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8화
* * *
실버 아머 사업 계획서.
그것은 극비 문서 중 하나로, 지역 유지들의 자본을 빼앗기 위해서 신제국이 은밀하게 준비한 것이다.
“변방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변방 부자들의 돈을 국고에 넣는 것이지.”
신제국에는 국가 산업이 많았다. 물부터 전기까지. 국가가 소유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 전기를 사용하는 다양한 물건들이 나오면서 큰 수익성을 내고 있었다.
세파리아스는 전기 사업을 민간에 푸는 멍청한 짓은 절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다른 굵직굵직한 산업도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민간이 눈독을 들이는 것이라면 당연히 건설업이다.
백종X 선생님께서도 건설업을 하실 정도로 ‘혹’하는 것이 건설업이다. 사람은 살고, 새집에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은 언제나 있다.
신제국 또한 우주 낙원 침공 이전에는 민간에서 건설업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국가의 것이 되었다.
“건설업은 집중할수록 이득이 크다.”
규모의 사업이 가장 압도적인 것이 건설업이고, 합병하면 할수록 이득인 것이 건설 회사다.
수도를 수복해야 하는 세파리아스는 강제로 건설업을 하는 이들을 하나로 만들어 자신의 아래에 뒀다. 정확히는 나라에 속하게 만들었다.
많은 이들이 거부했지만 거부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미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결국, 그들은 15년에 걸쳐서 ‘신제국 건설부’에 속하게 됐다.
가장 많은 부서 1위에 해당하는 것이 신제국 건설부였다.
건축이란 말단까지도 숙련공일 때 그 힘이 배가 된다. 적어도 아무렇게나 오줌을 싸고, 건물 벽 속에 쓰레기를 메우지 않는다. 동시에 ‘랜드마크’라고 불릴 만한 건물도 잘 짓게 된다.
실버 아머와 그를 따르는 이들이 거주하게 될 백색 병영(White barracks)은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는 곳이었다.
돈에 미친 상업 화가들은 벌써 이곳으로 와서 그림을 수백 점씩 그리고 있었다.
날씨가 흐릴 때도, 모델로 삼은 여인이 샛노란 원피를 입고 나들이를 앞에서 할 때도, 해가 저물 때도 그냥 분위기가 되는 것이 백색 병영이었다.
흰색 석재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간 건물답다.
신제국에서 나는 석재 양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석재를 사용했다.
“지하 연합과 상위국에서 석재를 들여왔다던데……. 그 돈이 만금을 넘었다던데.”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규모로 지어 놓은 것이 백색 병영이었다. 요새, 실버리온의 남쪽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다.
건설업이 하나가 되지 않았다면, 국가와 국가 간의 거래가 아니었다면 더 큰돈을 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라에서 임업(林業)도 관리하는 탓에 많은 원재료를 싸게 구할 수 있었다.
병기고 외에도 값싼 지하 연합의 요리사와 주방보조 및 메이드들이 루-부의 눈에 들어왔다.
뿔 쥐 요리사는 온몸의 털을 깎은 희생적인 면모를 지닌 요리사였다.
고블린들이 음식 재료를 옮기고 있었고, 뿔 쥐 요리사가 감독하고 있었다.
“저곳은 뭐 하는 곳이냐?”
루-부 코워드의 말에 안내를 맡은 이가 정중히 답했다.
“카지노입니다.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일정량의 돈을 내고 간단한 내기도 할 수 있습니다.”
“도박이란 말이냐?”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돈이 하루에 금화 1닢으로 되어있어서 도박의 단점을 최대한 줄였습니다.”
말이 금화 한 닢이지, 귀족 자재들이나 아쉬워할 금액이었다. 다른 이들도 출입은 가능하지만, 서약서를 써야 했다.
[카지노에 출입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 어떤 도의적 책임이 신제국에게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이며, 나중에 인사이동에서 불이익이 제공될 수 있음.]
한 마디로 도박하면 사회생활을 못 한다는 뜻이다.
개인이 카지노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또한 지구의 지식을 탐닉한 세파리아스였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신제국은 누구보다도 폐쇄적인 곳이지만, 동시에 세파리아스라는 걸출한 철인이 운용하는 곳이었다. 좋아 보이면 거침없이 도입한다.
신제국의 수도. 그중에서도 부자 동네에 정말 멋있는 외관의 카지노가 자리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리 세금을 걷어도 부자는 부자다.
부자는 일정 금액 이상 쓰지 않고, 나머지는 저축하는 편이고, 더 부자가 된다. 그 돈을 조금이라도 빼먹는 곳이 카지노인 것이다.
