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128화 (1,127/1,239)

1128화

* * *

“처음으로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방향성에 대해서 말을 할 건데…….”

상위국왕들은 이 자리를 놓치지 않고 연설을 시작했다.

땡볕 아래에서 시작된 끔찍한 행위는 학교에서 심심함을 이기지 못한 교장이 거드름을 피우며 조회에 등장해 으름장을 놓으며 학생들을 지루함의 늪으로 집어처넣어서 익사시키는 것과 비슷했다.

다른 점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그런데도 드낙은 그들을 막지 않았다.

드낙은 권위주의를 가장 싫어하는 것 아닌가?(동시에 드낙은 뿔 쥐들의 신앙심을 보면 기뻐한다) 그런데도 막지 않는 모습은 대단히 모순적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스틸 로드 아래에 있는 1만2천의 인간들은 결국 모두 상위 인간이 될 것이다. 이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다.

스틸 챔피언은 무재(武才)가 뛰어나다. 그들이 상위 인간이 되면 마력을 품고, 마법을 사용 가능한 기사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며, 최근의 전신 갑주는 엘프 기술이 가미되어 있어서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

스틸 커맨더 하나하나가 중급 지휘관은 되고, 작은 반란 정도는 쉽게 유도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거기에 스틸 로드 네 명은 지금 바로 반마(半魔)의 격 위에 올라섰다.

그렇기에 그들이 모두 모인 자리는 대단히 중요할 수밖에 없었으며, 각 상위국왕들은 자신의 비전을 이야기하며 자치령의 시민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모두 평등한 사회 속에서 모두가 책임을 질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노력하며 이상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사람됨의 도리라 생각한다. 또한…….”

도렌은 항상 뜬구름 잡는 소리를 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기보다는 실제로 성과를 내고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부패도가 낮은 사회라니, 존재할 수 없는 사회였다. 하지만 도렌의 자치령은 그걸 가능케 했다.

드낙 또한 도렌의 이상론을 유심히 보고, 가끔 도와줄 정도로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상위국왕들의 뜬금없는 미래 설계와 현재 하는 중요한 사업 그리고 시민이 되면 누릴 것들에 대해서 들은 이들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그들은 갈 곳을 정해 둔 탓이다.

각자 마음에 정해 둔 스틸 로드가 있었고, 그들의 출신지는 명확했다. 다이앤타는 세리안의 자치령으로 갈 것이고, 크레시미르는 레이시아가 있는 연합 도시로 향할 것이다.

드낙을 위한 도시의 시민인 것이 크레시미르였다.

페이커와 소베니르는 도렌 자치령에 남을 것이다.

아크온과 길게이가 손해를 보기 싫어한 대가를 오늘 치르게 되는 것이다.

‘그들 또한 자기 나름대로 강철 인형 아카데미를 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오늘 증명되겠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돈을 벌어주는 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돈을 팔아서까지 남에게 주는 놈은 없다.

100만 원을 유기견을 위해서 집어넣었는데 유기견에게는 달랑 10만 원밖에 안 가는 것이 이 바닥이다.

이를 깊이 깨우치고 있다면, 남이 자신을 위해서 돈을 벌어다 주거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 일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항상 경계하게 될 것이다.

길게이와 아크온이 이를 모를 리는 없었다.

‘도렌이 잘했다고 봐야지.’

페이커와 소베니르는 충분히 그들이 가져갈 수 있었다. 그런데도 못 가져갔다. 두 놈의 실책이라기보다는 도렌이 잘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전투 강철 인형 10만을 모두 스틸 로드가 가져가는 것도 아니다. 관리를 위해서라면 국가가 나서야 했다.

‘이 또한 해결해야 될 문제지.’

전투 강철 인형의 양산을 위해서는 또 하나의 대규모 사업을 벌여야 했다. 지난 10년간 다종족 연합은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뉴에이지 시티 또한 10년 동안 안정화가 됐고.’

도시마다 전력을 보급하고 있기도 했다.

가장 많은 건 역시나 화력 발전소였다.

중국이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화력 발전소고, 전 세계 석탄 소비 60%를 모조리 차지하고 있다.

그런 그들이 포기를 하지 않는 것처럼 화력 발전소는 대단히 효율이 높은 축에 속했다.

‘사람이라면 석탄화력발전소를 사용하면 안 돼.’

그런데도 사용하는 이유는 당연히 우주 낙원에 잠들어 있는 지구의 기술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순산소 순환유동층 연소 기술.

