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4화
* * *
“꺼어억!”
아카타베루가 트림을 했다.
그의 앞에는 상급 악마인 오십몽대두(五十夢大頭)와 데몬 나이트들이 늠름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두 상급 악마는 오크 카운터를 위한 존재들이다. 환영을 다루고, 50개의 머리를 모두 내려치지 않으면 죽지 않는 오십몽대두는 오크들의 대적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대한 낫을 지닌 것도 험악하다.
데몬 나이트는 범용성이 높지만, 이들 또한 오크 카운터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들이었다.
대악마, 아카타베루가 창조해 낸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상급 권속 악마의 일종이다.
다만, 아카타베루의 군대는 ‘상급 악마’라 불리지만 아스모데의 군대에서는 ‘최상위 악마’라 불리는 소소한 차이가 존재했다.
서로 부르는 게 조금씩 달랐으나, 결론은 결국 맨 위에 있는 권속 악마가 반마급이라는 점은 같다.
준초월의 존재들답게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모두 잘못된 예언으로 오크를 대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만, 같은 대악마와의 싸움으로 그 숫자가 대단히 늘어나 있었다.
상급 악마는 그리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설비가 필요하고, 생산 건축물을 만들어야 했다.
특히 아카타베루의 악마 세계는 그 한계가 심하다.
악마 세계는 대부분 소아귀(小兒鬼)로 이루어져 있고, 침공 시기마다 건축물을 만들고, 상위 악마를 생산하는 탓이다. 아스모데처럼 자신의 몸에서 잉태되지 않는다.
악마라고 모두 같은 것이 아니다. 대악마라면 더더욱 다르다.
행성이라도 집어삼킬 수 있을 것처럼 거대한 아카타베루와는 다르게 2m에 불과한 덩치를 지닌 아스모데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오십몽대두는 그중에서도 소아귀의 정신과 영혼을 모아서 육체 덩어리에 부여한 것으로, 만들기가 매우 까다로워 50마리에 불과했고, 데몬 나이트는 150기에 달했다.
붉은 용이자 마룡에 기승(騎乘)한 그들은 강력한 존재였다. 덩치가 큰 만큼 많은 힘을 보유하고 있다. 아티팩트도 여럿 들고 있어서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건 당연하다.
그 뒤로는 구천안흉(九千眼凶)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9천 개의 눈.
녹색 도끼의 예언에는 비할 바가 안 되지만, 그들 또한 예언할 수 있었다. 테라에서의 싸움이 어떻게 될지 미리 보는 것도 가능했다. 녹색 도끼에게 견제당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차근차근 비밀을 엿보고 있었다.
인골흉(刃骨凶)도 그 예언을 통해서 생산되고 있는 중급 악마 중 하나였다. 그들도 칼날 뼈로 이루어진 기괴한 악마다. 엘프를 카운터 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였다.
마법 내성이 뛰어나고, 대단히 기민하며 뼈 하나하나가 쏘아지며 무기로 사용되기에 엘프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외에도 누더기의 형태에 잘 죽지 않는 육파괴봉(肉破块縫)과 코로 뒤덮인 거대한 기둥인 비식마력(鼻食魔力)이 있었다. 그들의 숫자는 합쳐서 200만이 넘어섰다.
비식마력에서 생산되는 마력충은 아카타베루의 악마 세계를 살찌우는 자원임과 동시에 중급 악마 이상을 제작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자원을 아낄 수 있는 효율적인 재료였다.
하급 악마로서는 조출귀(釣出鬼), 황포괴(黃胞怪), 소아귀(小兒鬼)가 있었고 소아귀는 500억에서 400억으로 줄어들었지만, 조출귀는 750만 마리가 되었고, 황포괴는 300만이 넘어섰다.
인간으로 치면 장창병이라 할 수 있는 게 조출귀였다. 그들은 여러 개의 팔을 지니고 있었고 악마답게 덩치도 컸다. 인간을 조지기 위한 존재들이다.
화산재를 뿌리는 독수리인 레드 스카이는 데몬 나이트의 든든한 고기 방패였다. 그 숫자 또한 50만으로 많았다. 데몬 나이트가 150기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칠 정도로 물량이 많았다.
그게 아카타베루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숫자가 많다.
그들을 상대하는 상대는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아카타베루의 침공은 가히 수백만의 공습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소아귀조차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침공하면, 모든 곳에 전투가 시작되고, 난전은 악마들의 손을 들어주는 승리의 여신이나 다름없었다.
