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145화 (1,144/1,239)

1145화

* * *

세파리아스의 도발에 드낙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주 가벼운 모습이었다.

‘쯧. 딱히 생각하고 싶지 않아 보이는군.’

그 모습을 본 세파리아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도발에도 넘어가지 않았기에 속으로만 찼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드낙은 확실하게 자신을 믿고 신제국을 맡겨줬다는 점이다.

이 정도의 참견이면 참을 만했다.

오크가 오크나무 다루듯이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드낙은 대단한 일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황제가 제국을 건설하고 공신을 쳐 죽인다. 그렇게 안 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뭐 해? 말해 줘.”

“해줘?”

“해줘.”

드낙의 거듭된 경박한 요구에 세파리아스가 실로 탐탁잖은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일부러 저러는 것을 알아서다.

“돈을 주는 게 가능한 이유는 지구의 지식 덕분이지.”

세파리아스가 물꼬를 텄다.

드낙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의 문화는 상상 이상으로 우월한 문화다. 이를 수박 겉핥기로 아는 현대인들은 결코 모를 것이다.

마치 스파트폰을 제작할 줄 모르면서 스마트폰을 쓰는 이들과 같았다. 그 위대함을 몰랐다. 스마트폰이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고 실로 비참하고 끔찍하지만, 스마트폰의 역사는 대단히 짧다.

그게 지구의 무서움이다.

한 번 배우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지만 처음 마주한 이는 등골이 서늘하다.

세파리아스는 그 누구보다도 명예를 중시하는 이였고, 자신이 모르는 지식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대단히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이를 통해서 세파리아스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 지식을 이번에 강력한 무기로 쓸 생각이었다.

“분할지급을 하기로 했다. 돈을 택한 이들은 반년 동안 모든 돈을 돌려받게 될 것이다.”

“오.”

드낙이 감탄했다.

분할납부! 신용카드를 쓸 때, 항상 12개월로 하는 미친놈을 본 적이 있어서 그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작년에 냈던 돈을 내년에도 내야 한다는 그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다.

‘근데 그 반대 입장은 개꿀이지.’

즐겁기 그지없는 것이다.

세파리아스는 악독하게 12개월 할부가 아니라 6개월 할부를 한 셈이다. 그건 분명 신제국에게 큰 여유를 주는 우월한 선택이었다.

드낙이 대충 감으로 때려 맞추듯이 내뱉었다.

“그래도 부족할 것 같은데.”

신제국은 차원 다리를 건설하고 있다. 국가 단위의 사업, 그것도 수익성이 당장 드러나지 않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드낙이 이를 염두에 두고 말하자, 세파리아스는 숨길 것도 없다는 듯이 수긍했다.

“그래서 더욱 돈으로 주는 것이 낫다.”

“왜?”

“기회비용을 치르는 것이니까. 너 같은 놈들은 모르겠지만.”

“알거든.”

“물건을 다시 운반해서 배송하는 일은 비용이 크다.”

각 마을에 대충 때려 넣고 가져가라고 해도 비용이 크다.

각 도시에 모아 놓고 마을에서 따로 찾아와서 가져가라고 해도 그 비용은 감당하기 힘들다.

“단순히 운반만 하는 것도 아니지.”

“수십 가지가 넘는 보급품을 다시 재분배하는 것과 같으니까.”

드낙이 추임새를 넣었다.

“맞다. 종류도 다양하지.”

쌀만 보급하는 부대의 효율성은 대단히 높다. 하지만 그 가짓수가 늘어나면 기하급수적인 행정력이 요구된다.

“거기에 그냥 지급만 하는 게 아니지.”

“징발 증명서와 서로 대조를 해야 한다.”

2부를 만들고, 1부는 시민에게, 다른 1부는 외청이 가져갔다. 종이 문서로 이를 기재하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쉽게 조회할 수 없다.

그 행위만으로도 골이 아파져 온다. 그러니 그 작업과 동시에 돈으로 지급하여 퉁친다면 큰 시간을 아낄 수 있고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었다.

“손해지만 손해가 아닌 게지.”

“물건으로 줬다가 실수가 생기면 걷잡을 수 없으니까, 확실히 돈이 편하다.”

한 번 잘못 주면 다시 가져와야 하고, 또 옳은 것을 내어줘야 했다. 그 짓거리를 하다 보면 현타가 올 수밖에 없다.

임진왜란 당시 당나라가 은화를 짊어지고 조선에 도착했듯이 돈은 생각보다 많은 면에서 일반 물건보다 장점이 많았다.

“이런저런 비용을 생각하면 주는 게 맞다.”

“그럼 물건은 어쩌고?”