부자 동네에 부자가 아닌 이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건 그들의 인생이다.
세파리아스는 그런 것까지 관여하지 않았다.
잡초란 것은 그런 것이니까. 자신이 짓밟히고, 불태워지고, 말라비틀어지는 걸 알 도리가 없다. 남이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것이 그러한 치들이었다.
세파리아스는 그저 저울을 기울여 손해보다 이득이 많으면 그것을 행할 뿐이다.
소방관의 자살률이 높다고 소방관을 없애는 이는 없다. 소방관은 남을 대신해서 불길에 들어간다. 그것으로 생기는 사회적 이득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기에 자살률이 높아도 소방관 직종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들어가 보지!”
루-부는 금화 한 닢을 냈고, 30분도 안 되어서 밖으로 나왔다.
가져갈 금화는 정해졌지만, 판돈은 자기 맘대로라서 순식간에 개털이 됐다.
루-부의 눈이 카지노 입구에 있는 표지판으로 향했다.
[카지노 수익금의 30%는 국가 세금으로 나라를 위해서 사용됩니다.]
“그래도 애국했다! 자주 와야겠는데!”
미친놈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수련실에 방문했다.
수련실은 지하 공간으로 다양한 용도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건 무슨 기물인가?”
“엘리베이터라는 것입니다. 전기로 움직이는 혁신적인 기계장치로써!”
“호오!”
새로운 지식은 언제나 환영이야!
루-부는 엘리베이터에 대해서 듣고 난 다음에 탑승했다.
층마다 무슨 수련실이 있는지 적혀져 있었다. 또 한쪽 벽면에는 층수가 적혀져 있었으며 길게 설명이 되어있었다.
지하 1층은 새벽 수련실이다.
전부 개인실이었으며 철문으로 단단히 막혀 있었다. 문 안쪽에는 잠금장치도 확실했다. 방음도 잘 되어있었다. 다만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다.
“개인실이 이토록 많다니.”
지도를 확인한 루-부가 조금 감탄했다. 101호부터 시작해서 그 숫자가 1천을 넘어가고 있었다.
“실버 아머의 미래를 신황제께서 보살피고 계신다는 것이지요.”
아직 100명도 아닌 실버 아머다. 그런데 개인실은 1,000번 대를 넘어서고 있었으니, 말 다 했다.
2층에는 연병장이 있었다. 전투 강철 인형들이 보였고, 다양한 훈련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외에도 서로 마음이 맞으면 대련도 할 수 있는 작은 코트가 마련되어 있다.
시설을 다 돌아봤을 때는 하루가 지나 있었다. 그 많은 힘을 준 곳이다.
‘이런 곳에 안 들어오고는 못 배기지.’
루-부는 백색 병영이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주 성급한 결론이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 * *
하루가 지났을 때, 제법 잘 차려입은 문관이 루-부에게 방문했다.
“따라오시지요. 화원에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지.”
화원(花園)은 실버 병영의 대정원과는 다른 곳에 존재했다.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유리온실을 뜻한다.
“대단하군. 겨울인데 꽃이 가득하다니.”
유리로 된 온실 속에 화원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 화원이 열 곳은 되었다. 조금 적다고 할 수 있었고, 나중에는 더 확장해야 할 것이다.
“따뜻하기도 따뜻하죠.”
곳곳에 화염 아티팩트가 자리잡혀 있지는 않았다. 그건 상위국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신제국은 마력 자원이 부족하다. 그 면모는 이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아티팩트 대신에 발전소에서 증기로 터빈을 돌리며 생기는 온수가 온실을 지나고 있었다.
마치 온돌처럼 바닥을 달궈서 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는 바닥에 존재하고, 그 바닥이 뜨거우니 자연스럽게 방 전체가 뜨거워질 수 있었다.
루-부가 테이블에 앉아서 화실을 둘러봤다. 꽃이 피고 있었고 아름답기도 아름답지만 제법 눈에 익은 것들이 보였다.
처음에 말단 관리로 임용되어서 문관으로 살았던 것이 루-부였다. 지금은 변방에서 맹위를 떨치는 기사지만 예전에 그는 먹물쟁이였다.
신제국의 문인은 안 하는 것이 없었다. 조선 시대 관리들이 겸직을 쉬이 했던 것처럼 안 끼는 곳이 없다고 보면 된다.
“중급 약초들 아닌가?”
“하하하. 알아보시겠습니까? 마력을 머금은 약초들은 귀하기도 귀할뿐더러, 꽃이 하나같이 아름답지요.”
문관이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뿐만이 아니라, 실버 아머를 위한 질 좋은 물약을 만들기 위함도 있습니다.”
