리아스는 ‘첫 번째’ ‘부족한 권능’임을 드높였다.

―다른 권능은 없습니까?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은 정신 파괴 권능을 조정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권능을 만드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드낙도 제대로 된 권능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이들을 위한 권능을 만들고 있었고, 그마저도 손 볼 구석이 많았다.

중립신(中立神) 엘 마르토 카사다민은 그야말로 권능과 능력의 대장장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았다.

주피터는 세파리아스의 권능에 대해서 들으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신생아네.’

응애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을 지경이다.

‘초월자의 정신은 강고한데, 정신 파괴의 권능이라? 방향을 잘못 잡았어.’

인신과의 싸움에서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남의 정신세계에 들어가는 건 가히 불가능한 일이며, ‘비정상적인 접촉’이 있어야 가능했다.

예를 들면 심연 속에서 중립신이 드낙을 불러들인 것 같은 농밀한 비정상적 접촉이 있어야 했다. 그런 짓을 하는 신은 거의 없다.

‘수준 미달이야. 하지만 오히려 좋아.’

자신이 활약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제가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저는 태양의 인신, 주피터.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는 인신들을 규합시키고, 라그랑지언(Lagrangian)이라 불리는 세력을 이끌었었죠. 그뿐만이 아니에요. 저는 태양 축적의 권능 외에도 다양한 권능을 가지고 있어요.

―그게 무엇이냐?

이에 주피터의 정신 파동이 조금 즐겁다는 듯이 흔들렸다. 자랑 쇼타임이다. 자기 자랑을 싫어하는 건 자기혐오에 빠진 이들뿐이다. 적어도 그녀는 아니었다.

―태양 영웅을 탄생시킬 수 있죠.

―태양 영웅이라…….

세파리아스가 흥미를 느낀 ‘척’을 했다. 마음속으로는 혐오감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가 흉심을 품은 것을 모르는지, 주피터는 말을 이어나갔다.

―인간은 너무나도 나약하죠. 그들은 게으름을 피우기 좋아하고, 일하는 것을 싫어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필멸자죠. 생각해 보세요. 100년도 못 사는 필멸자가 게으름을 피울 시간이 있나요?

―없지.

세파리아스는 그에 동조해 줬다.

―그렇다니까요! 100년도 못 살고 죽는데, 어찌 그렇게 헛짓거리만 하는지, 그걸 지켜보는 저는 정말 마음이 아팠답니다. 조금 더 노력하면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텐데,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더 사람들을 위해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주피터를 위해서 살아가야 할 노예들이 감히 게으름을 피우며 시간을 허비하다니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도축해서 가축의 밥으로 먹여도 시원찮았다.

그런 쓰레기 같은 종족이 자신의 품 안에 들어온다는 것을 생각하니 역겨웠다. 머리를 쪼개고, 눈알을 터트려 자신을 위해서 찬양가를 부르며 죽어가야 할 버러지들!

―그래서 저는 인간 중의 인간을 만들 생각을 했습니다. 탄생부터 요람까지.

―호오! 대단한 권능 같은데…….

―그럼요. 무려 반신의 씨앗을 심는 일입니다.

―데미갓을 탄생시킨다고?

이번엔 정말 놀랐다.

그가 놀라는 까닭은 반신(半神)과 반마(半魔)는 엄연히 구분되어 있으며, 드낙이 반마를 많이 탄생시키고 있지만, 그마저도 비정상적인 일이라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드낙의 경우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악마는 별을 파괴한다. 그런 악마가 자신의 정원을 가꾸고 있는 셈이다. 이런 경우는 있을 수가 없었다.

악마는 태생부터 별의 죽음에서 탄생하고, 생명체의 죽음에서 탄생하는 탓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파괴와 죽음은 떼려야 뗄 수 없고 초월자의 격에 올랐음에도 파괴와 죽음을 쫓는다.

마치 유전자에 각인된 생식 본능을 좇아서 결혼하는 유부남들처럼 악마는 끝없이 별을 쫓고, 펄떡거리는 심장을 움켜쥐며 그 피를 탐한다.

즉, 드낙의 경우에는 악마가 신이 할 짓을 하는 것이라, 반마 양성이 조금은 편한 경우였다.

반면 세파리아스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애초에 권능도 지지부진이고―그건 드낙도 마찬가지지만― 반신을 만드는 작업도 아직 해보지 않아서였다. ‘씨앗’을 품어야 하는데 그건 세파리아스에게 너무 모호한 것이었다.

