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6화
* * *
아스모데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능히 아카타베루와 싸울 수 있다.’
승리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즐거운 상상이며, 행복한 미래였다. 대악마 아카타베루는 그 독특한 악마 세계와 특이한 권속 악마들로 자꾸 눈길이 가는 대악마였다. 그가 수없이 많은 별을 정복했고, 머릿수로 밀어버리는 특유의 전술은 대악마조차도 막기가 어렵다.
상식적으로 전쟁에 승리한 상급 악마마저도 녹여서 악마 세계의 구성물질이라 할 수 있는 소아귀로 만드는 아카타베루의 흉악한 전략은 가장 압도적인 머릿수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 특출난 존재와 맞서 싸우고, 끝내 승리한다.
그런 미래는 아스모데의 전신을 쾌락으로 짜릿하게 만들 정도의 위대함이다.
그렇기에 아스모데는 또 하나의 진실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좋은 미래는 되레 경계해야 한다.
도X코인이 1년 만에 18,000% 올랐다고 해서 앞으로도 18,000% 오른다는 보장은 없었다. 국가가, 사회가 보장해 주지 않는 미래의 자기 집 마련을 위해서 오늘도 2030은 코인에 투신하며 일확천금을 노린다.
아스모데 또한 그런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조금 다른 점은 그녀는 경험이 많다는 점이다.
‘이상해.’
지나치게 완벽한 미래였다. 그곳을 걸어갈 수단 또한 완벽하다.
쌍소멸의 권능은 머릿수를 앞세우는 아카타베루를 곤욕스럽게 할 수 있는 막강한 권능이다. 자기 몸의 악마 세계를 물질로 사용해서 소모한 아지 다하카(Azi Dahaka)와는 달랐다.
자신에게 ‘피’와 ‘육신’으로 연결된 자기 권속과 접촉한 상대의 육신에 사용 가능한 것이 쌍소멸의 권능이다. 반물질과 물질의 부딪힘. 그곳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무한한 화력을 투사할 수 있다.
이 권능만으로도 능히 승리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확실하게 승리에 닿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잘의 검은 도서관 지식 또한 아스모데의 군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다른 악마 세계를 집어삼키면서 얻은 육체 자원을 통하여 더 많은 챕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모두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있었다.
‘잘 만들어진 안배를 걷는 기분이지.’
위험은 존재하나, 계속 성공할 것 같은 기분.
불현듯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가 그런 결과에 도달한 까닭은 당연히 그녀의 최종 목표에 있다.
중립신(中立神). 엘 마르토 카사다민. 그의 안배일지도 몰랐다.
‘죽어서도 악마의 대침공을 막으려는 것이냐.’
이 모든 것을 예상하지는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환경을 만든 것은 중립신이었다.
만약, 중립신이 죽었다는 소문이 거짓이라면.
만약, 중립신이 있다는 테라가 먼 이유가 있다면.
만약, 대악마들이 장기간 차원 항해 속에서 함께 있다면.
만약. 만약. 만약.
수많은 If가 아스모데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시간 선을 훑는 방대한 능력은 초월자인 악마에게는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신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더듬거리며 확인해야 했다.
‘무엇보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내가 승리하게 된다. 그런데도 아카타베루는 나를 바로 공격하지 않았다.’
그 또한 의문스러웠다.
아카타베루는 구천안흉이라 불리는 세월의 예언자를 거느리고 있다. 별을 파괴해도 구천안흉은 계속 살아남는다.
‘그런 자들이 지금의 형세를 모른다? 그럴 리가.’
실제로는 읽어냈지만 아카타베루는 머릿수의 힘을 맹신했으며, 그가 잡아먹을 대악마만 해도 네 마리였다. 평범한 상황이 아니었다.
아스모데는 이러한 점 때문에 자신이 조종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유도한 것뿐이겠지만, 소름 끼쳐.’
어쩌면, 중립신은 죽은 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공포는 대신(大神)이라 불렸으며 죽음의 세바리악을 방어한 적도 있었던 엘 마르토 카사다민에 대한 정당한 경계심의 발로였다.
공포가 생기는 게 당연했다.
준비되지 않은 중립신을 죽이기는 쉽지만, 준비된 중립신을 죽이는 것은 요원하다.
전략이란 것은 강약이 존재했고, 항상 중립신은 약할 때 죽임을 당했다. 그가 너무 잘 나서였다.
이런 탓에 아스모데는 강한 경계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이어나갔다.
‘가장 곤란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싸우지 않는 것에 있다.’
대악마 열 마리가 모여서 두 마리가 남았다.
이게 뜻하는 바는 명확하다. 중립신의 안배는 대악마를 죽이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 마리가 남았을 때, 충분히 테라가 대처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는 듯했다.
