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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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타베루나 아스모데나 서로 언제 싸울지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40년의 긴 항해였다. 10년은 이미 소모했고, 남은 것은 30년에 불과했다.
중립신의 시체를 먹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그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엘 마르토 카사다민은 위대했던 인신(人神)이며 인신 중 홀로 대신(大神)의 반열에 올라선 유일한 초월자였다.
지금조차도 지구의 만신전(萬神殿)에는 대신이 한 명도 없었다.
대신의 반열에 올라서는 건 그만큼 힘든 일이며, 인신들 사이에서는 불가능의 영역이나 다름없었다. 그 권좌에 오르려면 불가해의 확률을 뚫어야 한다고 말하는 예언을 즐겨 말하는 인신도 있었다.
그런 존재의 시체를 받아먹는 일이니 허투루 할 수가 없었다. 죽어서도 까다로운 것이 중립신이라 불리는 초월자다. 대악마였기에 더욱 민감해했다.
또한 테라의 별을 파괴하는 일도 해야 했다. 두 가지의 일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면 15년은 회복에 힘쓰고, 권속 악마 생산에 들어가야 했다.
전쟁 하나를 수행하는 데 15년을 준비하는 건 조금 이르다 할 수 있었으나 악마에게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겨졌다.
혹은 10년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남은 기간은 15년~20년이다. 그전에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제대로 한 판 붙겠어.”
아스모데(Asmode)의 권속 악마이며, 관리자인 쿠트니아(Coutnia)에 속한 이가 강렬한 열망을 지닌 채 말했다.
그 반대편에 있는 쿠트니아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관리자이나, 평범하지 않았다. 온몸에 검은 불꽃과 유황 가루를 형상화한 가루들이 도색된 갑옷을 입고 있었다.
챕터(chapter) 달리는 불꽃(Nabu Flamma).
그곳에 소속된 쿠트니아들이었다. 그들은 덩치가 큰 붉은 피부의 악마였으며, 권속 악마가 아니라 진짜 악마라고 생각할 정도로 악마를 닮아있었다.
제대로 된 초월의 힘이 담기지 않았음에도 긴 뿔을 지니고 있었다. 허세를 부리는 것이라 할 수 있었으나, 상대하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들의 다섯 번째 왕, 레리 워리어께선 조용하시던데.”
“새로운 신병을 들이기보다는, 그냥 다른 챕터를 만들었다고 하던데.”
“검은 도서관? 흥. 챕터에 소속되지도 못했던 쿠트니아들을 배치했다고? 그런 놈들이 제대로 된 전투를 수행할 수 있을까?”
의문이 남았다.
“모르지. 하지만 중요한 건, 위대한 초월자께서는 검은 도서관이 큰 이득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고, 왕께서도 그곳에 많은 선물을 보냈다던데.”
“나는 반대야.”
“네가 반대하면 어찌할 건데? 웃기는 악마로다.”
“아무튼, 난 반대라니까.”
“어찌할 거냐고. 네가 반대해서 어찌할 거냐고.”
시시덕거리며 술을 마셨다.
모든 것을 소아귀로 회귀시키는 아카타베루와는 다르게 아스모데의 악마 세계에는 노획한 술도 많았다. 그런 술은 악마들을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히 독한 술들이었다.
먼지가 묻은 것도 있었고, 너무 오래되어 풍미가 사라진 포도주도 존재했지만, 취향이 깐깐하지 않았기에 쉬이 마셨다.
“많은 재물이 그곳으로 옮겨가도 단기간에 결과를 낼 수 있겠어?”
그런 의문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를 타개하려면 레리 비블리오테카(Larry bibliotheca)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과연 그럴 재목일지는 모르지. 이제 태어난 지 석 달도 안 되었다잖아?”
“세뇌의 여파도 있을 텐데.”
베테랑을 오래 보유할 수 있으려면 기억 조작, 세뇌는 필수적이다. 아주 못된 짓이라 할 수 있었지만 별을 침공하고 별을 파괴하는 악마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하나가 되지 못하는 군대는 필요가 없다. 악마가 하고 싶어 하는 일 외에 권력욕이나 다른 것에 신경을 쓰는 권속 악마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어이, 검댕이들.”
검은 불꽃의 문양이 가득한 달리는 불꽃 챕터의 쿠트니아에게 한 다른 쿠트니아가 아는 척을 했다.
“빨갱이, 어서 오고.”
붉은 피가 팍팍 터지는 듯한 형상을 집어넣은 갑옷을 입은 쿠트니아를 반겼다.
