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8화
21. 황금 반란 (1)
고치 속에서 발바룽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발바룽은 알지 못했지만 드낙은 그를 거의 자유로운 몸으로 만들었다. 초월자이며 악마인 드낙에 대한 충성심마저 반절로 꺾었다.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당연히 발전 가능성과 변수 창출을 위해서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저 충성하는 권속 악마는 다른 이들로 충분하다. 삼위변종악마, 세 마리만큼은 조금은 달라야 했다.
그중에서도 발바룽은 이번 기회에 가장 변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다.
발바룽의 정신 조율이 끝났다. 세뇌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세뇌가 아니라 자유민을 하나 만드는 과정에 가까웠다.
본디 악마에게 지녔던 강제적인 제약을 거세시켰다.
1년의 깊은 잠 이후에 발바룽이 변태를 끝내고 새로운 몸과 새로운 정신으로 드낙과 마주했다.
하이에나의 머리를 지녔고, 상·하체 모두 전과는 다르게 더욱 커진 모습이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몸은 곤충에 가깝게 변했다.
여섯 장의 날개가 접혀 있었는데 그 색이 제각각이었고, 형태도 조금씩 달랐다.
어떤 날개 한쪽은 털이 많았고, 어떤 날개는 우둘투둘한 무언가가 불룩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또 어떤 것은 날카롭고 뾰족한 것이 톱날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형태가 제각각인 것과 별개로 날개는 굵으면서도 매우 넓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활강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모든 충격은 못 줄이겠지만, 발바룽의 신체 능력을 생각하면 능히 감당할 정도는 됐다.
긴 팔과 섬세하고 긴 손은 발바룽이 조금 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발바룽은 그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는 시중만 받았다면 이제는 자신도 무언가, 취미라고 할 것을 영유할 수 있을 터다.
‘그림 실력을 갈고닦아서 연합 도시의 미술관에 내 그림을 올려볼까?’
그런 마음도 들었다.
“느껴지느냐? 여섯 가지의 새로운 헤드스 하이에나가.”
하체에 하이에나의 머리 하다. 상체에 하이에나의 머리 하나.
두 개의 머리를 지닌 기병 종족이 헤드스 하이에나였다. 이제는 거기서 더 나아가 여섯 종류로 분화했다.
“느껴집니다.”
발바룽이 눈을 감았다.
드낙에게 받은 새로운 힘이었다. 그건 권능에 가까웠다. 발바룽의 존재 자체가 권능을 사용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에고 소드가 검에 에고를 박은 것이라면, 권능을 생명체에 박은 것이니, 둘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매니 하이에나(Many Hyena).
여섯 개 중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매니 하이에나였다. 그들은 천생 노동자다. 지능이 적당하고, 조금 낮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식을 탐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쾌락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동시에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걸 좋아하는 평범한 이들이다.
법은 남이 만든 것인데, 그걸 무조건 지키는 것이라 여기는 것만 봐도 이들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사회의 밑바닥.’
피지배계층이다. 지배하기 용이하며, 사회의 밑바닥에서 다양한 자원을 창출하고 소비하는 이들이었다.
‘현 대종족 연합의 움직임에 가장 어울린다.’
생산하고 소비하고, 마치 그러기 위해서 사는 것처럼 톱니바퀴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아우토반을 내달리는 자동차처럼, 끝없이 기어를 높이고 엔진의 피스톤 질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그 고속도로의 밖에 있는 언덕과 꽃은 찰나의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함께 내달리는 다른 차들만이 보인다.
그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5분이라도 더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 과속을 하고, 죽어 널브러져 묘지 속에 누구보다 먼저 들어가야 했다.
끝없이 많고, 끝없이 노동하는 삶을 위한 존재가 매니 하이에나였다. 북부 불모지에서 가장 많이 죽을 희생자이며, 윈터 헬의 가장 중요한 근본이나 가장 하찮은 대우를 받게 될 이였다.
발바룽은 흡족해했다. 기존의 헤드스 하이에나와는 다른 그들은 조금 더 발바룽의 말을 더 신뢰할 것이고, 효자 노릇을 할 것이다.
미디움 하이에나(Medium Hyena)와 라이트 하이에나(light Hyena).
덩치가 큰 하이에나와 덩치가 날렵한 하이에나였다. 하나는 중기병이 되기 좋았고, 하나는 경기병이 되기 좋았다. 중기병이 되기 좋은 미디움 하이에나는 또 하나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당기는 힘도 좋아서 궁수로 쓰기 좋다.’