‘애초에 대악마가 모인 것도 중립신의 시체 때문이었으니까.’
본래는 모이지 못했을 터다. 모였을 때는 서로 죽일 수밖에 없기에 승패가 갈렸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이미 지나갈 일이기에 아스모데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덫에 걸리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방법은 싸우지 않는 것이다. 싸운다면 중립신의 계획대로 되기 때문이다.
아스모데는 그 진실에 도달했다.
‘아카타베루는 타협하지 않겠지.’
그는 이미 구천안흉으로 수많은 시간 선을 확인하고 있을 터였다. 거기에 소모되는 악마자원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워낙 악마자원이 많기 때문이다.
만약 이를 알았다면, 먼저 타협을 제안했을 터였다.
실제로 구천안흉은 아카타베루에게 타협을 제안했다.
‘중립신의 안배는 소름 끼칠 정도로 시간 선에서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중립신의 의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왼손은 거들 뿐,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 시간 선에 중립신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스모데는 중립신의 진한 악취를 맡을 수 있었다.
“내가 할 일은 결국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다.”
이 보 전진을 위해서 일 보 후퇴를 해야 했다. 도망치는 게 아니다. 전술적 후퇴일 뿐이다.
‘반드시 다시 돌아오리라!’
아스모데는 곧바로 일을 진행했다.
장거리 차원 항해에서 악마 세계가 외우주로 움직였고, 이내 모습을 감췄다.
* * *
이 소식은 금방 아카타베루에게 전달됐다.
“후, 후하하하! 후하하하하하하하하!!”
그게 크게 웃었다.
“꼬랑지를 말고 도망치는 꼴이라니! 그 어떤 시간 선에서도 보지 못했던 것 아니더냐?”
그 말에 구천안흉이 일시에 똑같이 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들도 예상외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수많은 시간 선을 훑었으나, 아스모데가 후다닥 도망치는 모습은 전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래서 너희 예언 실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카타베루가 실로 즐거워했다. 자신의 장자 지방이라고 해도 결국은 중급 권속 악마에 불과하며 전투 능력은 하급에 미치는 것이 구천안흉이다.
“할 수 있는 건 시간 선을 확인하는 것뿐이거늘, 어찌 이리 틀린단 말이냐!”
큰소리를 떵떵 치기도 했다.
열 번 잘해도 한 번 잘못하면 욕을 처먹어야 하는 것이 을(乙)의 삶이다. 구천안흉은 하나같이 자비를 구했으며, 그들의 잘못을 자신의 입으로 늘어놓으며 아카타베루의 마음을 충족시켜줬다.
아스모데는 도망쳤다. 그녀는 네 마리의 대악마와 네 개의 악마 세계를 집어삼켜 막강한 힘을 보유하게 되었다.
반면, 아카타베루도 이와 같은 이득을 얻었다.
“스텝 데빌과 그레이드 패밀리의 생산은 계속해라.”
악마와의 전쟁을 위해서 생산하고 있었지만, 테라와의 전쟁에서도 능히 사용할 수 있었다.
1~5단계로 잘 구분되어서 생산되는 스텝 데빌(Step Devil)은 훌륭한 장교 라인이 될 수 있었고, 1~10단계로 나누어진 그레이드 패밀리(Grade Family) 또한 훌륭한 병사 라인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우투쿠를 흡수하겠다. 최대한 많은 군대를 생산해라. 그리고 다이유쿠치(大輸口)를 준비하겠다. 날 방해하는 순간 모조리 목이 달아날 줄 알아라.”
모두 합창하며 아카타베루가 별들을 부순 역사를 노래했다. 그만큼 다이유쿠치(大輸口)는 그중에서도 가장 음습한 물건이었다.
거대한 침공 수송 악마라 할 수 있었으며, 아카타베루의 침공에 가장 필수적인 대형 중급 악마였다.
수많은 권속 악마를 수송할 수 있으며, 대기권의 거친 환경 속에서도 생존이 가능했다. 시속 수천km의 낙하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무지막지한 방어력을 지닌 놈이었다.
내부에 있는 권속 악마를 지킬 수 있도록 충격 흡수력 또한 일품이다.
육지에 부딪히면 봉우리가 꽃을 피우듯이 몸이 쩍 갈라지며 육지에 내려앉는다. 해양에서도 펼쳐지며 섬으로서 기능한다.
뿌리가 내려앉으며 육지와 해양에서도 능히 행성 자원을 빨아먹으며 생산기지로써 변모하게 되며 하급 악마인 소아귀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소아귀는 모든 것의 기본 생산 자원이었다. 소아귀가 생산되는 것만으로도 침공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소아귀를 갈아서 더 좋은 악마를 만들 수 있고, 악마 둥지를 만드는 자원으로 쓰이게 된다.
