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2화
상식적으로 혼자서 큰 사업을 하는 건 리스크가 크다. 또 다른 파트너를 원하는 게 이 바닥이다. 국책 사업에 도움을 좀 달라는 나라님의 말씀에 기업 하나만 도와주는 것보다는 최대한 많은 기업이 벌떼처럼 달려들어야 부담이 적다.
그홀리의 시장인 엘리아킴이 뿔 쥐들을 엮는 이유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어차피 혼자서 다 못 먹는다.’
그렇게 하기에는 백색 빛 엘프들은 너무 많은 강을 건넜다.
백수들이 제법 있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는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욕망이 있고, 야망을 품었으며, 동기가 활활 타오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한다고 해도 우주로 갈 놈들은 1년이나 분기마다 교대를 해줘야겠지.’
억지로 간다면 한 분기. 3개월만 일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니 엘프의 부담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드워프가 뜬금없이 튀어나왔으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외교의 기본도 모르는 놈이다.’
드워프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중립신의 장남이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필멸자이다.
사실 필멸자라 말하는 것도 우습다. 불멸자에 가까운 생명체가 드워프이기 때문이다.
중립신이 어떤 세상을 꿈꿔왔는지, 드워프를 보면 잘 알 수 있었다.
각성제가 없이는 일상생활조차도 힘든 것이 드워프들이다. 그들은 마음속에 열정의 불꽃이 드물었다. 그 탓에 욕심도 없다.
중립신이 만든 세계는 그저 절제된 필멸자들이 살아가는 거세된 세계일 지도 몰랐다.
드낙 덕분에 각성제를 달고 사는 드워프들은 다시 열정의 불꽃을 활활 태우고 있었다. 이번에 훅 치고 올라온 이유도 그 때문이다.
탕탕!
총소리를 내며 가슴을 두드린 황금 방패가 호쾌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못할 게 있습니까? 우리 드워프가 구상하고 있는 ‘강철 태양’을 생각한다면, 초월자께서 말씀하신 태양광 발전은 오크와 고블린처럼 잘 어울립니다!”
드워프가 크게 웃었다. 이에 엘리아킴의 눈에 의문이 깃들었다.
“강철 태양이 무엇입니까?”
“금태양 가문을 이용하는 거다.”
그 질문에 대해서는 드낙이 답했다.
“금태양 가문? 들어본 적 없습니다.”
“오래전에 있었던 가문입니다. 이제 그들까지 깨어날 정도로 드워프 제국은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자신감이 대단했다.
“그래서, 금태양 가문의 손길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금속의 겉면이 금으로 도금시킬 수 있고, 태양 빛을 뿜어내게 합니다. 옛날 드워프들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고대의 고대. 고대를 넘어 고대.
그 아득한 세월 속에 파묻혀 있던 가문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제사를 지내는 것뿐이지만, 기술과 과학이 발전한 지금, 그들은 충분히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었다.
“강철 태양 계획은 금태양 가문을 통해서 더욱 완벽에 가깝게 발전할 것이다.”
강철의 탑과 탑의 층을 담당하는 큐브는 결국 지상에 우뚝 박힌 구조물이다. 아무리 우주에 닿았다고 해도 행성이 자전하면서 낮과 밤이 존재한다.
기후는 상관없었지만, 밤에는 태양 빛을 못 보게 된다.
이를 벗어나려면 인공위성이나 우주 정거장을 지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세파리아스에게 준 우주 낙원을 받아내야 한다.’
악마의 요람. 가비노(Gabino).
그것은 지금도 우주 공간에 고고히 자리를 잡고, 테라를 살피고 있다. 아직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않고 있지만, 존재 자체로 세파리아스의 마음을 흐뭇하게 만들고 있었다.
‘가비노는 전투용이고, 세파리아스는 공격적으로 쓰고 싶어 하니까.’
가비노의 동력 자체는 드낙의 권속 악마가 행하고 있지만 드낙은 이를 세파리아스에게 내어줬다.
“인공위성이나 우주 공항은 아직 힘든 일이다.”
더욱더 많은 발전이 이루어져야 했다.
단순히 지식뿐만이 아니라, 실무진이 많아야 한다. 손에 땀과 기름을 묻히는 엔지니어들이 필요하다.
“밤에도 태양 빛을 낸다면, 능히 그 효율이 더 올라가겠지.”
무엇보다 드워프의 손길은 반영구적인 힘이다.
그 위력은 천지 차이였고, 드워프 가문마다 제각각이다.
“강철 태양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강철의 탑은 방위탑이다. 하지만 동시에 막대한 전력을 생산한다면, 많은 도시에 지을 수 있을 거다.”
마법을 통해서 능히 다른 종족도 강철의 탑을 이용할 수 있었다.
“엘프의 중력 마법과 바람 생성 마법이라면 우주에 있는 큐브에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강철 태양 하나 때문에 순식간에 일이 진행됐다.
