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153화 (1,151/1,239)

1153화

* * *

세파리아스는 본격적으로 순시를 시작했다.

그는 차원 다리 공사 현장에 반년 만에 오는 것이지만 1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그 간극을 좁혔다.

천부적인 재능이다. 물론 그 혼자의 재능으로 만든 건 아니다.

기록에 필사적으로 임했던 이들. 전산화가 잘 되어있다는 점.

그것 덕분에 가능했다. 그가 없는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고 해도 기록물이 없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람의 입을 통해서 전해 들어야 한다.

말을 잘하는 이라도 정리한 문서보다는 깔끔하게 전달하기 힘들다.

“모든 이들이 모여있습니다.”

“나가지.”

세파리아스가 밖으로 나갔다.

그가 단상에 오르자 수많은 이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틀 전부터 대대적인 휴가에 들어간 탓에 활력이 넘쳐났다. 오늘 오전에 일하긴 했지만, 보여주기식 일이었다.

말 그대로 신황제에게 자신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여주는 시간이다. 거기에 이틀이나 쉬었기에 더욱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의전에 힘을 꽉 주고 다니는 시장 놈들을 보면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다. 시장이 왔다고 민원인이 주차장에 주차를 못 하는 순간, 시장의 이름 석 자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의전을 준비하는 공무원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공기업은 사기업과는 확연하게 차원이 다르다. 군대에 재입대한 기분을 들게 하는 것이 의전 준비였다.

반면 신황제의 방문은 누구나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오기 전에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이틀에서 최대 일주일의 휴가가 전체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세파리아스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평범한 이들을 ‘드낙’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어서다.

드낙은 놀고먹고 자고 싸는 걸 좋아하는 ‘비정상적인 개체’였다.

적어도 세파리아스에게는 그랬다.

고시 공부해서 성공한 사람은 일하면서도 자격증 같은 고시 공부를 한다. 평생 고시를 할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처럼, 세파리아스는 야망 실현을 위해서 살아가는 기계장치나 다름없었다.

그 개체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를 이해했기에 세파리아스는 ‘휴가’를 통해서 평범한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세파리아스 덕분에 이틀 휴가를 받았던 이들이 고함을 내질렀다.

“날 가져요, 엉엉!!”

전산화가 될 정도로 발달한 구역인 차원 다리 공사 현장에서는 현대처럼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이틀 동안 미드를 달린 인부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실로 광적인 반응이었다.

돈은 많이 벌지만, 지정 휴일 외에는 휴가다운 휴가가 없었다. 그걸 들어줬으니, 상상 이상으로 기뻐하는 이들이 많았다.

세파리아스는 짧게 연설하고 난 다음에 본격적으로 포상하기 시작했다.

“마법사 일등공신, 라부라니카는 단상 앞으로!”

우레와도 같은 박수 소리를 들으며 라부라니카가 신황제에게 예를 표하고, 몸을 돌아 군중에게도 예를 표했다.

“골렘 세분화 정립에 큰 공헌을 하여 중장비 혁신에 앞장섰기에… 금화 50닢을 포상으로 내린다.”

박수 소리가 다시 터져 나왔다. 모두 부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동전 화폐의 가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금화는 금화다.

“관리 다울 포니는 단상 앞으로! 기록 관리에 노력하고,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하였으며, 다른 이의 문서도 정리하여 업무 효율성을 높임과 동시에…….”

마법사와 관리, 호위 임무를 맡은 기사들. 그들의 이름이 호명되어 갔다.

이내 군중은 깨달았다.

‘아, 인부는 아무도 못 받는구나.’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이 상위 20% 안에 들어가는 자들이다. 종종 마주해도 서로 간의 사회적 계급이 달라 서먹서먹했다.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채로 살아가는 기분이 엄습했다.

“인부 돈돈은 단상 앞으로!”

그 말에 인부들의 눈이 돌아갔다.

“어? 어? 나?”

멍청한 소리를 내는 돈돈의 뒤통수로 우악스러운 손길이 쏟아져 나왔다. 홈런을 친 야구 선수를 두들겨 패는 것처럼 굴었다.

“야, 이 새끼야! 빨리 나가! 이 개새끼야! 씨발 새끼야!”