예전에는 변수 속에서 탄생한 헤드스 하이에나들을 가려 뽑아야 했다면, 이제는 완벽하게 신체적 특징이 나누어졌고, 마음 가는 대로 출산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들 또한 권속 악마였기에 육신 속에 ‘초월의 힘’이 미약하게나마 들어있어서 신체 능력이 남달랐고, 아티팩트를 착용하면 더욱 좋은 활약을 기대할 수 있었다.
다만 예전과 달리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병정 하이에나(Soldier Hyena).
‘중보병.’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버티기 좋은 신체 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수호병으로 쓰기 좋았다. 그중에서도 특출난 것은 무릎이다.
다른 이들보다 두꺼운 무릎은 마치 지지대처럼 사용 가능해서 보호대를 끼고, 바닥에 단단히 고정하기도 좋았다.
체고를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헤드스 하이에나가 지닌 ‘기병 종족’의 단점을 커버할 수 있었다.
모인다면 능히 보병진을 이룰 수 있었다.
발바룽이 가장 아쉬워하던 것이 오늘 이루어졌다. 그것도 중보병의 모습으로!
매직 숄더 하이에나(Magic shoulder Hyena).
하위 권속 악마가 마법을 사용한다면 그 자체로 까무러칠 정도로 놀랄 것이다.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이 드낙이다. 그의 창의성은 현대인의 것이며, 중립신의 세뇌에서 벗어난 드낙은 능히 그런 창의력을 뽐낼 수 있었다.
어깨 뽕을 과하게 넣은 것 같은 이 생물은 어깨 양쪽에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그 주문은 한번 결정하면 다시는 바꿀 수 없었다.
그럼에도 대단했는데, 하위 권속 악마 따위가 마법을 아티팩트 없이 사용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능히 머릿수를 늘리면 압도적인 화력을 발휘할 수 있을 터였다.
마지막은 로열 하이에나(Royal Hyena)였다.
모든 면에서 강하며, 트롤과 맞서 싸울 정도로 덩치가 크다. 중형급에 턱걸이하는 수준이라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공성 무기를 홀로 사용 가능하며, 거대한 활을 무기로 쓰면 능히 걸어 다니는 생체 공성 병기나 다름없었다.
발바룽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머릿속에 드낙이 알아서 그런 것들을 집어넣어 놓아서였다.
활용 예시가 자세하게 적혀있었으니, 발바룽은 더욱 이들의 강함을 체감할 수 있었다.
6종 헤드스 하이에나의 분화는 발바룽을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동시에 이들은 전투에도 도움이 되지만, 다양한 노동환경에서도 능히 자신을 뽐낼 터였다.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 병사는 그저 돈 먹는 하마에 불과하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두고두고 갚아나가겠습니다.”
“하하핳! 그런 말을 왜 해? 평생 함께할 텐데!”
드낙이 쾌활하게 말했다. 오랜만에 그도 일 다운 일을 하니 보람이 제법 있었다.
윈터 헬의 지배자 세 명과 드낙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비싼 약초도 못에서 생산할 수 있다니까. 그것뿐만이 아냐. 거대심장에서 씨앗이 나오는데 그걸 가져다가 따로 키울 수도 있어.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붉은 나뭇가지를 통해서 더 많은 빅데몬을 생산할 수 있다! 그것도 이번에는 내정형 빅데몬을 만들 거다. 기대하는 게 좋을 거다. 후하하하!”
“아이, 싯팔! 로열 헤드스 하이에나 맛 좀 볼텨? 예전과는 다르다. 예전과는!”
삼위변종악마들은 서로를 추켜올려주며 새로운 힘에 대해서 떠들기 바빴다.
드낙이 윈터 헬에게 준 것은 자랑을 하지 않으면 못 배길 정도로 대단한 것들이었다.
“들으라.”
드낙이 짧게 말했다.
소란스러웠음에도 모두 입을 다물었다.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주면 주는 만큼 보답해 준다. 이런 이들을 굳이 강제할 필요는 없지.’
“발열석 사업은 천천히 준비해라. 온돌 혁명은 윈터 헬에서 시작될 것이라 말해 두었지만, 그대들의 역량에 맞춰서 해라. 무리하지 말고.”
“예! 초월자께 보답하겠습니다! 반드시!”
드낙은 윈터 헬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3달 전에 날을 잡아둔 날,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산행에 나섰다.
그 숫자가 열 명은 가볍게 넘었다. 부인과 자식이 많아서다.
자식은 자식끼리. 부인은 부인끼리 뭉쳤다. 드낙은 뻘쭘하게 그 중간을 왔다 갔다 했다.
부인 무리의 중심은 세리안이었다. 그녀는 레이시아를 특히 우대해 주는 모습을 보여줘서 드낙을 안심하게 했다.
