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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130화 (1,129/1,239)

1130화

* * *

국경선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수많은 이들이 이를 전 대륙으로 퍼뜨렸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건’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게 마련이었다. 마치,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 있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정치하지 않지만, 정치 이야기에 환장하는 것처럼, 내 월세에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 정권이 수없이 지나가도. 우리들은 정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건 다종족 연합에 속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들을 지배하는 이들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하고, 세상의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궁금하다.

동시에 그것은 민중에게 주는 문화이기도 했다.

심심한 민중을 현혹할 지팡이다.

끝도 없이 그들을 자극하고, 또 다른 자극을 통해서 고개를 돌리게 하고, 묻어버리는 걸 서슴없이 자행한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다종족 연합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 실상은 사냥꾼과 암살자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중립신이 건 드낙의 세뇌가 서서히 마모되며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영상을 토해내는 마법 크리스털과 신문은 민중을 다스리는 흉악한 문화였다.

“가 봐야겠다.”

“조심하세요.”

레이시아가 그의 볼에 짧은 키스를 해줬다.

드낙은 순식간에 세상을 속이고, 파동이 되어서 상위국 세리안 자치령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기병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멈춰!”

드낙이 자신의 모습을 마법을 통해서 밝히며 내려앉으며 외쳤다. 그 외침에 말들이 빠르게 속력을 줄였다.

그들 모두 강철마를 타고 있었으며, 강철마의 양옆에는 많은 마력을 담는 추가 팩 대신에 온갖 아티팩트 무기와 방패가 담겨 있었다.

상위 인간(上位人間)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체내에 마력을 지니고 있고, 마력 자원을 생산할 수 있기에 언제든지 강철마에게 부족한 마력을 보급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강철마에게 많은 마력을 담는 추가 팩을 부착시킬 필요가 없었다.

‘전방은 전투를 예상하고 아티팩트를 챙겨왔지만, 후방은 먹거리뿐이네.’

드낙의 눈이 날카롭게 기병 전원을 찰나의 시간에 모두 훑었다. 털에 가려진 상처를 간파하는 사냥꾼의 눈이다.

“위대한 초월자를 뵙습니다.”

“우리들의 신을 뵙습니다!”

“다종족 연합에 영광이 있으리!”

그들은 하나같이 드낙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강철마를 탄다는 것 자체가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력 한 줌 쥐고 있지 않은 하찮은 하위 인간이 선택을 받아서 상위 인간이 됐기 때문이다. 그 선별에서 드낙에 대한 충성심을 넣지 않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전신 갑주를 입고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단번에 그들을 기사라 여기겠지만, 물질이 많아진 탓에 기사가 아니더라도 전신 갑주를 입은 시대가 됐다.

중립신으로부터 해방된 지 10년이 넘었다.

“대처는 어떻게 하고 있지?”

“근처 군대를 소집했지만, 큰 소득은 없었습니다.”

“싸웠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투 강철 인형은 대(對) 악마 전쟁을 위해서 만들었다. 아직 완벽한 건 아니지만, 지금 상대하려면 골이 깨진다.

“대치하고 있기에 큰 소득이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군대는?”

“겨우 5천에 불과합니다. 그마저도 보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굶고 있는 실정입니다.”

기사가 엄지로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기병 절반은 식량을 들고 달리고 있습니다.”

전투를 해야 할 기병이 보급을 하는 셈이었다.

“대치하고 있는 5천의 군세는 잡아먹히지 않으리란 보장은 있고?”

“그들의 성명문입니다.”

그가 양피지를 꺼냈다. 척 봐도 비싸 보였다. 그 혼자서 진짜 기사인 듯했다. 귀족은 이런 문서에도 돈지랄을 하는 무시무시한 놈들이었다.

“흠!”

드낙이 성명서를 훑었다.

성명서에는 스틸 로드가 될 자격이 충분한데도 그 위(位)를 받지 못한 빅하트를 위해서 시위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무엇보다도 화려한 것은 무려 1,428명이 직접 쓴 서명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준비성이 철저하구만! 필사를 잘했어.”

드낙이 기사를 칭찬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입으로만 칭찬하는 병신은 되지 말자.’

드낙의 눈이 우수에 찬 표정을 지었다.

아스팔트 길을 내달리고 있다 보면, 주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삭막한 아스팔트에서 벗어나면, 꽃밭에 서 있다는 걸 알게 된다.

