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151화 (1,149/1,239)

1151화

24. 태양 차원 (1)

변방에 그토록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었단 사실은 드낙조차도 몰랐다. 10년 동안 놀고먹어서다.

권력을 배분했으니, 그 정도는 알아서 했으리라 생각했다.

실제로도 나라를 잘 굴리긴 했다. 다만, 나라가 잘 굴러간다고, 경제가 활황이라고 말해도 누군가는 굶어 죽게 마련이다.

신제국 또한 발전을 거듭했으며, 수많은 행복한 사람이 배출되었지만, 동시에 불행한 사람도 배출됐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가 잘살면, 누군가는 못 살게 마련이다.

세상의 자원은 한정적이다. 그렇기에 똑똑한 사람들은 항상 ‘사람’이 모이는 곳과 ‘돈’이 모이는 곳으로 향한다.

기술과 과학이 으뜸이 되는 시대.

프로그램을 통한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대에 문과를 선택한 고등학생의 미래는 이과생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실버 아머에게 의탁한 자는 실버 아머의 지배를 받는다. 다만, 격년을 주기로 신제국의 관리가 이를 시찰하여 의탁자의 신분을 벗어나 신제국의 신민이 되고 싶어 한다면, 이유 불문하고 이를 들어줘야 한다.”

세파리아스가 칼을 뽑았다.

지금까지 신제국은 수도와 수도권에 집중했다. 그만큼 변방은 두들겨 맞고, 굶주리고, 도태되어야 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도로가 들어설 때, 광주로 향하는 도시는 여전히 1차선이었다.

집중발전은 항상 소외당하는 지역을 만들게 마련이다. 그건 다른 나라도 똑같다.

신제국은 그 어떤 세력보다 집중발전을 했고, 그 대가를 이번에 치렀다.

‘이제는 달라야 한다.’

문제가 생겼고, 이를 그냥 덮는다면 드낙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경고도 했고, 무려 조언까지 해줬다. 세파리아스는 그 조언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다만, 사람을 다스리는 데 실버 아머의 여력이 사용되는 건 못 볼 꼴이었다.

소 잡는 사람이 대문 지키는 꼴이다. 소를 잡을 사람이, 문지기를 하고 있으니 미치는 꼴이다.

“다만, 의탁자는 브론즈 헬름의 거주지에서 지낸다. 이는 실버 아머의 여력을 아끼기 위한 것임을 알도록 하라!”

“폐하의 지혜에 크게 탄복하였나이다!”

그렇게 신제국의 신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분이 새로이 바뀌었다.

변방의 시민 중 실버 아머에게 구함을 받은 이들은 그렇게 2등 시민처럼 브론즈 헬름과 함께 살아가게 되며, 다양한 산업의 일선에서 일하게 됐다.

브론즈 헬름은 변방 중에서도 주인 없는 땅에서 살아가며 둔전을 일구고, 전쟁 물품을 생산함과 동시에 전투 훈련을 하는 이들이다.

그 속에 끼였으니, 그 삶이 어떨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실버 아머는 종종 브론즈 헬름과도 함께 움직였다. 브론즈 헬름은 신제국의 편제를 따르고 있었기에 ‘나라의 군대’였다. 그러니 그 덕을 봐도 실버 아머의 전공을 오롯이 가져갈 수 있었다.

신제국의 변방은 실버 아머와 둔전병인 브론즈 헬름 그리고 실버 아머의 의탁자들로 빠르게 안정화가 됐다.

식량 같은 필수품의 안정화도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동시에 실버 아머는 변방의 신세력으로 발돋움했다. 가문을 무시하고, 자신을 드높이는 이들이 많아졌다.

어마어마한 권력과 이권을 가진 탓이다.

그들을 상대로 암살을 했다가 들켜서 가문 통째로 재산이 몰수된 가문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가진 자였기에 노동징역형은 받지 않았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돈이며, 그 돈으로 수만 명의 행복을 구매할 수 있었다.

그사이에 드낙 또한 1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10년은 강산도 바꾼다. 그렇기에 드낙은 다시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다.

* * *

연합 도시에 엘&드 회의가 열렸다.

엘프와 드워프의 회의다. 그 외에 그 어떤 종족도 참가하지 않았다. 애초에 부르지 않은 탓이다.

“하하하. 이거 큐브와 강철의 탑을 만드는 데 큰 노력 중이신 분 아니십니까.”

엘프 서클 시티, 그홀리(Gholli)의 시장, 건설의 엘리아킴(Eliakim)이 기쁘게 드워프와 마주했다.

드워프의 대표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손을 건넸다.

굳세게 서로 악수를 했다.

“피차 바쁜데 이런 곳까지 오다니. 드낙 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걱정이 되는군.”

황금 방패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드워프답지 않게 표정이 제법 격정적이다.