자식 무리의 중심을 잡은 것은 크레시미르와 다이앤타였다.
‘다이앤타가 많이 성장했다.’
크레시미르를 보고 달리는데 성장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대나무처럼 뚝 부러지지 않는 효녀였다.
산의 정상에 올라서 간단하게 풍경을 즐기고, 중턱에 지어진 거대한 오두막에서 하루를 묵었다.
캠프파이어를 하며 바비큐 파티를 벌였다.
드낙은 오랜만에 고기를 구웠다가 직화에 너무 가까이 고기를 붙여서 홀라당 태워 먹기도 했다.
자식들 또한 제법 나이가 있는 이들은 고기를 굽는 방법을 가르쳐 주거나, 불을 지피는 모습을 보도록 했다.
자주 보면 혼자서도 조심스럽게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교육이란 게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자식이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내가 못 하는 것을 자식이 하게 하면 서로 기분만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가족과 조용히 1박 2일을 보냈다.
* * *
그 이후로 특별한 일이 생겼다.
“반란이라고?”
다종족 연합 최초의 반란이 일어났다. 위치는 신제국과 서 오크의 국경지대에서 일어났다.
해안가를 지배한 오크들이라 신제국과의 국경선은 대단히 길쭉했는데, 관리가 잘 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아예 버려지다시피 한 곳도 있었다.
돈이 중심으로 모이니 변방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사람이 살지 않은 곳에는 관리도 배정되지 않는다. 그런 곳에 숨어들어 간 이들이 존재했고, 그들을 지배하는 자가 반란을 일으켰다.
드낙과 세파리아스가 초월자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듯했다.
‘맹신.’
오직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편협한 이.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불쌍한 이. 그런 자가 궐기했고, 10만에 이르는 이들이 가담했다.
“그들은 황금국을 세웠으며, 황금의 삶을 원하고 있습니다.”
신제국의 대전에는 드낙도 참가해 있었고, 관리가 보고하고 있었다.
“기가 차는군.”
세파리아스는 신제국에서 일어난 반란이 삿된 종교로 인해 생겼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제국의 황제인 세파리아스를 믿는 종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황금에 혹한 이들이 아니겠어?”
반면 드낙은 수긍하는 눈치였다. 세파리아스의 눈총을 받았지만 드낙은 발언을 이어나갔다.
“어리석은 인간은 그런 선택도 하는 거야. 지금까지 변방에 신경 쓰지 않은 신제국의 탓이 크겠지.”
“뭐라? 적어도 굶지는 않는다.”
“이제는 그 이상을 원하니까. 그리고 문제는 신제국이라도, 원인은 신제국이 아니다.”
드낙은 이 반란의 핵심을 알고 있는 듯했다.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느냐?”
“맨입으로는 좀 그렇고.”
드낙의 말에 세파리아스가 대전을 둘러봤다. 눈이 마주칠세라 고개를 굽히는 이들이 가득했다.
“신제국에 이토록 인재가 없느냐. 서 오크들의 항해 도시에는 부가 넘쳐난다. 그것을 본 신제국의 신민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
답은 세파리아스도 알고 있었다. 그저 대신들이 이를 답하기를 원했다. 드낙은 이를 채찍질하듯이 내뱉었고, 이런 상황이 됐다.
“죽여주시옵소서!”
죽이진 못할 거다!
“저희가 죄가 큽니다! 큰 벌을 내려주소서!!”
신제국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나를 내쳐? 인수인계하다가 문서에 파묻히게 될걸?
너도나도 자신을 파직해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돈도 제법 모였겠다, 이제는 은퇴하고 싶은 마음을 지닌 이들이 여럿이다.
“듣기 싫다! 더욱 신제국을 위해서 일하라!”
인재가 부족한 건 신제국도 마찬가지였다.
제국을 다스리는 안목을 지닌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들 중 이미 일부는 반마로 거듭나서 불로의 삶을 살아가게 됐다.
“반란은 바로 진압하게?”
“모처럼의 반란 행위다. 최대한 모았다가, 정벌하는 게 좋겠지.”
세파리아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잔혹한 말을 했다. 변방의 인간들을 정벌하여 범죄자로 삼아 노동 현장으로 보낼 생각으로 가득했다. 정말 잔인했다.
“빨리 진압해. 다른 종족이 보고 있으니까.”
“신제국의 일은 신제국의 일이다. 서 오크들이 개입한다면, 내가 나서게 될 것이고 그들은 해양 도시 몇 개를 할양해야 할 거다.”
내친김에 해양 도시도 노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신들은 이를 듣고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