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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136화 (1,135/1,239)

1136화

드낙이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세린이 더욱 한 걸음 앞서 나가서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제 말을 한 번만 들어주십시오. 초월자의 시간을 많이 빼앗지는 않겠습니다.”

“말하라.”

이에 흰여우가 일어나 읍하였다.

“테라는 중립신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워졌으며, 다종족 연합이라는 깃발 아래 하나로 모였으나 그 세력은 분열되었고, 각각 지배자가 다릅니다. 북부 불모지는 국가와 세력의 깃발은 없지만, 능히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하고 나서 그녀가 드낙을 바라보았다. 티 없이 맑은 눈은 아니었다.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탁하다. 하지만 그 탁한 눈이야말로 이 세상을 그대로 본뜬 것이나 다름없었다.

드낙은 그 모습을 보면서 사냥꾼 시절을 떠올렸다.

‘산과 숲은 들어가지 않고 보면 아름답다.’

정자에 올라 붓을 들고, 산을 그릴 때는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지고, 산의 아름다움만 볼 수 있다.

반면, 직접 산이나 숲에 들어가면 무엇을 보게 되는가.

남들이 갈고 닦아놓은 등산길에서조차도 벌레의 사체가 그득하다.

다람쥐의 사체에 잔뜩 모인 개미 떼. 매미의 허물. 죽어서 아직도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사슴. 그 눈. 온갖 동물의 배변 냄새. 말벌이 한 번 훑고 지나가면 등골이 서늘하며 기분이 나빠진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저 녹음으로 가득하지만, 그곳에 들어서면 마냥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저 더럽고, 지저분하다. 무질서하고, 혼란스럽다. 아주 시끄럽고, 사람의 발걸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란스럽다. 자연이라는 건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눈이 탁하다는 것은 자연을 담은 것이며, 세상에 대해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는 뜻이다.

“계속하여라.”

드낙은 그녀가 맞는 소리를 했기에 계속하라는 말을 건넸다.

“북부 불모지에는 온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대중목욕탕을 보셨을 겁니다. 모든 이들이 노곤하여 몸이 늘어질 정도로 큰 화력을 낼 수 있는 곳이 대중목욕탕입니다.”

“헤드 하이에나는 하급 권속 악마지만 평범한 인간보다는 열에 대한 저항이 좀 있지. 그래서 굴뚝이 그렇게 큰 것이었나.”

“예.”

“장작은 뭐로 쓰지?”

드낙은 이것저것을 살폈고, 디테일도 들여다봤지만 대중목욕탕의 규모만 보고 지나갔다.

이에 관해 묻는 것은 좋은 반응이라 세린이 바로 답하였다.

“초월의 힘을 담은 물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초월의 힘이란 악마의 피가 아니더냐.”

“종종 살덩이를 쓰기도 합니다.”

드낙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주제에 조금 맞지 않은 것인데, 괜찮습니까?”

포낙서스가 육중한 걸음을 옮기며 나서자 드낙은 조금 궁리를 하다가 이내 물었다.

“어째서 살덩이를 쓰느냐. 뿔 쥐들도 나에게 피를 바치지 살을 바치지는 않는다. 살이란 것은 재생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피도 그렇긴 하지만 살덩이보다는 낫다.

“빅데몬의 유지비 때문에 빅데몬의 살덩이를 쓰는 것입니다.”

“빅데몬의 유지비?”

“예. 감당이 되지 않아서 전쟁 외의 용도로 어떻게든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육신을 떼어내 장작으로 썼습니다.”

악마의 힘은 육신에 담긴다. 초월의 힘이 담긴 살덩이는 물약을 통해서 자유자재로 사용 가능했으며, 큰불을 낼 수도 있었다.

그에 드낙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 괴수를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

특촬물에서 나오는 거대 괴수가 한꺼번에 다섯 마리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당연히 돈 때문이었다. 1136화에 한 마리씩 써야 한다. 먹지 않는데도 돈 때문에 한 마리씩 내놓는다.

하물며 현실은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았다.

‘말도 관리하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말은 무지막지하게 먹고, 덩치도 커서 지낼 집도 커야 한다. 그것도 다 돈이다.

“좋다. 사유가 그렇다면 더는 뭐라고 해서는 안 되겠지.”

주기적으로 관심도 가져주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이래라저래라하는 것도 웃기다.

드라마 보기 바빴던 10년이다. 남에게 강철의 인형을 싹 다 떠넘기고 재미나게 논 것이 드낙이었다. 그가 원하는 진정한 삶이었다.

그가 세린에게로 눈을 돌리자 포낙서스가 뒷걸음질 치며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서 앉았다.