피의 번식(Sanguis Propagatio) 챕터에 소속된 자며, 첫 번째 왕이라 불리는 레리 워리어에 소속된 자였다.
가장 많은 죽음을 일으켰으며, 가장 오랫동안 아스모데를 모셨던 챕터가 피의 번식(Sanguis Propagatio) 챕터였다. 그들은 가장 큰 규모를 지니고 있기도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야?”
“그게…….”
했던 이야기를 되풀이하자 그가 웃어 보였다.
“기대한 만큼 나오겠지.”
“결단을 내렸단 거냐?”
“그래.”
그가 단언했다.
거대한 술집, 혼잡한 구조와 떠들썩한 공간에서는 검은 도서관에 대한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그만큼 열여섯 번째 챕터의 등장은 놀라운 일이었고, 온갖 추측을 낳으며 권속 악마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검은 도서관을 관리하게 된 열여섯 번째 왕이나 왕의 칭호는 가지지 못한 도서관장, 레리 비블리오테카는 실제로 결단을 내렸다.
“우리 군세는 베테랑이 많다. 이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단점보다는 장점을 곧추세워야 한다.”
그것을 드높여야 내부의 불만을 지울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이를 위하여 각고의 노력은 무슨, 운 좋게 하나의 지식을 찾을 수 있었다.
이를 보자마자 레리 비블리오테카는 곧장 아스모데에게 이를 알렸다.
한창 쌍소멸의 권능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아스모데는 그 만남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지 다하카, 병신 새끼. 이런 강대한 권능을 엉뚱하게 사용하다니.’
기가 찼다. 하여간, 머리가 텅텅 빈 악마들은 이래서 문제였다. 그 덕에 자신이 권능을 소유하게 됐지만.
‘의외로 악마를 사냥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그런 음습한 생각마저 가졌다.
굳이 찾아가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권능 사냥’이라는 목적하에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스모데의 악마 세계에서 노예 계급에 해당하는 미소파에스(Misopaes).
이족 보행하며, 가축을 닮은 이놈들을 통해서 쌍소멸의 권능을 사용하면 막대한 에너지를 단기간에 뽑아낼 수 있었다. 그 정도의 힘이 아스모데에게 들어왔다.
그러니 레리 비블리오테카의 방문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냐.”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손에는 미소파에스의 머리통이 들려 있었다. 갈색 털을 지닌 암소의 눈이 부릅떠져 있었다.
그 시체는 물질이며, 반물질의 힘에 의하여 서로 소멸하며 강력한 에너지 파동을 만들어내며 주변을 퍼져나갔다.
아스모데는 그 힘의 운용을 끝없이 연습해야 했다.
똑같은 초월자라도 악마는 권능을 만드는 데는 어려움이 존재했다.
드낙조차도 제대로 된 권능을 제작하지 못해 자잘한 것으로 놀고 있었다. 이는 세파리아스 또한 동일했다.
“해결책을 가져왔습니다. 아스모데 님께서도 충분히 흡족해하실 것으로 사료됩니다.”
“어떤 지식인가? 이렇게 금방 찾아오니, 기대되지는 않는구나.”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좋았다?”
“예. 그것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이렇게 일찍 찾아올 수 있었겠습니까? 행운이 우리와 함께하니, 그 어떤 시간 선에서도 능히 승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건 아카타베루가 잘 알겠지.”
중급 권속 악마라 해도 구천안흉의 예견능력은 실로 대단하다. 구천안흉은 내시나 다름없을 만큼 전투력이 없었다. 모든 능력치가 예언에 쏠려 있으며 9,000마리가 한 마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설계된 권속 악마였다.
그럼에도 그 어떤 대악마도 가지지 못했는데, 소문에 의하면 아카타베루는 녹색 도끼에게서 살아남았고, 그 경험 덕분에 구천안흉을 제작할 수 있었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외부 신경망(External neural network)을 가져왔습니다.”
“외부 신경망?”
그가 품에서 외부 신경망을 꺼냈다.
그것은 생체 부착물이며, 길쭉했다. 물컹거릴 것 같았고, 끝에는 색이 진해져서 조금 검었다. 전체적으로 회색 톤이라 더 혐오스러웠고, 징그러운 무언가가 있었다.
“착용하면 이렇게 됩니다.”
이에 그가 목을 드러내 보여줬다. 두드러기 같은 것이 나 있었다.
“신경을 건드리지만, 체외에서 체내로 이식합니다. 목뼈에 있는 신경계에 닿아야 합니다.”