20대에는 대학.

30대에는 취업.

자기 집 마련하기.

결혼.

출산과 육아.

남들이 정해 주는 길을 따라가는 건 대단히 힘들고 고된 일이다. 자신이 정한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드낙은 현대에서 그 길을 걸으려고 무리했다가 쫄딱 망했었다.

늙어서 알바만 전전할 때 느끼는 수많은 치욕. 그걸 막기 위해서는 정당한 보상이 꼭 필요하다. 그러니 지금 이 기사에게도 보상을 내어줘야 한다.

드낙은 다종족 연합의 지배자이며, 이 행성과 차원을 지배하는 초월자이기에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줘야 했다.

1조 원대 자산가가 용돈으로 천 원 주는 꼴을 보일 수는 없는 법이다.

다만 드낙은 조금은 알뜰살뜰한 면을 보이고야 말았다. 성명서를 베낀 양피지의 뒷면에다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손가락에서 잉크가 나왔는데, 실로 악마적이다.

“너에게 주는 상이다. 받아라.”

드낙이 후후 불며 잉크를 굳혔다. 고온의 숨결에 잉크가 바짝 말랐다.

이를 받아 든 기사는 뜨끈한 양피지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인간 같지 않은 면모였다.

기사는 곧바로 그 보상에 대해서 읽어나갔다.

“헉!”

그가 헉 소리를 냈다.

“보석 뼈 전신 갑주를 정말 주시는 겁니까? 잔량이 없다고…….”

“만들면 그만이거늘. 껄껄껄!”

돈이 넘쳐나는 게 귀족이다. 돈은 돈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에 기사가 깊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평생 충성하겠습니다!”

“오늘의 일화를 참고하여 감사장도 표창할 것이다. 물론 세리안 상위국왕이 내려주도록 조처를 해두겠다.”

“감사합니다!”

일은 그걸로 끝나는 듯싶었지만 드낙은 그들과 동행했다. 소요사태가 일어났음에도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필사를 해도 어찌 그렇게 자세하게 해? 보통은 그 정도로 공을 들이지 않는데.”

“나중에 은퇴할 때 제 역사관을 하나 만들 생각입니다.”

상상 이상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역사관이라!”

“재미없는 박물관이 많아서 저 나름대로 현장감을 고취시킬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 생각을 생각했습니다.”

“그럼 내가 거기에 도움을 준 것이 되겠네.”

“예. 이 일화를 읽는 이들은 모두 흥미롭고 재밌어할 것입니다.”

한 기사와 한 초월자의 만남이다. 증거물도 있었고, 기사가 큰 걸 얻는 일화이기도 했다.

보석 뼈 전신 갑주는 현존 최신식 전신 갑주였으며, 돈을 주고도 못 사는 것이다.

주둔지에 기병과 함께 도착한 드낙이 군대의 형세를 살폈다.

‘시작부터 삽질이네.’

진지를 꾸리는 데 동원된 보병이 많았다. 마법사들은 소수에 불과했는데, 국경선 근처에 상위 인간이 많을 리가 없었다.

상위 인간이 되면 도시에서 살게 마련이고, 수도에서 살고 싶어 한다. 실력이 있어서 더더욱 중심지로 오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었다.

그 덕에 이곳은 실로 야만적인 삽질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것도 문제네.’

드낙은 다소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있는 이들은 수도로 몰리고, 없는 이들은 변방으로 몰린다. 이 굴레는 어떻게 해도 바로잡을 수가 없으니. 그저 깊은 어둠을 보는 것 같지 않냐.”

“초월자님. 지금 저들은 적어도 삼시 세끼를 먹고, 고기를 뜯고 술을 마실 수 있습니다. 보급이 좋지 않지만, 기병이 보급하는 까닭도 저들을 위해서입니다.”

기사가 이를 반박했다.

드낙은 잠자코 이를 들었다.

“저 또한 상위 인간이나, 이곳에 있습니다. 비록 소수일 뿐이나 분명 변방에 남고 싶어 하는 상위 인간도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대우는 좋은가?”

“밀려난 이가 갈 곳이 없어서 내려올 때도 있으나, 분명 대우는 좋습니다. 다른 이들보다 몇 배는 더 법니다. 자식은 수도에서 장성하고 있습니다.”