“강철 태양은 반영구적으로 계속 사용할 수 있다. 걱정 말고 태양광 패널을 만들어라! 적어도 20년 이상의 세월이 남아있다. 재활용은 그때까지만 완료하면 된다.”
폐패널 재활용도 넉넉한 시간이 남아있었다.
대대적으로 이 사업에 엘프와 드워프가 뛰어들었다.
* * *
곳곳에 거대한 큐브가 마련됐고, 그 큐브 위에 또 하나의 큐브가 올라가며 강철의 탑이 세워졌다. 그 땅 아래에는 전선이 파묻혔다.
다종족 연합은 빠르게 현대화의 물결에 휩쓸리기 시작했고, 지성 종족 모두 이에 대한 지식을 공부해야 했다. 세탁기 사용법을 모르는데, 세탁기를 구매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주에 닿은 강철의 탑은 옆으로 쭉 뻗어나가며, 태양광 패널이 자리 잡았고, 강철의 탑 꼭대기에 강철 태양이 자리 잡았다.
내부는 강철로 되어있었지만, 겉은 금태양 가문원의 손에 의하여 도금이 되었으며, 찬란한 태양 빛을 내뿜었다.
낮이고, 밤이고 계속되는 빛은 언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밝았다.
그 덕에 커튼을 구매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엘&드 연합의 태양광 산업은 한 달이 지날수록 곱절로 성장했다.
1년이 지났을 때는 강철 태양의 개수가 1,500개를 넘어섰다.
사용한 태양광 패널은 그리 좋은 패널은 아니었다. 고작 가정용에서 사용될 법한 300W짜리 패널이다. 1시간에 300W밖에 모으지 못한다.
하지만 실제로 강철 태양에 있는 태양광 패널은 한 개의 판당 1시간에 432W는 금세 모은다.
효율이 상상을 초월했다.
날씨의 방해를 받고, 대기의 방해를 받는 지상에서 하는 것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무엇보다 24시간 내내 빛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24시간 동안 10KW를 태양광 패널이 모을 수 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하나의 강철의 탑에 1,000개의 태양광 패널이 자리 잡고 있으며, 강철의 탑 100개에서 1GW가 생산된다.
이는 1백만 KW이며 동시에 원자력 발전소 한 개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전력생산율이었다.
전쟁용이라서 패널을 1,000개밖에 설치하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강철의 탑은 1,500개였으며, 15개의 원자력에서 생산하는 전력을 다종족 연합에게 내어주고 있었다.
그 무지막지한 전력량 때문에 대부분 세력에서 발전소 사업이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남는 전력량이 너무 많아서 그냥 빌려 쓰는 것이 더 싸기 때문이다.
그 단가를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 * *
신제국은 차원 다리를 건설하고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
차원 다리는 수도에서 지어지지 않고, 수도권에서도 지어지지 않는다. 신제국의 가장 북쪽에서 건설되고 있었다.
수틀리면 윈터 헬이 바로 권속 악마 군대를 보낼 수 있는 전쟁 군사적 이점이 많은 곳이 신제국의 북쪽이었다.
그렇다고 국경선에 밀접하여 짓지는 않았다. 인적자원과 자원을 국경선까지 보내는 것만으로도 운송료가 많이 들어가는 탓이다.
우웅, 우우웅, 우웅.
차원 다리가 건조되는 곳은 거대한 평야는 아니었다. 평야에서는 다양한 생산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조는 협곡에서 건조되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협곡 곳곳에 건물이 들어서 있고, 철로가 놓였으며, 넓은 길이 자리잡혀져 있었다. 종종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는데, 구불구불한 협곡을 직선로로 바꾸거나 길을 넓히기 위해서다.
나무를 베는 인부들이나, 야생 동물 혹은 괴물의 사체를 데리고 가는 병사들의 모습도 보였다.
활력으로 가득 찬 곳이었고, 지정된 곳에는 음식을 파는 천막도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숙박을 위해서 지어진 5층짜리 기숙사는 대단히 투박하고 단조로웠지만, 그 숫자가 많아서 구경하는 이들도 있었다.
족히 30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철 기둥에서는 폭포처럼 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협곡의 지하수가 없어서 수원 확보를 위해서 지은 거대 아티팩트였다.
그중에서도 독특한 곳이 있었다.
그곳엔 끝없이 콘크리트 재료가 들어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여겨볼 것은 바로 ‘화산재’다. 로마 시절에 쓰이던 콘크리트 재료인 화산재는 콘크리트의 ‘수명’에 크게 관여하는 재료였다.
척 봐도 한 번 만들고 오랫동안 보수를 하지 않겠다는 간사한 심보가 보였다.
재료를 쌓아두는 곳 너머로 차원 문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 차원 문에는 족히 30명은 되어 보이는 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기사 중 다섯 명은 황실 기사단으로 극점 찌르기를 수련한 자들이다.
세상을 찔러 베는 ‘극점 찌르기’를 배운 황실 기사단은 명중한다면, 드낙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었다.
