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7화
19. 스틸 로드
우레와도 같은 박수 속에서 호명된 이들이 명예 작위를 받았다.
“페이커는 앞으로 나오라.”
페이커가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었다.
페이커는 이미 성씨를 받았는데, 실력이 워낙 두드러져 헥사곤(Hexagon)이라는 성씨를 받았다.
모든 평가에 끝 지점에 다다른 육각형 능력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싸움도 잘했다.
“페이커 헥사곤에게 ‘헤어초크’의 명예 공작 위를 내린다.”
“페이커 헤어초크 헥사곤! 페이커 헤어초크 헥사곤.”
많은 이들이 있는 힘을 다해서 소리쳤다.
“크레시미르 불파겐에게 ‘둑스’의 명예 공작 위를 내린다.”
땅은 없었고, 봉급이 주어진다. 금화 100닢으로 어마어마한 봉급을 받는다. 평범한 사람은 평생 놀고먹겠지만, 위에 올라선 크레시미르는 이 정도의 돈조차도 부족하다고 여길 것이다. 수많은 일에 손을 뻗고 있는 탓이다.
“크레시미르 둑스 불파겐! 크레시미르 둑스 불파겐!”
많은 이들이 그 이름을 드높였다.
‘사회생활은 이미 시작됐다.’
그들의 상관이 될 사람이기 때문에 목이 쉴 정도로 고함을 내질러야만 한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아카데미에서 살아남은 이들도 있었지만, 탈락한 이들도 있었다. 탈락했다고 하더라도 못해도 500의 군세, 최대 1천~2천의 군세를 다룰 능력이 있다.
그 덕에 그들은 아카데미에서 탈락했어도 여전히 이곳에 남아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은 명예 공작의 아래에서 강철 인형을 함께 운용하는 현장 지휘관이 될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소베니르가 나왔다.
강철 인형 아카데미는 실력 위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신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조금 더 질이 나쁘다. 귀족과 평민을 똑같이 밀어 넣기 때문이다.
“소베니르!”
그녀 또한 성씨를 받았다.
대군 운용에 압도적인 제어력과 통솔력을 지닌 소베니르는 군대 포인트가 무한이었을 때, 가장 완벽한 승리를 이뤄냈다. 그 말도 안 되는 일 덕분에 그녀는 퀀터티(Quantity)라는 성씨를 받았다.
소베니르는 총력전에서 물량을 잘 통솔하여 가장 큰 활약을 할 강철 인형 지휘관이다.
“소베니르 퀀터티에게 ‘크냐지’의 명예 공작 위를 내린다!”
마지막으로 다이앤타가 나섰다. 그녀는 시작부터 두 팔을 번쩍 올렸다.
환호성이 더욱 쏟아져 나왔다. 다른 이들은 얌전히 받았기에 더욱 자극적으로 여겨졌다.
환하게 웃는 다이앤타는 10년 동안 개고생한 보상을 받고 있었고, 한 바퀴 돌아보기도 했다.
드낙 또한 웃어 보였다. 저 경박함은 나쁘지 않은 경박함이었다. 유쾌했다.
그녀는 미소를 지은 채 무릎을 꿇었다.
“다이앤타 불파겐에게 프린스의 명예 공작 위를 내린다.”
“와아아앙!”
“다이앤타 프린스 불파겐!”
둑스, 프린스, 헤어초크, 크냐지. 모두 공작을 뜻하는 다른 말이었다.
그 뒤를 이어서는 직함을 받는 식이 거행됐다. 공작위는 관직이나 명예직이어서 그냥 금화만 다달이 받는 것이 전부였다.
진짜는 지금부터다.
페이커와 소베니르는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으나 크레시미르와 다이앤타는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마주한 환경이 달라서 생기는 여파였다.
크레시미르와 다이앤타가 드낙이 행했던 바를 쫓아가는 것이 꿈이라면, 페이커와 소베니르는 그런 야망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재능을 꽃피워냈고, 여기까지 온 것에 불과하다. 휩쓸린 것과 비슷했다.
그 차이 때문에 페이커와 소베니르는 긴장했다. 자신이 이런 자리에 있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동시에 이렇게 있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공존하고 있었다.
“크레시미르 둑스 불파겐, 다이앤타 프린스 불파겐, 페이커 헥사곤 헤어초크, 소베니르 크냐지 퀀터티.”
긴 호명이 이어져다. 그들은 전신 갑주를 먼저 받았다.
무광택의 철 색으로 이루어진 강철 전신 갑주였으며, 투구는 모든 것이 막혀 있었으나 사람의 형태를 지니고 있어서 어색하지 않았다.
긴 뿔 같은 것이 투구의 위에 장식되어 있었다. 담백하면서도 멋스러웠다.
전신 갑주는 뒤쪽이 개폐형이다. 과학 기술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학적 지식으로 만든 전신 갑주는 수많은 편의성이 존재했다. 마법을 통해서 복합적 기능도 하고 있었다.