그럴듯해 보이는 기술이며, 석탄 화력 발전소의 가장 악독한 오염 물질을 80%까지 줄일 수 있었고, 나머지 20%는 배기가스 정제기를 사용하여 대기 중에 퍼져나가는 것을 원천 봉쇄한다.

들어가는 돈이 많았지만, 상관없었다.

다종족 연합은 전 대륙을 지배했고, ‘마력 자원’ 같은 초월적인 자원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지구와는 그 경우가 달랐다.

무식하게 마력 자원을 통해서 화력 발전소를 돌려 전력을 확보하는 것 또한 가능했다.

아무튼 이 순산소 순환유동층 연소 기술이란 질소가 섞인 공기 대신 순수한 산소를 이용해 연소하고, 배기가스를 재순환해 사용하는 기술이다.

공기의 70%를 차지하는 질소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산소만 활용하기 때문에 공기 중 질소와 산소가 결합해 생기는 질소산화물 발생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

연료에 포함된 질소 성분으로 생기는 질소산화물은 요소수나 암모니아수 등의 환원제를 이용해 제거하는 것도 가능했다.

특히 연소 중 발생하는 배기가스 대부분을 연소로에 재공급해 사용함으로써 기존 화력 발전소 굴뚝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을 8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주요하다.

이 기술을 통한 석탄 화력 발전소를 통해 막대한 전력 자원을 생산하고 있었다.

원자력도 구동해야 했지만, 아직 기술자가 부족했고, 과학 기술의 발전과 그에 익숙해져야 했다.

세상에서 수학을 좋아하는 정신이상자는 아주 드물었기에 그들을 통해서 발전을 이룩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지.’

해당 기술이 적용될 수 있는 건 소규모의 화력 발전소에 불과했다. 그 탓에 소규모 화력 발전소 단지가 엄청나게 들어서서 마을까지 전력이 가지 못하고, 도시에만 제공되고 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전력은 화력 발전소로 해결했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았다.

드낙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악마침공은 정확히 언제 일어날지 가늠할 수 없었다.

미래를 예지할 수 없었다. 10년 동안 안전했지만, 내년에 시작될 수도 있었고, 30년 뒤에 시작될 수도 있었다.

그가 생각에 빠진 사이에 표창장이 전달됐다.

“크레시미르 둑스 불파겐. 위 사람은 강철 인형 아카데미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뒀으며 평소 헌신과 봉사의 자세로 많은 이들을 도와주며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으며, 특히 탁월한 지도력으로 동기들을 이끌어 아카데미의 교육에 이바지한 공이 크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뻗어나 왔다.

선물 또한 받았다. 어린애의 주먹만 한 큰 보석이 박힌 은목걸이와 엄지손톱만 한 알이 박힌 금반지가 주어졌다.

은목걸이에는 한 가지 마법이 담겨 있었다. 순식간에 10km 밖의 상공으로 공간이동이 가능한 긴급 텔레포트 마법이었다.

스틸 로드의 대군 지휘 능력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당장 상위국만 해도 아카데미에서 네 명만 뽑을 수 있었다. 그런 이들을 쉽게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금반지는 신체 강화를 비롯한 전투 버프를 주는 강력한 반지였다.

스틸 커맨더는 은목걸이를 받았고, 스틸 챔피언은 금반지를 받았다.

행사가 끝나고, 모든 이들이 연회를 즐겼다.

드낙 또한 돌아다니며 덕담을 내어주고, 금화를 풀었다. 금일봉이나 다름없었고 돈 잔치가 벌어졌다.

모든 이들이 행복해했다. 금화 앞에는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해질 수 있었다.

하하호호 하는 것도 처음이었을 뿐이고, 나중에 가서는 소란도 점점 작아졌다. 항상 술자리 3차에 가서 정치 이야기를 하듯이, 깊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전운이 감돌고 있어.”

“당연한 소리를……. 우리가 왜 돈을 받겠어?”

애초에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전쟁 때문이다. 차원 전쟁. 스틸 로드는 그 끔찍한 것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이들이다.

그런 생각은 비단 스틸 로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커맨더나 챔피언들도 미래를 걱정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그들이 도망치는 일은 없었다.

10년이다. 10년. 더는 도망칠 길이 없었다.

공무원 공부를 10년 한 사람처럼, 막다른 길에 서 있는 것이 이들이었다. 오직 싸우기 위한 것만을 공부했다.

다른 일을 하기에는 무서운 감정도 많았다.

낭떠러지에 있어야 겨우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인간에겐 10년이란 긴 세월이었다. 거기에 이들 모두 상당량의 봉급을 받고 있었다.

