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5화
* * *
‘너무 내가 무리했나?’
온돌 혁명.
모든 생명체, 모든 유기체, 모든 이들이 겨울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겨울을 여름처럼 지내는 것. 그건 아직 힘들지도 모른다.
‘아니야. 포기하기는 이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다종족 연합은 지금까지 지배자조차도 최소한의 부를 쌓고, 오직 경제 부흥을 위해서 유동성을 쏟아냈다.
악마 대전을 생각하고 만든, 상위 권속 악마, 아머드 만티코어(Armored Manticore) 1,800마리가 쏟아내는 구리양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가히, 구리 자원을 걱정해서 구리 가격이 올라갈 일이 없었다.
구리 만티코어는 아직도 구리를 생산하고 있었다. 광산에서도 구리 캐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그 나름의 가치가 있었다. 광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종족 연합은 개발도상국처럼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성장할 것이 많았다.
그런 고성장을 10년이나 이어왔다.
땅은 넓고, 도시는 건설되었으며 사람들은 끝없이 자식을 출산했다.
지하에서는 가장 인구수가 많은 지하 연합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듯이 소비하고 있었다.
‘지금이니까 할 수 있다.’
나중에 하려면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이미 개발된 곳에 또 개발하려면 돈이 곱절로 들어가지만, 맨땅에 헤딩하듯이 개발하면 오히려 최신식으로 말끔하게 시작할 수 있다.
지금이 그때였다.
‘조금은 틀어졌지만.’
시작부터 보일러와 온돌 시스템을 넣었으나. 아쉽게도 잘 쓰지 않는 것이라 도태되고 말았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버리거나 애초에 구매하지 않는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후회해도 늦었다.
‘칼을 빼 들었으니까.’
당장 욕하는 이들도 소수에 불과할 터였다. 그들은 서서히 드낙을 적대하는 이들이 될 것이지만 아직은 미약했다.
‘하려면 지금 해야 한다.’
그 해결책이 북부 불모지에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만들어야 했다. 좋은 구실을 만들어서 새롭게 변화를 주고 점진적으로 불모지의 지원을 끊어놓을 생각이었다. 그 이후에는 뭐, 최대한 전력량을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10년이 지난 불모지는 사람도 살 수 있을 정도로 환경이 좋아졌다.
온갖 마력들이 들끓었던 땅도 마력 발전소에 많이 옮겨서 사용했고, 상쇄작업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다.
권속 악마라고 언제까지 이런 불모지에서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들도 똑같은 생명체다. 드낙에 대한 본능적인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고, 악독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곳에서 살기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나무와 수초들은 그리 성장하지 못했고, 죽은 것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것이 보였다.
헤드 하이에나의 무리가 불모지를 달렸다. 그들은 가죽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배낭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곳으로 온갖 씨앗이 튀어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질 나쁜 곳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대두 씨앗이다.
드낙은 그들이 내달리면서 웃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헤드 하이에나는 본디 괴물 기병이라 불렸지만, 야만적인 지성 종족이었다. 그들은 드낙을 통해서 권속 악마가 됐다.
근본이 지성 종족에 있었기에 감정이란 것이 다른 권속 악마에 비해서 풍부했다.
‘그러면서도 이곳에서 잘 적응하고 불만을 제기하고 있지 않지.’
그것만으로도 드낙이 그들에게 호감을 지니기엔 충분했다.
‘이들 또한 처우가 개선되어야 한다.’
악마침공을 막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울 이들이다. 아마 가장 많은 피를 흘리지 않을까 생각됐다. 싸우는 데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드낙을 위해서 싸운다면 가장 먼저 나서서 가장 먼저 죽을 이들이 헤드 하이에나 기병이다.
드낙은 조용히 10년이 지난 북부 불모지를 둘러봤다.
날카로운 삭풍(朔風)이 불며 체온을 급격하게 낮추고 있었다. 겨울이 아니었음에도 그러하다. 이 얼마나 끔찍한 땅인가.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행복을 자주 느끼지도 못할 터였다.
뜨끈뜨끈한 가마솥 방에 들어가서 몸을 데우며 노곤함을 느끼며 늘어지는 이들의 기분을 그들에게도 맛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북부 불모지를 사람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권속 악마의 씨앗을 퍼뜨린 것이 드낙이다. 반대로 말하면 인간을 위해서 죽으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아니다.’
드낙은 권속 악마에게도 호감을 느끼게 됐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드낙은 더 이상 인간을 위한 초월자가 아니었다. 그는 서서히 다종족 연합의 초월자다운 면모를 자연스럽게 가져가고 있었다.