큐브 혹은 강철의 탑이라 불리는 끝없는 방위첨탑을 쌓아가는 드워프 중에서도 으뜸인 실력자가 황금 방패였고, 방패 가문이었다.

그들의 손길은 방어적이고, 큐브에 도움이 된다.

“무슨 일로 우리를 부른 건지, 저도 걱정입니다.”

“건설에 관련된 일이 아닐까, 싶네만…….”

18인의 벨룸 퓨에르 중 가장 건축학의 기술이 뛰어난 것이 엘리아킴이다. 그리고 큐브의 선두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황금 방패였다.

물론 그 외에도 많은 드워프가 강철의 탑을 세우기 위해서 큐브를 제작하고 있긴 했다.

“왔으면 들어오지. 왜 그렇게 가만히 있어?”

벽에서 머리만 불쑥 튀어나왔다. 그림자가 나풀거리고 있었다.

실로 악마적인 광경이다. 그러나 드워프와 엘프는 모두 고개를 깊이 숙였다.

“초월자를 뵙습니다.”

“위대한 지배자를 뵙습니다.”

드낙이 아니었다면, 엘프는 멸망했을 것이다. 드낙과 가장 전면에서 싸운 것이 엘프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드낙과 공동전선을 펼칠 수 있는 건 모두 드낙의 자비심 덕분이다.

드워프 또한 마찬가지다. 드낙이 만든 각성제 득을 크게 보고 있다.

“인사는 됐고, 빨리 일이나 하자. 바쁘잖아?”

“예!”

두 종족이 안으로 들어섰다. 넓은 의회였지만 참석한 이는 달랑 세 명뿐이었다.

드낙은 어느새 자리에 앉아있었다.

신출귀몰했다.

“오늘 너희를 부른 건, 전기 때문이다.”

그 말에 두 종족의 표정이 조금은 변했다. 그제야 자신들이 왜 여기에 왔는지 이해한 표정이었다.

드낙이 엘프에게로 향했다.

“엘리아킴. 너희 도시는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시다. 가장 전기가 잘 정착한 곳이라고 할 수 있지.”

“예. 전기 문화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드낙의 눈이 드워프에게로 향했다.

“황금 방패. 너도 마찬가지다. 네가 만든 큐브는 하나같이 전력을 소모해서 발전소가 필수적이라고 유명하지.”

“마력 자원은 한계가 명확하지 않습니까.”

마력 자원을 배출하는 인적자원이 없으면 마력을 재충전할 수 없었다.

그 한계와는 별개로 ‘전기’는 물건이 전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그건 상상 이상의 혁신이다.

“왜 그렇게 했지?”

“마력을 지닌 이는 마력을 이해하고,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즐깁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돈을 벌기 위해서 마력을 매일 같이 도시에 집어넣습니다.”

드워프의 눈이 엘프에게로 향했다.

엘프 서클 시티의 일상이다. 마력을 지닌 이가 도시에 마력을 주입하면 그만큼 돈을 받는다.

“그게 나쁜 일은 아니지 않나?”

드낙이 추임새를 넣었다.

“나쁜 일은 아니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것만으로도 엘프들의 삶이 고정된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고정…된다니. 그 무슨 말씀입니까.”

엘리아킴이 대단히 놀라서 말했다.

‘고정.’

그걸 좋아하는 엘프는 없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고정된 이들이기 때문이다.

악마의 피를 받아서 변화하는 지금, 그들에게 고정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력을 도시에 주입하지 않는 엘프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들은 그 마력을 어디에 사용합니까?”

“자신들이 하고 싶은 데에 씁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어떻습니까. 마력을 도시에 주입하는 엘프의 삶은 어떻습니까?”

이에 엘리아킴이 감히 답하지 못했다.

“한량처럼 살고 있지요. 물론 엘프 서클 시티에서 정해진 커리큘럼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그런 삶이 많지 않습니까. 이처럼 마력 자원을 지닌 생명체는 고정된 존재입니다.”

마력 자체를 가지고 있었기에 변화된 삶을 살지 못했다.

“반면 전기란 것은 재밌지 않습니까. 물건을 통해서 생산할 수 있습니다. 발전소를 관리하는 인력을 제외하면 누구나 자신의 꿈을 위해서 하고 싶은 대로 전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약간 잉여 식량과 비슷한 개념으로 말하는군.”

식량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밭일을 하지 않는 인간이 많아지고, 더 많은 직종이 생겨난다.

황금 방패는 그런 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엘리아킴은 쉽게 답변하지 못했다.

‘그럴듯하다.’

“그럴듯하지 않나?”

드낙의 물음에 엘리아킴은 자신의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았다.

“예. 그럴듯합니다.”

인정할 건 쉬이 인정했다.

“이를 바꾸려면 결국 마력 자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전기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드낙이 몸을 일으켜서 말을 시작했다.