모든 행성을 관리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데빌 멀티가 완성되며 끝도 없이 잠식된다.
그렇기에 다이유쿠치는 대단히 중요했고, 소아귀 생산의 시발점이다.
정리하자면 다이유쿠치는 거대한(大) 덩치를 지녔기에 행성의 표면을 타격하는 미사일이다.
최소 1천에서 최대 1만까지 집어삼켜서(輸) 행성으로 강하가 가능한 수송기였다.
못 먹는 게 없는 취향으로 행성 자원을 먹어 치우는 주둥이를(口) 지닌 권속 악마였다.
그 어떤 권속 악마보다 중요했기에 아카타베루가 직접 생산 건물을 지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 효과만은 확실했다.
만약 다이유쿠치가 도시에 강습하게 되면 도시는 원폭을 맞은 것처럼 초토화가 된 상태에서 권속 악마들을 마주해야 할 터다.
별의 파괴 이전에 별에 사는 모든 필멸자를 죽여서 그 업(業)을 아카타베루가 집어삼켜야 했다. 그렇기 위해서 악마 세계가 존재하며, 권속 악마가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죽고 나면 별은 악마에게 필요가 없었기에 파괴된다.
별을 부수는 것만으로도 악마의 업(業)을 크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별을 부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많은 시간이 걸리고 어려워서다. 몇몇 이들은 한 번도 부수지 않은 경우도 존재했다.
시간을 비롯한 온갖 자원을 소모하는 것에 비해서 얻는 것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아카타베루는 테라를 향해서 나아갔고, 아스모데는 모습을 감췄으나 테라를 포기하지 않았다.
선택이 분기되었고, 무엇이 좋은지는 아직은 알 수 없었다.
* * *
아침 해가 떴다.
페이커와 소베니르는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여야 했다. 오늘은 그들이 주인공이다.
중기병과 중기병이 부딪히고, 궁수와 궁수가 서로를 노리고, 공성 병기까지 사용되어, 마법이 하늘에 수를 놓았다.
수많은 경쟁과 시험 속에서 두 사람은 끝까지 1, 2등을 챙겨놓을 수 있었다.
이제 그 보답이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동안 강철의 비를 즐기지 못했는데, 괜찮나?”
“아……. 넵.”
“수영장도 같이 가고…….”
크레시미르가 잔뜩 긴장해 있는 두 사람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이에 두 사람이 급히 답했다.
아직도 크레시미르를 대하기가 어려웠다. 근면 성실해서 더욱 다가가기 힘들었다. 깨끗한 우물에 물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깊게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악마침공을 앞두고 있었고, 드낙의 후손으로 그의 길을 따라가야 하는 크레시미르는 굉장한 노력파였다.
그리고 편견이라는 것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켰던 다이앤타가 그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라는 것만으로도 편견을 접어야 할 이유다.
“시작한다.”
다이앤타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딴짓하는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려한 황금의 양탄자 길을 걸어 나갔다. 소년과 소녀는 청년이 됐다.
10년에 걸친 교육 과정에서 살아남았다. 귀족조차도 50%만 살아남았고, 평민도 50%만 살아남았다. 비율은 비슷했지만, 숫자는 현격히 차이 났다.
귀족이 1,500명이 살아남았다면, 평민은 5천 명이 살아남았다.
직업에 귀천은 있지만, 재능에 귀천은 없었다.
귀족이나 평민이나 재능이 있는 놈은 살았고, 없는 놈은 떨어져 나갔다.
그뿐이다.
“와아아아!”
지켜보는 이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사람만 한 강철 인형과 그것보다 더 큰 강철 인형을 지휘하고 다종족 연합 군사력의 한 기둥을 맡을 이들이었다.
오랜만에 휘황찬란한 제복을 입은 발데마르가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위대한 승리자, 네 명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10년 동안의 긴 여정을 마치고, 오늘로 그 여정이 끝나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다.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 상위국의 수도로 상경하고, 계속해서 올라갔던 이들의 사회계급 상승은 우리들의 사회가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
드낙은 출세가 가능하다는 세상이 오늘도 존재한다는 것을 만인(萬人)에게 보여줬다.
“위대한 나의 아들과 딸도 10년을 노력했다. 가진 자들은 자신이 물고 태어난 수저가 가볍지 않다는 것을 오늘 다시 한번 더 확인해야 할 것이다. 권리에는 의무가 따르는 법! 이것이 다종족 연합에 소속된 상위국이 가져야 할 덕목이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