“그허흐!”
어린 헤드 하이에나들은 서로 밧줄을 당기고, 밀면서 놀고 있었다.
꽃놀이하기에는 꽃이 핀 곳이 드물었으며 허락되지도 않았다. 자연을 되살려야 할 판국에 자연을 꺾어서는 안 된다.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
매미를 페트병에 넣고 크게 흔들 여유조차도 없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줄다리기하거나 뛰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뭐가 재밌는지 아주 난리였다. 그냥 도망치기만 해도 재밌고,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보였다.
‘지성 종족을 권속 악마로 만들어서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 거지.’
드낙은 그 외에도 곳곳을 살폈다.
거대한 저수지도 볼 수 있었다.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었다. 가뭄이 있었는지 저수지는 가득 차 있지 못하고 절반만 남겨져 있었다.
그곳에서 악마 연금술사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북부 불모지 사회를 주도하는 지배계층이다. 중급 권속 악마라 할 수 있었다. 드낙은 그들의 바로 옆에 서서 하는 말을 가감 없이 듣고, 표정을 살펴보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드낙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귀신의 경지에 닿았다. 보이는 데도 보지 않았다. 억지로 모른척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의심스러웠다.
발전을 이룩했는데도 아직 머저리 같은 AI가 플레이어를 무시하는 처사와 비슷했다.
“저수지의 물이 나날이 마르고 있다.”
“물약을 써서 기상을 조율하는 것도 무리다.”
“단순히 물을 소환하는 것도 마력의 소비가 크다.”
악마 연금술사끼리 해먹는다면 쉬이 가능하겠지만, 헤드 하이에나들도 있었다. 그들의 여왕 발바룽은 자손을 이어서 낳고 있었다.
이를 조율해야 했는데, 굶어 죽든 말든 일단 낳기 바빴다.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게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위변종악마끼리 조율을 해야 했지만 그게 잘 먹히지 않았다. 서로 평등하기 때문이다.
‘물이 많이 부족한가 보다.’
권속 악마도 많이 번영했고, 그 숫자만큼 물과 식량이 필요했다.
악마 연금술사의 숫자 또한 전과 달리 많아져 있었다.
“빅데몬 녀석들에게 들어가는 식량과 물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고 빅데몬 팩토리를 어찌 막을까? 포낙서스 님께서 자중하시며 최근에는 많은 식량을 지하 연합에게 받고 있으니…….”
“그것도 다 자원을 거래해서 얻는 것 아닙니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늘어놓기만 하는 모습에 드낙은 속으로 혀를 찼다.
‘병신들이네.’
문제 제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해결책을 내는 건 어렵다. 해결책 하나 내지 못하고 누군가가 해결책을 내며 해주길 바라는 모습은 썩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문제 해결해 줘!’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과 다름없었다.
드낙은 북부 불모지도 어지간히 힘든 상황이란 걸 알게 됐다.
‘나도 모르게 지하 연합이 많이 도와주고 있긴 하네.’
그게 좀 기분이 좋았다.
“꾸어어어엉!!”
메아리처럼 들리는 소리에 드낙이 그곳에 관심을 가졌다.
“꾸어어엉!”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고 있었고, 거대한 덩치의 권속 악마가 마구 등을 땅에 비비고 있었다.
‘비X고 먹고 싶다.’
아이스크림이 대중화가 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갑자기 궁금해졌고, 입에 군침이 돌았다.
‘저게 빅데몬이다.’
10년간 드낙은 아주 많이 놀고먹었다. 그래서 북부 불모지도 오랜만에 와봤다. 오래 찾지 않아도 충성심이 유지되는 탓이 컸다.
‘근데 너무 짐승인데.’
상아가 없는 매머드처럼 생겼다.
어째서 저런 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빅데몬 팩토리’에서 생산된 매머드? 조금 이상한 연결고리였다.
드낙은 빅데몬이 하는 바를 조금 구경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북부 불모지의 수도라 할 수 있는 도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앙그발바르는 번성한 도시였지만 성벽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계속해서 외부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지금도 집이 지어지고 있다.’
그 집은 조금 특이했다. 먼저 바닥부터 다른 곳보다 높게 지었고, 두툼하기 짝이 없었다. 주춧돌로 바닥을 만든 것처럼 큰 돌들로 바닥을 채웠다. 그 위에 또 점토를 바르고 반듯하게 만든 다음에 다시 그 위에 나무를 올렸다.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온돌은 없었다.