“온돌이 필요 없다는 것부터 이야기했었지. 계속해 봐라.”

“온돌이 필요 없기에 북부 불모지에는 온돌 혁명이 필요 없습니다. 다른 세력을 위해서도 온돌 혁명에 도움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이를 허락해 주십시오.”

“또 원하는 것은 없고?”

“북부 불모지라는 말 대신에 국가나 세력의 깃발을 들고 싶습니다.”

“그게 끝이냐?”

“신제국으로 많은 양의 전력과 물약이 향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값을 못 받고 있습니다. 이를 재조정해 주십시오.”

“내가?”

“드낙 님께서 결정하신 일이었습니다.”

“…….”

드낙은 잠깐 할 말을 잃었다.

세린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말을 늘어놓았다. 그녀에게는 그런 용기가 있었다. 그녀는 초월자 악마의 권좌에 오르도록 드낙으로부터 업을 받고 있었기에 더는 겁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할 수 있었다.

“다른 세력으로 간 악마 연금술사들의 사망률이 높습니다. 전부 과로에 시달리다가 죽었습니다. 처우를 개선해 주십시오.”

“그것도 내가 명령한 것이었나?”

“예. 중급 권속 악마는 그 자체로 물약을 생산하는 작은 작업자입니다. 드낙 님께서는 그 힘을 전 세계에 펼치기를 원하셨으나 이제는 너무 변질하여 그들은 그저 부품으로 전락해,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처럼 물약만 토해내고 있습니다.”

끔찍한 인권유린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건 드낙이 권속 악마를 부품으로 여겨서 명령한 것들이 아직도 철회되지 않고 10년이나 지났기에 더욱 심했다.

“10년 전의 나는 너희를 생명체로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린이 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알아들은 드낙이 발언하고 나서 세 마리의 권속 악마를 바라보았다.

발바룽은 딱히 불만이 없어 보였지만 세린과 포낙서스는 불만이 제법 많이 쌓인 것 같았다.

“나는 내 꿈을 이뤘는데, 권속 악마는 내 꿈과는 다르게 살아가고 있었다.”

드낙은 빈둥거리는 삶을 얻어냈지만, 북부 불모지의 권속 악마들은 노예로 다른 세력에게 끌려가서 일만 하고 있었다.

“…….”

드낙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식량 자유는 생명체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 식량은 북부 불모지까지 오지 않았다.

전투 강철 인형은 생명체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 방패와 창은 북부 불모지까지 닿지 않았다.

온돌 혁명은 생명체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 온돌을 위해서 권속 악마들은 이번에도 또 희생될 뻔했다.

‘내가 하기 싫은 건 남도 하기 싫은 것이다.’

드낙은 깊은 후회를 하며 이들에게 확답을 내어줬다.

“오늘부터 각 세력에 있는 권속 악마를 모두 불러오도록 명령하겠다. 반대하고, 뭉그적거리는 놈들은 내가 직접 찾아가서 박살을 내놓는다는 명령서를 뿌리겠다.”

“감사합니다!”

드낙은 호들갑을 떨려는 이들을 막으며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그뿐만이 아니다. 너희는 너희만의 국가에 속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윈터 헬(Winter hell)이라 하겠다.”

삼위변종악마가 다스리는 국가가 탄생했다.

“국가의 깃발은 상의해서 알아서 만들어라. 나는 그것을 조건 없이 수용하겠다.”

이에 세 마리의 권속 악마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신제국과의 문제도 내가 나서서 해결해 주겠다. 제값을 받고 모든 재물을 사고, 팔아라.”

“예.”

드낙은 그 자리에서 최대한 많은 명령서를 썼고, 마법 크리스털에도 영상을 담아서 전 세력에게 보내도록 했다.

“이것으로 되었겠지.”

“예.”

드낙은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관을 조금 더 다종족 연합에 맞게 바꿀 수 있었다.

‘인간도, 지하 연합도, 권속 악마조차도.’

지 꼴리는 대로 살 수 있는 세상. 적어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시대. 그걸 위해서는 온돌 혁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드낙은 그걸 확신할 수 있었다. 온돌은 그저 나약한 종족이 좋아할 만한 것에 불과했다.

‘차라리 겨울 난방 지원금을 내어주는 것이 낫겠지.’

겨울에만 한정해서 주는 지원금이다. 이것도 소득에 따라 차등해서 줘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온돌 혁명보다 많은 돈을 아낄 수 있을 터였고, 온돌이 필요한 자들은 겨울 난방 지원금을 통해서 알아서 따뜻하게 지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정말 미친 짓을 했다.’