―데미갓은 아니에요. 그렇게 쉽게 데미갓을 만들 수는 없지요.

주피터가 다급히 부정했다. 세파리아스의 감정이 여실하게 나와서다.

―씨앗은 봉우리 선에서 멈추게 돼요. 절반의 성공이죠.

꽃을 피우지 못한 반인반신을 양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태양 영웅 탄생의 권능이었다. 결과물이 반신이 아니기에 쉽게 할 수 있고, 숫자를 늘리기에 좋았다.

―이를 통해서 탄생한 태양 영웅은 확실히 상위 0.1%의 인재라 할 수 있죠. 이것만 봐도 제가 쓸모가 있지 않겠어요?

―그들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세파리아스는 그녀의 대답을 유도했다.

―당연히 불가능하지요. 탄생부터 이미 저의 인형이니까. 세뇌는 훌륭한 통치 수단이죠.

그걸 안 하는 놈이 병신이었다. 나중에 배신당하고 난 뒤에 후회하기보다는 시작부터 세뇌를 통해서 자신에 대한 끝없는 신앙심을 갖게 하는 것이 더 낫다.

그 말을 들은 세파리아스는 안심했다.

‘역시 인신은 멸하는 게 맞다.’

박멸해야 할 놈들이 분명하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필멸자에서 신이나 악마로 거듭난 이 중에는 괜찮은 놈이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주피터는 아니었다.

그녀는 권능으로 세뇌 인간을 탄생시킨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죽을죄를 지었다. 다만 당장 죽이지 않았다.

‘그녀는 쓸 만하다.’

단물을 빨고 내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일단은 이곳에서 지냈으면 한다. 불멸자가 되고 나서 급하게 일을 결정하지 않게 됐다. 인간은 함부로 건드리지 말도록. 모두 내 신민이다.

―그럴게요. 태양 빛은 받아도 되나요?

―상관없다.

힘을 회복한다고 한들, 죽는 건 변함없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질문해도 될까요?

떠나려는 세파리아스에게 그녀가 물었다.

―이 강철 태양이라는 기물을 누가 만들었죠?

―수많은 종족에게 의뢰했다. 내 권위는 아직 만족스럽지 못해서 모든 종족을 아우르지 못하거든.

태양신이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확신했다.

‘저 인신은 신생아가 분명하다. 나에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녀는 희망을 품고 기다리기로 했다.

일단은 상대의 방심을 유도해야 했다. 섣부른 짓은 하지 않고, 태양 빛을 권능을 통해서 업으로 치환하여 힘을 회복할 생각을 가졌다.

인간을 건드려서 다양한 정보를 얻는 방법도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았다. 상대가 경고한 만큼 언질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실제로 그녀가 있는 곳에는 그 어떤 인간도 접근하지 않았다.

세파리아스는 간 척만 하면서 가지 않았다.

차원 문밖에서 명령서를 적고 바로 다시 들어갔다. 주피터는 힘이 약해서 그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

주변을 인식하는 범위가 신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할 정도로 쇠락해 있었다.

* * *

신제국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신문을 찍어내는 일이었다.

쿵! 쿵! 쿵!

써억, 써억, 써억!

두드드드드!

거대한 기계가 돌아갔다.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쓰는 신문 제작 기계는 끝없이 돌아갔다. 종종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는 마법 바람과 함께 알아서 해결됐다.

3일이 지난 시점, 신제국 전역에 동시다발적으로 기습적인 신문이 배포되었다.

[충격 진실, 초월자가 찾아온 차원 문 내부의 상황!]

[끔찍한 괴물. 태양의 악신이 사람을 덮치고 그 정신을 희롱하다!]

자극적으로 쓴 큰 글씨가 사람들의 눈길을 샀다.

너도나도 샀고, 없어서 돌려보기까지 했다. 순식간에 이슈의 중심에 놓였다.

“업을 탐한다던데…….”

“그냥 업을 탐하는 게 아냐! 인간에게 기생하여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하는 놈이라고. 우리들의 초월자와는 확연히 다르지.”

“엘프들은 초월자가 되기 싫어서 도망까지 간다더니만.”

“그만큼 책임이 많은 자리라, 이 말이야!”