“그 혜택을 저들은 받지 못하는 것이지.”

“…….”

기사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괜한 소리를 했나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다종족 연합은 성장하고 있으니까. 그게 중요한 것 아니겠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분배 아니겠습니까.”

다종족 연합의 가장 큰 기치(旗幟)는 분배에 있다. 얼마나 많이 분배해야 하는가. 얼마나 많이 내어줘야 하는가.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드낙이 이를 원해서다. 세파리아스 또한 그 기치에 응하고 있었다. 그는 드낙을 통해서 민중에 대한 배웠기 때문이다.

살 만하면 살아간다.

보답을 받으면 보답한다.

위에서는 보기 힘든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세파리아스도 이제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권력자, 으스대고 싶어 하는 자, 배운 자. 그들 모두 민중을 민초(民草)라 부르며, 잡초에 비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세파리아스는 잡초도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을 배웠다. 무지몽매한 이들은 민초라고 싸잡아 부르지만, 그 속에도 난초가 될 것이 있고, 오얏꽃이 될 것도 있다.

“아직도 많이 걸어가야 한다.”

기사와 대화를 나누던 드낙은 낌새를 차렸다.

‘정신체다.’

은밀하기 짝이 없었다. 마력을 지닌 상위 인간 그중에서도 무를 갈고 닦은 기사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음흉한 면모였지만, 그게 정신체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냐. 세파리아스.”

그 말에 허공에서 정신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와도 같은 모습이 조밀하게 모이며 사람의 형체로 변했다.

말끔한 남성의 형체를 만든 세파리아스가 말했다.

“왜 개입하지 않는 것이냐. 이런 간단한 소요사태를 왜 지켜만 보고 있는 거냐.”

“그게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뜬구름 잡는 소리였지만 세파리아스는 드낙의 생각을 간파할 수 있었다.

“어리석다. 그들을 처벌하지 않을 생각을 하고 있구나.”

“사망자도 안 나왔는데, 굳이.”

드낙의 말에 세파리아스의 형체가 순식간에 연기로 변하며 그의 뒤를 점했다. 드낙은 세상을 속이며 세파리아스의 뒤를 점했다. 그 뒤를 세파리아스가 다시 점했고, 드낙은 또다시 그 뒤에 섰다.

“건방지다.”

드낙의 말에 세파리아스가 짧게 웃으며 말했다.

“쉽게 양보도 안 하는 놈이, 저들을 어찌할 생각이냐? 더는 상위국에 있지도 못한다.”

“내 생각을 전부 다 간파하지는 못했나 보다. 언제까지 우리가 필멸자들의 삶을 모두 다 해결해 줘야 하느냐. 그래서야 발전이 있겠느냐?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뭐라?”

그 말은 대단히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적어도 세파리아스에게는 그러했다.

그는 홀로 우뚝 서서 인류를 끌어당기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존재다. 그것이 옳다고 여기고 있었다. 드낙이 이를 반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생각은 중립신과도 비슷하다. 너도 그가 되려는 것이냐?”

“설마, 지금 산 이를 모두 업(業)으로 되돌릴까. 내 말은 결국에 문제는 계속 생기게 마련이고, 이를 해결하려면 당사자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거다.”

그때가 왔다.

“이건 반란이다.”

세파리아스가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반란이 아니다. 도시를 점거하지 않았는데, 어찌 반란인가?”

“그만큼 어리석다는 것이지.”

“전략과 전술을 배우는 데 10년을 투자하고, 강철 인형을 통해서 실전 감각까지 익힌 이들이 어리석다고? 이런 싸움에서?”

드낙의 말에 세파리아스가 콧김을 내뿜었다.

“그건 실언이었다고 해도, 반란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죽은 이 하나 없는 반란이 세상에 있느냐?”

“죽이지만 않으면 모든 반란이 용서되느냐?”

드낙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가 보는 건 반란이 아니다. 그리고 너는 이번 일에 개입하지 마라. 여기는 상위국이다. 신제국의 땅이 아니다.”

“지켜볼 것이다.”

“지켜보든 말든 상관없다. 하지만 내가 장담하건대…….”

드낙이 주위를 환기시키듯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에 많은 이들이 드낙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레볼루숑이다.”

사람이 보다 더 좋게 살고 싶어서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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