“좋은 생각이다.”
루-부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중급 물약은 은근히 값이 나간다. 전쟁용이지만 의료에도 많이 사용되는 탓이다.
죽을병에 걸린 이도 마력을 품은 약초로 만든 물약으로 살아남을 수 있으며, 생명을 연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신성력도 나쁘지 않지만 신성력을 다루는 이는 인적자원이기에 물건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보기도 좋고 말이지요.”
거듭 문관이 그런 소리를 했다.
“한데 나를 왜 보자고 했는가?”
“새로 오셨으니, 당연히 찾아봬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겸사겸사 말씀드릴 것도 있습니다.”
문관이 가져온 가방에서 서류와 마법 크리스털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테이블이 좁아서다.
대리석으로 만든 테이블은 그 자체로 멋이 있었지만 비싸다는 단점 때문에 그리 넓지는 않았다.
“먼저 실버 아머의 권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보시면 메달이 주어집니다.”
“메달?”
문관이 제법 묵직한 목함을 꺼내 들어서 열었다.
성인 남성이 손바닥을 최대한 편 정도의 넓은 원형의 메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 같은데…….”
“예. 금으로 만든 것입니다. 최고의 금 제련으로 그 순도가 아주 높습니다. 다만 테두리에는 구리를 둘렀습니다.”
과연 그 색이 달랐다.
메달은 은빛으로 빛나는 깃발이 배경으로 은이 발라져 있었고, 말이 높이 솟구쳐오르며 기병이 돌진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척 봐도 있어 보이고, 멋졌다.
“테두리에 무언가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곳에는 신제국과 신황제에 대한 짧은 글씨가 있었다. 다만 그 글귀는 절반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 절반에는 루-부 님께서 원하시는 글귀를 써넣으면 됩니다. 물론 비용과 작업은 신제국에서 해드립니다.”
“똑같은 백금으로?”
“똑같은 백금으로 해드립니다.”
그 말에 루-부는 강한 욕망을 드러냈다.
“오직 실버 아머에서 활동하는 이에게만 지급됩니다. 메달의 아랫부분에는 이름이 가장 크게 새겨지고 그 아래에 가문 명이 새겨집니다.”
공을 크게 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커스텀 제작 같은 느낌도 풍겼다.
“그리고 뒷면에는 본인이 원하는 문양을 넣어드립니다. 가문의 문양이 될 수도 있고, 앞으로 루-부 님께서 쓰실 개인 문양도 상관없습니다.”
“이 요새에 문양사가 있느냐?”
“백색 병영을 나가서 바로 앞에 상업지구가 있습니다. 일직선으로 된 대로를 걷다 보면 문양사부터 필요한 것을 파는 많은 상점이 있습니다.”
문관은 막힘없이 답했다.
실버 아머의 일원으로 받을 메달의 정식 명칭은 국경 수훈 메달(Frontier exploit medal)이었다.
루-부는 이를 수료했다는 증명서부터 받게 됐다.
신제국 황제의 직인은 이미 찍혀져 있었고, 자신의 이름만 서명하면 되는 계약서 같은 증명서였다.
“하하하!”
그가 크게 좋아했다. 다만 바로 사인하지는 않았다.
‘무슨 목줄이 꼬일 줄 알고.’
“그다음에는 실버 아머에게 필요한 장비를 대여해 드립니다.”
“대여라?”
“수리부터 관리를 쉽게 하려고서 하는 것입니다. 분실하면 그만큼 사비로 구매해야 하는데, 그 경우, 루-부 님의 장비가 됩니다.”
처음에만 대여고 그다음부터는 직접 구매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문관은 바닥에 둔 마법 크리스털을 꺼냈다.
“가장 첫 번째는 실버 아머입니다.”
마법 크리스털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오며 마법을 구현했다.
전신 갑주였으며, 현 최강의 전신 갑주 부품인 ‘보석 뼈’는 없었다.
“최신식은 아니지만, 상급의 전신 갑주입니다. 상체를 가리는 갑옷은 은색이며, 달빛을 받으면 시린 빛이 나오고 때에 따라서는 어둠을 퍼뜨립니다.”
야습하고 싶다면, 그에 맞춰서 변형할 수 있었다.
실버 아머의 가장 큰 특징은 야습에 있었다. 실력이 없는 놈들은 밤에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고, 젬병이다.
상대의 실력 격차를 더욱 벌리겠다는 실버 아머만의 교전 규범을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야전이라……!”
“야전을 위한 실버 아머. 그 첫걸음이 바로 이 전신 갑주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