너도나도 떠들기 시작했다. 사상 초유의 상황이었다. 신제국의 건국 이유이기도 했지만 그런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들으시오! 신문에 있지 않은 정보요!!”

떠들기 좋아하는 이들은 광장에서 일장 연설을 하기도 했다.

“태양 빛을 집어삼키며! 세상을 어둡게 하는 태양의 악신이오! 그 악신은 오직 자신을 위해서 태양 빛을 잡아먹고, 그 악신이 지배하는 땅에는 식물이 빛을 보지 못해 말라 죽고, 강은 햇빛을 받지 못해 썩고!”

온갖 헛소리를 늘어놓았지만, 모두가 주의 깊게 그 목소리를 들었다.

빛을 받아먹는 초월자. 대악(大惡).

“차원 다리를 만드는 곳에서 나타났다던데.”

온갖 소문이 이어졌다. 지금은 이차원에 대치 중이라는 소리도 들렸고, 누군가는 이미 억류가 되어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간을 사육하는 타 차원 인신들의 비밀모임, 라그랑지언(Lagrangian)의 존재가 확인되다.]

“인간을 가축처럼 기른다던데.”

“목이 고정된 채 주는 밥을 계속 먹어야 하고, 종마로 쓰이는 인간은 거기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혹사를 시킨다고…….”

음모론을 퍼뜨리는 자들도 많았다.

그것만으로도 신제국은 떠들썩해졌다. 사람들은 음모론을 좋아하고, 이제 다가온 전쟁에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다만 모두가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진짜 전쟁이 오는 건가?’

보통 전쟁도 아니다.

초월자와 초월자가 싸우는 전쟁이며, 차원 전쟁이다.

이차원으로 들어가는 차원 문은 마법 크리스털을 통해서 본 적이 있는데 조금은 꺼림칙했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기분이 들었으며, 단 한 번도 해외를 가보지 않은 이가 해외를 보는 듯한 시선이다.

덜컥 겁이 났다.

‘다른 나라로 가야 하는 거 아냐?’

“여보, 이야기 들었어? 전쟁 났다가 내가 못 돌아오면…….”

“그런 이야기를 왜 해요?”

“다른 곳에 가자는 거지. 지금이라도 퇴직하고.”

“다음 달에 애가 역사 자격증 1급 준비하는 날이에요. 돈이 들어갈 때가 많은데 어떻게 내빼요?”

“아니… 나는…….”

“됐고. 오늘 음식물 쓰레기 버렸어요?”

“어어, 지금 버리러 갈게.”

들어오는 돈이 있는데 이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더는 자유민이 될 수 없었다.

그는 보수가 됐다.

혈기를 주체하지 못한 청년들은 바로 들고일어났다.

“군대로 향하자!”

“지금이야말로 내가 영웅이 되겠다!”

“남들 다 가는데 나만 안 가? 이건 못 참지!”

“가즈아아아아아!!”

누가 하면 따라 하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이다. 남이 해외여행 가면 나도 해외여행 가야 한다. 남이 명품을 사면 나도 명품을 사야 했다.

특히 남자는 남이 30m 미끄럼틀을 타면 나도 타야 한다. 남이 절벽으로 떨어지면 나는 머리부터 떨어져야 직성이 풀린다.

뜨거운 피.

가장 순진한 피를 지닌 젊은이들은 군대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정말로 대다수 이들이 군적을 지게 됐다. 그들 중 10%만 남아도 신제국은 나쁜 이야기가 아니었다.

젊은이들만 움직인 건 또 아니었다. 은퇴한 이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성력을 통해서 삶을 유지하고 있었고, 나이가 많은 이 중에는 150세에 달하는 이도 있었다.

“형님. 오늘 그날이 오는 것 아닙니까?”

“아서라. 호들갑 뜰 필요 없다. 우리를 아직 부르지 않았잖아.”

“연차가 몇 년인데 쉽게 부르겠습니까? 직접 찾아가야죠.”

늙은이들은 쉽사리 엉덩이를 떼지 못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신제국의 대신이나 관리가 와서 귀띔이라도 했다면 움직였겠지만 일단은 그런 움직임이 없으니 기다렸다.

보름이 지난 이후에 광장에 공문이 크게 붙었다.

황금으로 도색된 공문이었다. 그 휘황찬란함은 그야말로 세파리아스답다.

[전역자들이여, 퇴임자들이여, 은퇴자들이여, 은 방패 아래 모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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