너도나도 욕지거리를 거칠게 날렸다. 서로 함께 술 마시고, 일해서 그런지 거리낌 없었다. 똥침을 놓는 미친놈도 있었다.

돈돈이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그가 엉거주춤 걸음을 옮기자 그 어떤 이들보다도 많은 박수와 환호성을 받았다.

차이가 너무 명확해서 상을 받은 이들의 표정이 조금은 굳어질 정도였다.

그들 또한 자존심이 있었다. 하찮은 인부 따위보다 환호성을 못 받는 건 큰 불명예였다.

“들어라! 돈돈은 용접공이다. 그는 차원 다리에서 가장 많은 용접을 했다! 차원 다리에 용접하지 않으면 다리는 무너질 뿐이다! 안 그런가! 그렇지 아니한가?!”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군중이 그 말에 화답했다.

수많은 이들을 한순간에 휘어잡았다.

세파리아스는 더욱 돈돈을 드높여줬다. 그리고 금화 수십 닢을 그에게 내리고, 다른 이에게는 작위를 줬지만, 그에게는 한 달의 휴가를 명했다.

그 어떤 날보다도 좋은 날이 됐다.

그 뒤로도 포상의 무거움과 가벼움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압도적으로 많은 인부가 포상을 받고, 휴가를 받았다.

그중에 혹 몰락한 가문원이 있다면, 휴가 대신 명예직을 내어줬다.

“흐흐흑.”

비록 허울뿐이지만, 다시 가문을 일으켜 세운 기분이 들어서 눈물을 훔치는 몰락 귀족 인부도 있었다.

이 행사 한 번으로 세파리아스는 이곳에 자신에게 충성을 마칠 이들을 수두룩하게 만들었다.

그다음 날에는 순시를 하며 차원 다리의 이모저모를 현장에서 살폈다.

“앞으로 어디까지 나아가야 하나?”

“정확한 관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다른 차원은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여겨졌다. 다리가 한 걸음 진행되면 관측도 한 걸음 더 진행될 수 있었다.

이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른 차원에 닿을 것이다.

마치 광질을 하다 보면 결국 철광석에 닿고, 다이아에 닿고, 금도 캘 수 있는 것과 같았다. 그만큼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런데도 신제국은, 신제국의 신민들은 진정으로 이를 행하고 있었다.

역사를 빠짐없이 배우기 때문이다.

역사는 필수 과목으로 자격증까지 따고, 시험을 쳐야지 사회인이 될 수 있었다. 직업을 가지려면 하다못해 수습으로라도 활동하려면 신제국 역사 자격증 4급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조금 중요한 일이거나,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자격증 1급을 따야 한다.

그 덕에 신제국은 ‘영혼 제국’을 통해서 초월자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고, 신황제와 함께 나아가서 다른 차원을 해방한다는 해방 이데올로기에 집착하고 있었다.

세파리아스는 그 첫 번째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

이차원에 세워진 차원 다리를 구경하던 세파리아스가 가장 먼저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조금 주변이 밝아진 것이다.

세파리아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 긴장한 채로 눈 주변에 모이는 변화를 서서히 관찰하며 태연하게 있었다.

이내 허공에 작은 빛이 생겨났다. 그건 태양처럼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인부의 머리에 닿았다. 그러자 인부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자빠졌다.

“우아악! 뭐야?! 누구야!”

소리를 지르기도 했는데 다른 이들은 멀어서 듣지 못했다. 다만 그 부산스러움은 번져가듯이 커졌다.

“무슨 일이냐?”

그제야 세파리아스가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기사들이 가장 먼저 나아가 상황을 파악해 나갔다.

‘초월자다.’

혹은 그에 준하거나. 그 하수인일 공산이 컸지만 세파리아스는 확신했다.

곧 해당 인부가 세파리아스의 앞에 나타났다.

“그게 갑자기 제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말을 합니다. 아주 아름답고, 고운 여성의 목소리인데, 자신을 도와달라고 애걸하고 있습니다.”

“모습을 드러내라.”

그 말에 황금빛이 인부의 뒤통수에서 튀어나왔다.

후광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웠지만, 인부가 그 대상이라 그리 신성해 보이지는 않았다. 사람은 시각에 80%를 의존하는 만큼, 보이는 것이 중요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잘못된 셈이다.