그런 자들이 차원 문을 지키고 있었다.
인부들은 끝없이 들어왔다가, 나가기를 반복했다. 종종 물을 가져가는 인부들도 보였다.
깡깡깡!
철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협곡의 위쪽이다.
그곳에는 순찰병들이 사위를 훑고 있었고, 협곡의 너머에 인공적으로 만든 협곡 같은 곳이 존재했다. 조선소처럼 되어있었다.
그 텅 빈 곳의 양쪽에는 철 구조물로 단단히 고정할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며, 그곳에 마치 다리를 받치는 용도로 보이는 아치형의 철 구조물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내가 말이야, 왕년에는 귀족 영애랑 밥도 먹고, 엉? 차도 마시고, 엉? 함께 손도 잡고, 엉!”
“어이, 맥스! 용접이나 똑바로 해!”
“똑바로 하는데 뭐가 문제야!”
누군가의 훈수질에 맥스가 고함을 내질렀다. 용접은 본인만이 잘못되었는지, 잘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다른 이가 확인하려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했다. 그런데 저딴 소리를 하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용접은 말이여. 자기 양심 속이면 안 돼. 그러다가 큰일 나. 차라리 잘못했습니다, 하고 새로 하는 게 나아. 내가 용접하는 곳은 내 이름으로 다 박혀 있어.”
“어디에요?”
“설계도에, 새끼야. 용접한 곳에서 내 이름을 왜 찾아?”
“죄, 죄송합니다.”
어리숙한 부사수가 냉큼 사과했다.
용접을 마친 다리 받침대는 곧바로 차원 다리로 향하게 되는데, 마법사들이 찾아와서 차원 문을 연다.
30t이 넘는 거대 차원 문이다. 온갖 합금으로 만들어졌으며, 테두리에는 수많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다종족 연합에서 가장 비싼 물건이 있다면, 바로 이 거대 차원 문일 것이다.
그그긍! 그그긍!
오우거가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었다.
거대 차원 문으로 다리 받침대가 들어갔다. 그 내부에는 이차원 공간이었고, 수많은 이들이 작업에 임하고 있었다.
다리의 아래는 철 구조물로 받쳐지고 있었는데, 그 바닥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받친다’는 개념을 마법으로 실현해 놓았다.
다리 받침대는 다리를 받치는 부유 마법이 크게 들어가 있었다.
아치형의 다리 받침대가 놓이고, 안전 장비를 잔뜩 움켜쥔 인부들이 내려가서 용접하며 다리 받침대와 다리 받침대를 하나로 만든다. 그 뒤에 철근을 거미줄처럼 놓고, 콘크리트를 때려 박아서 다리를 완성시킨다.
이 작업은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다른 차원과 연결될 때까지 되풀이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대 차원 문은 이동형도 있었지만, 고정형도 있었다.
고정형이 제대로 된 ‘길’이라 할 수 있었다. 협곡의 절벽에 설치되어 있었고, 그곳은 24시간 항시 연결되어 있었다.
사람이 드나들지만, 종종 무거운 물건이 옮겨지기도 했다.
마력 소모를 줄이기 위한 수많은 아티팩트와 장치들이 협곡 절벽에 가득히 설치되어 있어서 협곡을 리모델링한 것처럼 보였다.
세파리아스는 오랜만에 그곳에 시찰을 나왔다.
신제국은 항상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고, 세파리아스는 만능 지팡이처럼 어디에 집어넣어도 문이 열리듯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 덕에 많은 이들이 그에게 하나라도 더 묻고 싶어 했다.
이런 상황에서 차원 다리 공사 현장에 온다는 건 큰 사치였다. 그런데도 세파리아스는 이를 단행했다.
‘효율적인 것이 마냥 좋은 건 아니지.’
그는 이곳을 시찰하며 관리들이 미리 뽑아놓은 데이터를 받아들였다.
놀랍게도 전산화가 되어있었으며, 데이터 전송까지 가능했다.
차원 다리 공사 현장은 그만큼 최신식 과학 기술이 접목된 구역이었다.
“이들인가? 숫자가 너무 많은데.”
그의 눈이 좁아졌다.
“정말입니다. 의외로 신제국의 인부들은 자신들이 흘릴 수 있는 땀, 이상으로 노력하는 인부들이 많습니다.”
“이유는 아느냐?”
“열심히 하는 만큼 자식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차원 다리 특별 특권법. 그게 이곳에 종사하는 인부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강력한 혜택이었다.
“자기 자식에게 교육 기회를 주는 건 그만큼 좋은 일이니까.”
세파리아스는 목록을 세세하게 훑어봤다.
그 인부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잘했는지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이 되어있었다. 의심스러운 것이 있다면, 관리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상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했다. 그가 훑어나간 모든 내용은 머릿속에서 교차검증이 이루어졌다. 보통은 많은 사람이 달려들거나, 관련 프로그램이 있어야 했지만 세파리아스는 그런 게 필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