“구천안흉은 들어라. 승부가 어찌 될 것이라고 보나?”
대악마, 루살리의 뼈를 씹어먹으며 아카타베루가 물었다.
그들은 이미 수많은 예언을 시행했고, 그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것을 내뱉었다.
“가장 많이 본 것은 저희의 패배였습니다.”
“뭐라!”
그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모든 이들이 고개를 숙였다.
“내가 진다는 것이 가장 많았다고? 어째서냐!”
“모든 것에 우세했지만, 항상 하나가 부족하여…….”
구천안흉은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모조리 싹 다 소아귀로 만들어서 효율 좋게 악마 세계를 관리하며, 폭발적인 인구수 증가와 생산력으로 별을 싹 다 밀어버리는 것이 아카타베루다.
그는 대악마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악마 세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가 패배한다. 그런 그가 하나가 부족해서 고꾸라진다.
“그걸 지금 제대로 된 예언이라고 들고 온 것이냐. 누가 봐도 불리한 것은 아스모데이거늘!”
그가 분노했다. 그 분노는 구천안흉에게로 향했다.
전쟁이 끝나면 모든 악마는 육(肉)으로 돌아가고, 소아귀로 재탄생한다. 그런데도 구천안흉은 자신들의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었다. 아카타베루의 장자 지방 역할을 하는 덕이다.
“하나가 부족해서 죽는다라,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느냐?”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결국 아스모데가 위대한 지배자이신 아카타베루 님의 위에 올라서 있는 광경이 된다는 것입니다.”
상세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다른 예언은?”
“서로 협력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두 세력은 큰 피해를 입었고, 타협하게 됩니다. 그 자리에 저희, 구천안흉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스모데는 나와 몇 번이나 마주했던 적이 있으니까, 가장 먼저 구천안흉을 죽이겠지.”
반드시 그리할 터였다.
전쟁에서 장교급이 사라지면 더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고, 하더라도 패배가 약속되어 있다.
6‧25전쟁에서 중공군은 UN군이 아니라 철저하게 한국군을 노렸다.
경험과 화력이 부족한 한국군은 쭉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장교급 인사는 중요했다.
구천안흉이 몰살당하면 아스모데에게 반드시 기회가 있으며 아카타베루는 이에 타협을 선택했을 공산이 크다.
“…….”
그럴듯한 광경이 그려졌기에 아카타베루의 분노가 사그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은 오지 않은 미래다.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안 그런가?”
“아직 마지막 미래를 듣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은 무엇인가.”
“저희가 승리하는 길입니다.”
“승리라. 어떻게 승리를 했는가?”
“지금 당장 쳐들어가는 것에 있습니다.”
“크크.”
아카타베루가 웃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단호했다. 분노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죽인 대악마를 포기하는 꼴이다.’
대악마의 시체는 최대한 빨리 흡수해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역량은 사그라들기 때문이다.
악마는 초월의 힘이 육체에 담긴다. 그렇기에 죽는 순간부터 힘의 소실이 일어난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
시체는 썩고, 문드러진다. 이는 죽은 대악마에게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최대한 빨리 먹어 치워야 하는데, 뭐라? 지금 공격하자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확실한 승리는 그것에 있었습니다.”
이에 아카타베루는 그래도 고개를 저었다.
“내 손에 들어온 대악마가 이토록 많았던 적은 처음이다.”
놈들은 방심했고, 긴 세월 동안 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태평했다. 테라와 중립신의 시체에 대해서 떠들기 바빴다.
로또가 당첨되지도 않았음에도 당첨된 것처럼 여기는 것처럼 굴었다.
그런 놈들이 승리할 리가 없었다. 제대로 된 피해를 아카타베루에게 줬을 리가 없었다.
“루살리. 우투쿠. 말레브란데. 요르문간드까지.”
네 마리의 대악마를 잡아냈다.
“이런 전공은 일찍이 봐온 바가 없다.”
상상 이상의 전공이며, 지금은 루살리를 겨우 다 먹어 치웠으나, 아직 소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그걸 포기할 수는 없다.”
모두 아카타베루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테라에서의 전투를 생각하면 소아귀들도 유지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질 것 같지 않았다. 예언이라고 해도 모든 것이 딱 떨어지지는 않는다. 만약 딱 떨어진다면 모든 이들이 시간 선을 훑을 것이고, 중립신은 절대 실패하지 않았을 터였다.
“흐으음…….”
아카타베루가 고민하다 이내 구천안흉에게 말했다.