정신 파동이 퍼져나갔다.

아주 미약했다. 인부 따위에게 들러붙은 이유라고 생각될 정도로 미약했다.

―도와주세요. 저는 태양의 신, 주피터입니다.

그녀는 정확하게 세파리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그 형상이 뭉개져 있어서 얼굴도 몸도 구분되지 않고 있다.

―주피터? 그대는 ‘나와 같은’ 인신인가?

그 말에 주피터는 바로 긍정했다.

―예, 저는 인신(人神). 인간을 가꾸는 정원사입니다.

세파리아스가 가장 싫어하는 소리를 거침없이 행하였다. 그런데도 세파리아스는 되레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육신에서 정신체를 드러냈다.

―도와주겠다. 주피터, 태양의 인신이여.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업(業)이 필요합니다. 조금이라도 나눠줄 수 있다면 나중에 크게 보답하겠습니다.

아주 정중했지만 이런 태도가 언제까지 갈지는 그도 몰랐다.

세파리아스는 최소한의 업을 내어줬고, 그녀에게 필요한 그릇도 내어줬다. 그 그릇은 생명체는 아니었다. 전투 강철 인형이다.

전투용으로 개발된 것을 주면 무서운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당장 줄 그릇은 이것뿐이다.

나중으로 미뤄둔다면 인간의 그릇을 원할지도 몰랐다.

신이란 그런 것이다. 사회의 부품이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필요를 다하면 제거할 뿐이다.

몸을 얻은 주피터는 마력으로 구동하는 전투 강철 인형의 손을 움직여 보았다. 발성 기관은 없었기에 정신 파동으로 대화를 해야 했다.

물론 이 과정은 모두 이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세파리아스는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딴짓한다면 영향무력(影響武力)으로 베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대는 무슨 인신입니까?

―그런 것은 없다. 난 인간들에게 신황제라 불리고 있다.

―신황제…….

황당한 칭호였다. 신이 황제의 이름을 논하는 건 이상하다.

―초월자가 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내가 초월자가 된 것도 우연의 산물일 뿐이다.

―인간에서 인신으로 거듭나다니, 대단한 일입니다. 그곳에 다른 인신은 없습니까?

태양의 인신은 차원 문 너머를 노골적으로 쳐다봤다.

―없다.

세파리아스는 손쉽게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어찌 이런 차원 다리를 짓고 계신가요? 보통 발전된 문물이 아닌데…….

―침공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차원에서 공격했고, 수도가 불태워졌다. 큰 피해를 입고 나서야 그들을 밀어낼 수 있었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그들을 보고 배웠을 뿐이다.

―아아……! 혹시 그 침공자들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실 수 있나요?

중요한 정보였다. 세파리아스는 어렵지 않게 말을 해주었다.

―지구란 곳이며, 만신전이며, 우주 낙원이라는 기물로 침공했다. 들어본 기억이 있나?

―…없네요.

세파리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제를 돌렸다.

―태양의 인신인 그대는 어쩌다가 이런 이차원을 떠돌아다니게 되었지?

인신이란 인간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살아가는 벌레보다 못한 초월자였다. 그런 인신이 인간이 없는 이차원에 홀로 돌아다니는 건 이상한 일이다.

―저 또한 침공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멧돼지 인간들이며, 파괴의 지성 종족입니다. 저는 소멸의 위기 속에서 도망쳐서 이차원을 돌아다녔고, 이차원에서 느껴지는 ‘태양 빛’에 이끌려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차원 다리 한 곳에 마련되어 있는 ‘강철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드워프 제국에 속한 금태양 가문이 만든 것이다. 그 태양 주변에는 태양광 패널이 타원형을 그리며 둘러싸여 있었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힘은 분명 ‘태양 빛’이며, 태양의 인신인 주피터가 으뜸으로 삼고 있는 힘이었다.

―태양 빛을 찾았고, 그것에 이끌렸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힘을 회복할 수 있단 소리인가?

주피터가 긍정했다.

―네. 저는 태양의 인신. 제 권능은 태양 속에서 영원한 힘을 축적할 수 있습니다. 이 권능은 그 어떤 인신도 따라 할 수 없을 겁니다.

여신은 아주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에 세파리아스가 작게 웃었다.

정말로 형편없는 권능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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