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7화
* * *
실버 아머(Silver armor)가 출범했지만 지역 유지들은 무거운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신제국의 변방.
영혼 제국의 피해를 적게 본 트위큰엄(Twickenham) 지방이 특히나 그러했다.
“신제국의 관리가 오늘도 왔다 갔습니다. 계속 거부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도시 테딩턴(Teddington).
그곳의 지배자나 다름없는 코워드 가문의 가문원들은 그 숫자가 3,500명을 헤아렸다. 그것만으로 역사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으며, 그 역사 동안 잊힌 게 아니라 계속 부를 축적해 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제가회의(Add all conference).
코워드 가문의 회의기구인 제가회의에 참가하는 이들의 숫자는 550명으로 3,500명 중 가려 뽑은 500명과 코워드 가문에 공헌한 바가 큰 원로 50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원로는 특히 돈보다는 사회적인 지위가 높아야 했다. 물론 그다음에 돈도 많아야 한다.
그런 이들이 한자리에 모일 정도로 넓은 원탁이 있는 것만으로도 테딩턴 도시에서의 코워드 가문의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누구 하나는 보내야 하지 않겠나.”
“이름 없는 이를 보내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깐깐하구먼. 후루룩.”
원로 하나가 일부로 소리를 내며 차를 마셨다. 천박하기 짝이 없었다. 돼지가 사료를 먹듯이 소리를 내면서 처먹는 꼴을 보자니 기가 찼다.
하지만 이는 원로가 쾌감을 느꼈을 때의 버릇이었다.
남이 싫어하는 표정을 보기 위해서 소리를 내며 음식을 꾸꿔꿕 돼지처럼 먹는 것이다.
호루로루라라락!
널뛰기하듯이 차 마시는 소리가 경박하게 울려 퍼졌다. 몇몇 이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 지랄이네.’
‘빨리 죽어라.’
저 원로 하나 때문에 코워드 가문원은 면치기를 하면서 면 요리를 먹을 때도 조용히 먹는다. 먹는 소리가 나면 늙은 원로의 끔찍한 얼굴이 기억나기 때문에 밥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문 원이 3,500명인데, 이름 하나 못 내는 건가!”
“코워드 가문을 위해서 헌신할 이가 이토록 없다니. 응쯧쯧!”
늙은 원로들은 신이 났다. 오랜만에 자신들이 훈수할 때가 와서다.
대부분이 쩔쩔맸다.
그런 상황에서 홀로 고고하게 있는 중년인이 있었다. 그는 수염이 덥수룩하고, 기세가 남달랐다. 그 모습에 원로들과 주변인들이 그를 바라봤다.
블루 블러드(靑血).
가장 귀족다운 이라고 불리며, 잔혹하기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코워드 가문을 위협하며 테딩턴 도시의 지배권을 두고 싸웠던 위고, 토플러 가문을 멸망시키기까지 했다.
두 개의 가문을 멸망시켰다. 그들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 나자빠지기 바빴다.
그는 분명 블루 블러드라 불릴 자격이 있었다.
르테욱 코워드(Rteewg Coward). 그가 덥수룩한 수염을 쓸었다. 근육으로 다져졌으며, 눈매가 날카롭다. 누가 봐도 장군감이었다.
“할 말이라도 있는가? 르테욱.”
“제가 또 나선다면 코워드 가문에 인재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가 좌중을 훑어봤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하겠는가.”
“말이나 들어보는 건데, 무엇이 어렵겠나.”
의원들은 당당한 저 표정이 무엇 때문인지 궁금해했다.
“제 양아들을 보내면 쉬울 겁니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비상(飛上)하여 실버 아머의 중심을 꿰찰 것입니다.”
이에 수많은 이들이 동요했다.
“신제국의 관리가 과연 받아줄지…….”
“성을 세 번이나 바꾼 호로의 개쌍놈 아닌가…….”
“쉿…….”
르테욱 코워드의 가장 강력한 조커 패로 알려진 것이 그의 양아들이다.
그는 무려 세 번이나 자신의 성씨를 바꾸었다.
밑바닥 인상을 위고 가문이 받아줬고, 위고 가문에서 토플러 가문으로 또 자리를 옮겼다. 마지막에는 코워드의 성씨를 받았다.
그냥 딱 들어도 ‘아, 후레자식이구나.’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거칠게 살아온 자이며, 르테욱의 가장 강력한 검이다.
그 정도로 날카로운 검이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이름이… 이름이 뭐였더라…….”
원로 중 하나가 가물가물해 했다. 대단히 유명한데도 모르는 것을 보니, 노망이 나도 단단히 난 것처럼 보였지만 그 눈은 살아있었다.
명성 하나 제대로 드높이지 못했음을 돌려 까는 것이다.
“루-부 코워드(Lu-bu Coward)입니다.”