특히 척추를 이루는 곳에는 뼈대가 존재했으며 개방했을 때 위로 쭉 올라가 스포츠카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 뼈대는 강철과 보석을 붙여서 만든 것이라 마법적 가치가 엄청나다.
보석 뼈 전신 갑주는 다종족 연합의 가장 최신식 전신 갑주였다. 드낙은 자신의 수완(협박)을 통해서 강철 인형을 다스리는 이들을 위해서 준비했다. 신제국에도 여러 벌 보냈다.
세파리아스가 그것을 받고 흡족해한 것은 비밀이 아니었다.
이를 기점으로 신제국이 혼자 몰래 쌓은 강철 인형 데이터가 공유제가 된 것은 유명한 일화였다.
마법적 역량이 부족한 신제국은 보석 뼈 전신 갑주를 주기적으로 받는 것으로 데이터를 내어줬다.
그 데이터는 강철 인형을 조금 더 완벽한 전투 병졸로 만들 것이다.
‘인공지능보다 마법 지능이 더 월등히 좋다.’
옛 제국은 영혼을 건드렸지만 드낙에게 있어서 그건 못 할 짓이었다. 애초에 운용하기도 힘들다.
‘싹 다 죽여야 하니까.’
기가 찰 노릇이다. 죽이고 난 다음에는 영혼을 수확할 방법이 마땅찮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를 들 필요도 없었다.
드낙의 감성으로는 필멸자를 그런 이유로 죽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강철 인형은 덩치가 제법 커야 실전성이 뛰어났다. 덩치가 작으면 흉내만 낼 뿐, 마력 코팅을 겨우 벗겨내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 덕에 이런 아카데미도 존재할 수 있었다.
쿵! 쿵! 쿵!
계속된 마법 지능의 발달로 인한 ‘마법 그릇’의 중요함이 부각되었고, 고 지능을 위해서 실전 배치될 전투 강철 인형(Battle steel doll)의 최소 규격은 250cm가 됐다.
떡 벌어진 어깨와 두툼한 허리는 말할 것도 없었고, 통짜 강철로 이루어진 몸을 지니고 있었다.
10년의 준비 끝에 가장 완벽에 가까운 병졸이 됐다.
가장 일반적인 전투 강철 인형(Battle steel doll)이었다.
쿵! 쿵! 쿵!
중보병, 최하 중형급의 전투 강철 인형은 무기로 땅을 찍고, 발을 굴렀다. 위압감이 대단했다.
이 자리에만 10만이 넘는 전투 강철 인형이 모였으니, 말할 가치도 없었다.
그 웅대함 속에서 드낙은 네 명에게 직함을 내려줬다.
“전투 강철 인형을 지휘할 권한을 그대들에게 내린다. 오늘 네 명의 스틸 로드(Steel Lord)가 탄생한다. 악마침공에서 큰 일익을 담당할 위대한 날개의 등장이니, 모든 이들이 이를 기뻐하리라.”
쿵! 쿵! 쿵!
네 명은 전신 갑주를 착용했고, 발데마르로부터 검은 왕관을 받았다. 평범하고 단출한 왕관이었으나, 왕관이 지니는 의미는 지대했다.
또한, 붉은 망토를 하사받았다.
‘검은색과 붉은색.’
온라인 게임의 국룰 중 하나다. 올 화이트도 좋지만 철 색의 전신 갑주와 검은 왕관 그리고 조금은 어두운 붉은 망토는 멋스러움이 철철 넘쳐흘렀다.
그리고 무기 또한 하사했다.
풀세트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기도 한 자루만 받는 게 아니었다. 검은색으로 변질된 마법 롱소드 한 자루. 엘프의 백금 카드에서 나오는 순백의 역장 방패. 접이식 장창 한 자루를 받았다.
많은 무기를 받은 건 이들 모두 싸움에 재능이 있어서였다. 여자인 소베니르나 다이앤타도 마찬가지로 무재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드낙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한쪽 구석에 있던 뿔 쥐들이 움직였다. 서로 움직임이 잘 맞지 않았는데, 리허설을 많이 하지 않아서였다.
드낙이 그런 걸 할 양반이 아니다. 그는 요즘 노느라 많이 바쁘다.
우상을 위한 제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는 딱 네 개였다. 하나하나 모두 드낙이 제작한 것들이다.
대단히 야만적이었다. 재질도 온갖 것들을 사용했다. 뼈, 나무, 돌, 철, 구리, 점토와 흙 혹은 그것을 구운 것도 있었다. 합금도 존재했으며, 녹슨 무기를 문 짐승도 보였다.
그저 온갖 것들. 테라에 사는 이들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고, 그 중심에는 지성 종족이 뒤엉켜 있었다.
그건 화합에 대한 것이 아니다. 아우르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드낙은 하나같이 엉망인 것을 바라보며 우수에 찬 표정을 지었다.
‘사는 것이 다 이렇지.’
뒤돌아보면 구불구불하고. 엉망이다. 나는 분명, 똑바르게 걸어왔는데도 뒤를 돌아보면 산을 지나갔고, 구불길을 걸었고, 강을 건넜다.