보통의 외과수술로는 힘든 일이지만, 걱정 없었다. 권속 악마는 인간을 초월한 괴물들이기에 능히 그 수술을 견뎌낼 터였다.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자원은?”
“초월의 힘 약간. 생체자원 약간이면 충분합니다.”
싸다.
“효능은 어떠냐.”
“주변에 있는 이들과 명령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강한 경고를 해야 하고, 연습을 해야 합니다. 신호가 약하기 때문에 소리를 쳐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 말은, 잘 사용이 안 될 때가 있다는 것이냐?”
“소리를 지른다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바로 신경을 통해서 전달됩니다. 소리로 듣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듣기 전에 이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 그 차이는 중요하다.
“익숙해지면 고함을 지르지 않아도 되겠어.”
“서로 많이 교류할수록 수신호는 강해집니다. 때마침 챕터로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아스모데가 크게 웃었다. 그에 고혹적인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그녀는 웃음을 흘리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잘해 줬다. 기존의 챕터는 더욱 결속이 강해질 것이고, 새로운 챕터 또한 강한 결속을 지니게 될 것이다.”
“예.”
아스모데가 손가락을 하나씩 번갈아 가며 촤라락 움직이며 의자를 두드리다가 좋은 생각이 나서 말했다.
“당장 챕터를 늘려야겠어.”
“역시 아스모데 님이십니다. 대단히 현명하십니다.”
익숙해지면 순식간에 베테랑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생산 건물은 이미 넘친다. 버려진 생산 건물에 생체자원이 들어갔다. 악마의 힘은 육체에 담기는 것. 싱싱한 생체자원은 권속 악마를 공장처럼 찍어내기 시작했다.
검은 도서관의 관리를 위한 챕터와 기존의 챕터를 합치면 16개의 챕터가 존재했다.
아스모데는 자원이 허락되는 한 닥치는 대로 생산을 명령했다.
‘모든 걸 쏟아붓겠어.’
아스모데는 모든 것을 쏟아부을 생각을 가졌다. 아카타베루가 테라 침공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과는 현격히 다른 마음가짐이었다.
‘머릿수가 많은 아카타베루의 군세를 생각하면 이는 당연하다.’
베테랑이 많아도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가진 모든 걸 쏟아부어야 조금이라도 이길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그 외에도 레리 비블리오테카는 검은 도서관을 샅샅이 뒤지며 수많은 지식을 발굴해 냈다. 오직 지식을 신봉하며, 간사한 짓만 일삼으며 이득을 좇았던 다잘과는 달랐다.
다잘은 알고 있어도 이를 사용하지 않았었다. 뭐든지 아끼고, 쌓아두기를 좋아해서다.
이곳에 온 까닭도 콩고물을 먹으러 온 것이지 대악마들과 배틀로얄을 찍으려고 온 것도 아니었다. 너무 방심했단 소리다.
챕터의 군대는 빠르게 지식을 흡수하며 모든 면에서 개선이 이루어졌다.
단순히 계급이 나뉜 것에서 계급 내부에 또 분화가 일어났다.
“애니머싱거!”
쿠퍼 플레임(Copper Flame)이 거대한 지팡이에서 쏟아져 나왔다. 길쭉한 형태의 액체 및 화염으로 둘러싸인 쿠퍼 플레임은 압도적인 중화력기였다.
지팡이는 단순하지 않았으며 조끼 형태로 추가적인 장비를 입어야만 사용 가능했다. 등에는 H라는 선명한 글씨가 적혀져 있었다.
이런 중화력 아티팩트는 마법처럼 보였지만 대단히 악마적인 물건이었다. 사용하면 할수록 사용자의 생명력이 소모되며, 이내 육신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 탓에 애니머싱거는 현대로 치면 시민 계급인 휴포크트니아(Hufoctnia)들이 사용할 수 있었다. 미소파에스는 덩치가 작아서 사용할 수 없었다. 155mm 박격포보다 더 무거운 것을 짊어져야 했고, 해체하여 부품을 나눠서 들 수도 없기 때문이다.
쿠퍼 플레임은 갉아먹는 생명력을 통해서 압도적인 화력 투사가 가능했다. 악마와의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210~290cm에 불과한 휴포크트니아 한 마리가 수십 마리를 죽이는 것만으로도 큰 이득이었다.
이처럼 잔혹한 다잘의 검은 도서관에 있는 비밀스럽고 잔혹한 지식들은 권속 악마의 목숨은 상관없이 아낌없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스모데는 하나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