“아아! 서포트 퍼스트(奉先)!”
해묵은 별명을 늘어놓았다.
지방 자재들이 몬스터 사냥하는 것을 가장 먼저 도왔고, 항상 쪼르르 달려가서 힘자랑하기를 좋아해서 붙여진 첫 번째 별명이 바로 서포트 퍼스트였다. 한자로는 봉선이라 한다.
“예. 민첩한 기사(Agile knight)라 불리는 것이 제 아들입니다. 분명 실버 아머에 보낸다면 그곳에서 크게 명성을 드높일 겁니다.”
르테욱은 명성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변방의 귀족이며, 토착 세력이 가장 원하는 것이 바로 명성이다. 다른 이들도 모두 흥미로운 눈으로 그럴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탐욕스러웠고, 코워드 가문 또한 탐욕스러웠다. 대다수가 그러했으니, 성공할 수밖에 없는 태도였다.
살인자 그룹에서는 살인자처럼 행동해야 좋아하는 법이다. 르테욱 또한 훌륭한 코워드 가문의 탐욕스러움을 빼닮았다.
“루-부! 어떠냐! 실버 아머에 지원하여 1등 할 것 같으냐!”
“맡겨만 주신다면 무엇을 못 하겠습니까!”
청량한 목소리였지만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가문원들의 이목이 그에게로 향했다.
매우 날렵해서 기사답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그 누구도 루-부를 가볍게 보지 않았다.
루-부 코워드는 바닥부터 시작해서 어엿한 성씨를 지닌 귀족의 일원이 되었다. 이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그를 욕하면 같은 가족을 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코워드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루-부는 그 덕을 많이 보고 있었다.
“좋다!”
회의에 가결이 붙여졌다. 표를 모았다. 하나같이 자신의 서명이 들어가 있었다.
찬반이 제법 갈리기는 했다. 그래도 순혈을 보내야 한다고 여기는 꼰대들이 많아서다.
* * *
3일 이후 루-부 코워드는 실버 아머에 지원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수행원만 50명에 달했다.
실버 아머가 있는 곳은 신제국의 변방과 중심을 나누는 경계선. 요새 포트리스였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름으로 알려졌었으나, 갈림길마다 새로운 표지가 세워져 있었고, 포트리스가 아니라 실버리온이라고 쓰여 있었다.
“실버 아머에 맞춰서 새로 이름을 지은 것 같습니다.”
“실버리온이라! 나쁘지 않다!”
루-부는 기껍게 여겼다.
곳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 하나하나가 루-부를 기쁘게 만들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명성을 드높이는 일이다.
‘나쁘지 않다.’
무엇이 지나가도 길조라 여겼다.
“키익?”
가는 길에 야생 고블린 무리와 마주하기도 했다. 아직도 이런 놈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신제국의 상황은 다른 곳과 조금은 달랐다.
많은 이들이 야생이 살아 숨 쉬고 있어서 학술 가치가 높은 곳이라고 찬사를 보내지만, 그 실상은 조금 더 끔찍한 편이다.
“따르라!”
루-부 친위대라 여겨지는 소수의 기병이 밖으로 나가서 단번에 산길을 올라탔으며 나무뿌리조차도 짓이겼다. 보통 전투마가 아니었다. 산악기병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키에에엑!”
전투마와 부딪치면 소형차에 치인 것처럼 훌쩍 날아가서 나무와 부딪치거나, 땅에 코를 박게 된다.
캉!
나무 투창이 강철로 이루어진 마갑에 막혀서 튕겨 나갔다.
“끼익?!”
경악해 하는 고블린 투사의 목에 루-부의 창이 훑고 지나갔다.
슈컹!
깔끔하게 목을 깊게 베고 지나갔다. 창술의 솜씨가 훌륭했다. 마상 상태에서 이토록 깔끔하게 하려면 영화처럼 서로 합을 맞춰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쉬워 보일수록 어려운 법이다.
마치 고블린들은 일부러 죽어주듯이 루-부의 창에 자신의 목숨을 봉헌했다.
싸움은 쉽게 끝났다.
“정지!”
깊게 들어가지도 않았다.
도망치는 고블린은 잡지 않았다. 다만 끝까지 활을 집어 들어서 세 놈을 맞혔다. 숲과 산으로 도망치는데도 모두 명중했다.
“사체를 모아 불태울 준비를 해라!”
“예!”
그들은 고블린의 전리품도 가져가지 않았고, 그저 사체를 불태울 뿐이었다. 언데드를 발생시킬 수 있어서 꼭 태워야 했다.
화르르르!
변방에서 언데드가 발생하면 반드시 언데드 웨이브로 번져나간다.