“컴퓨터나 냉장고. 그런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만 전기를 소모하는 게 아니다. 그랬다면 굳이 전기를 막대하게 생산할 이유가 없지. 길거리의 수많은 가로등은 아티팩트로도 능히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전기를 우리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

“불로 지성 종족의 문명이 시작됐다면, 전기를 통해서 더 발전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함이다. 지구의 현대문명을 따라잡으려면 전기가 필수적이다.”

전기는 제2의 불이다.

“그뿐만이 아니지. 쇠를 녹이거나, 합금을 제련하거나, 석재와 금속을 가공할 때 전기가 있으면 더 쉽게 행할 수 있다.”

“초월자시여, 그건 마력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수백만t에 달하는 금속을 제련하고 가공하는 데 얼마나 많은 마력이 들어가나?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느냐?”

“예?”

엘리아킴이 반문했다.

“다종족 연합은 하루에 수백만t에 달하는 금속을 가공하여 소비할 정도로 커질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다. 그때, 마력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느냐?”

그 말에 감히 답하지 못했다.

“오늘 너희 둘을 통해서 전기를 우리의 것으로 더욱더 확실하게 만들고자 한다.”

“명을 받듭니다!”

“뼈를 갈아서라도 행하겠나이다!”

둘이 대답을 명확하게 했다. 그 둘의 눈에는 재미와 흥미가 깃들어 있었다.

“먼저, 두 종족이 함께해야 할 일을 말하겠다. 드워프들이 만들고 있는 강철의 탑은 이미 대기권을 넘어섰다.”

우주에 닿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곳에 태양광 발전소를 지을 생각이다.”

대기권을 돌파하고, 구름 위에 지어진 태양광 발전소는 그 효율성이 특히나 좋아질 것이다.

“화력 발전소만으로는 부족합니까?”

“그것도 그것대로 진행해야지. 가능한 모든 발전소를 지어서 전력량을 늘린다.”

유일하게 사용하지 않는 건 원자력 발전소였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기술이 부족하니까.’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도 어려웠다. 관리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선택지다.

드낙은 가만히 있었지만 그들의 앞에 어느새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우주 태양광 발전은 우주 낙원을 건조하는 지구에서도 추진하고 있는 일이다.”

사락. 사라락!

보고서를 빠르게 훑었다.

“24시간 내내 빛을 받을 수는 없다.”

무식하게 쌓아 올린 강철의 탑에 부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대기 때문에 감소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하다.

“태양광 패널의 수명은 15년에서 25년입니다. 연간 1% 미만의 전력 효율도 감소합니다.”

과열을 막아야 하고, 전류를 검사하는 데에 돈이 들어간다. 10년이면 매우 낮아지는 발전효율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면 망하는 사업이나 다름없는 게 태양광 사업이다.

“내구력 강화를 한다면, 분명 그 수명을 이겨낼 수 있겠지.”

엘프의 마법이 들어간 태양광 패널의 수명은 극적으로 개선될 수 있었다. 대기권 위로 올려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효율을 챙길 수 있다.

‘나중에는 우주 정거장에 막대한 태양광 패널을 넣는다.’

온종일 태양광을 받을 수 있다면 극적으로 효율이 개선될 터였다.

“그렇다면 해볼 만은 합니다만…….”

말끝을 흐렸다. 보고서의 말미에 있는 것 때문이다.

“태양광 폐패널은 어찌합니까?”

그건 드낙도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직 결정되지 않았단 뜻이다.

그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대한민국만 해도 태양광 폐패널 재활용 기업은 네 곳에 불과했으며, 그중에서 실적이 있는 기업은 한 곳뿐이다.

그나마 실적이라고 해봤자 14t에 불과했다. 2023년에 태양광 폐패널이 965t이 쏟아지고, 2028년에는 16,245t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걸 생각했을 때, 황당한 일이다.

그런데 다종족 연합은 이것보다 더하다.

부품과 소재를 회수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는 것만으로도 인력이 들어가고, 수익성을 따져야 했다.

그러려면 보다 막대한 지원이 필요했다. 그 지원은 또 다른 이름으로 ‘세금’이란 놈이다.

“수명이라도 늘렸으니, 어떻게 되지 않겠나.”

“태양광 폐패널 재활용을 위해서는 기술과 인력이 필요합니다. 지하 연합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음.”

드낙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하 연합에 너무 짐을 지우는 것 같은데.’

그들은 분명히 하겠지만, 계속 어깨에 짐만 늘릴 수는 없었다.

고민하는 드낙의 모습에 드워프가 콧김을 내뿜었다.

“그건 저희가 어떻게 해보겠습니다.”

“간단한 사업이 아닙니다. 어찌 그렇게 확답을 내놓습니까?”

백색 빛 엘프가 협박하듯이 말을 쑤셔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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