그게 인생이라는 놈이다.
우상을 위한 제단의 모습은 그것을 닮았다. 아무리 똑바르게 걸어가도 결국에는 일그러져 있는 것을 형상화했다.
“굴종하라.”
네 명이 나름대로 우상의 앞에서 예를 표했다. 한쪽 무릎을 꿇거나, 두 무릎을 모두 꿇거나 혹은 건방지게 손으로 우상을 만졌다.
그러든 말든 드낙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다. 악마가 되었음에도 그 인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보다 더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냥꾼이 드낙이다.
우상을 위한 제단이 기동하자, 미립자 같은 것이 쏟아져 나오며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대상자에게 이동하여 몸으로 흡수되고, 피부에 들러붙고, 코로 들이마시게 되었다.
“하아!”
다이앤타가 자극적인 소리를 냈다.
쿼터 데몬인 다이앤타에게 악마의 힘은 가장 잘 맞는 힘이다. 그녀는 다른 이들과는 현격히 다른 감각을 느꼈다. 쾌락을 느꼈고, 상쾌해졌다.
그녀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미소를 지었다.
‘개화한다.’
꽃을 피운다. 하지만 부족했다. 봉우리를 지닌 채 조금 피다 말았다.
가장 먼저 흡수를 마친 다이앤타가 입맛을 다셨다.
반면, 필멸자에 불과한 다른 이들은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서 반마(半魔)의 권좌에 올라섰다.
그동안 다이앤타는 뒤를 돌아보며 사열한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게 내가 거느리게 될 세력.’
그중의 1/4에 불과했지만,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았다. 말단 관리 일을 하면서 다이앤타는 더 이상 예전처럼 거만하지 않았다.
“그다음으로는 스틸 커맨더(Steel Commander) 예정자들, 나와라!”
4,000명의 인원이 일어섰다.
그들은 귀족 1천. 평민 3천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평민이 대단히 많았다.
인원수가 많았기에 생기는 부조화였다. 그렇다고 재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스틸 로드와 함께하며, 스틸 커맨더로서 현장에 나가서 전투 강철 인형을 제어하게 될 위대한 용사들아! 너희 앞에 강철의 군세가 앞서나갈 것이며, 악마 군세는 활화산에 집어 던져지는 벼처럼 타 버릴 것이다!”
드낙은 고함을 몇 번이나 지르며 스틸 커맨더가 그려갈 미래를 언급했다.
스틸 로드는 후방에서 안전하게 지휘를 한다. 그렇기에 현장에는 지휘관이 반드시 존재해야 했는데, 그게 바로 스틸 커맨더였다.
중급 지휘관이라 할 수 있다. A급 장수는 된단 소리다.
스틸 커맨더들은 최신식은 아니지만 모두 전신 갑주를 받았다. 스틸 커맨더들에게 정해진 것이 없었기에 문양도 없었으며, 마법도, 주술도 부여되지 않은 깡통 전신 갑주였다.
망토 또한 무색의 망토를 받았다. 무기는 받지 못했다. 이 또한 스틸 로드에 따라 달라지는 탓이다.
마지막으로 스틸 챔피언(Steel Champion)들이 일어섰다.
그들은 귀족 2천에 평민 6천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스킬 커맨더가 최대 만(萬)을 지휘하고, 최소 오천의 군세를 잘 다룰 수 있다면, 스틸 챔피언들은 최대 천(千), 최소 백(百)을 다룰 수 있는 하급 지휘관이라 할 수 있다.
전투 강철 인형은 마법 지능 때문에 사람보다 지휘하기가 더 까다로운 면이 있었다.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100명의 사람을 통솔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일벌백계니 뭐니, 사람 하나 죽여서 통솔할 수 있는 건 현실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하루에 50명을 처형시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수십 명, 수백 명씩 탈영했다.
탈영병을 본보기로 삼아 죽인다고 해서 그 어떤 잡병도 능히 다룰 수 있는 건 아니다.
스틸 챔피언들은 그나마 통솔력이 존재했다. 평민들은 워-퀘스트를 통해서 자신들이 전술뇌를 탑재했음을 인정받고 아카데미에 들어왔고, 귀족들은 교육을 통해서 최소한의 통솔을 기계적으로 실행할 수 있었다.
하급 지휘관으로서 충분했다. B급이지만 능히 한몫할 수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스틸 로드와 스틸 커맨더를 지키는 일에 동원될 터다. 전투 강철 인형 외 가장 강력한 전투원이라 할 수 있다.
상위국만 해도 이미 10만의 전투 강철 인형을 보유했다.
‘신제국은 여기의 반의반도 못 미치지.’
지휘관은 많이 양성해도 강철 인형은 결국 마력으로 구동하는 마법체였다. 마력 자원이 부족한 신제국은 한계가 뚜렷했다.
행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드낙이 지켜보는 상황 속에서 네 명의 상위국왕이 올라왔다. 그들의 시종은 하나같이 목함을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