변방에는 사람이 사는 곳이 적고, 반대로 땅 곳곳에 뼈가 많아서다. 하나의 언데드는 또 다른 언데드를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그들은 하루 동안 타올라 백골이 부서질 때까지 지켜보고 나서야 다시 걸음을 옮겼다. 혹여나 비나 눈이 내려 불이 꺼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내놔라!!”
겨울이라 굶주린 고블린이나 강도들이 덤볐다.
땟국물이 가득한 이들이라 강도보다는 피난민처럼 보였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눈에 뵈는 것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 무슨 어리석은 자들이!”
바바리안 같은 모습에 루-부가 기가 찼다. 이런 명성 얻기 힘든 전장에 힘을 허비해야 한다는 것이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짓밟아라!”
“와아아아아!”
아직도 세상 어딘가에는 기병을 이루고 있는데도 덤벼들 정도로 팍팍한 삶을 사는 이들이 존재했다.
배추도 돈이 안 된다고 엎어버리는 농민의 옆에 생활고로 죽어가는 부녀가 있는 세상이었다. 이곳도 다를 바 없었다.
모든 주식이 올라도 내 주식은 오르지 않는 것처럼, 태평성대에도 집이 망하는 곳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다.
변방은 더 했다. 사람은 수도권으로 모이고, 젊은이들은 성공을 위해서 더욱 수도로 향한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돈이 모이게 마련이다. 사람이 빠져나가는 곳에는 돈도 빠져나간다.
* * *
피로 얼룩진 길을 걷고 나서야 실버리온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 근처로 가서야 많은 청년이 수도권으로 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루-부는 그 모습에 마음이 심란해졌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수도권으로 향하다니. 대체 그곳에 무엇이 있길래?’
신제국은 ‘제국’이라 불릴 만큼 넓었다. 그러니 그런 질문을 가질 만했다.
미국 동부에 사는 사람이 미국 서부를 궁금해하는 것과 비슷했다. 딱히 궁금하지 않았지만 오늘 궁금하게 되었다.
변경에서 실버리온을 거쳐서 제국의 수도로 향하는 길목. 그곳을 지나며 루-부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쓸렸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노숙자는 발로 걷어차고, 평범한 사람에게는 돈을 요구하고, 있는 집 자식에게는 굴종하는 경비병이 지극히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실버 아머에 지원하기 위해서 왔다.”
“아! 예! 남들과는 다른 귀함이 보여서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남들과는 달리 따로 길을 내둔 곳으로 안내하는 모습을 보였다.
“간단한 신원 확인만 하고 가시면 됩니다. 헤헤헤!”
실로 천박하기 그지없었지만, 루-부는 그의 아첨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5분도 안 되어서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실버 아머는 성의 가장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남문(南門)이 따로 존재했는데 일반인은 사용할 수 없다.
군사적인 이유로 써야 했고, 그 외에는 실버 아머에 속한 이어야만 했다.
실버 아머라면 군사적 이유가 없어도 사용할 수 있었는데, 엄청난 특권이었다.
이런 걸 이야기해 주는 것은 그를 안내하는 기사였다. 견습 기사였기에 이런 일을 하는 듯했다.
“여기입니다. 나머지는 내부에 있는 관리가 안내해 줄 겁니다.”
“고맙네.”
앞으로 작전에서 함께할 것 같아서 루-부는 예의를 지켰다.
실버 아머의 병영은 깔끔했다. 새하얀 석재로 지어져 있었는데 엄청난 돈을 들인 것 같았다. 그 돈이 모두 지방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반란 한 번으로 큰 돈방석에 앉은 것이 신제국이었다.
사람이 오랫동안 모은 것을 얻는 기회였다. 보통 사람도 아니라 탐욕스럽게 남의 돈까지 해 처먹기를 쉬이 아는 범죄자들이 모은 돈이었다.
그 돈은 평범한 사람들의 돈을 모은 것과 다름없었다.
신제국은 그 돈으로 생색을 크게 냈다.
“폐하께서 변방을 생각하시는 마음이 대단하시구나!”
루-부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시설을 확인했다.
대중목욕탕도 있었고, 야외에는 온천이 존재했다. 또 혼자서 목욕과 온천을 즐기고 싶은 이들을 위해서 개인실을 마련해 두기도 했다.
다만 건물 꼭대기에 있는 야외 온천은 다섯 개였고, 예약도 필수였다. 돈을 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은근히 돈을 내야 하는 시설이지만, 만족스럽다!’
럭셔리 리조트 저리 가라 할 정도였고, 일을 보는 여성 직원 모두 미모가 대단했다. 또 그녀들은 은근히 그를 유혹하기도 했다.
‘음탕한 연놈들.’
그중에는 남자도 있었다. 남색(男色)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어서다.
루-부는 실버 아머의 삶이 생각보다 더 좋을 것 같은 기분에 광대뼈가 툭 튀어나오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다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