10년 만에 큰 행동을 하려다 보니, 그런 허황한 것을 추구했다.

드낙은 세린에게 한 가지를 물었다.

“내가 잘못했긴 했지만, 온돌 혁명을 뒤엎는다면 내 체면이 고꾸라질 것이다. 이에 대해 생각을 해줄 수 있겠느냐?”

“그 또한 생각을 해두었습니다.”

그 말에 드낙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구도, 이 전체를 예상했단 것이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온돌 혁명을 천명하셨을 때, 저희에게도 드낙 님의 명령이 오리라는 것을 짐작했습니다. 이에 준비했습니다.”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드낙의 요구사항을 면밀히 살피며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했으며 대신 내어줄 것도 준비했을 것이다.

온돌 혁명을 부수지 않고, 온돌 혁명을 적당히 실천할 수 있는 방안 또한 있을 터였다.

“그것이 무엇이냐?”

그 말에 세린이 입을 뗐다.

“결국 온돌 혁명이란 ‘겨울을 정복’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까.”

온돌 혁명이 무조건 온돌을 통해서 겨울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

“보일러와 온돌을 제대로 보급한 이가 드뭅니다. 그건 드낙 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맞다.”

드낙이 추임새를 넣었다. 오늘을 위해 끌어모은 계획이었는데, 건축하면서 빼버린 경우가 많았다. 너무 많아서 건축 사업에 큰 변동이 올 정도였다.

해 먹던 놈들이 싹 다 물갈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가담했다가 큰 벌금에 벌벌 기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들은 드낙을 증오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더는 주류가 아니다. 건축업계의 주류가 되고 싶어도 못 하게 박살이 나버렸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드낙 님의 말씀을 잘못 알아들은 죄 많은 이들이 벌을 받는 상황이 현재의 건설업계가 아닙니까? 그런 상황에서 온돌을 제대로 건설할 리가 없습니다.”

‘일벌백계(一罰百戒).’

드낙이 가장 싫어하는 정신이 바로 일벌백계다. 한 놈을 조지면 나머지 99명은 살려준다. 똑같은 죄를 저질러도 한 명만 죽이겠다는 더러운 심보다.

그런 것이 사회에 용인되면 사회는 썩어 문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싹 다 청소를 해야 한다.’

형벌의 경중(輕重)은 있겠지만, 결코 봐주면 안 된다. 반성문 쓰면 죄가 경감되는 사법 시스템에서 살았기에 더욱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는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숙련공이어도 연루가 안 된 이들이 없어서 벌금을 때려 맞고, 의욕이 감퇴되었으며 드낙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조금 깊게 들어간 이들은 싹 다 광산으로 집어처넣어졌다.

“건설업계의 역량. 그것이 부족하기에 더욱 다른 방법을 쓰셔야 합니다.”

“다른 방법으로 겨울을 지배하라?”

“예. 그중의 하나가 바로 발열석입니다.”

“열기를 품는 돌이라.”

드낙은 그것이 무엇인지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핫팩이나 다름없다.

“시동어를 외치면 물을 끓일 정도로 뜨겁습니다. 유지 시간은 10시간이지만, 공기를 데우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쁘지 않았다.

물은 100°에 끓는다지만 실제로는 80°에도, 90°에도 끓는다.

“발열석이라…….”

“세상에는 쓰임 없는 돌들이 많습니다. 평야를 만들기 위해서 사방에서 언덕과 산을 깎아내고 있습니다.”

다소 무식한 토목공사라 할 수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안타깝게도 인구가 너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였다.

식량 성장률이 적금이라면, 인구 증가율은 코인이나 다름없었다.

뉴 에이지 시티같이 식량 생산을 위한 도시를 짓지 않았다면, 기근으로 다종족 연합은 알아서 붕괴했을지도 몰랐다.

그로 인해 생긴 노동력을 닥치는 대로 써야 했고, 돈을 내어줘야 했다. 그들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서 생긴 일이 무식할 정도의 토목공사였다.

말 그대로 산을 깎아서 평지로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혹은 드워프를 도와서 대륙의 끝에서 끝으로 직선으로 이동하는 거대한 도로를 짓는 잡일에 동원되기도 했다.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완공되지 않은 것이 ‘드워프 대륙 직도’였다.

“발열석으로 하겠다. 윈터 헬은 온돌 혁명에 함께하겠는가?”

“원하던 바입니다. 발열석을 최대한 생산하여 겨울을 지배하는 데 도움을 드리겠나이다.”

겸사겸사 돈도 벌 것이다.

드낙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민했다.

‘이들 또한 초월의 힘이 부족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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