권속 악마는 추위에도 강한 탓이다. 대신 대중목욕탕이 아주 크게 발달해 있었는데,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목욕탕의 거대한 굴뚝에서 흰 연기가 자욱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늠름하다!’
거대한 굴뚝은 그야말로 북부 불모지만의 특징이었다. 대중목욕탕은 그 굴뚝보다도 더 대규모였고,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전염병이 이곳에 퍼진다 해도 분명 큰 피해를 주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인기가 있었고, 이들이 번 돈은 다시 대중목욕탕이라는 이름으로 삼위변종악마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여기에도 자본주의가 잘 기능하고 있다.’
돈이 중요하게 쓰이고 있었다. 나중에 가서는 종이를 팔락거려도 그것이 중하다고 여기고 금같이 대할 것이다. 또한 그 어떤 실질적 물질이 아닌데도 그것을 돈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지금은 동전 화폐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엘프들의 마법적 처리가 된 비싼 종이 화폐도 결국 비싼 것이라 통용되는 것뿐이었다.
‘시대가 계속 흘러야 하지.’
어음과 계약서로 이루어진 기업들의 거대한 성장 속에서 차차 진행될 것이다.
드낙은 중심에 있는 회의소에 향하여 자신을 드러냈으며, 삼위변종악마를 모두 소집할 것을 명하였다.
이에 서둘러 발바룽과 세린, 포낙서스가 대전으로 향했다.
발바룽은 거대한 덩치를 지니고 있어서 대로를 따라서 행진하듯이 움직였으며 이를 구경하러 온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헤드스 하이에나 여왕 발바룽은 다른 이에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흥!”
발바룽의 머리에는 아주 잘 만든 황금관이 쓰여 있었다. 직접 만든 것이었다. 그만큼 많은 부를 얻은 것이다. 그 아래에 있는 헤드 하이에나들의 숫자만 봐도 어마어마했다.
자식에게 10만 원 용돈을 받듯이 받아도 그 자식의 숫자가 3천만이 넘어가면 3조 원이다.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의 돈이다.
여왕인 발바룽은 티끌로 태산을 만들 정도로 많은 자손을 낳았다. 이제는 용돈만 받으며 먹고살아도 될 정도로 무지막지한 부가 쌓이고 있어서 감당이 안 될 지경이었다.
그런 발바룽은 온갖 사치스러운 장신구를 몸에 달고 있었다.
10년이 지나고 본 발바룽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살아가는 훌륭한 생명체가 되어있었다.
세린은 전과 다르게 조금은 더 얌전해졌다. 자신의 색기를 줄이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조금은 환멸이 되어서 얼굴도 차분해졌다.
화려한 것보다는 검은 것을 좋아하게 됐다. 북부 불모지를 다스리면서 많은 일이 있었던 듯했다.
포낙서스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큰 덩치를 지닌 채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드낙과 마주했다.
세 마리의 인사를 모두 받고 드낙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뗐다.
“정말 오랜만이다. 내가 너무 노느라 너희를 챙기지 못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시옵소서.”
“매일 같이 들어오는 업(業)의 힘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오래 보지 않아도 매일 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세 마리 모두 자신들이 악마의 권좌에 앉을 것이라는 걸 체감하고 있었다. 이미 반마를 넘어섰음에도 드낙이 계속 자신들에게 일정 부분의 업을 보내고 있어서였다.
이 테라에는 그만큼 많은 초월자가 될 씨앗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모두 드낙을 대신해서 장차 테라를 위해서 살아갈 이들이다.
‘10년을 놀았다.’
아주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드낙이 노는 동안에 다종족 연합은 강철 인형을 전쟁용으로 만들고, 전쟁에 필요한 이들을 가려 뽑았다. 그들은 20년 뒤에 가장 완숙의 경지에 오를 것이다.
그 십 년의 대계가 끝났다.
‘이제는 나도 일을 좀 해야지.’
“오늘 그대들을 부른 까닭은 온돌 혁명 때문이다. 들은 것이 있느냐?”
그 말에 세 마리 모두 안색이 좋지 않았다.
“왜 말이 없는 것이냐?”
드낙의 거듭된 말에도 모두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북부 불모지를 통치했으며 수도인 앙그발바르를 번성시킨 흰여우 세린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드낙에게 청했다.
“지금 북부 불모지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부디 저희의 처지를 생각해 주십시오!”
“세린의 말이 맞습니다.”
“지금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자신만만한 표정의 포낙서스도 별수 없이 두 마리의 권속 악마의 의견을 밀어줬다.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