어디에 적을 두냐에 따라서 다르지만, 시민권을 받는 순간부터 가치를 인정받아 봉급을 받았기에 전쟁이 오지 않을 때는 그 자체로 중산층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다종족 연합이 얼마나 많은 범죄자를 노동형에 처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죄를 지으면 끝도 없는 노동의 삶에 처한다. 범죄자가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벌면 월급의 7할이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항상 갑질을 하며, 약자를 괴롭히고, 자신을 위해서 살아온 가장 이기적인 인간인 범죄자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고통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상위국왕은 페이커와 소베니르를 크게 대우했다. 그들이 있는 한, 악마침공에서 도렌 자치령이 큰 피해를 입을 것 같지는 않았다.

상위국은 마력 자원으로 구동되는 전투 강철 인형을 많이 운용할 수 있다. 상위 인간이 되면 마력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 *

드낙은 어둠이다. 그는 음습한 쥐의 속삭임보다도 조용했다.

그런 그라도 인간 시절의 인간성을 잃지는 않았다. 그중에서도 그는 고양이를 키우는 재미에 들렸다.

“앙.”

고양이가 울음소리를 짧게 냈다. 드낙은 거침없는 손길로 고양이의 배를 노렸다. 두툼한 것이 만져졌다.

‘살이 찌지 않은 고양이도 가지고 있는 것이 이 처진 뱃살이지.’

원시 주머니라 불리는 아래 뱃살이다. 빠른 이동과 피부 보호를 위해서 늘어진 피부를 지니고 있으며, 많은 음식을 저장하기 위해서다.

다양한 이유가 있는 원시 주머니는 처진 뱃살로 보이기 쉽고, 조금 세게 만져도 아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드낙 님.”

분홍분홍한 뱃살을 만지던 드낙에게 시종이 들어왔다. 시종의 털에는 고양이 털이 잔뜩 묻어있었다.

“드낙 님?”

상상 이상으로 털이 많이 빠지는 것이 고양이였다. 집안 대대로 기관지가 좋지 않으면 키우는 것을 크게 고민해야 한다.

시종은 고양이를 시종 드는 이로, 고양이들의 영원한 을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고양이들은 재미로 새와 쥐를 죽이기 때문에 관리에 더욱 엄격해야 했다.

재밌다고 살육을 자행하는 고양이의 냥성은 분명 제한받아야 마땅하다. 그 대신 놀이를 통해서 해소시켜 주는 것이 중요했다.

“무슨 일이냐?”

“아! 거기 계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레이시아 왕비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시종은 드낙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를 인지할 수 있었다. 소름 끼치는 일이었으나, 시종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정원에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드낙은 단번에 고양이 하나를 낚아채서 아기처럼 들고, 양손으로 받치는 척하면서 한 손으로 배를 주물렀다.

몰캉몰캉한 뱃살은 엄청난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고양이는 드낙의 은밀한 존재감 때문에 경계심을 드러내지 않고, 그릉그릉 소리를 내더니 이내 잠들었다.

정원에서 차와 간식이 준비됐고, 레이시아와 드낙이 서로 마주했다.

“옷에 털이 많이 묻으셨어요.”

“하하하.”

그녀의 말에 드낙이 쾌활하게 웃었다.

“크레시미르는 이번에 연합 도시로 온다고 해요.”

그녀는 자식 이야기부터 꺼냈다.

크레시미르는 레이시아의 아들 중에서 권력에 가장 가까워서 그녀는 항상 자기 아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드낙과 마주할 때 한 번은 무조건 이야기하게 되는데, 오늘은 이야기의 첫 주제로 나왔다. 보통 잡담을 하거나, 지구의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했는데 오늘은 달랐다.

“걱정할 것이 있나. 알아서 잘하는데.”

“전 그가 권력에 눈을 감았으면 해요.”

그녀의 말에 드낙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모가 하지 말라고 해서 자식이 하지 않겠어……? 그리고 그는 재능이 있어. 그리고 나한테까지 온 것을 보면 크레시미르가 말을 안 들었나 보지?”

“네…….”

위험한 일이다. 자식이 그런 일을 하는 걸 부모가 좋아할 리가 없었다. 특히 레이시아는 권력의 정점에서 빠르게 아래로 굴러떨어진 적이 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미안하다.”

“아니에요. 생각해 보니, 나서더라도 문제가 됐을 것 같아요.”

그저 공감해 주길 바랐는데, 드낙은 아무래도 그런 쪽으로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참, 이번에 대중예술을 위해서 만화를 보급했는데, 수입이 생각 이상으로 많아요.”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게 만화 산업이지.”

두 사람은 온갖 이야기를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