그들은 자신보다 더 자신이 만든 악마 세계에 대해 알고 있다. 9천 마리의 구천안흉은 전투력 대신 지능을 높였기에 하나같이 똘똘하다.
“과대한 전력을 만든다면, 테라에서의 전투에서 부족함이 있겠지?”
“예상치의 반절이 될 겁니다.”
“그만한 소모가 일어난다고?”
“평균이며 예상치일 뿐입니다.”
아카타베루는 이내 자신이 놓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강한가?’
초월자가 된다고 모두 똑똑해지지는 않는다. 그저 격이 높아질 뿐이다. 더 많은 힘을 보유할 수 있는 것뿐이다.
드낙이 게임만 하고 자빠진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었다.
그가 전생해서 테라에서 뒹굴 때 현대에는 많은 문화가 생산되었고, 이를 따라잡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들은 절대 전지전능하지 않았다.
“아스모데의 군대가 의외로 강한 것 같은데?”
“실로 그러합니다.”
아카타베루가 몸을 조금 움직였다. 거대한 산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계속 말하라.”
“아스모데의 군대는 저희와는 다르게 경험이 많습니다.”
아카타베루의 군대는 전쟁이 끝나면 싹 녹아 들어가며 소아귀로 재탄생한다. 경험 많은 베테랑도 남지 않는다.
오로지 머릿수를 늘리기 위해서고, 더 강한 이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다.
악마 세계가 커지면 커질수록 권속 악마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다. 이를 추구하는 것이 아카타베루였다.
반면 아스모데는 살아남기만 하면 끝까지 살아갈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다고 육(肉)을 녹이지 않는다. 그대로 유지하며 싸움에서 얻은 경험을 계속 움켜쥐고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 덕에 아스모데의 군대는 숫자는 적지만 경험이 많은 이들이 많았다.
물론 숫자가 대악마치고는 적다는 것이지, 휴포크트니아(Hufoctnia)나 미소파에스(Misopaes)의 계급에 속해 있는 하위 악마는 그 숫자가 대단히 많았다.
물론 그런 자들 또한 경험이 충분히 쌓인 베테랑도 존재했다. 종종 휴포크트니아 중에 공을 많이 세운 권속 악마는 태리어로 올라가는 등, 계층 이동마저도 존재했다.
이는 대악마에게 까다로운 일이다. 계층마다 부여되는 육신, 초월의 힘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매번 이런 논공행상을 하는 건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걸 하지 않아도 권속 악마들은 목숨을 바친다.
아카타베루로서는 의미 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그 의미 없는 짓도 지금은 확실한 장점이 드러났다.
악마와 악마의 싸움에서 아스모데의 군세는 그 위력을 가장 돋보일 수 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커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우리가 이점을 가지고 있다. 지금부터 생산을 시작하면 능히 이길 수 있다. 압도적으로 이기게 최대한 많이 생산하겠다.”
아카타베루는 악마와의 싸움에 능한 권속 악마를 생산할 생각을 가졌다.
“스텝 데빌(Step Devil)을 만들어라. 그레이드 패밀리(Grade Family)를 지휘하게 만들겠다.”
스텝 데빌은 강력하지만, 소비가 크다는 단점이 있었다. 소형, 중형, 대형 입맛대로 단계별로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런 스텝 데빌과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이 그레이드 패밀리였다. 그들은 외형은 비슷하지만, 수준을 입맛대로 맞춰서 생산할 수 있었다.
악마와 악마의 전투에서는 소형, 중형, 대형 권속 악마가 모두 필요하고 다재다능한 권속 악마, 그레이드 패밀리가 이를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그레이드 패밀리를 제어하는 데 압도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상급 악마가 스텝 데빌이었다.
즉, 강함으로 따지면 스텝 데빌이 더 강하나, 실질적으로는 그레이드 패밀리를 운용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다.
“단순하기에 공장처럼 생산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이미 생산 건물이 존재하는 아스모데와는 달리 아카타베루는 처음부터 다시 생산해야 했다.
지금 당장 생산할 수는 없지만 아카타베루는 걱정하지 않았다.
아스모데가 대악마를 소화하는 데 자신보다 오래 걸릴 것이 틀림없었다.
그 타이밍을 잡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게 아카타베루의 노림수였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악마가 테라와 중립신의 시체를 먹게 된다.’
그것을 얻게 된다면 유례없는 대악마가 탄생할 것이다. 대악마들조차도 감히 도전하지 못할 것이다.
아카타베루는 그런 존재를 극대악마(Maximal Devil)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