많은 물량을 받았다. 이를 소모해야 한다.

세파리아스는 거기에 대한 것도 이미 생각해 뒀다.

“어쩔 것 같으냐?”

다만 이번에는 답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드낙이 툭 내뱉었다.

“범죄자들에게 재활용하면 되는 일이지. 그렇게 해도 남는다면 없는 이들에게 복지로 내어주면 될 일이고.”

신제국에는 아직도 빈민이 존재했다. 굶지는 않지만 일을 안 하거나 못하는 이들이다.

일을 안 하는 경우에는 적정 시간이 지나면 외청에서 잡아간다. 몇 달 일 하고 쉬는 경우에도 잡아간다.

그런 나라가 바로 신제국이었다.

범죄자들이 일할 곳에 추가로 들어가는 필수적인 돈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버린 것도 아니고. 쓰는 것을 회수한 것이니. 쓸 만하지.”

거적때기를 헌 옷 수거함에 넣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물건들이 가득했다. 새것 같은 것도 있었다. 단순히 철만 수거한 것이 아니라 아티팩트까지 가져간 탓이다.

“사업 현장에 싸게 내놓을 수도 있고.”

수많은 상단과 국가기업에 예산을 측정하듯이 물건을 내려주는 방법도 있었다.

이런 배경으로 총동원령에 대한 수습이 이루어졌다.

다만, 사람이란 것이 어찌나 간사한지 온갖 일들이 벌어졌다.

* * *

“징발 증명서를 분실했습니다.”

“이름과 생년월일. 사회번호와 분실물을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적으세요.”

민원인은 최대한 기억이 나는 대로 썼다. 다만 사회번호를 잘못 쓰기도 해서 두 번 일을 해야 하기도 했다.

“황금 1kg?”

“예.”

간사한 짓을 하려다가 잡혀가서 진짜 황금 1kg을 벌금형으로 받게 된 이도 있었다.

자신이 한 말이니 자신이 책임져야 하지 않겠는가? 눈이면 눈. 이에는 이다. 구라를 쳐서 얻은 이득을 진짜로 토해내야 했다.

“아니, 자이락 문인. 지금 외청이 바빠서 숨이 넘어가는데 어디를 가십니까?”

“땅을 빌렸는데 그 땅을 적게 받았다고 합니다. 다른 이는 그곳을 자기 땅으로 받았다고 해서 외근을 나가봐야 합니다.”

“허어.”

족히 삼 일은 가야 하는 먼 곳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비리를 저지를 수 있기에 말단 관리가 가지는 않는다.

대다수는 일이 커지기 전에 돌아가는 일을 눈치코치로 보다가 진실을 말해서 벌금형으로 끝났지만, 이 일을 진행하면서 많은 화이트칼라 범죄가 일어났다. 그들 모두 징역살이를 하며 돈을 벌게 됐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너무 많은 범죄자가 잡혀갔기 때문이다.

서로 노하우를 교환할 수도 없었다. 뼈 빠지게 일을 해야 해서 범죄에 대한 생각과 논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의 노하우는 교도소에서 전수되게 마련인데 교도소가 아니라 막노동을 하고 있었으니, 전수되지 못했다.

그 덕에 어리숙하게 잡힌 이들이 수두룩 빽빽했다.

그들은 업무방해죄, 협박죄, 증거인멸죄, 불응죄 등등 수많은 죄가 쌓였다. 그 하나하나에 대한 벌금과 징역살이를 해야 했고,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이 합산되었다.

또 한 번의 물갈이가 이루어졌다.

이제 신제국에 보다 더 친정부 성향을 지닌 이들의 비율이 더 높아질 터였다.

* * *

“이제 끝이냐?”

드낙이 말하자 세파리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변방의 반란으로 많은 반란 분자를 솎아냈다. 앞으로 30년은 걱정 없다.”

세대가 세 번은 바뀌어야 딴마음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마저도 보수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번 물갈이가 굉장히 독하게 이루어진 탓이다. 세파리아스의 냉혹함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잔혹했다.

자신의 국민을 지하 연합의 뿔 쥐들에게 맡길 정도로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한국에서 재판을 받으면 2년이고, 외국에서 재판을 받으면 150년이다. 이를 위하여 자국민 범죄자를 외국에 인도한 것이나 다를 바 없는 행동이었다.

그 덕에 지하 연합은 막대한 인적자원을 가로챘다.

“솎아내기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 출혈은 감수할 만하지.”

실로 무인다운 생각이었다.

사람의 죽음. 사람에 대한 태도. 그 근본이 남들과 판이하게 달랐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왜 그런 표정으로 보느냐? 변방이 조용해야 나라가 평안하다. 통신의 발달은 지지부진이니,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지. 하지만 반박은 못 하겠네.”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다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반란조차 예방하지 못한 드낙이 이래라저래라할 수는 없었다. 그저 불만만을 말한다면 엉덩이를 걷어차고 싶을 뿐이다.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 자는 위대해질 수 없었다.

“내 한 마디 하고 싶은데, 해도 될까?”

고로, 드낙이 예전의 일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았고, 미래에 대해서 비전을 밝혔다.

이를 결정하는 건 세파리아스가 될 것이다. 신제국의 지배자는 그였으니까.

“하하하! 해봐라. 내가 안 들어줄 리가 있겠느냐?”

이에 드낙이 척추가 으스러질 정도로 괴상하게 눌러앉아 있던 자세에서 일어났다. 그 말만 하고 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전쟁을 겪으면 발전하는 게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신제국은 여전하다.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으니, 내가 하나의 비전을 제시하려고 한다.”

“…….”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이대로 둔다면 또 세대를 지나 반란이 일어날 터였다.

오션 오크들의 해양도시에서 나오는 물질적 자원은 결코 신제국의 변방으로 향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것은 염전을 일구는 신제국의 노예 같은 삶만이 있을 뿐이다.

이를 타파하고자 드낙이 말을 꺼낸 것이다.

근본을 제거하는 말이며, 누구나 제시할 수 없는 일이다.

“이를 받으면 신제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고, 받지 않으면 그냥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될 거다. 받을래, 말래?”

“들어보지.”

드낙이 빙그레 웃었다.

“신제국의 가장 큰 특징은 수도권에 집중된 투자를 하고,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린벨트고 나발이고 없다.

말 그대로 압도적인 집중. 환경이고 자시고 끝없는 집중을 하는 것이 신제국이었다.

“그렇기에 변방에 대한 지배력도 전과 같지 않다.”

지역 유지가 득세했으며 금광을 발견한 이가 이를 개인의 영화를 위해서 사용하며 반란의 자금으로 쓸 정도였다.

“이를 해결하려면 결국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지.”

“무엇을 생각했느냐?”

“지역자치.”

“뭐라? 하하하. 지역 유지에게 병권을 주라는 소리냐?”

“나쁠 것 없지. 넌 초월자고, 그들은 초월자가 아니다. 진정으로 위협이 될 것이라 여기지는 않겠지?”

“음…….”

세파리아스가 짧게 고민했다. 금방 결론을 낼 수 있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태양이 내리쬐는 곳에는 별이 빛나지 못하는 법이지.”

드낙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지방 유지 군사 조직, 실버 아머(Silver armor)를 만든다.”

세파리아스는 조금 더 디테일하게 들어갔다.

“지역 유지의 자재들을 수도로 불러서 훈련시킨 후에 내려보낸다. 수도권의 발전을 보고 딴마음을 품지 못하겠지.”

“우월한 신제국의 중심에서 배운다는 것도 훌륭하지. 그저 전투에 대해서만 배우지 않고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필요하다면 변방의 땅을 하사하는 것도 좋겠지.”

“지금이 적기이지 않나?”

“그렇긴 하지.”

많은 이들이 연루되었고, 많은 재산이 신제국의 손에 들어왔다. 이를 다시 재분배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이미 사람이 자리를 잡은 곳을 새로 개발하는 것보다 맨땅에 최첨단 인공지능 사이버네틱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이 더 쉬운 것과 같았다. 사람이 잡은 곳에는 따로 보상을 해줘야 하는 탓이다.

“지방 유지는 자신들의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고, 반란군은 알아서 타도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되레 평범한 사람들이 고통받을 수 있다.”

권력은 가지고 있으면 휘두르고 싶고, 남에게 보여주고 싶게 마련이다. 이를 견제하지 않으면 억울한 이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게릴라가 될 수 있다.

“실버 아머를 견제하는 기구도 있어야겠지. 난 두 가지를 생각했다.”

“많군.”

“하나는 아이언 헬름(Iron helm)이라 불리는 중앙 소속 군대다. 그들은 변방의 치안을 확보함과 동시에 지방에서 소집령을 내려서 병사들과 지휘관을 얻는다. 자격조건은 평민이고.”

평민으로 이루어진 군사 조직이다.

세상에는 아직 몬스터가 많기에 그들을 잡으면서 수익을 올리고, 마을과 마을을 오가며 독버섯처럼 퍼지는 도적 떼도 소탕한다.

간단한 개요를 들은 세파리아스는 이것이 자신에게 가장 맞춤 의견이라는 걸 알게 됐다.

‘간단한 것 같지만, 내가 그리는 미래와도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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